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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1/09
    새날 새아침
    로젤루핀
  2. 2006/09/01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모호하다
    로젤루핀
  3. 2006/07/03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되돌아가지 않을.(3)
    로젤루핀
  4. 2006/05/11
    올해도 농사짓고, 올해도 조개잡고, 올해도...(2)
    로젤루핀
  5. 2006/01/27
    홍어를 먹으며(2)
    로젤루핀
  6. 2006/01/26
    로젤루핀
  7. 2005/12/04
    들불이 되자(5)
    로젤루핀
  8. 2005/10/01
    운수나쁜 날(2)
    로젤루핀
  9. 2005/09/01
    새마을호 여승무원 투쟁ㅡ많은 기억을 남긴 투쟁
    로젤루핀
  10. 2005/07/21
    잘려진 손가락. 잘라낸 머리칼(1)
    로젤루핀

새날 새아침

 

사무실로 온 우편물 중에 연하장 하나가 삐죽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노동악법의 날치기 통과 속에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진흙탕 개 싸움에 여념이 없던 저들이 노동자 민중을 탄압하는데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오, 얻을 것은 세상이다."

삶의 현장에서, 투쟁의 현장에서 두고두고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한 해 동안 ㅇㅇㅇㅇㅇㅇㅇ ㅇㅇㅇㅇㅇㅇㅇ에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동지들께 감사드리며

새해에는 더욱 힘차게 싸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더욱 힘차게 살아야지. 아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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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모호하다

얼마전 술자리에서 앞에 앉은 이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현실의 한 순간에 대해 이야길 나누게 되었다.

 

 

*그는 03년 고려대 노천극장에서의 철도파업의 순간을 이야기했다.

 

비가 주륵주륵 내리던 그날 밤, 노천을 가득 메우고 있던 긴장감.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댔고, 찰칵찰칵 펑ㅡ펑ㅡ 사진기는 긴장이 가득한 대기를 가르고 컴컴한 어둠 속에 빛의 길을 만들어냈다. 그 길을 통해 보이던 빗줄기의 토막토막. 빗방울의 향연.

 

 

*나는 올해 3월 기륭공장앞에서의 순간을 이야기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대치상황, 급기야 기륭공장에서는 소화전을 관리실 옥상으로 끌어올리더니 우리들에게 물대포처럼 그것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정오에 가까워지자, 순간 우리 앞엔 무지개가 떴다. 햇살은 쨍쨍한데 물대포는 비처럼 머리위로 쏟아지고...어디선가 구해온 노란 우산아래 은미씨와 김소연분회장님은 환하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너무나도 환한 웃음을 해맑게 지으면서 물대포를 비처럼 맞고 계셨다.

 

 

*그리고 오늘 밤, 또한번의 그러한 순간을 만나다.

 

마지막 전철은 조용하게 한강을 건넜다. 전철창의 사각틀에 갇힌 캄캄한 어둠, 그 한 가운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있는 주인공처럼 플랑이 펄럭여대는 것이 보였다. 검은하늘과 검은강물의 한 가운데 솟아있는 한강대교, 그곳에서 펼쳐지는 연극의 한장면. 핀조명. 눈에보이지 않는 농성자들, 눈에보이지않는 전경들, 붙박힌듯 세워져있는 닭장차, 모두들 스톱모션, 오로지 플랑만 펄럭인다.....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현실의 한 순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이처럼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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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되돌아가지 않을.

미류님의 [결코 되돌아가지 않으리라] 에 관련된 글.

 

결코 되돌아갈 수도 없고

되돌아가지도 않을 텝니다. 우리들은.

이제 우리는 우리의 길을 찾았고 여성해방을 향해 함께 나아갈 텝니다.

 

 

 

 

*I'll Never Return

I'm the woman who has awoken
I've open doors of ignorance
I have said eternally
farewell to all golden bracelets

I'm the woman who has awoken
my nations wrath empowered me
burnt and ruined villages fill me with hatred against the enemy
no longer regard me as weak and incapable
with all my strength I'm on the path of my land's liberation

my voice has mingled with you
thousand of arisen women
my fists are clenched with you
the fists thousand compatriots my nation

oh! compatriot
no more I'm not what I was before
oh! compatriot
I've found my path and will never,
never return never return before


나는 깨어난 여성이다
나는 무지의 문을 열었고
나는 황금빛 팔찌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하였다


나는 깨어난 여성이다
분노가 내게 힘을 주었고
불타버린 마을들이 적을 향한 증오로 나를 채웠다
나를 더이상 약하다 힘없다 말아라
나 온 힘 다해 이 땅의 자유의 길 걸으니

나의 목소리는 여기 그대들과 하나요
나의 이 주먹도 그대들과 함께 쥐어져 있네

오! 형제여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니
오! 형제여 나는 내 길을 찾았고 결코 되돌아가지 않으리라

 

 

 



♪ 안혜경3집 13. I'll Never Return ♪



♪ 안혜경3집 11. 결코 되돌아가지 않으리 ♪

 

 


I'll Never Return은 아프간 여성 Meena의 시예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교육권과 노동권으로부터의 배제는 물론이고, 일상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하는 아프가스니탄 여성들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1977년에 결성된 'RAWA(아프간 여성 혁명 연합, The Revolutionary Association of the Women of Afghanistan)'의 초기 지도자, Meena.

1956년 카불에서 태어나 1987년 KGB의 아프가니스탄 조직인 'KHAD'의 조직원에 의해 암살당하기까지 Meena는, 탈레반 정권이 구조화시켜놓은 여성 억압적인 체제를 뒤엎기 위해 RAWA를 조직하고 이끄는 데 생을 다 바쳤다고 합니다.

