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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었는데 그저 경제밖에 생각 못하냐?

5월20일 미디어충청(www.cmedia.or.kr) 칼럼.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수많은 시위대가 죽창을 휘두르는 장면이 전 세계에 보도돼 한국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혔다”고 이야기를 했단다. 그리고는 폭력시위에 대해서 엄청대처 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문자로 일방적 해고통보는 이미지 실추 아니고?

16일 대전에서 진행된 전국노동자대회로 인하여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례로 가장 많은 457명이 연행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 1차적으로 32명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그리고 당일 시위대가 사용한 대나무로 인하여 전경차와 전,의경들이 다수 부상당하였다고 경찰과 보수언론은 연일 난리를 피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노동자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각되지 않고 있다. 5월16일 전국노동자대회 건과 관련해서는 지난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통운은 1월에 택배기사들과 건당 30원의 배달수수료를 인상하기로 합의를 했다. 그러나 3월15일 일방적으로 대한통운은 합의를 무효화하고는 오히려 40원 이하를 주장했다. 이에 바로 다음날 택배기사들은 항의를 했고, 3월16일 대한통운은 항의한 택배기사 78명에게 핸드폰 문자메세지를 통해 해고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에 대한통운은 어떠한 대화도 귀담아 듣거나 응하지 않았다. 그런 대한통운에 대해 분노를 가지고 고 박종태 열사는 목을 메고 만 것이다. 그의 죽음에 분노를 느낀 노동자들은 5월6일 첫 집회를 시작으로 9일과 16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한 것이다. 하지만 대한통운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경찰은 심지어 화물노동자들에게 ‘밥 줄을 끊어 놓겠다’라고 서슴없이 협박을 내뱉었다.

단지, 30원 때문에 문자로 해고통보를 한 사용자의 행태는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고, 이에 불만을 표출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의 행동은 국가 이미지를 실추하는 것이라고 하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노동자에 대한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와 하찮음을 느끼는 국가가 과연 국가 이미지를 논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정작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그저 또 물류대란 운운을 하는가

또다시 조선, 중앙, 동아를 비롯한 보수격 언론들은 18일자 신문부터 연일 민주노총, 화물연대 등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기사들로 도배하고 있다.

하지만 고 박종태 열사가 왜 목숨을 끊었는지, 노동자들이 왜 거리로 나왔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16일 화물연대는 찬반투표를 통해 총파업을 결의했다. 그러자 보수언론들은 한결같이 ‘물류대란’을 언급했고 화물연대에 대한 기사와 사설로 비난 보도를 도배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노동자로 인정해달라’는 거센 요구를 한다고 비난까지 하고 나섰다.

과연 이들은 노동자인가? 아니면 자영업자인가?

여전히 노동자에 대한 인식부족과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노동기본권 보장이 안된 상태에서 무슨 ‘노사상생’이니 ‘노사화합’을 외칠 수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몰이해적인 노동관을 가지고 국가 이미지 운운할 수 있는가.

단지 30원으로 촉발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 보다는 그저 노동자의 입을 봉쇄하기 위한 이명박 정부의 작태에 대해 분노만 발생될 뿐이다. 그리고 ‘죽봉’과 ‘죽창’의 의미를 모르는 채 떠벌리는 경찰의 이야기와 앞뒤 설명없이 죽창 1,000개를 휘두는 노동자의 폭력성을 운운하는 보수격 신문기자들의 모자람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참고로, 죽창이라는 것은 그 끝을 날카롭게 깎는다고 해서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뻘뻘 끓는 가마솥에 소금을 풀어놓은 다음, 그 끓어 오른 소금물에 죽창의 끝을 담궈 몇 시간 동안 지속 시킨 이후를 말하는 것으로 그건 비장의 무기다. 그리고 그건 과거 농민들이 탐관오리를 처벌할 때 최후로 쓰는 물건을 말한다... 16일 노동자가 든 것은 단순히 대나무일 뿐이며, 완장일 뿐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죽음이 어떤지는 운운하지 않고 그 슬픔을 함께할 수 밖에 없고 슬픔의 표현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이들을 그저 경제적 논리로 밖에 생각할 수는 없는가!

이명박 대통령 말대로 국가의 이미지를 높이는 행위는 이 땅의 만물을 일구어내는 노동자들이 위대한 존재임을 국가와 자본가들이 인정하고 존중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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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최저임금 개악을 막아야 한다

4월 2일 미디어충청(www.cmedia.or.kr) 칼럼.
3월 30일 오후 5시에 국무회의에서 비정규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의결되었다. 웃기는 것은 3월 31일자로 이명박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나서기 때문에 해외순방 전날 처리를 강행했단다. 더욱이 국무회의가 오후에 소집되어 안건처리를 한 것은 이번이 국회 역사상 처음이란다. MB의 발상은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어쨌든 비정규법 개정안이 의결되었다. 이젠 국회에서 ‘탕,탕,탕’ 의사봉을 두들기는 일만 남았다.

2년에서 4년으로 연장되면 뭐가 달라지는 걸까?

