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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21
    이런저런 (3)
    로젤루핀
  2. 2008/10/04
    오늘하루
    로젤루핀
  3. 2008/10/01
    뒷모습(2)
    로젤루핀
  4. 2008/09/27
    옳은 말.
    로젤루핀
  5. 2008/09/27
    늦가을...당신을 떠나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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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8/09/26
    ...가을, ...물들다
    로젤루핀
  7. 2008/06/24
    나를 미친년으로 만드는 고운 그이들
    로젤루핀
  8. 2008/06/02
    잠좀자자
    로젤루핀
  9. 2008/05/16
    가슴이 쓰릴 때는...
    로젤루핀
  10. 2008/05/03
    내일을 꿈꿀 권리까지도...(2)
    로젤루핀

이런저런

 

 

1.

오늘 뭐시기뭐시기 토론회에 갔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돌봄노동'을 언급하는 것 그 자체로 젠더관점을 지녔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어떠한 입장에서 '돌봄노동'을 사고하느냐가 중요할텐데,

즉, 신자유주의가 그 자신의 위기관리를 위해 취하고 있는 전략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신자유주의 정부에 대한 맹목은 '젠더관점에 입각한 돌봄노동의 사회화'라는 언명을 희화화시킬 뿐이다.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위해서 공공성 강화가 관건이고 따라서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입장은 매우 적절하나, 그러나 그 국가의 성격에 대한 분석과 성격을 변화시키기 위한 계획과 실천이 동반되지 않는한 '적절한 국가의 개입'은 허상에 불과한 것.

 

 

 

2.

옛날 짐정리하다가 튀어나온 02년 대선투쟁시기의 신문 한 장.

 

현재 김대중의 자리에 이회창이 앉는다면, 이회창은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개혁에 군부독재 시절의 통치 스타일을 덧붙일 것이다. 정몽준이 앉는다면,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개혁에 좀 더 노골적인 독점재벌 우선 정책을 덧붙일 것이다.

이들에 대한 선택은 더욱 끔찍한 미래를 가져올 뿐이다. 군부독재 시대의 망령들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는 더욱 폭력적일 것이며, 재벌 2세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는 더욱 혹독한 것일 것이다.

 

이회창과 정몽준을 합쳐놓은 2MB....우리의 선택은 왜이리 더더욱 끔찍한 오늘이 되어버렸는지....

 

 

 

 

3.

다른 세상, 다른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야할 길이 퍽이나 멀겠구나.....

 

지금시기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치지 않고 방향을 잃지 않는 것, 인 듯 하다.

 

 

 

4.

짐정리하다가 튀어나온 메모 하나 더. (책에서 베껴놓은 것)

 

"그럼 당신의 이름이 뭐죠?"

기자가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며 묻습니다. 큰 코를 가진 스키마스크가 대답합니다.

 

"마르코스. 부사령관 마르코스요."

머리위에서, 필라투스 비행기가 빙빙 돌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부터 산 크리스토발을 점령한 완벽한 군사작전은 희미해지고, 그것과 함께 작전전체를 지휘한 것은 여성, 반란군 원주민 여성이었다는 사실도 지워집니다.

 

1월1일 전투와 사파티스타가 탄생한 이후 10년 동안 걸어온 길에 다른 반란군 여성들이 참여한 사실은 부차적인 일이 되어버립니다.  마르코스에게 초점이 모아지면서 스키마스크를 쓴 얼굴들은 더욱더 이름없는 사람들이 됩니다. 소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제 바깥 세상에서는 이름을 갖게 된 큰 코 뒤를 계속 지킵니다. 그녀의 이름을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1994년 1월 2일 새벽, 바로 그 여성이 산 크리스토발에서 퇴각하여 산 속으로 복귀할 것을 명령합니다. 50일 후, 그녀가 EZLN의 CCRI-CG의 대표단 일행을 보호하는 호위대의 일원으로 산 크리스토발에 다시 옵니다. 몇몇 여자 기자들이 그녀와 인터뷰를 하고 그녀의 이름을 묻습니다.

