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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300일-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 입을 파란 스머프 티를 찾기 위해 서랍장을 뒤졌습니다. 이 파란색 스머프 티는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의 상징물입니다. 지난여름 이 파란 스머프티를 벗어넣을 때 다시금 입게 되리라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스머프 티를 다시금 입는 것이 너무나 두렵고 고통스럽습니다.


지난여름 이 땅의 노동자로 당당하게 살고자, 인간답게 살아보자며, 우리의 목소리를 외쳤습니다. 그런 저희들 곁엔 늘 우리투쟁을 지지하는 많은 동지들이 함께 하셨기에 더욱 당당하게 결의에 찬 목소리로 “투쟁! 투쟁!” 을 외칠 수 있었습니다. 어색하기 짝이 없던 팔뚝질, 그간 관심조차 없었던 투쟁가들... 모두 낯설기만 한 우리의 울분을 담아내는 팔뚝질과 투쟁가로 만들어준 힘은 동지들이었습니다. 무참하게 가해지는 공권력 앞에선 우리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시고, 처절하게 쏟아져내리는 물대포 앞에선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주신 동지들... 항상 동지들이 함께하기에 그 어떤 폭력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덧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300이라는 긴 시간동안의 투쟁 때문에 저흰 많이 지쳐가고 있습니다. 어려워진 생활고로 가족들의 지지도 많이 떨어지고, 이젠 끝났으면 하는 가족들의 무언의 압력들로 인해 그 어느 고통보다 저희를 더욱더 힘들게 합니다.


지난해 겨울 어느 날 “드디어 전기가 끊겼어.”라는 큰아이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전 답문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진행된 투쟁일정과 회의를 마치고 현관 앞에 들어섰습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촛불하나 켜놓고 공부하고 있는 큰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도 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도 제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전 밤새 베개 깃을 적시며 고민했습니다. 진정 나와 우리 가족이 처해져있는 현실 속에서 지금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가. 지금 당장 먹을거리가 없고 기본적인 삶이 영위되지가 않는데 이런 가족들의 고통을 뒤로하고 길바닥에 앉아 투쟁만을 외치는 내 모습이 진정 우리 아이들의 엄마로서의 모습인가.


또한 며칠 전엔 작은 아이가 문자를 보냈는데, “급식비 못 내서 점심 못 먹으면 운동장 수돗가에서 물이나 먹지 뭐” 하며 제 가슴을 긁어내리는 내용이 담겨져있었습니다. 빨리 급식비 내달라는 말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 큰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문잘 보내려 마음먹고 한 자 한 자 찍어 내려가는 그 아이의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무너집니다.


전 300여 일간의 긴 투쟁 속에서 나름 강한 결의로 투쟁에 임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제 자신의 결의만큼으론 극복하기 어려운 크나큰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고통을 딛고 오늘 이 자리에 있게 함은 “엄마 전기 끊긴 열흘 동안 촛불 밑에서 공부하다보니 집중도 더 잘되고 그동안 안 읽었던 책도 열권이나 넘게 읽었어요.” 라고 말해주는 큰아이의 한마디와 “급식비 못 내서 굶는 아이들이 많다는 말 안 믿었는데. 진짜 그럴 수 있구나 생각되어서 잔반 없이 먹어야겠다.”는 작은 아이의 일기장에 적힌 두 글... 더불어 오늘도 투쟁현장에 가면 볼 수 있는 우리 조합원 동지들, 저 못지않게 힘겨운 현실 속에서 그 모든 고통감수하고 극복해나가며 서로 어깨 걸고 보듬어 안고 힘찬 팔뚝질로 “투쟁!”을 외치는 밝고 당당한 모습들이 이 자리까지 절 이끌어와 준 힘이라고 믿습니다.


그 보다 더 큰 힘은 우리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의 현장이라면 어디든지 달려와주시는 동지들, 우리 조합원들 힘들고 지쳐있을 때 용기와  힘이 되어주신 수많은 동지들의 사랑과 관심이 오늘 이 자리에서 동지들에 감사의 글을 읽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삼백일이라는 긴 시간동안 흔들림없이 노동자 탄압하는 자본가들에 맞서 당당히 투쟁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신 동지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시고 저희 투쟁의 지지자가 되어주시는 모든 동지들의 사랑을 받아 안고 저희 투쟁 반드시 투쟁하는 그날까지 흔들림없이 투쟁할 것이며 반드시 승리해서 현장에서 당당하게 일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또한 저희투쟁 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의 투쟁을 우리 동지들의 단결과 사랑으로 만들어나가며 이 땅의 모든 노동자가 인간답게 당당히 살 수 있는 결실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랜드 조합원들은 동지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랜드 일반 노동조합 월드컵분회 조합원 황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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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마치고...상암으로 갈까 어쩔까 이미 저녁인데 가는동안 다 끝나면 어쩌나...

그러면서 발걸음은 상암으로 향했다.

 

역시.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밤이 깊어갈수록 더 늘어나는 동지들.

시간이 흘러 밤이 깊어갈수록 더 풍성해지는 진실된 이야기들.

 

송경동 시인의 시낭송을 들으면서 녹음을 할껄, 아쉬워했는데

...당신들이 내 마음 깊은 곳으로 점거해들어왔다.

...나의 비겁과 두려움과 자만을 점거했다.

...이 시대 잠자고 있는 모든 양심을 점거했다.

는 "점거는 끝나지 않았다"는 이랜드300일 투쟁에 부치는 詩 뿐만 아니라

나의 詩가 말이나 글이 아닌, 투쟁의 짱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ㅡ라는 시인의 말씀도 좋았기에.

 

이랜드 조합원의 편지읽기가 바로 이어지길래, mp3를 급히 켜서 녹음버튼을 눌렀다.

가슴이 저며오고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혼났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동지들은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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