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홍어를 먹으며

 

 

 

 

*

진보 블로그가 귤색깔로 뒤바뀌었길래, 그 신선함으로 포스트를 하나 써놓고 보니

한달도 넘었구나 블로그에 글을 쓴지.

 

 

 

*

05년의 끝무렵, 그리고 06년의 초입

정세도 정세였지만, 나 자신에게도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는데...

 

어쨌거나 비로소 정떼기가 가능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전의 운동, 이전의 공간, 이전의 사람들.

 

어쨌거나 비로소 정붙이가 가능하게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운동, 지금의 공간, 지금의 사람들.

 

 

 

 

 

*

지난주

내가 담당하는 투쟁사업장 공대위 사람들과의 편한 술자리에서였다.

 

" 얼마전에 '이상한'문제제기를 받았는데~"

 

P가 무슨 이야기를 하던 중에 말을 꺼낸다.

 

음~ 삘이 딱 오긴 했지만 (이젠 완전 그런 쪽으로는 자동반사적인 반응이 온다 -_-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어디 한번 보자 하는 심정으로

 

 

" 아니 문제제기면 문제제기지 '이상한' 문제제기는 또 뭐예요? "

물었더니

 

 

역시.

P가 받은 문제제기는 언어 성폭력과 관련한 것이었다.

 

 

작년 초겨울 공대위 집중집회에서 박준 동지의 노래가 끝나고 고대 한 학생이 와서 문제제기를 하더랜다. (당시 P는 사회자) 노래에 욕설이 어쩌구 하던데 잘 모르겠어서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그리고 올해 1월에 겨민투라고 학생들이 간담회요청을 해서 자리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서 자신이 조합원 동지들을 '어머니'라고 불렀더니 (당시에도 P는 사회자) 또 뭐라고 하더라.

 

영 이해가 안되어서 '이상한' 문제제기라고 그는 말을 꺼낸거다.

 

 

그랬더니 K와 J가 나름의 소견들을 밝힌다.

(P와 K는 삼십대 중반 남성활동가, J는 사십대 남성활동가)

나도 이야기를 잘 해보려고 노력한다.

(집회에서 고대 학생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제기를 했을지도

간담회에서 겨민투 학생들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제기를 했을지도

익히 짐작이 되는데, 그 흐뭇함을 감추려 애썼다는^^;)

 

 

 

 

 

 

- 욕설과 관련한 이야기

 

 

" 학생들이 욕가지고 뭐라 그러는거 잘 이해가 안되요.

우리가 분노를 표출하고 그 분노의 힘으로 투쟁을 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게..."

 

" 하지만 욕을 통해 함께 분노를 표출한다는 것에 대해 오히려 고민이 되는데요,

과연 욕을 통해 함께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이 언제나 맞는 이야기인가? 싶어요.

예를 들어 이주투쟁에서는 욕설이 사용되지 않는데요, 현장에서 늘 욕을 듣고 무시를 당하며 일을 해야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욕설은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죠. 남성의 성기를 중심으로 한 욕설도 마찬가지인 것이고..."

 

" 욕이라는게 원래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는 내용이 주된 거잖아요.

그런데 장애인/여성/못배운사람들/돈없는사람들 이 투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우리들 입장에서 그런 욕을 그대로 써야하는 것인지 그게 의문인거죠."

 

" '좇빠지게'라는 욕이 원래는 '쌔'빠지게 아닌가요? 우리 고향에서는 그랬는데...그래서 서울 올라와서 놀랐어요. 그래서 나는 영 집회때 따라하기가 거시기하더라고. 민망하고 어색하고."

 

" 지난 5월에 덤프연대가 출정식을 하고 처음으로 대규모 집회를 하던 날, 조합원들이 많이 앉아있긴 하는데 이게 영 단합이 안되는 거라, 마이크를 든 활동가가 이 구호도 외쳐봤다 저 구호도 외쳐봤다 하다가 " 좇빠지게 일했는데 이게 뭐야 씨발!" 이라는 구호가 잘 먹히니까 그 구호로 계속 선동을 하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고민이 많이 되더라구요.

(거기에 여성조합원이 없긴 했지만...좇이없는 여성들은 그 구호에 절대 공감이 안되는 것인데..)"

 

" 그래도 계속 고민이 되는 건 대중의 정서를 무시할 수 있는가, 하는 거예요."