 

"아나 마리아, 반란군 소령 아나 마리아입니다."

 

군인이 된 지 10년이 된 1994년 12월, 아나 마리아는 라칸도나 정글 주변에 정부군이 구축해 놓은 군사 봉쇄망을 뚫을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12월 9일 새벽에, 사파티스타는 38개 자치시에 거점을 확보합니다. 아나 마리아는 치아파스의 고지대에 있는 자치시에서 전투를 지휘합니다. 그녀를 비롯하여 여자 장교는 모니카, 이사벨라, 유리, 파트리시아, 후아나, 오펠리아, 셀리나, 마리아, 가브리엘라, 알리시아, 세나이다, 마리아 루이사 이렇게 열두 명입니다.

 

사파티스타의 작전 개시 후 연방군 최고 사령부는 파열된 그들의 봉쇄망을 침묵으로 둘러싸고, 대중매체를 통해 이것은 순전히 EZLN쪽의 선전에 불과하다고 선언합니다. 사파티스타가 봉쇄망을 뚫은 데다가 여러 도시를 여자가 지휘하는 부대에게 점령당했다니 연방 정부군은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 사건을 국민에게 감추려고 엄청 돈을 씁니다.

 

무당한 콤파녤로들의 의도하지 않은 행동과 정부의 의도적인 행동 탓에, 아나 마리아와 그 곁에 있는 사파티스타 여성들은 철저히 무시되고 눈에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녀

 

계급도 없고, 군복도 없고, 무기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만은 자신이 사파티스타임을 압니다.

얼굴이나 이름이 없다는 점에서 그녀는 사파티스타와 많이 닮았습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사파티스타처럼 민주주의와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웁니다.

 

그녀는 이미 모든 사람과 싸웠습니다. 남편과, 애인과, 남자친구와, 자식과, 친구와, 형제와,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싸웠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넌 제정신이 아니야."

 

그러나 그녀는 아주 많은 것을 포기합니다. 그녀가 포기한 것은, 크기로 치면 손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반란군이 포기한 것보다도 훨씬 큽니다. 그녀의 모든 것, 그녀의 세계는 '저런 미치광이같은 사파티스타'는 잊으라고 하고, 기존 체제에 길들여진 습관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고 오직 자신만을 염려하는 안온한 무관심 속에 눌러앉으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어느 이른 새벽, 그녀는 뭉툭한 희망의 끝을 날카롭게 다듬고, 하루에도 몇번 씩, 최소한 1년에 364번은 자신의 자매인 사파티스타의 1월 1일을 흉내내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환하게 웃습니다.

한때는 사파티스타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지만, 그들이 자신의 반란, 자신의 희망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걸 이해하는 순간 그녀의 감탄은 끝났습니다.

3월 8일, 얼굴을 지우고 이름을 감추고 그녀가 만납니다. 그녀와 함께 수천 명의 여성들이 옵니다. 더욱 더 많이 옵니다. 전세계에서 해야 할 일이 많고 아직도 싸워야 할 일이 많다는 걸 기억하는 수십, 수백, 수천, 수만 명의 여성들이 옵니다. 존엄은 전염성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성은 이 골치아픈 병에 훨씬 감염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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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하루

 

#1.담배 한갑, 그리고 커피 세개. 하루에 허용된 자유의 양.

 

 

"커피라도 마시고 가요"

 

첫번째 찾아간 집에는 오십대 중후반 아저씨가 혼자 계셨다.

실태조사와는 별개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길어졌다.

 

천천히 태우시던 담배를 비벼끄신 후,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불편하신 몸을 일으키신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내가 한 잔 마시고 싶어서 그래"

라면서 아저씨는 기어코 물을 끓이기 시작하셨다.

.

.

.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앞에 두고

또다시 이어진 이런저런 이야기.

 

남들처럼 회사다니면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어느날 정신질환이 찾아왔다고 한다.

아니, 서서히 찾아온 병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지.

술 때문이라고 아저씨는 자조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셨지만

글쎄..술이 아니면 견딜 수 없었던 삶의 무게라는 것도 있었겠지.

