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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모호하다

얼마전 술자리에서 앞에 앉은 이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현실의 한 순간에 대해 이야길 나누게 되었다.

 

 

*그는 03년 고려대 노천극장에서의 철도파업의 순간을 이야기했다.

 

비가 주륵주륵 내리던 그날 밤, 노천을 가득 메우고 있던 긴장감.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댔고, 찰칵찰칵 펑ㅡ펑ㅡ 사진기는 긴장이 가득한 대기를 가르고 컴컴한 어둠 속에 빛의 길을 만들어냈다. 그 길을 통해 보이던 빗줄기의 토막토막. 빗방울의 향연.

 

 

*나는 올해 3월 기륭공장앞에서의 순간을 이야기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대치상황, 급기야 기륭공장에서는 소화전을 관리실 옥상으로 끌어올리더니 우리들에게 물대포처럼 그것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정오에 가까워지자, 순간 우리 앞엔 무지개가 떴다. 햇살은 쨍쨍한데 물대포는 비처럼 머리위로 쏟아지고...어디선가 구해온 노란 우산아래 은미씨와 김소연분회장님은 환하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너무나도 환한 웃음을 해맑게 지으면서 물대포를 비처럼 맞고 계셨다.

 

 

*그리고 오늘 밤, 또한번의 그러한 순간을 만나다.

 

마지막 전철은 조용하게 한강을 건넜다. 전철창의 사각틀에 갇힌 캄캄한 어둠, 그 한 가운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있는 주인공처럼 플랑이 펄럭여대는 것이 보였다. 검은하늘과 검은강물의 한 가운데 솟아있는 한강대교, 그곳에서 펼쳐지는 연극의 한장면. 핀조명. 눈에보이지 않는 농성자들, 눈에보이지않는 전경들, 붙박힌듯 세워져있는 닭장차, 모두들 스톱모션, 오로지 플랑만 펄럭인다.....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현실의 한 순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이처럼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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