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한 불만'에 해당되는 글 33건

  1. 이랜드에서 받은 이메일 (6) 2007/07/23
  2. 초코는 너무 이상해 (3) 2007/02/10
  3. 이것은 초코가 아니다 (3) 2007/01/05
  4. 초코팬더 (5) 2006/12/01
  5. 변태싫어 2006/11/21
  6. 변태 (3) 2006/11/21
  7. 혹시 고양이냐 (2) 2006/10/23
  8. 빨간 두건 - 무서운 버전 (4) 2006/09/29
  9. 게바라를 내 속옷에 (1) 2006/08/03
  10. 초코양과 흰둥토끼 (1) 2006/07/24

메일 확인을 해보니, 아래와 같은 메일이 와 있었다.

짜증이 확 났다.

아까 길에서도, 캡 빠닥빠닥한 비싼 종이에 비슷한게 인쇄되어있는 걸 누가 들고 있길래 얼핏 보면서,

노조 측에서 저런 비싼 종이를 쓸 리는 없을텐데...뭐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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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3 15:36 2007/07/23 15:36

게바라를 내 속옷에

from 불만 2006/08/03 11:35

"미제에 맞서 총을 들고 싸우다가 숨진 혁명가가 술이나 여성 속옷 광고에 모델이 된 꼴은 비극이다"

 

언듯 공감이 갈 듯 하지만

솔직히 굉장한 시대착오적이고 초라한 사고방식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2006년 8월, 적어도 내가 사는 곳에서는.

 

자본주의는 '운동'을 이윤의 도구로 삼은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이윤의 도구로 삼은 것이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이미지를 이윤의 도구로 삼은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하는 기획자들, 디자이너들, 작가들이다.

 

그들은

'혁명'을 비하하거나 게바라를 모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체 게바라의 강하게 반전된 얼굴 이미지가 너무 멋져서,

단지 멋진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그곳에 그 이미지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보면 멋지다고 느껴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의 철없음을 탓할 것인가? 도덕에 대한 무감각을 탓할 것인가?

고래부터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은

도덕을 무시하고 아름다움을 지지해왔다.

그들은 진보진영만의 도덕을 따라주지도, 자본의 도덕만을 따라주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룰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체 게바라의 반전된 얼굴이미지가 특별히 너무 아름답고 멋진 이유는 무엇일까?

모자에 붙은 별과 잘생긴 게바라의 얼굴이 너무 잘어울려서?

검은색과 붉은색의 대조가 조화로워서?

 

다른 누구도 아닌 게바라의 얼굴이 정말 멋진 이유는,

위에 적은 내용들도 포함되겠지만,

무엇보다, 뜬금없게도, 게바라가 정말 멋진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게바라의 아름다움은 진보진영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좀 더 보편적의미를 가지고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붉은 바탕에 놓여진 게바라의 반전된 검은 얼굴에서

자기 삶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을 막연하게 느끼게 된다.

게바라는 그런 삶의 상징이며,

기표만 남은 것같은 이 시대에도, 잡히지 않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개개인에게 조금씩 다른 어떤 기의(의미)로 그 상징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진보진영이 술병이나 스타벅스 잔에서, 심지어 여성속옷에서(여성속옷이 어때서?)

게바라의 얼굴을 발견하는게 가슴 아픈 이유는,

그들이 자기연민에 빠지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이 게바라의 얼굴을 상품광고에서 발견하는 것이 가슴아픈 이유는

더이상 그들이 게바라의 의미를 자기것으로 만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혁명의 상징인 게바라의 얼굴 이미지가 자본주의에 더이상 위협이 되지 않게 된것은,

자본주의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진보진영의 잘못이다.

 

자본주의가 이전 운동의 성과를 너무 쉽게 무시한다고,

진보진영에서 징징대는 것은 진보진영 스스로에 대한 모욕이다.

대체 누구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일까?

 

게바라의 얼굴은 아름답다.

나는 그의 얼굴을 곳곳에서 보는 것이 좋다.

 

자본론이 드라마에 언급되는 것은 웃기다.

이해도 못하면서 중얼대는 것이 그냥 재밌다.

 

게바라 본인에게는 정말 미안하다.

기분이 많이 나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가 이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그의 아내에게도 많이 미안하다.

