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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선그라스

딸아이를 둔 입장에서 아동성폭력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솔직히 말해 아이를 낳기 전부터도 비관적인 나에게 세상은 결코 아이를 낳고 키울만한 곳이 아니었다. 유니가 태어나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을 거쳐 집에 왔을 때, 잠든 아이를 보며 '과연 이 아이가 자라나게 될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싶은 마음은 설레임과는 거리가 멀었다. 뭔가 내가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저질러 버렸다는 자책 같은...

전자발찌, 사형, 무기징역, 화학적 거세, 물리적 거세... 이런 말들이 난무한다. 모두 사건이 일어나고 난 다음에 일들이다. 그래서 (물론 나의 정치적 입장과도 배치되지만) 별다른 실효성 없는 립서비스로만 들릴 다름이다. 골목마다 CCTV를 설치한다고 하는 것도, 학교 출입을 엄격하게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보살핌이 파괴된 공동체인데 엉뚱한 해법만 난무한다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한 개인, 한 가정에게, 게다가 도시에서 그런 공동체를 구성하거나 보살핌의 시스템을 고안하라고 하는 것 또한 무리한 요구다. 최근 TV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를 혼자 두지 마세요"라는 CF도 마찬가지다. 어느 부모가 아이를 혼자 두고 싶어서 두나? 그런 광고를 할 돈이 있으면 차라리 보육시설을 늘리고, 그 시설을 무상으로 하고, 보육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써야 하지 않을까.  
 




 

며칠 전, 유니가 햇빛이 눈부시다며 외출을 거부했다고 한다. 내가 가끔 쓰는 선그라스를 눈여겨 봤는지, 안경이 없으면 나갈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이다. 그래서 마눌님은 마트에 데려가 선그라스를 사준 모양이다(사실 여름 휴가에 맞춰 하나 장만해주려 했다). 이 장난감 같은 선그라스가 아이 눈을 얼마나 보호해 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선그라스가 아니라 선그라스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 함께 가서 사 줄 수 있는 엄마의 존재이지 않을까 싶다.  
 

마눌님의 뱃속에는 7개월 된 벼리가 있다. 그 아이에게 마눌님도 나도 선그라스가 되어 줄 수 없음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다만 유니와 벼리의 선그라스를 유니, 벼리랑  같이 찾아나서야 겠다는 소박한 다짐만 되새길 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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