2006년 12월, 민주노총을 비롯한 많은 노동사회단체들은 당시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비정규법’ 통과를 반대했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비정규법은 보호가 아니라 오히려 해고를 초래하는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2007년 7월 1일, 이 법이 시행되자마자 이랜드 비정규 노동자들이 거리로 쫓겨나고 그래서 급기야 매점을 점거농성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저 한편에서 팔짱끼고 이 안에 적극 동의한 자들이 지금의 한나라당이다. 그리고 이제 2009년 3월에 이 법이 이야기하는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 때문에 올해 7월에 비정규 노동자들이 대량 정리해고를 당할 것이라고 이 법의 개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리고 현행 2년 고용을 4년으로 연장하여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2년에서 4년으로 고용기간을 연장한다고 해서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달라지는 게 있을까? 오히려 해고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시간만 연장했을 뿐이다. 그리고 4년 안에 해고를 한다고 해서 어떤 제재도 개정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결국은 ‘2년이 너무 짧으니까 4년으로 연장해 줄게’ 하는 것뿐이다.


최근에 상담을 참 많이 받았다. 내용인즉슨 올 7월이면 비정규법으로 정규직화 해줘야 하는 것이 싫어서 나가라고 한다는 내용들이다. 심지어는 6월 30일까지 근무를 하라고 근로계약서 작성을 강요한 사업장도 있었다. 결국은 2006년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뭐... 최저임금마저도 깍겠다구? 차라리 벼룩의 간을 내 먹어라!

한나라당의 이런저런 곳에서 발상은 참으로 뛰어나다. 최근 김성조 의원의 대표발의를 통해 최저임금 개정안을 제출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말이지 기가 막힌다.
최근 한국사회는 저출산에서 고령화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일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고령 노동자가 넘쳐나고 있는데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현재 너무나 오른(?) 최저임금을 삭감해서 다른 고령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나누어 주자는 것이 한나라당의 발상이다. 그래서 개정안은 60세 이상 고령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10~20% 삭감하자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4,000원이다. 만약 개정안대로 최저임금을 지급한다면 고령 노동자들은 약 10~15만 원 정도 삭감된 금액을 받아야한다. 날로 치솟고 있는 물가에 비교하면 더욱 더 세상 살아가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고령 노동자들에는 최악이다.
또한 개정안은 고령 노동자들의 임금삭감에 그치지 않고, 사회 초년생이라 할 수 있는 수습노동자의 임금삭감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수습노동자에게 3개월 동안 최저임금 감액적용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기간 연장할 것을 담고 있다. 최근 공기업 초임 임금을 30%로 삭감하는 내용으로 취업 공고를 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또한 최악이다. 그러나 수습노동자의 경우는 임금삭감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1년짜리 기간제 노동자에서 6개월짜리 단기간 노동자들로 전환, 소위 ‘사용하다 버리는’ 최악의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3월 31일 민주노총은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리고 당일 오후에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비정규법, 최저임금법 개악저지 민주노총 500인 선언을 진행하기도 했다. 기자들의 관심도 이전에 비해 컸다.
민주노총은 4월이나 혹은 6월 임시국회 때 강행처리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최저임금은 국가가 개입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로 하여금 그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깡그리 빼앗아 먹겠다는 저급한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맞서 싸워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지키는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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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떨어져 있으면...

역시나 몸이 떨어져 있으면 마음도 떠난다고...

대전 뜬 지가 얼마 되었다고... 내가 너무나도 과하게 생각하는건가?

그냥... 섭섭함을 떠나서 갑자기 가슴이 멍하고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4년이 넘는 시간동안 내가 고작 그것 밖에 안된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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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내가 까칠해짐을 느끼다

9월 17일 서울로 올라왔으니, 어제로 2개월 하고 3일이 지났다.

어제 문득 내 생각과 행동, 언행에 있어서 내가 까칠해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머리가 다시금 아프기 시작했다. 감정 제어가 안된다...

그냥 모든게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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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음악이 힘든 콜텍 노동자들의 마음을 덮어주기를...

 

 

콜텍/하이텍 농성장에 다시 찾았다. 벌써 올라간지 25일째이며, 단식 14일차다.

'자주 가봐야지' 하면서도 이런저런 업무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미안한 일이다.

지난주에 가고 어느덧 열흘째 만에 가보는 것 같다. 참 미안하다...

그래도 콜텍 사무국장님은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겨 주시니 이들은 참으로 정겨운 분들이다.

 

오늘부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문화인들의 작은 음악회를 연단다. 첫날이어서 그런지 한 20여분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가수들의 잔잔한 음악은 매일같이 전쟁같은 삶을 살아가는 콜텍/하이텍 동지들이나 나나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것 같다. 그 속에 담긴 가사 속에서 웃음과 기운을 얻기도 하고 말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그들도 또한 나름 이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분들이겠다.

 

음악과 투쟁발언이 번갈아 진행되었다. 그 중에 하이텍 동지 한 분이 '우리는 아마도 금속에서 왕따 인가 봐요. 알고는 있지만 너무나 힘드네요' 하면서 울음을 떠트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서러웠을까? 21년동안 일한 일터에서 어느날 나가라고 했을때, 그리고 그동안 동료들을 생각하면서 딴 생각을 않고 이제껏 열심히 투쟁을 해왔는데... 금속노조에서조차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니...

곳곳에서 울음이 터졌다. 아프다...

 

노래공연을 마치고 마지막 투쟁영상물을 상영했다. 지난 2005년 충청지역에서 참으로 열심히 결합한 하이닉스매그나칩 지회 투쟁이다.

예전에도 몇번 봤던 영상물을 보자니 마음이 울컥했다. '참 열심히 가열차게 싸웠는데...'