 

 

 

그녀의 시에 안혜경(여성노동 관련해서 우리가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노래 ♬일이 필요해, 의 바로 그 안혜경^^)이 노래를 붙여 비로소 우리도 Meena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게 된 건데요,

 

우리말 가사가 붙여진 노래는 또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오~형제여~~'라는 부분에서 의아해했는데

1년의 텀을 두고 다시 노래를 듣게 되었을때 비로소 노래를 이해하고 감동하게 되었거든요.

 

그 이후로 힘들때마다 몇번이고 되뇌였는지 몰라요.

결코 되돌아가지 않으리라, 라고...

 

 

이 노래는 안혜경 언니의 3집 음반에 있어요

노래를 인터넷 등으로 접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음반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요

저도 38 여성의 날 문화제때 음반을 구했던거라..

(안혜경 언니 홈페이지를 통해서 음반을 구할 수 있을 꺼예요.

홈피 주소는 http://femimusic.co.kr )

 

 

요기다가는 파일을 직접 올릴 수가 없어서

(블로그에서는 왜 파일을 올릴 수 없는지 불만이예요 -_-)

 

공동체를 뚝딱 만들어서 거기다 파일 올리고 링크를 걸었는데

제대로 연결이 될지 모르겠네요..;;;

 

암튼 이 노래로 지지의 마음을 전합니다.

힘내세요. 힘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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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농사짓고, 올해도 조개잡고, 올해도...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올해도 농사짓고, 올해도 조개잡고, 올해도 일을 하자!

 

 

 

"뭐해? 바빠?"


슬슬 하던 일 정리하고 집에가볼까나ㅡ하던 참에 전화가 걸려왔다. 평택 대추리 솔부엉이 도서관장 재연언니다. 지난 2월에 있었던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평화의 연날리기 행사 이후 또한참 만나지 못했던 언니이기에 퍽이나 반가운 전화였다. 그런데 어째 언니 목소리가 어둡다.

오늘 언니는 평택 평화의 땅 한평지키기 모금을 위해 정읍에 다녀왔다 한다. 그리고 내일은 고창을 간다한다. 평택을 지키는 인간방패가 되기 위해 대추리로 들어간 언니, 정말 온몸으로 평택을 지키고 있구나. 그런데 단지 몸이 지쳐 목소리가 어두운 건 아닌거 같다. 와락 언니가 보고싶고 걱정이 된다.


"언니, 나랑 술한잔 해요. 지금 갈께요."


평택에 가는 길은 꽤 멀다. 1호선으로 갈아탄 후 사무실에서 들고온 <작은 책>을 꺼내읽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짓게 만드는 이야기...고개를 끄덕끄덕 하게 만드는 이야기...그러다가 화들짝 놀라게 되었는데, 대학 후배녀석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게 아닌가. 이녀석, 카츄사에서 이런 괴로움이 있었더랬구나. 어찌되었든 故 효순이 미선이 투쟁을 우리는 함께 거쳐왔구나. 비록 있는 곳은 달랐지만. 그리고 지금도 있는 곳은 다르지만 이렇게 <작은 책>으로 만나는구나.


신기하고 반가워서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평택에 다 와있다. 평택역에서 대추리로 들어가는 밤길은 컴컴하고 조용하다. 후배가 쓴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한 생각을 좀더 해본다. 올해로 이라크 전쟁은 4년째 이어지고 있다. 부시,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려라! 후배녀석은 부시에게 호통을 치고 있다. 그래, 부시가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렸으면 좋으련만. 그런데 말야, 부시만 정신을 차리면 팔루자에서의 학살은 멈추어질까? 평택을 난도질하는 짓거리는 멈추어질 수 있을까? 글쎄...그건 아닌 거 같다. 왜냐면 꼭 부시가 아니더라도 미국은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자리가 위태롭게 된 이상, 전쟁을 불사하며 그 위기를 모면하려 들테니 말이다. 골목대장 자리를 그렇게 쉽게 포기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문제인가? 물론 미국이 문제이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와 그 국민들의 문제라고만 할 수도 없다. 그 어떤 나라, 국민이라도 미국과 같이 골목대장 위치에 놓인다면 지금의 미국과 부시처럼 굴지 않으리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이 될 테다. 부시가 설령 정신을 차린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질서가 유지되는 한, 이라크 팔루자에서의 학살과 평택에서의 폭력은 중단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부시를 정신차리게 만드는 동시에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위해 어떠한 새로운 길을 만들 것인지를 궁리해야할 것이다.


대추리에 도착하니 자정이 깜빡 넘어가고 있었다. 솔부엉이 도서관 근처에서 재연언니를 만 고요한 대추리 마을길을 자박자박 걸어서 언니가 사는 숙소로 들어갔다. 언니는 얼마전 포크레인이 황새울 들판을 헤집어 놓았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전경과 용역깡패들은 포크레인을 앞세우고 대추리로 들어와 사람들을 내몰려 했다고 한다. 포크레인이 땅을 파헤칠 때마다 언니의 마음도 함께 파헤쳐지는 것 같았다고, 언니는 내게 그날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듣는 나도 참으로 속상해진다. 에잇, 술이나 한잔 합시다. 언니와 술잔을 나누고 이번에는 내가 속상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오늘 사무실에서 덤프연대 조합원들을 만나고 온 동료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많이 안좋아졌더랬다. 새만금 대법원 판정 이후 물막이 공사가 재개되자, 덤프노동자들이 새만금 물막이 공사를 하러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류가에 트럭유지비에 이것저것 떼이고 나면 남는게 없어 허덕이고, 너희들이 개인사업자이지 무슨 노동자냐 노동조합은 꿈도 꾸지말라, 비난하는 세상의 질타에 부대끼고, 덤프노동자들은 살기가 너무 힘들다. 온몸이 부서져라 이리뛰고 저리뛰는 그네들이기에 새로 공사가 시작되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새만금이라니.