그녀의 투쟁을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모욕하지 않는 길은

이미지를 사용한다고 자본에게 징징대는 것이 아니라

자본에 대항하는 다른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언젠가는 다른 세상의 술병과 내 속옷에서 게바라를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아 글에 빈곳이 너무 많이 보인다.

이 빈곳을 메우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겠구나....

그래서, 귀찮아서 그냥 두기로 했다.

 

될대로 되라지 췟, 퉤!

 

생각해보니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진보진영에서 자본과 상품과 그 내부의 다양한 종류의 노동자들을 구분하지 않고

통째로 묶어 '자본'이라 지칭하는 것이 기분나쁘다.

자본주의 내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이 소외되지 않고 가치있는 것이 되도록

어떻게든 노력하고 있는데,

그들이 세계를 변혁하기 보다 사사로운 자신의 노동,

그 누군가가 그렇게 숭고하다 했던 그 노동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해

무시하거나 비웃는 것처럼 느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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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3 11:35 2006/08/03 11:35

활동가는 아무나 하나

from 불만 2006/07/08 12:12

마음에 칼을 품고 글을 쓴다.

 

활동가가 된다는 건 사실 정말 행복한 일이다.

삶과 세계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자신이 택하는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활동가의 삶은 그 자체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지만 가장 자기중심적인,

가장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강경한,

그런 삶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사치인가.

 

.

.

.

 

지식노동자이던 아빠는 실직하고나서

월남전에서 다친 오른손때문에 육체노동도 못한다.

주유소에서 주유기를 왼손으로 다루다가 왼손까지 망가졌다.

택시운전을 하려고 나갔다가 하루종일 일을 한뒤

장애인은 안써준다고 돈도 못받고 쫓겨나고

아파트 수위같은 건 꿈도 못꾼다.

작은 봉다리도 무거워서 아무것도 안들고 다니는 아빠가

한달에 10만원이라도 벌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역시 답이 없다.

보증금 300에서 월세가 매달 30씩 깎이는 방에 혼자 사는 아빠가

뭘 먹고 어떻게 사는지 나는 잘 모른다.

국가에서 나오는 연금을 담보로 대출을 하도 많이 받아

이자랑 원금떼면 실제 나오는 돈은 거의 없을텐데.

국민연금은 연금을 못내서 못받는다.

 

돈때문에, 아빠가 활동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무것도 못받는 거보다는 적은 활동비라도 받으면

내가 훨씬 덜 힘들테니까.

 

좀 더 진지하게는,

 

당시 25살에 고등학교 중퇴였던 동생의 경우

긴장하거나 불안할때 보이는 틱증세가 심해서

사회생활이 안되고 교육도 제대로 못받아서 사고의 수준이 초등학교 수준이고...

 

그래서 동생을 활동가로 만들고 싶었다.

내가 활동을 하면서 누렸던 문화적, 정서적 풍부함과

삶의 기쁨들을 동생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남들과 함께 사는 기쁨이 어떤 건지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들은 세상에 활동가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사니까.

 

그들을 어떻게 하면 활동가가 되게 할 수 있을까?

 

체계적인 활동교육이나, 새롭고 조금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운동사회에

그들을 편입시킬 수 있을까?

 

내가 동생에게 활동가의 삶을 경험해보게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을때 처음 머리에 떠오른 것은

'동생이 단체에 짐이 되고 귀찮은 존재가 되겠구나...'하는 것이었다.

 

활동할 만한 능력이 되는 사람들의 공간.

문화적이고 지적이고 자기가 무엇을 해야하는 지 아는,

경제적 자립이 가능한 사람들만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

 

나는 이 공간에 들어오려다 튕겨나간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전업활동의 여건이 되지 않아 자원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엔

자신이 한 노동에 대해 금전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지지조차 받지 못하는 것도 많이 보았다.

 

닫힌 공간,

삶의 다른 차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꿈조차 꾸기 힘든 공간.

아직까지는 그런 곳이 활동가들의 공간이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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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8 12:12 2006/07/08 12:12
아마도 교과서에 실리겠지.
위인전도 나올거야.
새벽마다 자가용을 타고 단학수련을 하러 가고
동도 트기 전에 연구를 시작해서
하루에 18시간씩 실험을 했다고
그런 와중에도 주말이면 연구실 일동과 등산을 가서 심신을 단련했다고
본받아야 할 사람이 되겠지.

그의 말이 인용되겠지.
'인류를 위한 숭고한 연구, 우리나라가 전세계에서 일등이 된다...는 둥...'