 

결국 시설에 갇혔다고 한다.

그곳을 아저씨는 '돼지 우리'라고 하셨다.

'창살없는 감옥'이라고도 하셨다.

'억울하다'라는 말도 여러번 반복하셨다.

 

정신질환이라는 것이

약도 없고 치료방법도 없는 병인데...

그러니까 병원에서는 잠오는 약이나 주고 드러눕혀 놓는 건데

계속 드러누워 있어야 장사가 되니까

의사는 가족들한테 병 나으려면 멀었다고 하고

가족들은 의사말을 더 믿게 된 거니까

면회와서는 의사말 잘듣고 말썽피우지말고 있으라는 이야기만 하니

가족들이 면회를 와도 뭐

잘 있다, 잘 가라, 라는 말 외에 할 말이 뭐 있나

나가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 이야기해도 소용없지 뭐

돈많은 인간들이야 그나마 살만한 곳에서 지낸다손쳐도 

나같은 인간들은 돼지우리에 갇히는 거지,

자유가 없으니까 돼지우리인 거야.

 

구구절절한 이야기...

담배 한갑에 커피 세개, 그것이 아저씨가 그곳에서 하루에 맛볼 수 있었던 자유였다고 한다. 그 말씀을 하시면서 아저씨는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담배를 한모금 피우신다.

 

 

 

 

#2.어색한 가족사진.

 

방이자 거실노릇을 하고 있는 자그마한 공간 벽에는

가족사진이 하나 걸려있었다.

밝게 웃고 있는 아저씨와 아들 둘, 세 남자 사이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앉아있었다.

사진관에서 찍은 듯한 분위기인데, 웨딩드레스라니?

좀 어색했다. 게다가 셋이서 환하게 웃고 있는 것과는 상반되게 그녀는 다소 긴장한 표정.

 

"아드님 결혼 사진...인가봐요?"

"아냐, 내 처야."

 

의아해하는 나와 류에게 덧붙이는 설명.

가족사진이 없어서 사진관에서 사진을 박았는데,

아내의 모습은 결혼사진에서 따다가 합성했다신다.

십 수년 전에 이혼해서 이제는 함께가 아니므로...

 

어색한 가족 사진.

그 어색함이 서글픔이 되는, 그런 사진.

 

 

 

 

 

#3.여기서 살려면 일자리도 맘대로가 아니야.

 

커피를 대접받고 금방 일어서기가 뭣해서

또다시 이야기는 이어진다.

 

담배를 한대 더 꺼내 피워무신 아저씨,

적정생계비/적정임금 관련하여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는 우리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같은 층에 사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해주신다.

 

"건너건너집에는 여자가 딸 셋을 데리고 살고 있어.

남편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

아무튼 셋을 키우니, 돈이 얼마나 들어.

그러니 일을 하긴 해야하는데

정부에서 주는 알량한 혜택이란게 일을 하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바로 끊기는 거거든. 그런데 그게 끊기면 애들 교육시키는게 그게 정말 막막한 거거든. 그러니 그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통장으로 돈이 바로 안들어오는 일, 그러니까 밤에 룸싸롱 주방에서 일하는 거나 뭐 그런거지.

그래, 그렇게 힘들게 살아. 여자 혼자 애 셋 데리고서...."

 

 

 

 

#4.다 같이 밥이나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

 

찾아간 다른 집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나는 그런 거 잘 몰라, 눈이 잘 안보여, 그거 정확하게 해야하는 거 아닌가,라면서...실태조사를 안 해주실 것처럼 하시다가

하나하나 던지는 질문에

서서히 이야기 보따리를 펼쳐놓기 시작하셨다.

 

"이러면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더 많네요? 그럼 어떻게... 지내시는 거예요?"

 

"다 빚이지 뭐...빚...그래도 여기서 사니까 그나마 다행인거야. 집값이 싸잖아."

 

"그렇죠, 영구임대아파트같은게 더 많아져야죠. 서민들이 그래야 살죠. 그래도...다행이긴 해도, 그래도 조금만 더 이렇게 좋아졌으면 좋겠다, 싶은게 있으시죠?"