부안과 해창 앞바다의 갯벌은 오래전부터 그 지역 주민들의 일터였다. 특히 맨손 말고는 가진 것이 없는 여성어민들에게 갯벌은 그 자체로 고맙디 고마운 삶의 터전이었다. 집안일을 하다가, 텃밭을 일구다가, 아이들을 돌보고 시부모님 시중들다가, 물때가 되면 갯벌로 나가 생합을 캐면서, 어이구 니가 있어 고맙구나, 어이구 너만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두 손을 재게 놀리셨다는 그녀들의 공간, 새만금. 그런데 그 새만금이 얼토당토않은 개발논리로 숨통이 막혀가게 된 것이다. 새만금의 어민들도 포크레인이며 덤프차들이 와서 자갈과 흙을 바다에 쏟아붓는 차르르 소리가 들릴 때마다 갯벌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숨통도 막히는 것 같아 미칠 지경이라고 하시던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지금의 세상 돌아가는 꼴이 너무나 안타까워져 언니와 나는 술잔을 거듭 주고받았다. 황새울 들판으로 들어온 포크레인 기사아저씨는 사람들이 포크레인을 막아서자 어찌할 줄 모르고 담배만 뻑뻑 피워대셨다고 한다. 새만금으로 들어갈 덤프 동지들도 새만금 어민들이 덤프차를 막아서면 담배를 몇 대이고 피워 물게 될지도 모르겠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지금과는 달라질 수는 없을까? 올해도 농사짓고, 올해도 조개잡고, 올해도 일을 하자는 평택 농민과 새만금 어민과 비정규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서로 다르지 않은 이야기인데, 세상은 그네들의 이야기를 서로 상관없는 일로 만들어버린다. 아니 내 이야기를 위해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짓눌러야만 하게끔 만들어버린다. 재연언니와 나는 그런 세상 돌아가는 꼴 말고 다른 세상 돌아가는 꼴을 상상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을 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더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까? 이라크 팔루자에서도, 평택에서도, 새만금에서도, 비정규노동자들이 일하는 일터에서도 모두 행복할 수는 없을까?

이야기도 깊어가고 밤도 깊어갔지만, 답은 쉽게 안나온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또한 분명한 것은 그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언니나 나나 우리 모두가 지치지 않고 서로의 활동이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서로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이 마주쳐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도 농사짓자! 올해도 조개잡자! 올해도 일을 하자! 소박한 바램들이 비로소 현실이 되는 날을 상상하며 언니와 나는 그간의 고단함을 털어내었다. 대추리에서의 깊은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지난 4월 밤중에 평택을 찾은 적이 있다. 평택까지 가는 긴긴 길에 사무실에서 들고나온 <작은 책>을 읽어나갔다.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다가 그런데 화들짝 놀란 것이, 후배녀석 글이 떡하니 있는 것이지 뭔가. +_+

 

신기하고 반가워서 그 친구 글에 이어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서 <작은 책>으로 보냈고

다음달에 실리게 되었다.

(<작은 책>은 참으로 편한 책이라, 읽기에도 좋고, 읽은 후에 나도 한번 저런 글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또한 독자들에게도 열려있는 구조라 투고를 하면 잘 실리게 되는 듯 하다.)

 

위엣글은 그 글이다.

분량 등의 문제로 정작 글을 쓰게 된 동기부분 (후배녀석의 글을 맞딱뜨린 반가움)은 잘라내고 싣게 되었지만.

 

어쨌거나

평택이든 새만금이든

팔루자든 이라크든

모두 함께 살 수 있으면 안될까.

 

모두들

올해에도 농사짓고

올해에도 조개잡고

올해에도 일을하고

올해에도 살아가면

안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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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를 먹으며

 

 

 

 

*

진보 블로그가 귤색깔로 뒤바뀌었길래, 그 신선함으로 포스트를 하나 써놓고 보니

한달도 넘었구나 블로그에 글을 쓴지.

 

 

 

*

05년의 끝무렵, 그리고 06년의 초입

정세도 정세였지만, 나 자신에게도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는데...

 

어쨌거나 비로소 정떼기가 가능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전의 운동, 이전의 공간, 이전의 사람들.

 

어쨌거나 비로소 정붙이가 가능하게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운동, 지금의 공간, 지금의 사람들.

 

 

 

 

 

*

지난주

내가 담당하는 투쟁사업장 공대위 사람들과의 편한 술자리에서였다.

 

" 얼마전에 '이상한'문제제기를 받았는데~"

 

P가 무슨 이야기를 하던 중에 말을 꺼낸다.

 

음~ 삘이 딱 오긴 했지만 (이젠 완전 그런 쪽으로는 자동반사적인 반응이 온다 -_-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어디 한번 보자 하는 심정으로

 

 

" 아니 문제제기면 문제제기지 '이상한' 문제제기는 또 뭐예요? "

물었더니

 

 

역시.

P가 받은 문제제기는 언어 성폭력과 관련한 것이었다.

 

 

작년 초겨울 공대위 집중집회에서 박준 동지의 노래가 끝나고 고대 한 학생이 와서 문제제기를 하더랜다. (당시 P는 사회자) 노래에 욕설이 어쩌구 하던데 잘 모르겠어서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그리고 올해 1월에 겨민투라고 학생들이 간담회요청을 해서 자리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서 자신이 조합원 동지들을 '어머니'라고 불렀더니 (당시에도 P는 사회자) 또 뭐라고 하더라.

 

영 이해가 안되어서 '이상한' 문제제기라고 그는 말을 꺼낸거다.

 

 

그랬더니 K와 J가 나름의 소견들을 밝힌다.

(P와 K는 삼십대 중반 남성활동가, J는 사십대 남성활동가)

나도 이야기를 잘 해보려고 노력한다.

(집회에서 고대 학생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제기를 했을지도

간담회에서 겨민투 학생들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제기를 했을지도

익히 짐작이 되는데, 그 흐뭇함을 감추려 애썼다는^^;)

 

 

 

 

 

 

- 욕설과 관련한 이야기

 

 

" 학생들이 욕가지고 뭐라 그러는거 잘 이해가 안되요.