2005년 5월 1일 노동절 당시 영상을 보니 기분이 새롭다. 그때 공장안으로 진격해서 참 많이 다치고 연행되었는데... 나도 그때 참 많이 얻어맞고 연행되었었는데... 그땐 지역동지들이 정말 하나같이 싸우고 말이다... 결국은 진 싸움이지만... 그때의 분노와 아픔은 지금 여기 양화대교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니 참 기분이 묘하다.

 

대우자판 동지들로 보이는 분들이 처음 본 영상물인지 역시나 눈물 소리가 난다. 굳이 돌아볼 필요없이 느껴진다... 그들도 현재 그렇게 싸우고 있을니...

 

다행이도 날이 차갑지 않아서 좋다고 했는데... 위에 있는 동지들은 얼마나 추울지...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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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텍 노동자에게 삶의 노래를 다시 부르게 하자

# 장면1.
행인女1 : 뭐야… 시끄럽게. 또, 민주노총이야.
나 : …….
행인女2 : 하여간 노조 인간들은… 저 미친놈들은 맨날 왜 저래?
나 : 뭐라고 그랬어? 이 XX년아! 이게 미친놈으로 보여? 당신들 교통질서나 잘 지켜?
동료들 : 참아... 싸워서 뭐해...

 

# 장면2.
여고생1 : 어… 무슨 공연 하나봐?
여고생2 : 뭔데… 기타 노동자에게... 삶의... 노래를?
(한참 공연 후에 투쟁 동영상이 나오자 몇 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떴다)
여고생1 : 가자… 무섭다
여고생2 : 좀만 더 보자. 왠지 안 됐잖아.
나 : 볼만해요?
여고생2 : 저 분들 왜 그런거예요?
(한참 콜텍에 대한 설명을 학생들에게 해 주었다)
여고생2 : 고생하시네요... 남의 일 같진 않네요... cort 악기 저도 있는데 비싸던데...
여고생1 : 학원가자
여고생2 : 그래. 아저씨, 아줌마들 힘내시라고 전해주세요.

콜텍을 아십니까?

1973년 자본금 200만원으로 시작해서 세계 3위의 기타제조업체로, 국내 재산소유 120위에 드는 소위 ‘알짜’ 부자다. 하지만 이들이 하루종일 사포로 문지르고 깎고 해도 최저임금에 조금 넘거나 미치는 임금을 받을 뿐이다. 그렇게 그들은 일을 했다. 자칫 불만을 이야기 했다가는 ‘나가’라고 할 뿐이었다.

그래도 2007년 봄에 이들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리고 처음 가진 단합대회 때 이들의 모습은 초등학생이 처음 소풍을 맞이했던 그 날처럼 해맑은 웃음이 입가에서 종일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측은 일방적인 직장폐쇄를 감행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중국에 공장을 짓는다며 기계를 빼겠다고 행정대집행을 감행해왔다. 그런 상황에서도 콜텍 노동자들은 한 번도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나 좌절은 생각지 않았다. 그들이 그동안 그 작은 공장에서 뼈가 으스러지고 손가락이며 몸 마디마디가 아픈 것을, 관리자들의 모욕적인 수모를 감수하면서 노동해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건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투쟁을 해왔다. 엄사4거리에서 계룡시청까지 수많은 행진을 했고, 계룡시청 앞에서 사태해결을 목놓아 외쳤다. 그리고 서울 박영호 사장 집 앞에서 1인 시위는 물론이거니와 집회도 수없이 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40미터 높이의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에 올랐다. 그렇게라도 목숨을 걸고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있으랴

40M 높이의 송전탑에는 오랫동안 투쟁을 해오던 하이텍 지회장과 같이 고공농성중이다. 하이텍 노동자들도 그동안 기나긴 싸움을 해오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오늘로 송전탑에 올라간 지 열흘째다. 막상 아래에서 올라간 동지들을 보자니 아찔하다.
‘저길 어떻게 올라갔을까?’ 하는 생각밖엔 안 든다.
새벽에는 비가 내렸다. 날이 예전 갔진 안다지만 저녁부터 새벽에는 꽤나 쌀쌀한데, 비까지 내렸으니 얼마나 추울까? 그리고 외로울까?
남녀가 올라가 있으니 볼 일을 볼라 하면 솔직히 민망하고 부끄러울텐데... 그러나 순간의 부끄러움 보다도 ‘살아야겠다’는, ‘이렇게 포기할 순 없다’는 절박함이 더 하지 않았을까 싶다.

송전탑 농성장 앞에서는 한강시민공원으로 이어지는 산책 코스다. 새벽이든 낮이든 밤이든 서울시민들은 한사코 그 앞으로 조깅을 하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고,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탄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간다. 그리고는 송전탑 위에 있는 두 노동자들을 힐끗 쳐다보고, 피켓을 들고 있는 콜텍-하이텍 노동자들을 한참동안 신기함과 놀라움으로 바라보다 간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왜 이들이 여기서 높은 곳에서 이러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오는 이가 없다.

유인물이 없어서 그런가 싶어 뿌려본다. 우리의 내용을 담은 피켓이 부족한가 싶어서 만들어 걸어본다. 그러나 외면하고 지나가기 일쑤다.