 

"글쎄...뭐, 조금만 더 넓어졌으면 좋겠어. 그래야 상이라도 좀 놓고 온 가족이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이라도 좀 먹지. 지금은 뭐...한 사람 먹고 나가야 다른 사람이 먹고, 그렇거든. 좁아서 다 앉지를 못해. 뭐, 많이 바라는 건 아니고..."

 

너무나 소박한 바램...

기타 의견란에서 대기하고 있던 볼펜 끝은

너무나도 소박한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적어넣어야할지 몰라

한참을 방황하였다.

 

 

 

#5.안다는 건 상처받는 것

 

가가호호 방문을 위해 흩어졌던 우리들, 다시 모인 자리.

오늘의 행사에 함께했던 대학 신입생 한 친구는

오늘 만난 사람들, 만난 이야기들로 인해 너무나도 슬퍼졌다면서,

안다는 건 상처받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새로운 걸 알면 즐겁고 기쁘고 그렇잖아요...그런데 오늘 제가 알게 된 사실들은 저를 너무 아프게 하고 상처주는 거에요...왜 나는 여태 이런걸 몰랐을까, 좋은 대학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렇게 편하게 살았는데, 여태껏 난 뭐하고 있었나..그런 생각도 들고.."

 

그런 아픔들.

익숙하기도 하고 새삼스럽기도 한 그런 아픔들.

이랜드 문화제에서 이경옥 동지가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동지들도, 기륭도, KTX도, 코스콤도..."라고 말할때, 그럴때 찌르르하는 그런 아픔들.

 

비록 안다는 건 상처받는 것, 이상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 뿌듯함과 희열 역시 동반한다는 사실이 덧붙여져야 한다손치더라도

 

어쨌거나 그런 아픔들,

어쩌면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말고, 익숙해지지도 말고

아픔은 아픔대로...그렇게 느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아픔을 그냥 느껴야 하는 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요 얼마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것들이 어느순간 가벼워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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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강남성모병원에서 철야농성을 하고 들어왔다.

 

그놈의 비정규직'보호'법 때문에, 2년마다 짤리게 된 이들.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이리저리 돌려지는 파견노동자들은,

 

이대로는 나갈 수 없다면서

병원로비에 주저앉았다.

 

새벽녘에 그네들을 끌어내러 용역깡패들이 투입된다는 이야기가 돌아,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면서 지키다가... 다행히도 큰 일이 생기지 않아 우리팀은 해산을 하기로 하였다.

 

떠나오기 직전

로비에 있는 조합원들을 보러 병원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한 조합원 아주머니가

병원입구에 있는 성모마리아 상 앞에 우두커니 서계시더라.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그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그 뒷모습이 계속 눈에 아른거린다...

 

 

 

 

 

 

  새벽, 버스정류장에 (아마도 촛불시민에 의해) 붙여져있던 선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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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말.

 

 

이영희 노동부장관님이 정말로 옳은 말, 지당하신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비정규직을 없애자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서 살자고 말하는 것은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을 돌려서 말하는 것이다"

뭔 환경밀레니엄포럼인지 뭔지에서 이야기한 말이라는데,
정말로 옳은 말.

지당하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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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당신을 떠나보내고

 

결국,

빈소에 다녀왔다.

 

사무실 사람들과 함께 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가는 동안

차 안에 있던 김종배 유고집을 펼쳐들었다.

 

"당신을 떠나보내고"라는 제목의 시가 눈에 들어왔다.

 

 

 

늦가을,

당신을 떠나 보내고

낯선 영안실 프라스틱 의자에 앉아

당신을 지우기 위해

모진 애를 씁니다.

포도에 떨어지는 젖은 낙엽을 밟으며

아무도 서로를 위로하지 못하는

서로의 슬픔을 싸안고

이제 아주 떠나버린 당신을,

애쓰지 않아도 시간 속에 퇴색될

당신을 향한 슬픔을 잊기 위하여

모진 애를 씁니다.