우리가 분노를 표출하고 그 분노의 힘으로 투쟁을 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게..."

 

" 하지만 욕을 통해 함께 분노를 표출한다는 것에 대해 오히려 고민이 되는데요,

과연 욕을 통해 함께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이 언제나 맞는 이야기인가? 싶어요.

예를 들어 이주투쟁에서는 욕설이 사용되지 않는데요, 현장에서 늘 욕을 듣고 무시를 당하며 일을 해야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욕설은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죠. 남성의 성기를 중심으로 한 욕설도 마찬가지인 것이고..."

 

" 욕이라는게 원래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는 내용이 주된 거잖아요.

그런데 장애인/여성/못배운사람들/돈없는사람들 이 투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우리들 입장에서 그런 욕을 그대로 써야하는 것인지 그게 의문인거죠."

 

" '좇빠지게'라는 욕이 원래는 '쌔'빠지게 아닌가요? 우리 고향에서는 그랬는데...그래서 서울 올라와서 놀랐어요. 그래서 나는 영 집회때 따라하기가 거시기하더라고. 민망하고 어색하고."

 

" 지난 5월에 덤프연대가 출정식을 하고 처음으로 대규모 집회를 하던 날, 조합원들이 많이 앉아있긴 하는데 이게 영 단합이 안되는 거라, 마이크를 든 활동가가 이 구호도 외쳐봤다 저 구호도 외쳐봤다 하다가 " 좇빠지게 일했는데 이게 뭐야 씨발!" 이라는 구호가 잘 먹히니까 그 구호로 계속 선동을 하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고민이 많이 되더라구요.

(거기에 여성조합원이 없긴 했지만...좇이없는 여성들은 그 구호에 절대 공감이 안되는 것인데..)"

 

" 그래도 계속 고민이 되는 건 대중의 정서를 무시할 수 있는가, 하는 거예요."

 

" 대중의 정서가 정치적으로 온당하지 않을때 활동가는 어떠해야하는지, 고민되는 문제이지요. 그런데요 활동가라면, 노동자들이 노래방가서 도우미 아줌마 부르거나 단란주점 가서 여자 부르거나 그러는 것을 대중의 정서라고 그냥 넘어가지는 않잖아요?"

 

 

 

 

 

- 호칭과 관련한 이야기

 

" 우리 어머니들은 우리들이 담배피우는 것 가지고도 뭐라고 하시거든, 젊은 놈들이 어른들 앞에서 담배피운다고...그런 어머니들에게 동지 동지 그래봐봐. 당장 혼나지. 그런데 그걸 가지고 왜 동지라고 안하고 어머니라고 하냐고 뭐라 그러는거 영 이상했단 말이지."

 

" 아까 박준 동지 이야기나오기도 해서 말인데, 저는 예전에 최도은 동지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그 분은 꼭 노래 전후 사이사이로 이야기를 하실때 ' 이 누나가~'라고 말을 하시는 거라, 기분이 팍 상했죠. 정말 멋지다, 하면서 목빠지게 쳐다보고 있는 나는 그 순간 없는 존재가 되는 기분, 그랬거든요. 호칭이란 것, 호명이란 것은 사소한 일은 아닌 거겠죠."

 

" 작년 최저임금 투쟁당시 한 집회때, 사회자가 '여성연맹 **노조의 *** 어머님 모시겠습니다!'라고 소개를 하더라구요, 그때 참 이상했어요. 왜 꼭 *** 어머니라고 부를까. 동지라는 말 놔두고 그래야 하나."

 

" 그러네요. 우리가 "*** 아버님 모시겠습니다"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음..."

 

" 제가 고등학교때 농활을 갔었는데 그때 한 농민회원분의 부인되시는 분이 오셔서 소개를 '** 형님 사모님'이라고 했다가 호되게 혼난 적이 있어요. 자기 이름은 ***이라고. 그때 혼났던 생각이 나네..."

 

" 그래도 우리 어머님들을 일상적으로 ** 동지, *** 동지 그렇게 부르는 거 영 어색한데..."

 

" 그 학생이 문제제기 했던 것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성을 호명하는 방식에 대한 것 아니었을까요. 여성들은 누구누구의 부인이거나 누구누구의 어머님 외엔 사회적으로 자리가 없으니까...그래서 투쟁하는 여성들의 위치도 불안정한 것이고...학생들은 간담회 자리를 공식적인 자리로 생각했을 꺼니까 그런 제기를 했던 것이겠죠."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과연 성폭력이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까지 나아갔다.

 

셋은 모두 한차례 정도씩 반성폭력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다고 한다.

교육때 들은 것과 평소 들은 바들을 가지고 무엇이 성폭력인가에 대해 갑론을박한다.

 

"내가 교육 들어서 아는데~ 여성이 불쾌감을 느끼면 성폭력이고 아니면 성폭력이 아닌 거래요."

 

"에이~ 그런데 그걸로는 부족하지~ 만약에 직장상사한테 성폭력을 당했다고 해봐, 불쾌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J와 K의 갑론을박이 결론이 잘 안나자

P가 정리를 시킨다.

 

"우리 다음에 *** 동지에게 물어보자고.

그 동지가 황우석 문제가 전공이 아니라 여성국장이래."

 

(*** 동지는 공대위에 함께 하는 언니인데, 일전에 공대위 회의 마치고 밥을 먹다가 황우석 이야기가 나오자 그 문제에 대해 쟁점을 뭘로 봐야할 것인지에 대해 한 강의 하신 바 있다^^ 그때의 임펙트가 컸던지 '황우석 문제 전공'한 사람이라고 내부에서 이야기가 오고갔나보다.)

 

 

 

 

아무튼

언어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언어 성폭력 뿐만이겠느냐만은)

문제제기하는 전후 맥락이 함께 이야기되지 않으면

문제의식이 전달되기 어려운지라.