 

" 대중의 정서가 정치적으로 온당하지 않을때 활동가는 어떠해야하는지, 고민되는 문제이지요. 그런데요 활동가라면, 노동자들이 노래방가서 도우미 아줌마 부르거나 단란주점 가서 여자 부르거나 그러는 것을 대중의 정서라고 그냥 넘어가지는 않잖아요?"

 

 

 

 

 

- 호칭과 관련한 이야기

 

" 우리 어머니들은 우리들이 담배피우는 것 가지고도 뭐라고 하시거든, 젊은 놈들이 어른들 앞에서 담배피운다고...그런 어머니들에게 동지 동지 그래봐봐. 당장 혼나지. 그런데 그걸 가지고 왜 동지라고 안하고 어머니라고 하냐고 뭐라 그러는거 영 이상했단 말이지."

 

" 아까 박준 동지 이야기나오기도 해서 말인데, 저는 예전에 최도은 동지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그 분은 꼭 노래 전후 사이사이로 이야기를 하실때 ' 이 누나가~'라고 말을 하시는 거라, 기분이 팍 상했죠. 정말 멋지다, 하면서 목빠지게 쳐다보고 있는 나는 그 순간 없는 존재가 되는 기분, 그랬거든요. 호칭이란 것, 호명이란 것은 사소한 일은 아닌 거겠죠."

 

" 작년 최저임금 투쟁당시 한 집회때, 사회자가 '여성연맹 **노조의 *** 어머님 모시겠습니다!'라고 소개를 하더라구요, 그때 참 이상했어요. 왜 꼭 *** 어머니라고 부를까. 동지라는 말 놔두고 그래야 하나."

 

" 그러네요. 우리가 "*** 아버님 모시겠습니다"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음..."

 

" 제가 고등학교때 농활을 갔었는데 그때 한 농민회원분의 부인되시는 분이 오셔서 소개를 '** 형님 사모님'이라고 했다가 호되게 혼난 적이 있어요. 자기 이름은 ***이라고. 그때 혼났던 생각이 나네..."

 

" 그래도 우리 어머님들을 일상적으로 ** 동지, *** 동지 그렇게 부르는 거 영 어색한데..."

 

" 그 학생이 문제제기 했던 것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성을 호명하는 방식에 대한 것 아니었을까요. 여성들은 누구누구의 부인이거나 누구누구의 어머님 외엔 사회적으로 자리가 없으니까...그래서 투쟁하는 여성들의 위치도 불안정한 것이고...학생들은 간담회 자리를 공식적인 자리로 생각했을 꺼니까 그런 제기를 했던 것이겠죠."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과연 성폭력이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까지 나아갔다.

 

셋은 모두 한차례 정도씩 반성폭력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다고 한다.

교육때 들은 것과 평소 들은 바들을 가지고 무엇이 성폭력인가에 대해 갑론을박한다.

 

"내가 교육 들어서 아는데~ 여성이 불쾌감을 느끼면 성폭력이고 아니면 성폭력이 아닌 거래요."

 

"에이~ 그런데 그걸로는 부족하지~ 만약에 직장상사한테 성폭력을 당했다고 해봐, 불쾌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J와 K의 갑론을박이 결론이 잘 안나자

P가 정리를 시킨다.

 

"우리 다음에 *** 동지에게 물어보자고.

그 동지가 황우석 문제가 전공이 아니라 여성국장이래."

 

(*** 동지는 공대위에 함께 하는 언니인데, 일전에 공대위 회의 마치고 밥을 먹다가 황우석 이야기가 나오자 그 문제에 대해 쟁점을 뭘로 봐야할 것인지에 대해 한 강의 하신 바 있다^^ 그때의 임펙트가 컸던지 '황우석 문제 전공'한 사람이라고 내부에서 이야기가 오고갔나보다.)

 

 

 

 

아무튼

언어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언어 성폭력 뿐만이겠느냐만은)

문제제기하는 전후 맥락이 함께 이야기되지 않으면

문제의식이 전달되기 어려운지라.

 

집회 사이, 간담회 마치고

그 짧은 찰나의 학생들의 문제제기는 '이상한' 문제제기로 남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비록 '이상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채로이긴 하지만 꺼내어 놓고 말을 붙여보는 P가 참으로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아직 개념정립 등이 제대로 되지는 않았다손치더라도 자신이 살아온 경험들을 바탕으로 성폭력 문제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K와 J의 모습도 아름답게 보였다.

 

자기가 공격당할 헛점하나 안잡히려고 번드르르하게 말에 기름칠만 할 줄 아는 세련된 마쵸들만 보다가

소탈하기 그지없는 이들을 보니까

마음이 참 푸근해지더라.