 

그대는,

이미 추억이 되어서

슬픈 빛살처럼 머물 뿐인데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겠다며

몰려가는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맹세한다고 했지만

번번히 우리들의 맹세는 되풀이됩니다.

그대가

떠나며 남긴 교훈보다는

떠나버린 빈 자리에서

우리의 가슴은 더욱 절실해집니다.

 

 

 

사실, 나는 고인을 잘 모른다.

'잊기 위해 모진 애를 쓴다'는 표현은 그래서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녀는 그녀대로 나는 나대로, '살아온'

2005년 여름부터 2008년 가을까지의 같고도 다른 시간.

 

그 시간 이후의 지금부터의 삶은

더더욱 나만의 삶은 아니어야겠다는 생각이 새삼든다.

 

그래서

괴롭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역시,

다녀오니까...더 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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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물들다

 

#1.

버스를 잡아탔다.

피곤한 머리를 창가에 기댔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길가에 매달린 배너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의 가을, 축제로 물들다"

 

자연스러운 연상작용.

나는, 이 말이 생각나다.

 

"2006년 가을, 투쟁이 물들다"

 

이어진 연상작용.

나는, 그 곳이 생각나다.

 

평택, 대추리, 도두리, 할머니들...

 

 

#2.

오늘 오후에도 내 마음 속의 평택이 다시금 끄집어졌더랬다.

재영이 건네준 책자.

 

"그 많던 동네는 어디로 갔을까?"

 

책자를 읽노라니, 예전에 읽었던 치르치르의 글 한 토막이 떠올랐다.

 

“어디 사람들 가는 데 따라가서 가생이에 컨테이너 박스라도 짓고 살면 좋겠어.  난 집도 없고 땅도 없는 데 갈 데가 없잖아.”

 ‘이주’가 결정되었지만 앞으로 맞이하게 될 복잡한 일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주민들은 걱정이 많으십니다. 특히 재산이 없는,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의 근심은 더욱 늘었습니다.

 

쫓겨난다는 것.

'평택'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그 서러움. 그 잔혹성.

 

 

 

#3.

아무튼, 재영이 건네준 책, 재밌다.

가을...난 책에나 물들어볼까? (라고 하기엔 어서 처리해줍쇼~~하고 기다리고 있는 일들이 너무 많다 -_-; 쿨럭;;ㅠ)

 

 

 

 

 



 

지역에서 주민들과 나눌 이야기들은 넘쳐 난다.

동네 근처의 하천 오염에 관한 이야기나 어린이 청소년들이 학교 밖에서도 즐겁게 배울 수 있는 방법, 지역 장애인들이 더욱 주민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이나 지역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적정한 생활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주민들이 투쟁할 수 있는 방법 등 매우 다양한 이야기들이 지역에서 오간다.

 

그런데 의외로 집에 대한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일터와 삶터, 두 공간을 오가며 삶을 살아간다. 집은 누구에게나 빼놓을 수 없는 삶의 소중한 공간이다. 그런데 왜 집에 관한 이야기들은 오가지 않는 걸까?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는 집이 '재산'이라는 인식이 강해서일 테다. 웬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면 집에 숟가락이 몇 개니, 적금 들어놓은 돈이 얼마니 하는 말들은 나누지 않는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아마도 동네에서 만나는 주민들이 집주인이냐, 세입자냐 하는 것이 일상에서는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그 조건이 어떻든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므로, 장마철에 비가 샌다거나 집에 개미가 많이 꾄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은 나누지만 그 이상의 이야기들은 불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개발 사업 과정에서는 집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주민등록상의 전입신고를 할 수 없었던 사정은 무엇인지,

어쩌다가 동생네 집에 얹혀살게 되었는지,

집을 마련할 때 진 빚이 얼마인지,

벌써 몇번째 이사를 다니는 것인지 등등 구구절절 살아온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런 이야기들이 미리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개발의 바람에 휘말리고 나서야 '집'이 개인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공적인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도록 말이다.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공간인 집과 동네가 갖추어야 할 공공성은 어떤 모습일지 주민들이 이야기보따리를 풀 수 있도록 좌판을 깔자.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지금 살면서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우리가 원하는 마을 모습은 어떤 것인지, 개발이 필요하다면 그 방향과 절차는 어떠해야 할지 등을 함께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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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미친년으로 만드는 고운 그이들

치르님의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 에 관련된 글.