아아 그의 집요함이 나를 지치게 해.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만드는 거니까
나는 싸우기가 싫은데
그냥 조용히 지내고 싶은데
그러다간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바꿔놓겠지.
광신적 믿음과 실천력을 가지고.
인류에게 그 믿음을 전도시키고.
모든 것을 자신이 믿는대로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그들의 욕망은
견디기가 너무 벅차다.
그들끼리만 사는 다른 별을 하나 주고
나는 다른 별에 살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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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9 11:12 2004/12/29 11:12

메아리

from 불만 2004/11/03 18:25
메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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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3 18:25 2004/11/03 18:25

다시 성매매특별법

from 불만 2004/11/03 17:42
하도 오래 공적인 글쓰기를 하지 않아온 터라
지금까지 쓴 3개의 글이 모두
전혀 설득력없는 개인적 감정토로에 불과했다.

오늘도 비슷한 내용으로 비슷한 방식의 글쓰기가 되겠지만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성매매특별법'이 국가적 지원미흡 등 몇몇 문제는 있을지언정
당연히 시행되어야 할 금지법으로 이해되는 것이 여전히 옳지 않다고 생각되므로
대체 나스스로 정리가 될때까지 멈추어지지를 않는 것이다.

성매매특별법에 대해서 나는 성매매여성들의 집단적 목소리를 듣고 지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성매매특별법이 아무리 포주와 성을 사는 남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법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성매매여성들의 생존권(노동권이라는 말에 하도들 격분하기에)을
국가가 통제하게 되는 상황을 낳게 된다.
포주야 다른 일 찾으면 되고, 성을 사던 남성들이야 다른 나라 가던지 그냥 안가면 그만이지만
성매매여성들은 당장 생존권의 위협을 받게 된다.
국가는 여러가지 자본주의적인 판단아래 적당한 통제와 지원의 제스처만 보이면
그만이지만
성매매여성들 중 다수의 개인들은 갈 곳 없이 더 열악한 환경에 던져지는 수 밖에 없다.
그녀들은 처음부터 갈 곳이 없어 그곳에 던져진 사람들이다.
지금이라고 딱히 갈 곳이 갑자기 생기나?
취업이 이렇게 어려운 한국에서?
정말 묻고 싶다. 대체 그들에게 어딜 가란 말인가?
우리가 그들에게 매달 월급을 줄 수 있나?
우리가 그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줄 수 있나?

나는 솔직히 여성주의자들이 그저 국가에 끌려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성주의자들이 아무리 성매매에 대해서 격분한들
성매매여성들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생존권이 성매매 가능성 여부에 달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진짜 성매매여성들의 시선에서
그녀들을 위한 정책을 편다면
단순히 보여주기 식으로 금지법의 형태를 띈 법을 툭 던질 일이 아니다.
그녀들의 생존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성매매를 근절하려한다면
단계적으로,
현재 존재하는 집장촌을 국가에 등록하도록 해서 더이상의 집장촌을 허가하지 않고
포주들의 착취를 근절할 수 있도록 성매매여성들에게 맞는 노동법을 채택하고
사업장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취업교육을 실시하면서 성매매여성인구를 줄여가는 등
아주 조심스럽고 긴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사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내가 생각해볼 수 있는 한에서 예를 써봤다)

현재의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여성들을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취급하고 있다.
'성매매특별법'에서의 국가의 시각은 여성주의자들의 것과 현격하게 다른
순결주의와 가족주의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조차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나?

솔직하게,
내가 생계를 위해
공장에서 일할지 몸을 팔지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일하는 시간과 받는 돈을 따져서 더 나은 조건을 선택할 것 같다.
현재 성매매여성들이 공장보다 나은 조건에서 일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어떤 이에게는 성을 파는 것도 공장에서 일하는 것과 같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수 있고
그것이 노동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은 삶과 아주 무관한 것일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 여성에게 왜 성을 파는 것이 노동이어서는 안되는가?
왜 노동법의 보호를 받아서는 안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신은 '여성주의자인 나'의 이 선택에 돌을 던질 것인가?
가부장제 사회를 비판하고 이 선택 자체를 불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이해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주장이 현재 존재하는 여성들의 삶을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해하는
아슬아슬한 줄 건너타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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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3 17:42 2004/11/03 17:42

괴롭군

from 불만 2004/11/01 13:59
당장은 좀 더 괴롭더라도 대의를 위해 당신을 희생하는 것이
나중에는 당신에게 더 큰 이득이 될 거라고.
스스로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의 선택이라면 아름답겠지만
선택의 여지 없이 다른 이들에 의해 선악의 기준을 강요받고
다른 이들에 의해 자신이 하던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당연히 악이 사라지려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니 참아야 한다고 밖에
말하지 못한다니........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어차피 이해라는 것은 바람일 뿐이지만.