하지만 더욱 더 서글픈 건 이들의 눈물 나는 투쟁에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박영호 사장 일행들이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시위하는 것에 ‘내 인생은 조졌다’고 했다는 박영호 사장. 그러나 그 사장 때문에 거리로 내 앉은 사람들에게 대해 그는 아무생각이 없는가? 입버러지처럼 200만원 자본금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고 떠벌리면서 일한 만큼의 대가를 달라고 외치는 것이 시끄러운 소리로만 들리는지...

웃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읽는다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 왔어요?”
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송전탑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도 5일째(지난 17일)가 되어서야 농성장을 찾았다. 섭섭할 수도 있었을텐데 웃으면서 맞이해주니 오히려 내가 고맙다. 지난 17일은 농성장에서 투쟁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라고 하기에는 그저 연대한 노동자들의 춤과 노래가 전부였지만, 언제 우리 노동자들이 번쩍이는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봤겠는가. 잊지 않고 찾아와주는 동지가 좋은 것처럼 그렇게 많지 않지만 모이든 사람들이 있기에 위안과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일테다.
“오늘 내려가세요?”
“대빵이 올라가 있는데 어딜 가! 같이 있어야지”

17일에 이어서 21일 다시금 콜텍 노동자들을 찾았다.
청계광장에서 콜트/콜텍 위장폐업 철회 및 노동권 쟁취를 위한 문화제가 열였다. 전날 기륭전자분회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기륭으로 몰인 탓인지, 콜트/콜텍 투쟁 문화제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는 못했다.
“부장님, 저녁 먹었어요?”
연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저녁식사를 권했다. 콜텍 여성노동자들은 지역에서 손수 밥과 반찬을 해왔다며 부족하지만 많이 먹으라 한다. 흰밥에 멸치볶음 그리고 고추장아찌에 북어국. 투쟁의 현장에서 이 만큼의 진수성찬이 어디 있으랴. “우리가 해온 거야. 맛있지” 그러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결코 현장 밖으로 내몰린 노동자의 어두운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힘들어하는 나에게 반성과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기타 노동자에게 삶의 노래를 다시 부르게 하자

‘기타(Guitar) 노동자에게 삶의 노래를 돌려주고 싶습니다’라는 주제로 청계광장에서 투쟁문화제가 열렸다.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소위 ‘문화인’들의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였다. 필자에게는 조금은 낯설지만 두드림 공연이나 시낭송 그리고 통기타 노래 등은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을 함께 만드는 다리 역할은 충분했다.

초반에 소개한 장면들에 대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분명 이 땅에서 아직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더군다나 조직된 노동조합이라고 하더라도 이전과는 달리 집회 등에 잘 참석하지도 않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분명, 고강도 노동에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은 생존을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일으키고 있으며 ‘진정한 노동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을 자본에게 당당히 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노동조합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에서 차츰 노동자성을 느끼고 거리로 나와서 자신을 당당히 외치고 지치고 포기하기 보다는 100M 높이의 송전탑에 외로이 올라가더라도 자본에 굴복하지 않는 콜텍 노동자들의 모습 속에서 필자는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조금은 과장된 희망을 부르짖고자 한다. 그리고 이들의 지난 1년 반이 훨씬 넘는 투쟁 속에서 이들에게 다시 삶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고 싶다. 이들은 그 만큼의 자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스피커로 나오는 이들의 목소리와 구호 그리고 투쟁가요가 시끄럽다고 투덜되며 지나가는 행인에게 욕설을 퍼부은 것은 단지 그들이 이들의 모습에 비난하고 지나간 것에 대한 단순히 불만 혹은 반감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들이 자본의 노예이며 이 땅의 노동자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세상에 순응해가는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의 배설물이다.

나는 반드시 콜텍 노동자들이 승리하길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그동안 그들의 피눈물의 보상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오래 걸리지만 결국은 '노동자가 이긴다'는 상투적이긴 하지만, ‘정의’와 ‘단결투쟁’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9월 17일 서울로 발령나서 한 동안 작성하지 못했다가 오랜만에 글을 써서

10월 22일에 미디어충청(www.cmedia.or.kr)에 올린 [글쎄…8]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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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비정규직 운동을 해?"

오늘 오전에 한 선배와 이야기를 나눴다.

내 개인적으로는 참 감사하고 좋은 선배다. 그 선배로부터 나는 비정규직운동을 그리고 대전을 선택했다.

오늘 선배가 내게 질문을 했다. "왜? 비정규직 운동을 하느냐?" "비정규직 운동이 안되는 이유는?" 등등...

 

선배의 그런 질문이 내겐 낯설게 느껴졌다. 단지 '해야되니까!" 하는 생각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해보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려웠다. 이래저래 이야기를 했지만 선배에게는 그다지 원하는 답이 안될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그렇다. 종종 "운동을 왜 해?" 라고 묻는 선, 후배들이 있는데 그럴때마다 난 곤혹스럽다.

"아무도 안 하니까" 그게 답이다. 굳이 다른 답이라면  "이것 밖에 할 줄 몰라서...^^"

그냥 그래왔다. 내게 지금 하고있는 학비 일도 아무도 안 하기에 하는것 뿐이다.

 

선배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왠지 내게 지난 4년간의 활동에서 너무 계획적이지도 혹은 목표가 불분명했던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뚜렷이 뭔가 족적을 남긴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낸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엄습해왔다.

그래서 가끔 그 선배가 좋다. 내가 혹시라도 잊고 있거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일깨워져서....

내 성격상 당분간 고민을 해야할 것 같다. "비정규직 운동을 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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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가 혁명가였다구?

백설공주가 혁명가였다고?