 

 

1.

오늘 (기다리고 기다리던! ^^*)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책을 만났다.

이랜드 문화제 틈틈이, 그리고 집에 오는 차안에서

"그때 생각하면 진짜로 따사로운 봄날 같아요"라는 제목의 인터뷰 글부터 읽었다.

혼자 빙그레 웃다가, 실실 쪼개다가, 눈물콧물을 훌쩍거렸다가...미친년 짓을 다했다.

 


2.

오늘 이랜드 문화제 1부에서 이랜드 조합원과 뉴코아 조합원 동지의 발언을 들으면서도

웃다가 환호하다가 눈물나오는걸 참다가...미친년처럼 굴었다.

동지들이 발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는 걸 지켜보다가 달려가서

발언문을 달라해서 베껴적었다.

집에 굴러다닐 법한 메모지에, 손으로 꾹꾹 눌러쓰신 발언문이

비록 맞춤법도 틀리고 문맥도 맞지 않고 그런 발언문이었지만

그 글이 너무나 고와서

옮겨 적는게 아니라 복사기로 찍어오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3.

"마지막으로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여러 사람한테 우리가 빛이 되고 희망이 되었다, 그런 말 들으면요, 지금은 그럼 우린 뭐야,

다른 사람들한테 빛이고 희망이고, 우리는 왜 이렇게 구렁텅이에 들어간 기분인 건데.

우리는 뭐야, 남만 다 빛내 주고 우리는 왜 이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오늘 읽은 인터뷰 속 조합원 동지의 솔직한 이야기

오늘 집회 발언하신 조합원 동지의 투명한 말씀

나를 미친년 만드는 그네들에게 고마우면서도

그네들에게 빚만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한켠이 무겁기도 하다.

이 빚을 어떻게 갚아나갈까.

이네들이 내뿜는 빛과 희망을 널리널리 퍼뜨리는 것 외엔 현재로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마음 한 켠이 좀 쓸쓸하기도 하다.

 

 

 

 

 

이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차곡차곡 할 말이 아니면 욕이며 너무너무 많았던 것이

막상 하려고 하면 수많은 동지들의 집중 때문에

하고 싶었던 말들이 어디로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이렇게 못난 저에게 발언을 해보라는 그 말씀이 너무나 고마워서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1년 전 이 자리에 오기 전에는 노동조합이 무엇이고 얼마나 잘 배우고 잘 나오면은 노동조합이라는 곳에 다니나 궁금했어요.

처음 와서는 단결, 투쟁, 하면은 쑥스럽고 부끄럽고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더구나 여성인 제가 하기에는 너무나 자신없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고 조그마한 여성의 힘일지라도 뭉치면 강하고 세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그 뜨겁던 한해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몰랐습니다.

또 낙엽이 지는 가을에는 정규직인 사람들은 아름다운 단풍놀이다, 가을 야유회를 즐기는 때였지만, 비정규직인 우리 노동조합 동지들은 쓸쓸한 가을일 뿐이었습니다.

또한 살을 에는 듯한 차디찬 아스팔트 길 위에 여느날과 다름없이 파업투쟁, 승리의 그날을 위하여 조그마한 힘이지만 보탬이 되려고 나가곤 하였습니다.

계절은 속일 수 없어 또다시 봄날씨가 돌아왔는데, 그야말로 봄소풍이다 산악회다 모두들 즐기는데, 2008년 봄은 슬펐습니다. 저희 노동조합원들은 이제 돌아갈래야 돌아갈수도 없는 너무나 먼 길을 왔습니다. 뒤돌아봐도 돌아가기에 너무나 먼 길이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1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처음 월드컵 매장에 접근한지도 1년이 되었군요.