 

집회 사이, 간담회 마치고

그 짧은 찰나의 학생들의 문제제기는 '이상한' 문제제기로 남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비록 '이상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채로이긴 하지만 꺼내어 놓고 말을 붙여보는 P가 참으로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아직 개념정립 등이 제대로 되지는 않았다손치더라도 자신이 살아온 경험들을 바탕으로 성폭력 문제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K와 J의 모습도 아름답게 보였다.

 

자기가 공격당할 헛점하나 안잡히려고 번드르르하게 말에 기름칠만 할 줄 아는 세련된 마쵸들만 보다가

소탈하기 그지없는 이들을 보니까

마음이 참 푸근해지더라.

 

 

남성성기를 중심으로 한 욕설이 여성주의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노래방 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러 유흥을 즐기는 풍토가 왜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단지 그 이유가 아니라)

여성들에 대한 호명이 어떠해야 될 것인지

학생동지들의 문제제기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하는 것인지

성폭력이 과연 무엇인지

 

등등의 쟁점은 여전히 남겨진 문제인 것이지만

 

이네들이 이렇게 소탈하고 진지한 자세만 계속 가져준다면

그리고 이네들의 운동과 여성 운동이 마주칠 수 있는 조건만 계속 갖추어진다면

내가, 우리가 바라는 변화가

영 먼 일만은 아닐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게되더라.

 

 

 

 

어쨌건

끊임없이 문제제기하는

그래서 균열과 틈을 만들어내는

학생동지들이 흐뭇하고 고맙고 이쁘고^^

 

그네들이 계속 균열과 틈을 만들어주면

나같은 사람들은 그 균열과 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런 일이 자주 생긴다면 참 좋겠다.

 

 

 

 

 

 

*

새콤한 홍어를 먹으며

고소한 먹걸리를 돌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런데 어떻게 운동 시작하게 되셨어요?"

술자리의 단골 화제가 나왔다.ㅎㅎ

 

K는 전라도 바닷가에서 살았다고 한다.

어릴때, 쥐포를 봉투에 집어넣는 일을 하는 어머니 옆에서 쥐포살 부스러기를 주워먹는 것이 재미였는데

 

80년 5월의 어느날, 쥐포가 담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가던 어머니의 길목을 공수부대가 막아섰더랬다.

총을 들이대면서.

 

광주리에 쥐포 외엔 아무것도 없다고 보여주고 나서야

어머니와 K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광주리에서 꺼내어진 쥐포를 채 다시 담지도 못하고서

혼비백산하여 그렇게.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역사의 한자락이 그렇게 그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고

그리고 나서 중고등학교 시절 전교조 선생님들의 영향이 있었고...

대학생이 된 형과 형의 친구들, 그네들이 들고다니던 빨간책들이 있었고...

 

군대를 다녀와서 공장으로 들어간 후에 오늘까지란 것이다.

 

 

 

이야기를 마친 K는 같은 질문을 내게 던졌다.

^^; 누구나 그렇겠지만 운동을 하게된 데에는 나름의 사연과 나름의 사건들이 있는 건데

나 역시 나름의 스토리가 있었거늘

 

그날 K의 이야기를 듣고나서는

뭐랄까,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통해 운동을 하게된 내 이야기는 별로 이야기도 못되겠다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야기를 할 차례.

 

 

 

 

" 어쩌구 저쩌구~해서 힘들어하던 참에

한 친구가 대중의 양가성, 민주주의는 논쟁과 소통을 요구하고 피와 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등을 이야기해주었어요. 그때 제대로 쁘락이 걸린거죠. 그게 시작이예요."

 

아, 싱거워라 ^^;

 

암튼 그 이야기에 이 이야기도 덧붙였다.

" 그런데요, 바로 그 친구가 나중에 성폭력 가해자가 되어버렸지 뭐예요.

나는 그 사건의 대책위를 해야했고. 참 재미나죠? 나는 내가 운동하는 한 그 친구도 계속 같이 할 꺼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가 나의 덧붙인 이야기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기대감 같은게 있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여성이 운동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필연적인 과정을 빼놓고 싶지 않아서였다.

역시 그는 덧붙인 이야기의 의도를 접수하지는 못하였는데,

그런데 대신 내가 전혀 생각해본 바 없는 점을 환기시켜주었다.

 

"음...나는 혼자 운동시작해서...."

 

 

 

그렇구나.

그렇게 스스로 의식화 조직화된 사람은

그런 문제에서 초연할 수 있는 것이겠구나.

 

 

운동이란게 본디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운동이란게 실로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점 역시 사실이라는

그걸 불현듯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래저래 K의 이야기는

소박하고 소탈해서 더욱 강한 임펙트를 남겨주었더랬다.

 

 

 

 

 

 

*

소탈한 이들과 함께 한 간만의 편한 술자리.

홍어를 좋아라 하지는 않지만 그날의 홍어는 참으로 새콤달콤 했더랬다. 냠 ^^

그런 술자리와 맛난 안주가

심심치않게 있어준다면 올 한해가 제법 즐거울 것 같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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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기륭집회가 있는 날이다.

([불법파견철폐와 기륭분회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정기집회를

매주 목요일 5시에 구로공단 내 기륭전자 앞에서 진행하기로 했다.오늘은 세번째 집회)

 

 

 

 

오늘 집회때 대오 맨 끝에 앉아있는데

 

구로지역 다른 투쟁사업장에서 연대하러 오신듯한 한 조합원 동지가 내 옆에 앉아있던 기륭조합원 아주머니께 노란 하나를 쥐어주신다.

 

손에 을 꼭 쥐고 계시던 그 동지, 집회를 마치고 내가 가려고 하니까

어느틈엔가 내 가방에 을 찔러넣어주신다.

