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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는 끝나지 않았다

 

 

점거는 끝나지 않았다

- 이랜드뉴코아 투쟁 300일에 부쳐 (송경동)



작년 어느 날 불쑥

당신들이 내 가슴 깊은 곳을 점거해 왔다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당신들에게 나는 속수무책 당해야 했다

내 얼굴은 화가 나 벌겋게 타올랐지만 소용없었다

당신들은 나를 점거하고

내 마음 깊은 곳에 아무도 몰래 숨겨둔

나의 진면목을 하나하나 까발렸다

너 가슴 속에 시커멓게 도사린 이것은 무엇이냐고

너 가슴 속에 쌓아둔 이렇게 많은 소유는 모두 누구의 것이냐고

너의 가슴 속에는 기실 너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너는 왜 너의 본 얼굴을 이 깊은 곳에 숨겨두고 있냐고

내 비겁과 두려움과 자만과 더러움을 들쑤셨다


더더욱 당신들은

우리 시대 운동의 중심을 점거했다

전체의 해방보다 자신의 실현이 중심이 되가는 운동

관념으로 똘똘 뭉친 가분수 머리들이

생활 속의 손발들 위에 군림하는 운동

정규직대공장남성사업장 노동자들 운동이라는 저들의 이데올로기 공세 앞에서

무장해제당한 채 출구를 뚫지 못하는 운동

올라와도 밟아버리는 운동

무엇보다 더 이상 맑고 투명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운동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고 겸허해지지 않는 운동

모두가 주체여서 연대가 필요치 않은 운동

그런 운동의 중심을 어느 순간 당신들이 점거해 버렸다

아무런 계획도 욕심도 없이, 어떤 정파적 이해관계도 없이

순진하게, 순박하게, 당당하게


나아가 당신들은 우리 시대의

한복판을 점거해 들어갔다

한국사회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는지도 모른다는 헛소문

이 정도면 살기 좋아졌다는 배부른 이들의 헛소리

이젠 문화의 시대라는 편안한 말들 속을

헐벗은 몸으로 가식없는 말들로 점거해 갔다

860만 비정규인생들의 죽음을 먹고 사는 자본의 심장을 점거했고

말장난으로 날이 뜨고 새는 국회를 압도했다

창백한 언론과 지식인들의 복잡한 논리를 단순하게 제압하고

뚫고 들어갈 필요도 없이 공권력의 중심에 놓였다

가장 평범한 이들이 가장 민주적이며

가장 억압받는 이들이 가장 진실에 가까우며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꿈이 가장 혁명적이라는

역사의 희망을 진실을 지켜주었다


당신들은 이렇게 이 시대 잠자고 있던

모든 이들의 양심 속을 점거했다

더 이상은 월급 80만원 최저임금에 목멘 비정규인생으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역사의 정규 페이지에 분명하게 쓰고 읽었다

그리곤 불안에 떠는 저들의 모든 거점을 점거했다

그 점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도 당신들의 벗인 GM대우 비정규동지들이

110일째 저 하늘을 점거하고 있고, 1000일째 기륭동지들이

공장 앞을 지키고 있고, 코스콤과 재능교육 동지들이

민주주의의 거리를 사수하고 있다

이제 당신들을 따라 우리 모두가 나서는 점거투쟁이

이 사회 곳곳에서 다시 벌어질 것이다

본래 우리 모두의 것인 자연과 가치를 독점하고 있는

저 자본의 불법점거를 민중의 공동소유로 만들기 위한

위대한 투쟁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 길에 나도 따라 나설 때까지

이랜드 뉴코아 동지들이여

모든 투쟁하는 동지들이여

나의 진정한 지도부들이여

내 가슴 속에 친 점거를 풀지 말아 주세요

우린 이미 모든 진실을 밝혔다는 기쁨과 희망과 존엄을 잃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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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상암에서, 송경동 시인이 낭송을 하기 전 이렇게 말했다.

"나의 詩가 말이나 글이 아닌, 투쟁의 짱돌이 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기관지에 싣겠다는 요청으로 시를 받아

인쇄넘기기 전 블로그에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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