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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물들다

 

#1.

버스를 잡아탔다.

피곤한 머리를 창가에 기댔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길가에 매달린 배너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의 가을, 축제로 물들다"

 

자연스러운 연상작용.

나는, 이 말이 생각나다.

 

"2006년 가을, 투쟁이 물들다"

 

이어진 연상작용.

나는, 그 곳이 생각나다.

 

평택, 대추리, 도두리, 할머니들...

 

 

#2.

오늘 오후에도 내 마음 속의 평택이 다시금 끄집어졌더랬다.

재영이 건네준 책자.

 

"그 많던 동네는 어디로 갔을까?"

 

책자를 읽노라니, 예전에 읽었던 치르치르의 글 한 토막이 떠올랐다.

 

“어디 사람들 가는 데 따라가서 가생이에 컨테이너 박스라도 짓고 살면 좋겠어.  난 집도 없고 땅도 없는 데 갈 데가 없잖아.”

 ‘이주’가 결정되었지만 앞으로 맞이하게 될 복잡한 일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주민들은 걱정이 많으십니다. 특히 재산이 없는,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의 근심은 더욱 늘었습니다.

 

쫓겨난다는 것.

'평택'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그 서러움. 그 잔혹성.

 

 

 

#3.

아무튼, 재영이 건네준 책, 재밌다.

가을...난 책에나 물들어볼까? (라고 하기엔 어서 처리해줍쇼~~하고 기다리고 있는 일들이 너무 많다 -_-; 쿨럭;;ㅠ)

 

 

 

 

 



 

지역에서 주민들과 나눌 이야기들은 넘쳐 난다.

동네 근처의 하천 오염에 관한 이야기나 어린이 청소년들이 학교 밖에서도 즐겁게 배울 수 있는 방법, 지역 장애인들이 더욱 주민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이나 지역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적정한 생활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주민들이 투쟁할 수 있는 방법 등 매우 다양한 이야기들이 지역에서 오간다.

 

그런데 의외로 집에 대한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일터와 삶터, 두 공간을 오가며 삶을 살아간다. 집은 누구에게나 빼놓을 수 없는 삶의 소중한 공간이다. 그런데 왜 집에 관한 이야기들은 오가지 않는 걸까?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는 집이 '재산'이라는 인식이 강해서일 테다. 웬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면 집에 숟가락이 몇 개니, 적금 들어놓은 돈이 얼마니 하는 말들은 나누지 않는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아마도 동네에서 만나는 주민들이 집주인이냐, 세입자냐 하는 것이 일상에서는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그 조건이 어떻든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므로, 장마철에 비가 샌다거나 집에 개미가 많이 꾄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은 나누지만 그 이상의 이야기들은 불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개발 사업 과정에서는 집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주민등록상의 전입신고를 할 수 없었던 사정은 무엇인지,

어쩌다가 동생네 집에 얹혀살게 되었는지,

집을 마련할 때 진 빚이 얼마인지,

벌써 몇번째 이사를 다니는 것인지 등등 구구절절 살아온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런 이야기들이 미리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개발의 바람에 휘말리고 나서야 '집'이 개인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공적인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도록 말이다.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공간인 집과 동네가 갖추어야 할 공공성은 어떤 모습일지 주민들이 이야기보따리를 풀 수 있도록 좌판을 깔자.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지금 살면서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우리가 원하는 마을 모습은 어떤 것인지, 개발이 필요하다면 그 방향과 절차는 어떠해야 할지 등을 함께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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