 

가방에서 돌돌돌~ 그 을 나는

집회 이후 만난 후배님에게 건네드렸다.

 

 

돌고돌고은돌고~☆

동지애도무장무장~♡

 

 

기륭에서 만나는 소탈함이 못내 좋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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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이 되자

* 민중언론 참세상[초강력 물대포] 에 관련된 글.

 

 

최루탄은 가라

문민정부 참여정부 납시었다.

 

그러나

이제는 물대포 정권.

 

 

 

 





 

 

 

 

 

종종 소화기도 등장한다

얍실하고 기만적인 것들.

 

 


 

 

 

 

무엇을 진압하려 하는가

무엇을 끄려하는 것인가

 

 

불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촛불이 횃불이되고

횃불이 들불이되고

 

민중의 분노가 넘실대는 들불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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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나쁜 날

 

 

 

 

AM

 

늦잠을 잤다.

눈을 뜨니 선명한 꿈한자락이 남았다.

 

만나서 좋을 일 없는 이와

너무나도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실제로 그와 마주치지 않게 된지 꽤 되며

나의 일상과 그와 매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지도 꽤 되며

꿈에서도 나오지 않게 된지 꽤 되는 데에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더군다나

그에대한 나의 절망감 따위는 

아랑곳없이.

 

 

 

꿈에서는 더할나위없이 달콤했지만

깨고나니 견디기어렵게 찝찌름했다.

 

 

 

 

 

PM

 

오늘은 하이텍알씨디코리아 500인 동조단식의 날.

늦잠으로 아침을 날리고 부랴부랴 근로복지공단으로 향했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는 무선비행기 리모콘 등을 조립하는 회사이다.

부품조립회사인 만큼 여성이 대다수이다.

그녀들 중 몇은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

사람이 신진대사의 원활함을 위해 밥을 먹는 것처럼 노동자가 노조활동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도, 경거망동한 일도 아니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일테다.

 

그러나 하이텍의 노동조합원들은 회사로부터 갖은 수모를 당한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통제를 당하고

식당앞에도 노조사무실앞에도 매달려있는 CCTV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살았다.
그렇게 4년동안 감시받으면서 노동자들이 얻은건 우울증과 정신질환이었다.


그녀들, 용감한 그녀들은 자신의 병을 스스로의 무력함으로 인한 질병으로 여기지 않았다. 노동자통제감시로 인한 산업재해라고 회사에 책임을 물었다. 인간답게 살 권리,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당당히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들은척도 안했고, 근로자들의 희망이 되어야 할 근로복지공단은 회사의 손을 들어주며 그녀들에게 산재불승인 판정을 내린다.

 

여기까지가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그녀들이 단식농성을 하게 된 경유이다. 그리고 내가 오늘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밥을 굶고 비에 젖고 하면서도 하루종일 그녀들과 함께 했던 이유이다.

 

사실 회사가 들은 척 안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분노할 필요를 못느낀다. 원래 자본이란 이윤을 쥐어짜기 위해 수단방법 안가리는 법이니까.

 

그러나 화가 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물론 국가도 일종의 억압적 통제기구이지만,

그래도 최소한, 분쟁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게끔 할 의무는 있는 것이다. 그러한 책임방기에 대해 분노하는 내가 잘못된 것인가?

 

 

오늘은 근로복지공단의 국감일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자들의 복지에 대해 힘을 쓰는 것을 제 역할로 하는 공단이다.

그러나 공단 앞에서 하이텍 노동자들은 수십일동안 목숨을 걸고 농성을 진행중이다. 일자리도, 평온함도, 자존감도, 나아가 건강마저도 다 빼앗긴 노동자들이, 단 하나 남은 목숨을 걸고 공단앞에서 스티로폼 하나 깔고 수십일을 보내는 동안 공단은 무얼 했나?

 

국감일에 우리는 할 말이 많았다.

 

그래서 공단 안에 좀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나 삼엄한 경비.

닭장차가 수십대 주변을 에워싸고.

 

 

그래서 지지단식을 하던 일부의 사람들은 정문의 경비병력을 유인하고자 공단 뒷편으로 향했다.

 

나도 거기 있었다.

 

불온한 세력이 공단 후문으로 들어오자

전경들이 바퀴벌레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구호를 단 한번,

외침과 동시에

 

그네들의 날카로운 방패날과 곤봉과 군홧발은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운수 나쁘게도

전경의 군홧발에 밟혀

 

지금 호빵만한 혹을 이마에 달고 있게되었다 ㅡ_ㅡ

 

젠장맞을.

 

그 흔한 가식적인 경고도 없었다.

"여러분은 지금 불법적인 행동을 어쩌구 해산하시기 바랍니다 저쩌구"

그딴 말 들으면 재수없어지는게 사실이지만 그런 말도 없이 얻어맞으니 더 열받더라.

 

젠장맞을.

 

 

대체 우리가 왜! 왜 전경의 군홧발에 밟혀야 하는 건가??

 

 

 

 

혹이 심하게 부풀어오르자 사람들이 병원으로 나를 보냈다.

경황없이 병원에 와서 공단 쪽으로 연락을 하려고 보니

내 전화기를 두고 온것. 하여 그 쪽에 있는 후배님들 중에 외우는 번호의 아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 아해 왈.

 

"저는 지금 닭차 안예요"

 

 

ㅡ_ㅡ젠장맞을.

 

하루종일 비맞으면서 굶으면서 공단 앞에 앉아있었던 것도 사람 잡아갈 이유인가? 병력을 유인하는 우리들이 박살이 남으로써 정문 쪽을 뚫고 들어가는 시도조차 불가능했던 상황인건데.

 

대체 우리가 왜! 왜 연행되어야 하는 건가??

