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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속에 감추어진 인간의 잔혹한 편견

동화 속에 감추어진 인간의 잔혹성과 편견

[사실은] 다시 읽는 동화이야기 (3)

2008-02-26 03시02분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동화는 ‘빨간모자 소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동화를 필자가 간략히 요약해보면, 빨간모자를 쓴 소녀가 병든 할머니에게 빵과 포도주를 갖다드리라는 어머니의 심부름에 할머니집으로 가는 길에 늑대의 꼬임에 빠져서 놀았다. 그 사이 늑대는 할머니를 잡아먹고, 뒤늦게 할머니집에 도착한 소녀는 할머니 행세를 하는 늑대에게 속아 역시 잡혀 먹힌다. 이때 우연히 지나가던 사냥꾼이 배부르게 자고 있는 늑대를 알아보고, 늑대의 배를 갈라 빨간모자 소녀와 할머니를 구하고, 뱃속에 돌을 넣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해서 늑대를 죽였다는 이야기.

그런데 이 동화 속에 감추어진 비밀이 있다면?
독일에서 동화원본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오랜 연구 끝에 이 이야기의 앞부분을 찾았다.

 

옛날에 빨간 머리를 가진 꼬마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아이를 집에서나 동네에서나 학교에서도 ‘빨간 머리 소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동네에는 이 아이 외에는 빨간 머리를 가진 사람이 없었고, 또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아무 이유도 없이 싫어하고 배척하였기 때문에, 소년은 아무런 기쁨도 없고 따돌림 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의 학교성적 때문에 만족하지 못한 아버지는 소년을 욕하고 벌써 몇 번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어머니는 따돌림 느낌을 받지 않게 여동생에게 빨간 모자를 만들어주며 ‘빨간모자 소녀’ 라고 불렀지만 별 도움은 안됐습니다. 소년은 숲으로 가서 동물들과 노는 꿈을 꾸고는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소년은 늦게 일어났기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집에서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오자 소년은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덩굴 속을 헤치고 더 이상 갈 수 없는 데까지 왔을 때였습니다. 늑대가 나타나서는 소년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서 같이 맛있는 딸기를 따면 나중에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둘은 산딸기를 땄고, 점심때쯤에는 세 바구니가 싱싱한 산딸기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자 늑대는 말했습니다.
“얘야, 바구니 두 개를 넝쿨로 같이 묶어서 내 등 위에 걸면 너는 바구니 한 개만 들고 가면 된다. 그러면 훨씬 빨리 집에 갈 수 있을거야”

기쁨에 가득 차서 소년은 늑대와 함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소년은 학교도, 동네도, 친구들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딸기를 따 가지고 왔으니 얼마나 자 기를 환영할까 하고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있었습니다. 늑대도 사람들이 자기를 칭찬하고, 고마워할 것이라는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그 동안 아이가 학교에 안 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들이 늑대와 나란히 평안하게 오는 것을 보자 아버지는 분통이 끓어 올랐습니다. 아버지는 커다란 막대기로 늑대의 예민한 주둥이를 내리치자, 늑대는 캐캥거리며 도망가버렸습니다. 소년은 벌로 매를 맞고 방 안에 갇혔습니다. 다음 날 동생과 함께 할머니에게 떡과 포도주를 갖다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방금 소개한 글은 ‘빨간모자 소녀’ 동화의 앞부분이다. 놀랍게도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빨간머리 소녀’는 그림형제가 소개해서 현재까지 전해지는 동화인 것이다. 그동안 여러분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앞부분의 내용을 모른 채, 그림형제로 인하여 뒷부분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필자가 ‘빨간모자 소녀’ 동화원본의 앞부분을 소개하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동화 속에 감추어진 인간의 잔혹함이다. 그럼,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왜 그림형제의 ‘빨간모자 소녀’ 앞부분이 소개되지 않았나 하고 의구심을 가질지 모른다.

소개한 동화원본에서 빨간모자 소년은 늑대와 같이 딸기를 딴다. 그리고 소년과 늑대는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하고 즐거워한다. 늑대는 소년의 짐을 들어주는 친절함도 보인다. 이렇듯 늑대는 사악한 존재가 아님을 동화원본에서는 소개한다. 최소한 적은 아님을 동화원본에서는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소년의 아버지는 분노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늑대랑 어울렸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막대기로 늑대의 예민한 주둥이를 내리치고 쫒아버린다. 늑대는 무척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며, 화가 났을것이다. 그래서 그림형제의 ‘빨간모자 소녀’에서 늑대는 복수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빨간모자 소녀에서 늑대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시길.
늑대는 할머니를 잡아먹고 소녀를 잡아먹고 잠을 잔다. 지나가던 사냥꾼이 늑대임을 알고 가위로 배를 갈라 그 안에 소녀와 할머니가 나왔다는 것은…

그건 단지 늑대의 장난이었을 뿐이다. 애당초 할머니를 잡아먹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고, 소녀를 잡아먹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동화라 하더라도 늑대가 잡아먹었는데 할머니랑 소녀가 멀쩡할 수 있는가? 그건 동화원본 앞부분에서 소년의 아버지에게 맞았던 것에 대한 단순한 장난이었을 뿐이지 복수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냥꾼은 가위로 가른 늑대의 배에 돌맹이를 집어넣어 꿰매버린다. 늑대는 배가 무거워 움직이지 못해 결국 죽는다. 결국 사람이 늑대를 죽인다.

과연 독자들은 그림형제의 ‘빨간모자 소녀’ 이야기가 해피엔딩 이라고 생각하는가? 늑대가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나쁜 것이고, 사람이 늑대를 죽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선입견(先入見). 사물·인물 등에 대해 미리 접한 정보나 자신이 처음 접했을 때 가진 지식이 강력하게 작용하여, 그들 대상에 대해 형성되는 고정적이며 변화하기 어려운 평가 및 견해를 말한다. 이는 곧 늑대는 나쁘고 사악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키게 하기 위하여, 동화의 전달 과정에서 분명 그림형제에 의해 보수적으로 변질됐을 거다.

그래서 늑대에 대한 정보는 누군가에 의해 공포감으로 포장되어,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에 아이가 신나고, 어른들은 공포감에 빠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 하겠다.

고정된 관념을 타파하고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우리는 현대사를 통해서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고정관념은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참고 -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 (이링페처. 철학과 현실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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