 

 

남성성기를 중심으로 한 욕설이 여성주의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노래방 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러 유흥을 즐기는 풍토가 왜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단지 그 이유가 아니라)

여성들에 대한 호명이 어떠해야 될 것인지

학생동지들의 문제제기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하는 것인지

성폭력이 과연 무엇인지

 

등등의 쟁점은 여전히 남겨진 문제인 것이지만

 

이네들이 이렇게 소탈하고 진지한 자세만 계속 가져준다면

그리고 이네들의 운동과 여성 운동이 마주칠 수 있는 조건만 계속 갖추어진다면

내가, 우리가 바라는 변화가

영 먼 일만은 아닐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게되더라.

 

 

 

 

어쨌건

끊임없이 문제제기하는

그래서 균열과 틈을 만들어내는

학생동지들이 흐뭇하고 고맙고 이쁘고^^

 

그네들이 계속 균열과 틈을 만들어주면

나같은 사람들은 그 균열과 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런 일이 자주 생긴다면 참 좋겠다.

 

 

 

 

 

 

*

새콤한 홍어를 먹으며

고소한 먹걸리를 돌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런데 어떻게 운동 시작하게 되셨어요?"

술자리의 단골 화제가 나왔다.ㅎㅎ

 

K는 전라도 바닷가에서 살았다고 한다.

어릴때, 쥐포를 봉투에 집어넣는 일을 하는 어머니 옆에서 쥐포살 부스러기를 주워먹는 것이 재미였는데

 

80년 5월의 어느날, 쥐포가 담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가던 어머니의 길목을 공수부대가 막아섰더랬다.

총을 들이대면서.

 

광주리에 쥐포 외엔 아무것도 없다고 보여주고 나서야

어머니와 K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광주리에서 꺼내어진 쥐포를 채 다시 담지도 못하고서

혼비백산하여 그렇게.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역사의 한자락이 그렇게 그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고

그리고 나서 중고등학교 시절 전교조 선생님들의 영향이 있었고...

대학생이 된 형과 형의 친구들, 그네들이 들고다니던 빨간책들이 있었고...

 

군대를 다녀와서 공장으로 들어간 후에 오늘까지란 것이다.

 

 

 

이야기를 마친 K는 같은 질문을 내게 던졌다.

^^; 누구나 그렇겠지만 운동을 하게된 데에는 나름의 사연과 나름의 사건들이 있는 건데

나 역시 나름의 스토리가 있었거늘

 

그날 K의 이야기를 듣고나서는

뭐랄까,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통해 운동을 하게된 내 이야기는 별로 이야기도 못되겠다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야기를 할 차례.

 

 

 

 

" 어쩌구 저쩌구~해서 힘들어하던 참에

한 친구가 대중의 양가성, 민주주의는 논쟁과 소통을 요구하고 피와 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등을 이야기해주었어요. 그때 제대로 쁘락이 걸린거죠. 그게 시작이예요."

 

아, 싱거워라 ^^;

 

암튼 그 이야기에 이 이야기도 덧붙였다.

" 그런데요, 바로 그 친구가 나중에 성폭력 가해자가 되어버렸지 뭐예요.

나는 그 사건의 대책위를 해야했고. 참 재미나죠? 나는 내가 운동하는 한 그 친구도 계속 같이 할 꺼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가 나의 덧붙인 이야기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기대감 같은게 있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여성이 운동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필연적인 과정을 빼놓고 싶지 않아서였다.

역시 그는 덧붙인 이야기의 의도를 접수하지는 못하였는데,

그런데 대신 내가 전혀 생각해본 바 없는 점을 환기시켜주었다.

 

"음...나는 혼자 운동시작해서...."

 

 

 

그렇구나.

그렇게 스스로 의식화 조직화된 사람은

그런 문제에서 초연할 수 있는 것이겠구나.

 

 

운동이란게 본디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운동이란게 실로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점 역시 사실이라는

그걸 불현듯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래저래 K의 이야기는

소박하고 소탈해서 더욱 강한 임펙트를 남겨주었더랬다.

 

 

 

 

 

 

*

소탈한 이들과 함께 한 간만의 편한 술자리.

홍어를 좋아라 하지는 않지만 그날의 홍어는 참으로 새콤달콤 했더랬다. 냠 ^^

그런 술자리와 맛난 안주가

심심치않게 있어준다면 올 한해가 제법 즐거울 것 같다 ㅎㅎ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