[사실은] 다시 읽는 동화 이야기 (1)

2008-01-29

 

아주 어릴 적 어머니는 당신을 품에 안고 책을 읽어주셨을 것이다. 조금 더 커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에는 시골집 화롯불 옆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군고구마를 구우면서 “옛날 옛날에…” 하면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신 기억이 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부모님이 사주신 동화책을 읽고, 동화 속 세계에 빠져 꿈꾸던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뜬금없이 왠 동화 이야기냐고? 지금 우리가 아이도 아니고, 무슨 놈의 얼어죽을 동화 속 이야기를 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우리는 어릴적 어른들이 들려준 외국동화 또는 전래동화를 그저 들어왔을 뿐이다. 우리가 들은 동화 속 주인공은 항상 예쁘고, 멋있고, 착하고, 내용은 늘 권선징악(勸善懲惡), 고진감래(苦盡甘來)등의 교훈적 내용이다. 그 동화 속 이야기 작자가 누구인지는 우리에겐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 우린 그냥 그렇게 들었고 읽었을 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동화 속과 같지 않다. 어릴 적 꿈과 현실은 극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진 않는다.

90년대 초 독일에서는 역사학, 문학, 사회철학 등의 분야의 사람들이 동화를 재해석하고 원본을 재구성하는 등 동화를 새로 읽는 운동을 시작했다. 독일의 사회철학자인 ‘이링 페처(Iring Fetscher)’의 말에 의하면, “서양에서 동화의 의미는 원래 민중들의 ‘아주 의미있는 기별’이나 혹은 정보를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 차츰 민중들 사이에서 의사소통이 활발해지면서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기게 되자, 당시 봉건지배계급들이 위기의식을 가져 의사소통을 막기 위해 탄압을 했다. 그로 인하여 차츰 백성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링 페처 : 1922년 독일 넥카 강변에서 태어나 튀빙겐과 파리에서 철학, 역사, 문학을 공부하고 현재 프랑크푸르트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이후에도 이러한 물꼬는 이어졌으나 지배계급의 탄압에 굴복하게 되었고, 그나마 복원된 것(18,19세기)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형제, 안데르센’ 같은 사람들에 의해 현재의 내용으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던 동화의 원래 내용은 어땠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공주이야기 중에 특히 잘 알려져 있는 백설공주의 원래 이야기를 독일의 사회철학자인 이링 페처가 찾아낸 이야기로 소개한다.

 

 

 

 옛날에 백설공주라고 불리우는 그림같이 예쁘고 착한 소녀가 양천의 성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소녀의 머리는 까맣고, 뺨은 눈처럼 희고, 입술은 핏빛처럼 빨갛습니다. 공주는 어느 날 아버지가 군대를 동원하여 백성들을 살해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궁궐의 모든 부귀영화가 백성들의 가난과 고된 노동을 통해 얻어진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마음 속 깊이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말을 타고 숲속을 가다가 거친 수염을 기른 청년을 만났습니다. 공주는 청년에게 말을 걸어 세상살이에 대해 알아보려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청년이 바로 자기의 슬픔을 해결하는 일을 하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죽도록 일하고 시달리기만 하는 백성들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반란군에 그가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입니다. 헤어질 때에 그는 공주에게 조그맣고 빨간 책 하나를 선물하면서 몰래 그 책을 읽고 궁 안의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백설공주는 일곱 밤 동안을 이 책을 읽어서 거의 외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공주는 그 청년이 하고 있는 일이 옳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숲속에 갔을 때에 공주는 몰래 식량과 칠판, 그리고 몇 개의 무기를 가지고 갔습니다. 공주가 일곱 언덕을 넘어 반란군들의 진영에 도착하자 그들은 열광적으로 환영을 했습니다. 물론 그들에게 유용한 물건을 가져왔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아름다운 공주가 반란군에 가세하였다는 소식은 산불처럼 왕국에 퍼져 나가서 자유 해방군에 더 많은 추종자들이 생겼습니다.

여러 번 왕의 군대의 교활한 음모를 물리친 반란군들은 드디어 성을 함락시키고 왕정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는 백설공주가 가담한 혁명 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사악한 왕비는 감옥에서 평생동안 뜨개질하는 형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 백성들에게 행한 잘못을 보상하기 위하여 옷을 만드는 것입니다. 혁명 정부에서 백설공주는 여성 해방을 위하여 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라의 모든 백성들은 백설공주를 좋아하고 존경하였습니다. 아마 죽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렇게 열심히 그런 정의로운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 것입니다.

 

 

읽은 여러분들의 느낌은 어떤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백설공주와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이링 페처가 전하는 백설공주의 원래 이야기는 시민혁명 전후에 백성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혁명가 이야기 혹은 민중봉기적 이야기였다.

어떤 이들은 ‘동화는 동화일 뿐이야. 너무 현실에 접목시키지 마!’ 라고 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백설공주는 너무나도 황당하지 않은가? 난장이에 의해 삶을 의존하고, 결말에서는 독약이 든 사과를 먹고 죽었는데 지나가던 왕자가 키스해서 살아났다?