왜 그들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면 안되는 걸까?

어떤 문제에 대해서 보수적이라는 것은
다른 생각의 가능성에 대해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의 공간조차...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마치 중학교 때처럼
옳고 그름에 대해서 또다시 고민하게 된다.

개인이 무시되는 역사
거시적인 것속에 미시적인 것은 흔적도 없는 역사
그것이 내가 비판해오던 역사였는데.........

괴롭다.
잠도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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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1 13:59 2004/11/01 13:59

금지의 영역

from 불만 2004/10/31 03:38
인간은 어디까지 사회에 의해 금지당할 수 있는 것일까?
여성운동, 혹은 다른 운동을 전업으로 하지 않은지 꽤 오래된 내가
이런 철학적 질문을 해도 되는 것일까?
질문하지 않는 이유가 있겠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공동체에 질문하는가에 따라 나올 답들이 이미 오래전에 정리되어 있어서
토론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옳고 그름에 대해서 이미 모든 것은 결론 내려져 있다는 것.
그 공감대를 뚫고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
그 공감대를 뚫으려는 어떤 시도도 진짜 운동현장의 현실을 모르는 무지함의 소산이며
활동가들을 지치게 하는 무의미한 소모전을 의미할 뿐이라는 것.
투신할 수 없는자, 입을 열지 말라!
너도 이곳에 와보면 그런 말 할 수 없을 거다.
개토, 니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정말 괴로워.......
너마저....다른 넘들 무시하기도 벅찬데....

나도 괴롭다.
기본적인 배움과 지지, 배려의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걸까?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 뿐인 걸까?

그래도 혼자 생각해본다.
인간이 자기결정권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체 무엇일까?
진짜 '중요한' 것을 위해 몇몇? 성매매여성들은 또다른 삶의 고비를 맞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성매매 금지를 통해 성매매를 근절할 수 있을까?

성매매 금지에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성매매 여성들의 삶에 대해 무지하고
관심이 없는걸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제 배부른 성욕이나 성에 대한 의식을 과시하는 걸까?

나는 아직도 현재 성매매 여성들이 노동자로 인정받을 때
자신의 삶에 대해서 떳떳하게 이야기하고,
그 곳에서 나올 기회도 더 쉽게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이미 스스로의 노동으로 돈을 벌고 있는 한
일단 노동자로 인정해야 그녀들 스스로 자기결정권을 가질
최소한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에서 최소 200만이 넘는다는 그녀들의 삶을 책임져 줄 수 있을까??

나는 포주를 대변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고
성매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려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금지와 처벌이 정말 가장 좋은 방법일까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당장 그녀들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까 걱정이 된다.

그녀들은 모두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나는 정말로 그녀들이 처한 상황이 극단적일까 무섭다.

당장 주머니에 땡전한 푼 없는 상황. 그 상황이 무섭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내 주장이야말로 현실성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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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31 03:38 2004/10/31 03:38

날이 춥다

from 불만 2004/10/28 23:04
얼굴 붉어짐 현상이 시작되고 있다.
화끈화끈......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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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8 23:04 2004/10/28 23:04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생각을 적어놓고는 생각해 본다.
내 여성주의가 모자란 것인가?
모자랄 수는 있을 지언정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주제는 아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여성주의자들의 배려가 몸서리치게 스며온다.
그 배려는 가끔 어두운 침묵으로 나를 몰아간다.
무관심에 가까운 배려.
여성주의자들은 왜 이렇게 조용한가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일까?
내가 관심이 없기 때문에 모를 뿐인 것일까?
언니네는 왜 이렇게 조용할까?
다들 '자기만'의 방에만 묻혀서
조개처럼 단단하게 자신을 보호하고 있을 뿐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우리는 왜 늘 아주 가녀린 하나의 목소리만 내는 것일까?
정말로, 우리는 소수인걸까?
혹은 소수만 받아들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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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8 22:43 2004/10/28 2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