 

 

 

 

 

군홧발에 채이고 밟힌 오른편 몸과

아스팔트에 부딪쳐 부어오른 이마와 머리통이 아우성을 치고

게다가 얼마전 발톱을 뽑아낸 자리가 종일 비에 절은 신발 속에서 퉁퉁 부은데다가 전경들에게 쫓기면서 충격이 가해져서 쿡쿡 쑤시고

 

했지만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다시 공단으로 돌아갔다.

머릿속의 수많은 물음표들과

끌려간 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을 독하게 만드는 건

바로 저들이다.

 

오늘은 500인 동조단식이었지만

앞으로는 더 더 더 더 더해질 것이다.

 

 

 

 

 

운수나쁜 날

 

오늘이 운수나쁜 날이었던 것은

꿈이 흉흉해서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그저 어쩌다 겪는 재수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

뭔가가 바뀌지 않고 세상이 이대로 굴러가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일이라는 것.

 

그것이 현실이다.

 

하이텍노동자 산재승인 및 건강권 쟁취를 위한 500인 동조단식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점심무렵

하이텍 동지들이 꽤 추워하셨다.

 

비는 계속 오고

우비를 입고 비를 계속 맞노라니 당연히 추운 것이다.

 

게다가 연세가 좀 있는 아주머니들이고

농성을 한 시간이 꽤 되느니만큼

많이 추워하셨다.

 

추워하는 하이텍 동지들을 보며

와락 슬픔과 와락 분노가 몰려왔다.

 

중년의 인생에

거리로 내몰린 그녀들의 모습은

서럽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기에.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독기를 품지 않고도 살 수 있기 위해서

운수나쁜 날을 필연적으로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

 

응급실에 누워있는 도중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웠던

그 물음표들은 반드시 해결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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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호 여승무원 투쟁ㅡ많은 기억을 남긴 투쟁

 

 

 

*

 

 

오늘은 새마을호 여승무원 투쟁 평가를 위한 두번째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많은 기억을 남긴 투쟁.

그말만큼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간병인 투쟁에 이어서 많은 고민꺼리와 '기억'들을 남긴 투쟁이었던 듯 하다.

 

 

 

 

언니, 어떻게 자기가 몇개월 후 짤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웃으면서 친절해야만 하는 거죠?

집회에서 여승무원의 발언을 듣고난후 한 후배가 내게 토해냈던 울분.

 

첫 야간 스티커 작업을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

민주노조 건설이라는 자랑찼던 역사를 잊을 수가 없는데,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민주노조가 어용노조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화해버린 지금이 너무나도 쓸쓸하다는.

 

겨울밤 공기로 차갑게 언 열차 창문에

스티커를 붙여나가던 그 느낌.

 

스티커를 붙이러 KTX에 처음 올라타본 기억.

 

서울역 농성장에서 동지들이 어이없게 연행당했다는 소식에 부리나케 달려가

공안실에서 밤을 새워 농성을 했던 여름밤.

속속 모여들던 동지들을 보며 든든함이 가슴에 차올랐던 그 밤.

 

 

 

 

 


 

 

 

요 녀석은 서지본 식구인데ㅡ몰라볼 정도로 쑤욱ㅡ자란 모습으로 평가회의 장소에 나타났다.

 

주먹만하던 꼬맹이 녀석이

글쎄 이렇게 늠름하게 성장했다니!

 

서울역 농성이후 공대위 회의도 서울역에서 하고 그래서

서지본에 전처럼 들리질 않은 사이에

이렇게 커 버린 것.

 

 

 

우리가 참.

오래 투쟁했구나ㅡ새삼 느꼈다는.

 

 

이제, '기억'을 갈무리하는 일이 남았다.

그리고 다음 발걸음을 내디뎌야지.

 

(공대위 평가 결과는 백서로 발간될 예정이다.

그리고 우리의 평가는 기관지에 잘 실을 생각이고.)

 

 

 

 

 

 

 

 

*

 

 

회의도중, 문득 테이블 위에 놓인 철도매점 언니의 핸드폰 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2001년, 어용노조 몰아내고 민주노조 건설이후ㅡ

그 기쁨과 동지들에 대한 애정을 담아 핸폰 고리를 만들어 연말선물로 뿌렸다고 한다.

 

"조합원과 함께"

 

언니는 스스로 만든 그 핸폰고리를 몇년째 달고 다니는 것이고.

 

 

 

그 기쁨과 그 애정은....여전한 것일까?

 

철도 본조가 새마을호 투쟁과 철도매점 투쟁과 같은 비정규 투쟁을 뒷짐지고 바라보고만 있었다는 평가가 진행되는 순간에

언니의 핸폰 고리가 다시 눈에 들어와

 

슬펐다.

 

 

중요한 것은

노조가 어떠한 내용을 담지하는가 일테다.

 

어떤 내용으로

어떤 운동을 할 것인가.

 

어용노조를 몰아내고 민주노조를 건설해왔던

철도노조를 비롯한 수많은 노조들의 자랑찬 역사가

 

그저 슬픈 기억으로만 남겨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밝혀져야 할 것이다.

 

노조는 어떤 내용을 담는 그릇인가?

 

 

 

그에 대한 답은

'운동'을 통해 찾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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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려진 손가락. 잘라낸 머리칼

* 민중언론 참세상[경찰, 경찰고용직노조 집회 참가 노동자 손가락 절단] 에 관련된 글.

 

 

 


*

인구의 15%가 80%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나라
다시말해 인구의 85%가 20%의 땅에서 악다구니처럼 살고 있는
우리나라 좋은나라

그 나라에서 오늘
손가락이 잘려진 사람, 머리칼을 잘라낸 사람이 있었다.

 




*

경찰서내에서 각종 사무를 담당하고
심지어 서장의 속옷빨래까지 하면서
그래도 경찰이라는 공무원이라는 자부심으로 버텨오던 경찰고용직공무원들.
그러나 10년넘게 일하던 일터에서
비정규직과 맞바꾸어져
더 싱싱한 젊은 여자애와 맞바꾸어져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그녀들.