그럼 왜 백설공주 이야기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로 둔갑한 것일까? 그건 아마도 당시 지배계급이 민중들이 정치적으로 불만 제기 또는 이야기 전달로 반란을 꿈꾸던 이들을 탄압하기 위해서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지배계급들에 의해 수정된 백설공주 등의 공주이야기는 현재에도 전달되어 ‘여자는 늘 약하고, 남자는 용맹하며, 어려울 때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새로운 삶을 얻는다’ 로 완전하게 탈바꿈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봉건과 반봉건 그리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과의 대립이야기인 백설공주의 이야기를 현재 우리 안방 드라마의 가장 기본적 이야기 틀 구성으로 대중들에게 전달되고 있으며, 이 시대 다수의 여성들은 내일의 ‘신데렐라’가 되기 위해서 성형하고 연예인을 꿈꾸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는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고 말이다.

그저 허무맹랑한 내용의 동화가 아닌, 현실을 바로 볼 수 있게 하면서 고민하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게 하는 동화, 그것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꿈을 실어주는 우리들이 새로 해야 할 작업이 아닐까. 그 누가 알았겠는가? 백설공주가 혁명가였다는 사실을……

독일의 철학자 이링 페처처럼 자신의 아이들에게 들려줄 동화를 찾다가 이러한 동화 원작을 찾게 되었고, 바꿔 읽는 동화놀이를 한 것처럼, 이번 방학기간동안 아이들과 함께 기존의 동화를 새롭게 재구성해보면 어떠련지...

노래는 노가바(노래가사바꾸기)하면서, 이야기는 안 되겠는가...


 

 


* 참조 :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 (이링 페처. 1991. 철학과 현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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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속에 감추어진 인간의 잔혹한 편견

동화 속에 감추어진 인간의 잔혹성과 편견

[사실은] 다시 읽는 동화이야기 (3)

2008-02-26 03시02분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동화는 ‘빨간모자 소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동화를 필자가 간략히 요약해보면, 빨간모자를 쓴 소녀가 병든 할머니에게 빵과 포도주를 갖다드리라는 어머니의 심부름에 할머니집으로 가는 길에 늑대의 꼬임에 빠져서 놀았다. 그 사이 늑대는 할머니를 잡아먹고, 뒤늦게 할머니집에 도착한 소녀는 할머니 행세를 하는 늑대에게 속아 역시 잡혀 먹힌다. 이때 우연히 지나가던 사냥꾼이 배부르게 자고 있는 늑대를 알아보고, 늑대의 배를 갈라 빨간모자 소녀와 할머니를 구하고, 뱃속에 돌을 넣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해서 늑대를 죽였다는 이야기.

그런데 이 동화 속에 감추어진 비밀이 있다면?
독일에서 동화원본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오랜 연구 끝에 이 이야기의 앞부분을 찾았다.

 

옛날에 빨간 머리를 가진 꼬마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아이를 집에서나 동네에서나 학교에서도 ‘빨간 머리 소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동네에는 이 아이 외에는 빨간 머리를 가진 사람이 없었고, 또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아무 이유도 없이 싫어하고 배척하였기 때문에, 소년은 아무런 기쁨도 없고 따돌림 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의 학교성적 때문에 만족하지 못한 아버지는 소년을 욕하고 벌써 몇 번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어머니는 따돌림 느낌을 받지 않게 여동생에게 빨간 모자를 만들어주며 ‘빨간모자 소녀’ 라고 불렀지만 별 도움은 안됐습니다. 소년은 숲으로 가서 동물들과 노는 꿈을 꾸고는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소년은 늦게 일어났기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집에서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오자 소년은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덩굴 속을 헤치고 더 이상 갈 수 없는 데까지 왔을 때였습니다. 늑대가 나타나서는 소년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서 같이 맛있는 딸기를 따면 나중에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둘은 산딸기를 땄고, 점심때쯤에는 세 바구니가 싱싱한 산딸기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자 늑대는 말했습니다.
“얘야, 바구니 두 개를 넝쿨로 같이 묶어서 내 등 위에 걸면 너는 바구니 한 개만 들고 가면 된다. 그러면 훨씬 빨리 집에 갈 수 있을거야”

기쁨에 가득 차서 소년은 늑대와 함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소년은 학교도, 동네도, 친구들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딸기를 따 가지고 왔으니 얼마나 자 기를 환영할까 하고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있었습니다. 늑대도 사람들이 자기를 칭찬하고, 고마워할 것이라는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그 동안 아이가 학교에 안 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들이 늑대와 나란히 평안하게 오는 것을 보자 아버지는 분통이 끓어 올랐습니다. 아버지는 커다란 막대기로 늑대의 예민한 주둥이를 내리치자, 늑대는 캐캥거리며 도망가버렸습니다. 소년은 벌로 매를 맞고 방 안에 갇혔습니다. 다음 날 동생과 함께 할머니에게 떡과 포도주를 갖다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방금 소개한 글은 ‘빨간모자 소녀’ 동화의 앞부분이다. 놀랍게도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빨간머리 소녀’는 그림형제가 소개해서 현재까지 전해지는 동화인 것이다. 그동안 여러분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앞부분의 내용을 모른 채, 그림형제로 인하여 뒷부분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필자가 ‘빨간모자 소녀’ 동화원본의 앞부분을 소개하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동화 속에 감추어진 인간의 잔혹함이다. 그럼,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왜 그림형제의 ‘빨간모자 소녀’ 앞부분이 소개되지 않았나 하고 의구심을 가질지 모른다.

