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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02
    지지(15)
    schua

지지

바리님의 [간병] 에 관련된 글.

1.

바리의 글을 읽으며 맘이라도 달래주려 트랙백을 확 눌렀는데

막상 뭐라 쓰려고보니 내 코가 석자다. 미루는 벌써 2주동안이나 코감기, 기침감기 그리고 엇그제부터는 땀띠로 잠을 제대로 못잤다. 아가가 잠을 제대로 안잔다함은 부모도 잠을 못 잤단 이야기.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머리는 멍하고 또 그동안 답답한 살림살이에 탁탁 터지는 구멍들을 메꾸느라 맘을 쓰다 보니 몸도 탈이 났던지 그만 목감기에 걸렸다. 그래도 그 와중에 교육을 하러 다녔는데 역시 사람들을 만나니 맘도 몸도 순환이 되고 조금은 기운을 차렸다. 그런데 땀띠로 잠을 못 자는 미루 때문에 한 사나흘 잠을 못 진 피로감이 결국 터져 별일 아닌 일로 아침에 상구백과 한바탕했다.

 

문득 아기를 키우면서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이 뭔가 뭐 그런 생각을 했는데 바리의 글을 보니 여러가지가 확 올라온다. 바쁜 시기에 아가가 아프면 애가 탄다. 속이 상하단 말을 잘 쓰지 않았는데 아가가 아프면 속이 상하다. 많이. (바리 많이 속상하죠. 나도 많이 속상해요.)

 

그래도 믿을 건 아가 밖에 없다. 아가는 그 시간을 잘 견뎌낼 것이다. 그리고 같이 있는 사람.

진경아, 미루야, 잘 견뎌낼꺼지? 그래도 많이 힘들잖아 그럴땐 맘껏 징징거려 그럼 니 등을 토닥여 줄께.

 

2.

미루가 지난 금요일부터 걷기 시작했다. 조금씩 한발 한발씩 걷기 시작했다. 한 이틀 전부터 아무 것도 안 잡고 서는 폼이 참 든든했는데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한발을 띠고는 뒤뚱거리며 다음 발을 띤다. 한발 띠는 미루 얼굴을 보면 정말 뭔가 신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 같다. 나는 그럴때 마다 있는 호들갑을 떨면서 환호를 해준다. 상구백은 평소의 나와는 다르다고 유난히 미루가 걷는 것을 좋아라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아마도 미루가 걷게 되면 좀 더 편해지지 않겠나 하는 기대가 있어서고 그 다음으로는 그 녀석이 한발 걷기 위해 했던 많은 노력들이 생각나서 그렇다. 한동안 엎드려서는 다리를 한짝씩 들고 내리고를 열심으로 했다. 처음엔 왜 저러나 했는데 어느순간 보니 그게 걷기 위해 다리를 단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외 다양한 노력들을 했다. 인간이 직립보행하는 데 얼마나 많은 조건이 필요한지...여튼 그런 노력들이 생각나니 마구 환호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문득, 나중에 이녀석이 하나씩 뭔가를 성취할 때도 이렇게 호들갑 떨면서 수고했다고 좋아라 해야지 다짐을 했다. 나의 노력의 결과를 나누고 싶을 때 나는 간혹 외로웠던 기억이 있다. 그 시간에 누군가 나를 지지해줬다면 난 더 행복했을 것 같다.

 

3.

내가 지지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건 나의 부모와 관련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엄마와 과련이 깊다. 아빠와는 뭐 소통다운 소통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어려운 살림에 아기 셋을 키우면서 엄마는 내게 참 담담했다. 그러면서도 나에겐 참 많은 것을 기대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내가 융통성이 있길 바랬던 거다. 난 어릴적부터 부모 걱정 시키지 않는 아이여야했고 그래서 혼자서 뭐든 해결해야 하는 아이였다. 그러다 뭔가 도움이 필요해서 손을 내밀면 부모는 내게 "애가 융통성이 없어서"란 말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아이가 융통성이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인데 그땐 내가 뭔가 크게 잘못한 것인양 힘들어하면서 다음부터는 내가 잘 알아서 해야지 했다. 그러면서도 나의 결정과 행동이 뭔가 융통성 없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 항상 불안하고 뭔가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려야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부모에게 인정 받고 싶어하는 맘이 남아서 부모의 특히 엄마의 주위를 맴돌았는데 엄마는 아기 셋을 돌보면서 일도 해야 하는 자기 일만으로도 너무 바쁘고 고단했다. 지금이야 이렇게 고단한 그녀를 이해하지만 그땐 많이 야속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아에 그 통로를 닫고 살았다. 이제 더 이상 엄마의 지지나 인정을 받지 않아도 대략 자기 긍정을 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조금씩 주변을 두리번 거리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가끔 하는 전화통화에도 난 그녀의 지지를 갈구하다 맘이 상한 날 발견할 때마다 내가 참 작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저번 일요일에 6시간 짜리 교육을 하러 나간날, 상구백도 알바로 일이 있어서 부모님 도움 받지 않고 미루를 키우겠단 다짐은 깨고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내가 먼저 집을 나서고 상구백이 엄마 올 동안 미루를 보고 있었는데 난 엄마 얼굴을 보지 않고 나온 것이 여러가지로 맘에 걸려 나가는 버스 안에서 전화를 했다. 냉동젖은 어떻게 녹여서 언제 먹여야 하고 잠은 언제 어떻게 재워야 하고 이유식은 언제 먹어야 하는 지 등등 생각나는 대로 막 떠들고는 "엄마 수고해주라"  했는데 엄마왈 "어~ 걱정하지말고 우리딸 일 잘하고 와~ 화이팅!!", "어, 엄마"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뭔가 울컥하는 것이. 그만 눈물이 나왔다. 어찌보면 가난한 딸이 돈벌러 가니 가서 도와줘야지 하셨을께다. 그래도 난 그 말이 나의 일에 대한 지지로 들렸고 그 지지가 나의 가슴에 가득찼다. 그리고 웃어버렸다. 지지의 맛은 진정 달콤했다.

 

4.

내가 그대의 지지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그대가 주저할 때, 외로워 할 때 달콤하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역시나 진경한테 물려 받은 신발을 신고 함 필드에 나갔다.

신발이 어색한지 계속 신발을 들려다 보다 앞으로 넘어질뻔했다.

애 신발 신겨서 나갔다 했더니 엄마왈 "애가 바로 뛸줄 알았지?"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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