오늘도 그녀들은 싸웠다.
그러나 세상은 한마디라도 더 외쳐 보겠다는 여성 조합원들을 무자비하게 세상밖으로 내던졌다.



그 와중에 연대하러 온 한 동지의 손가락이 잘렸다.


대치.
.

첫째열 전경 화이버를 부여잡다.
.

뒷열에서 솟아오른 곤봉.
.

손을 찍어내리다.
.

손가락이 찢겨져나가다.
.

피. 터져나오는 피.
.

긴급후송. 전화.
.

손가락이없다! 손가락을 찾아라! 손가락을 내놓아라!
.

머뭇거리는 전경. 화이바 안의 손가락.
.

내놓아라 손가락을
.

내놓아라 화이바를

 


민중의 지팡이에 잘려나간 민중의 손가락
뒤늦게 되받아낸 손가락은 급히 주인에게 보내졌지만
이미 늦은것ㅡ
이미 잘려져버린것ㅡ


잘려진 손가락




 

*

기차를 타는 사람들에게 까까를 파는 사람들. 철도매점 노동자들.

그러나 그/녀들의 삶은 여행처럼 즐겁지 않다.

남들이 놀러가는 일요일, 어린이날, 여름휴가...에도
그/녀들은 좁디좁은 공간에서 하루 16시간 이상 일하면서
고작 50-60만원을 손에 쥔다.

그나마도 용역으로 전환되어
이제 너희들은 철도유통의 소속이 아니야,

그나마도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딱지가 붙어
이제 너희들은 사장이니 노동3권 운운말라,

우리도 인간이다 우리도 노동자다 아무리 악을 써도
눈하나 깜짝 않는 세상.



그네들이 오늘부터 단식에 들어갔다.
그네들이 가진 단 하나
바로 스스로의 목숨
그것을 내놓고서 싸움을 하겠단 것.

제살을 깍아먹고 싸울 수밖에 없게 된 그네들
머리칼도 잘라낸다.

한올한올 서럽게 떨어지던 머리칼.





*

손가락이 잘려져나가던 아수라장.
하지만 전경차로 꼭꼭 에워싸여 그 안은 누구도 볼 수 없는 세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세상.
존재하여서는 안될 세상.
꼭꼭 숨겨라, 피칠갑손가락 보일라.

 



*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살기위해 싸우기위해 제 살을 깍아먹고

그러나 너무나 꼭꼭 에워싼 것들이 많아
살점이 떨어져 나간 사람 피를 흘리는 사람
제 살을 깍아먹는 사람 피를 토하는 사람
보이지 않아 들리지 않아




*

오늘
손가락이 잘려진 사람, 제 살을 깍아먹기로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어느 구석에서 있었느냐 비웃듯

화려한 사람들, 번쩍이는 자가용들





세상은 아랑곳하지않고 변함없이 핑핑 잘만 돌아가는 듯 하지만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변하지 않고서는 버텨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건
단순한 의지와 신념만이 아니야








▲ 경찰청 건물에서 누가 볼까 그랬을까? 버스위에 올라간 여성 조합원들을 해산하기 위해 경찰들은 경찰고용직노조 조합원들을 막무가내로 밀어내었다. 그들은 한마디라도 더 외쳐 보겠다는 그녀들을 무자비하게 버스 밑으로 던져 버렸다.

 

 

 

 

 


 

 

 

"경찰청 앞 1인 시위 중에 도로중앙의 플랭카드를 보았습니다.

경찰이 건 플랭카드에는 이런 말이 쓰여있더군요.

<지켜야할 선 세가지-정지선 중앙선 차선>

저는 그것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고용직 공무원 강제해고 시킨 것 즉각 철회하고 기능직 공무원으로 전환시켜 주십시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는 공권력 남용말고 정지하여 주십시오.

검찰과 수사권 독립위해 애쓰지 말고 정신차려 민생치안이나 똑바로 하는 것이 경찰의 최선이라고 봅니다."


ㅡ7월 6일 경찰청교옹직공무원 해고조합원 발언 中

 

 

 

 

 

 

 

" 우리 철도매점 노동자들과 지지연대하기 위한 철도 노동자들은 오늘 2005년 7월 20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갑니다.

 

우리는 2001년 1월 노동조합을 결성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노동조합의 이름을 걸고 교섭을 해보지 못하였습니다. 한국 철도유통(주)는 노동조합을 부수고 탄압하는데만 골몰하였을뿐 노동조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철도유통이 왜 그러는 것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 철도유통(주)은 철도역사에서 독과점으로 매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철도매점은 한국철도유통에서 사실상 유일한 수익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회사는 우리 매점 노동자들을 무한정 착취하기 위해 우리를 강제로 용역전환을 시켰습니다.

 

하루 16시간의 장시간 노동, 한달에 휴일 하루도 없는 노동조건, 1인당 50-60만원의 저임금이 모두 근로기준법이나 노동관계법을 위반하고 있으므로 강제로 용역전환을 시킨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노동조합으로 단결하면 그렇게 무한착취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강제로 용역전환을 시킨 것입니다. 4년이 넘도록 노동조합을 탄압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사회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사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무한 착취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가장 탄압받고 착취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착취와 탄압을 부수고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사람다운 대접을 맏으려면 다른 길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투쟁하고,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단결할 때 우리는 이 모든 질곡에서 벗어나 이길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단식투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그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 단식투쟁을 지속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결의입니다. 우리는 단식투쟁 중에도 모든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의 직접적인 요구를 관철하는 것뿐만 아니라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3권 쟁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반대와 정규직화 쟁취 투쟁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전체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에 앞장서는 단식투쟁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억압에 반대하여 투쟁하는 동지들의 연대와 지지를 호소드립니다.

 

 

 

 

2005년 7월20일

 

전국철도노동조합 철도매점 지방본부. 매점 노동자들을 연대 지지하는 노동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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