소개한 동화원본에서 빨간모자 소년은 늑대와 같이 딸기를 딴다. 그리고 소년과 늑대는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하고 즐거워한다. 늑대는 소년의 짐을 들어주는 친절함도 보인다. 이렇듯 늑대는 사악한 존재가 아님을 동화원본에서는 소개한다. 최소한 적은 아님을 동화원본에서는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소년의 아버지는 분노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늑대랑 어울렸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막대기로 늑대의 예민한 주둥이를 내리치고 쫒아버린다. 늑대는 무척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며, 화가 났을것이다. 그래서 그림형제의 ‘빨간모자 소녀’에서 늑대는 복수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빨간모자 소녀에서 늑대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시길.
늑대는 할머니를 잡아먹고 소녀를 잡아먹고 잠을 잔다. 지나가던 사냥꾼이 늑대임을 알고 가위로 배를 갈라 그 안에 소녀와 할머니가 나왔다는 것은…

그건 단지 늑대의 장난이었을 뿐이다. 애당초 할머니를 잡아먹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고, 소녀를 잡아먹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동화라 하더라도 늑대가 잡아먹었는데 할머니랑 소녀가 멀쩡할 수 있는가? 그건 동화원본 앞부분에서 소년의 아버지에게 맞았던 것에 대한 단순한 장난이었을 뿐이지 복수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냥꾼은 가위로 가른 늑대의 배에 돌맹이를 집어넣어 꿰매버린다. 늑대는 배가 무거워 움직이지 못해 결국 죽는다. 결국 사람이 늑대를 죽인다.

과연 독자들은 그림형제의 ‘빨간모자 소녀’ 이야기가 해피엔딩 이라고 생각하는가? 늑대가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나쁜 것이고, 사람이 늑대를 죽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선입견(先入見). 사물·인물 등에 대해 미리 접한 정보나 자신이 처음 접했을 때 가진 지식이 강력하게 작용하여, 그들 대상에 대해 형성되는 고정적이며 변화하기 어려운 평가 및 견해를 말한다. 이는 곧 늑대는 나쁘고 사악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키게 하기 위하여, 동화의 전달 과정에서 분명 그림형제에 의해 보수적으로 변질됐을 거다.

그래서 늑대에 대한 정보는 누군가에 의해 공포감으로 포장되어,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에 아이가 신나고, 어른들은 공포감에 빠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 하겠다.

고정된 관념을 타파하고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우리는 현대사를 통해서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고정관념은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참고 -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 (이링페처. 철학과 현실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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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가 노조위원장이라고?

“신데렐라가 노조위원장이라고?”

[사실은] 다시 읽는 동화이야기 (2)

2008-02-12 09시02분

 

다시 읽는 이야기 '혁명가 백설공주' 편을 재밌게 보셨는지. 실력 없는 글쓰기로 오히려 누가 됐는지는 모르겠다. 이번에도 지난번에 이어 공주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신데렐라 이야기.

예전이나 지금이나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여주인공 캐릭터를 보면, 대략 능력은 있으나 혹은 외모는 남들보다 뛰어나지만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는 걸로 묘사한다. 한마디로 궁상맞게 산다. 그러다가 우연히 남자를 만난다. 처음에는 나쁘게 만나고 그래서 싸우고 앙숙이 되다가 나중엔 친해진다. 그리곤 사랑하게 된다. 얼마 후, 그 남자가 재벌가 아들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여자는 몰래 떠나고 남자는 뛰어다니면서 다시 사랑하다는 스토리가 있고, 반면에 남자에게 이전부터 사귀던 혹은 따라다니던 여자가 있어서 그 사이에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과 티격태격하면서 남자 주변인물 들에게 굴욕을 당하다가 결국엔 남자품에 안기는 스토리 등으로 묘사된다. 결국엔 궁상 맞는 그러나 예쁘고 착한 여자는 백마 탄 멋진 남자를 만났다는 이야기다.

예전 MBC에서 방영하였던 ‘별은 내 가슴에’ ‘신데렐라’, SBS ‘파리의 연인’ 등의 프로그램이 그런 류가 아닌가 싶은데, 대다수 시청자들이 "식상하다", "이제 그만" 하면서도 나름의 시청률을 올리는 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빠져서이지 않나 싶다.

하지만 본래의 신데렐라 이야기도 돈 많고 멋진 남자를 동경하고 따라가는 여자의 이야기일까?

 

옛날에 한 소녀가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내가 죽자 재혼했는데, 새어머니는 소녀를 하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거만한 의붓언니들이 무도회에 가고 피아노를 치며 연애를 하고 다니는 동안, 소녀는 더러움과 잿더미 속에서 끝도 없이 고되게 일을 해야 했습니다. 얼마 동안 이런 굴욕적이고 고된 생활을 한 뒤에, 소녀는 무엇인가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소녀는 마을 우물가에서 매일 아침 다른 집 하녀들과 만나게 되는데, 서로 쓸데없는 이야기나 하는 대신에 하녀의 처지에 관한 보고서를 쓰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기로 하였습니다. 소녀는 그 보고서를 어머니 무덤에서 열린, 그 구역 모든 하녀들의 비밀집회에서 발표했습니다. 소녀가 그 장소를 택한 것은 그 곳이 하녀들이 방해받지 않고 모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상황 보고서에 관해 충분히 얘기를 한 후에, 대책을 의논했습니다. 겨울이 다가왔으므로, 그들은 크리스마스를 기해 일주일의 휴일과 10마르크의 보너스 그리고 밤일을 더 이상 시키지 말 것을 요구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거부당했습니다. 파업의 날(그 당시에는 그렇게 불리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개념은 나중에 영국으로부터 건너왔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시민의 집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녀들은 일제히 일손을 놓았고 주인들은 바쁜 크리스마스 전날 파업을 일으킨 하녀들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면서 아이들을 친지의 집에 보내 이틀이나 사흘 동안 한두 명의 하녀를 좀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대답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미안하지만, 우리집 하녀들도 일손을 놓았답니다.’ 그렇게 해서 단결된 부엌데기 신데렐라들의 연대는 첫 번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주인들은 어쩔 수 없이 하인들의 요구 사항을 모두 들어주어야만 했습니다.