사랑하는 동지 여러분

이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은 남자이지만, 그 남자를 낳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입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였습니다.

부디 바라옵건데 이 나라 정부 이명박과 공통점이 있는 사람, 장로 박성수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부디 회개하시고 국민이 화나면 무섭잖아요. 몸소 수행하여 회개하시기를 두 손 모아 빌겠습니다.


이랜드 일반노동조합 홈에버 방학분회 대의원 이경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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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좀자자

 

토요일 밤 일욜 새벽까지의 밤샘대치

날을 꼴딱새며 물대포를 맞아대다가

집에들어와 씻고 잠깐 눈좀 붙이고

알바갔다가 저녁때 들어와서는 완전 뻗었다.

(알바하면서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ㅠ)

 

그리고 좀전에 정신차리고

써야 하는 원고, 정리해야하는 회의결과 등등...월요일을 준비하려다가...

 

현재상황이 궁금하여 인터넷 생방접속...

어헐...

 

오늘도 어제와 비슷한 상황이구나.

(명박이도 대단하지만

사람들도 대단하다.

대단한 체력과 대단한 의지들♡)

 

 

지금 화면에 잡히는 모습은 전경과의 대치상황.

전경들은 방패를 앞에 세우고 열맞추어 있고

시위대는 연좌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전경들 앞에서 끊임없이 절을 하고 있다....

퍼포먼스가 아니라 진심이겠지.

마음이 아프다.

 

아 정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상황이 왜 생겨나는 것이냐고 정말.

요즈음 벌어지는 일들

너무 기가차서 그냥..웃다가 울다가, 한다.

 

경찰방송에서는 3시30분까지 해산하지 않으면 강제진압하겠다고 하네..

 

 

해야하는 것들 빨리마치고 다시 잠좀 자려고 했는데

못자겠다 ㅡ_ㅡ;;

 

아 명박아 쥐박아

제발 잠좀자자

 

넌 지금 자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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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쓰릴 때는...

재영님의 [안녕, 토르너동지] 에 관련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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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꿈꿀 권리까지도...

ㅇㅇ동에서 회의를 하던 어제저녁.

이주노조 위원장 토르너가 집회에 가려다가 잠복하고 있던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 끌려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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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2MB정권에 맞서 노동자들이 힘을 합해 싸우자고 선언한

노동절 바로 다음날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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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언이 다만 선언에 불과한 것으로만 여겨졌을까.

저들은 어찌나 우릴 우습게 보고있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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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목동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규탄기자회견이 있었다.

참담한 표정으로 모인 우리들은, 반갑다는 인사조차 하기 어려워, 서로서로 안타까운 눈인사만 나눌 뿐이었다.

 

 

한 동지는 "밴드를 만들어보자"라고 했다던 토르너와의 약속을 되새긴다. 마음맞는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불러보자. 그 소박한 꿈마저, 내일을 꿈꿀 권리까지도, 빼앗겨버린 토르너. 이주노동자들에겐, 우리에겐, 내일을 꿈꿀 권리마저도 허용될 수 없는거다.

 

 

 

다른 동지는 토르너가 잡혀가기 직전 향하려던 곳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장소였다는 사실을 되새긴다. 미친소, 미친경제에게는 모든 권한과 영주권을 주면서도, 이주노동자는 단물이 빠지면 추방을 시킬 뿐이다. 뼈빠지게 일을 하다 임금을 떼이고 모멸을 당하고 심지어 다치고 죽기까지해도 끽 소리 못하게 한다.

 

 

 

또다른 동지는 토르너가 노동절 집회때 했던 연설의 일부이자 평소에 즐겨했다던 말을 되새긴다.

 

"이주노동자 투쟁이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이요,

비정규직철폐투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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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너 이주노조 위원장은 반드시 구출되어야 한다.

전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미친소는 수입하면서도

생명을 담보로 묵묵히 일해온 노동자들은 내쫓는

이 미친 신자유주의 세상을 뒤짚어엎어야한다.

내일을 꿈꿀 권리를 되찾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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