이 단합된 행동이 성공하자 새로운 단원들이 가입하게 되었고, 몇 주 안 되어 신데렐라는 하녀 노동조합의 사무실을 열기 위하여 집안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이 노동조합은 잘 조직된 집단행동을 통해 그들의 처지를 훨씬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성공담은 곧 여기저기에 퍼져나갔습니다. 신데렐라는 지방신문과 이어서 중앙신문에까지 나고, 시장에서는 그의 사진과 연설문이 새겨져 있는 조각품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신데렐라는 “단결은 힘이다”라든가, “우리 팔이 쓸기 싫어하면, 모든 빗자루는 멈추어 선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마침내 신데렐라네 조합에 대한 소문은 왕실에까지 미쳤고 마음 착하고 국민을 걱정하던 황태자는 신데렐라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여섯 마리의 백마가 끄는 마차를 타고 신데렐라의 작업장에 나타났습니다. 온 국민들은 왕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평범한 하녀 신데렐라를 방문하러 온다는 것을 들었을 때 놀라움에 입이 벌어졌습니다. 신데렐라의 의붓언니들은 시기심 때문에 창백해져서 그동안 끊어진 친족관계를 재빨리 다시 이으려고 했습니다. 몇 번 신데렐라와 깊은 대화를 한 왕자는 그에게 반하여 정말로 청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신데렐라는 신분 차이가 아닌 이해관계와 정치적 신념의 차이는 결코 좁혀질 수 없다는 확신 때문에 거만함 없이 청혼을 거절합니다.
“당신의 따뜻한 마음과 용감한 변신을 높이 평가하지만, 저는 당신의 가족, 신분과 재산이 당신이 이상에 따라 행동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되면 아마 내가 당신 뜻을 따라 나의 지금의 의무에 불충실하게 되던가, 아니면 지금 하는 것보다 한층 더 마음 아픈 이별을 해야 될 것입니다. 당신이 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저와 결혼하지 않고도 인간적이고 진보적인 행위를 통해 그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슬픔에 빠져 왕자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신데렐라는 대답했습니다.
"당신 아버지를 졸라 모든 직종의 노동자들의 연대활동을 허용하고, 중세적인 하인법을 철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하십시오“

왕자는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능란하고 사업에 밝은 자문가들의 의견에 따라서 그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올 것이 드디어 왔습니다. 화창한 어느 날 왕의 병사들이 신데렐라를 체포하였습니다. 노동조합 작업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곳곳에서 판사와 성직자들은 “한 신분이 다른 신분에 대항하여 그들을 협박하기 위해 결집하는 것은 범죄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아름다운 단어 ‘자유’를 큰소리로 외쳤지만 신데렐라는 왕실 모독과 하인법 위반으로 감옥살이를 하여야 했습니다. 왕자는 그가 실행하고자 하던 첫 번째의 진지한 정치적 임무에서 실패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아마 오늘까지 살아서 아버지가 올바른 생각을 하기를 희망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가. ‘혁명가 백설공주’에 이어서 황당한가?

지금의 신데렐라로 변형시킨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마도 지배계급에게 있어서 대응하는 민중들을 제압하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지금도 다수의 노동자들이 자신이 노동자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데 과거는 어떨까? 거기다가 왕이 지배하는 시대에 민중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왕의 통치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해 반란을 꿈꾼다면?

그러기 위해서는 지배계급에게 있어서는 모종의 방치가 필요했을 거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외치면서 북한 괴뢰군에게 총 맞아 죽었다는 이승복 어린이의 이야기가 당시 박정희 정권이 반공 사상을 심어주기 위해 만든 가상의 이야기였다는 것처럼, 여성은 사회적 지위에서 낮으며, 나약한 존재임을 계속적으로 강조하여, 그저 여성은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나약한 존재로 포장한 것이 아니런지...

미국의 저널리스트 콜레트 다울링(Colette Dowling)의 말을 빌리자면, “동화 속 신데렐라처럼 본인 스스로는 자립할 수 없는 여성이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서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켜 주길 기대하는 심리”를 일종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라고 설명한다.

오랜 세월동안 누적된 억압과 차별의 벽을 허물고 자립하고 세상과 맞서야 할 때, 오히려 반대적인 생각을 주입시킴으로써 스스로 자기 비하나 열등감에 빠져서 억압과 차별적인 사회요소를 그대로 받아들인 게 아닐까 싶다.

겨울방학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그냥 동화책을 내밀게 아니라 그 속에는 성차별 요소는 없는지 조리요리 살펴보고 새롭게 아이들에게 들려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릴 적 이런 생각해 본 적 없는가?
예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항상 ‘철수와 영희 그리고 바둑이’로 표기하냐고...

 

 


* 참조 -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 (이링 페처. 1991. 철학과 현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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