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토가 본 영화'에 해당되는 글 31건

  1. 메리와 맥스 2009/11/09
  2. 시티오브갓 (5) 2007/08/28
  3. 릴라말하길 2007/08/28
  4. 체코드림 2007/05/07
  5. 달콤한 인생 2006/12/28
  6. the Stranger (2) 2006/12/18
  7. 개토라도 괜찮아. (5) 2006/12/08
  8. 슈퍼맨 리턴즈을 극장에서 보다 2006/07/04
  9. 투스카니의 태양 2004/11/06
  10. 질투는 나의 힘 2004/02/23

메리와 맥스

from 영화에 대해 2009/11/09 18:01

 

웃기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마음이 편했다.

어쩌면, 그런게 오스트레일리아 식 유머였는지도...

난 그곳에 가 본 적이 없는데, 가끔은 가보고 싶다.

그렇게 넓은 곳에 살면, 그렇게 자연과 가까이 살면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질 것 같다.

 

아직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썼는데

나는 그런 이야기를 잘 못해서...

 

그리고

하이타니 겐이치로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라는 책도

꼭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내가 아주 많이 울고 싶을 때 읽는 책이다.

 

누군가 많이 울고 싶다면, 읽어보세요.

울고 싶지 않아도 읽어보세요.

좋은 책이니까.

 

너무 성의없게 쓴 것 같아 다시 왔다.

 

하지만 역시 꼭 보세요 라고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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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9 18:01 2009/11/09 18:01

시티오브갓

from 영화에 대해 2007/08/28 17:45

멀미나서 죽는 줄 알았다.

전혀 공감할 수 없고, 전혀 알고 싶지 않은 세계.

 

어깨에 죽음이 올라앉은 것처럼, 무겁다.

피곤해져 버렸어.

영화에 체해버렸나.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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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8 17:45 2007/08/28 17:45

릴라말하길

from 영화에 대해 2007/08/28 15:14

뜨거운 잼처럼 형체가 없는, 뭉개지고 달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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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8 15:14 2007/08/28 15:14

체코드림

from 영화에 대해 2007/05/07 01:22

대화란 가능한가?

 

내가 '개'라고 말할때, 너는 정말 나와 같은 '개'를 듣고있니?

내가 'FTA'라고 말할 때, 너는 나와 같은 'FTA'를 듣고 있니?

 

누군가에게 내가 경험한 무언가를 전달하려할 때 우리는 '미디어'를 사용한다.

'매체' 혹은 '매개체'라고 번역되는 그것.

순수한글이던 한자한글이던 한글로 말해보려 하지만 '미디어'가 좀 더 넓은 의미로 쓰일 수 있는 것 같아.

사실, 이게 재미있는 부분이다.

내가 '미디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좀 더 잘 나를 이해할 것이라는 믿음.

 

대체 더 잘 이해한다는 것, 서로 대화가 더 잘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미디어'를 거치면, 원본은 손상되게 마련이다.

원본은 '미디어'의 생산자에 의해 일부 강조되고 일부 삭제되는 등 편집이 되는데,

'미디어'의 소비자는 이 내용을 제 멋대로 왜곡해서 받아들인다.

 

이 사실을 모두 알면서도, 우리는 '미디어'의 순수성이라던가 '진실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죽음'에 매우 집착하는 '바르트' 따위는 사실 현실 속에서 너무 심한 사치다.

대체 '미디어'에 진실성이 없다면 우리는 너무나 고독하지 않은가.

 

'체코드림'은 '미디어'의 '진실성'에 대한, 

고독할뻔 했지만 고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다.

 

분명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같다는 말이다.

대화라는 것이 가능할 것만 같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수많은 '거짓' 미디어들에 대해서는 아주 쉽게 이해하는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 하나의 '진실'한 미디어에 대해서는 정말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다.

 

'진실한' 미디어는 그 자체로 완결적이기 때문에,

다른 미디어로 그것을 옮기려하면 '원본'이 손상되어

그 고유의 것을 느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을 마주할만큼 강하지 않다.

아마도 그것이 인간사회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런 평가라니, 너무 오만한거 아니니?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나는 과연 '진실한' 미디어를 만들어 내고 있는걸까? 

 

개토는 어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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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7 01:22 2007/05/07 01:22

달콤한 인생

from 영화에 대해 2006/12/28 12:04

내 안에 느와르가 있다.

 

완전히 미친 것들, 나는 그런 것들의 질서를 좋아한다.

 

[달콤한 인생]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감독은 김지운, 주연은 이병헌.

내가 이병헌을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병헌이 그렇게 다양한 표정을 가졌을 줄은 정말 몰랐는데

이병헌이 느와르에 어울릴 줄은 정말 정말 몰랐었다.

 

느와르에 대화란 없다.

미친 것들만 있을 뿐이다.

미치는 데는 이유도 없다.

느와르의 주인공은 햄릿처럼 무기력하게 주어진 세계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선택은 없다.

대화와 소통을 통한 문제해결도 없다.

한번 미치면 끝까지 가는 수 밖에 없다.

 

처절하고 폭력적이고 끔찍할 수록 아름답다.

내 안에 은밀한 그 욕망.

 

마지막 장면까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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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8 12:04 2006/12/28 12:04

the Stranger

from 영화에 대해 2006/12/18 14:42

The Stranger by Sangmok Ha

 

음악이 무척 중요하니, 소리를 키우고 봐주세요.

 

 

모니터앞 빨간의자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개토는 군만두를 먹었어.

냉동실에 군만두 다섯개가 있었거든.

만두를 먹는 데는 10분쯤 걸렸어.

그리고 블로그에 나만 볼 글을 하나 썼지.

글을 쓰는 데는 한시간쯤 걸린 것 같아.

그리고,

블로그 여기 저기를 돌아다녔어.

가끔은 멈춰서서 팔짱을 끼고 조금, 쌀쌀하다고 느끼면서

고개를 숙이고 키보드를 내려다 보았어.

 

그리고는

the stranger.avi 를 클릭해서

다시 한번 봤지.

 

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난걸까?

 

랄라~

 

동영상 스킨도 맘에 안들고 기타 맘에 안들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올려놓고 보니, 화질이며 화면크기, 거슬리는 스킨,

올리지 말걸 그랬나...

감독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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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8 14:42 2006/12/18 14:42

사이보그라도 괜찮아.

를 보았다.

 

복수는 나의 것을 본 뒤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기대하게 되었는데,

금자씨부터는 사실 조금 실망이다.

박찬욱의 스타일이 아니잖아 랄까.

배우들의 연기나 화면의 색감과 구성, 완성도 등은 그대로인데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

시선이랄까.

아주 깊고 썩어 문드러진 곳까지 동요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시선이랄까.

 

조금 겉멋이 들었다는 느낌이랄까.

 

살빼기 다이어트에 좋은 영화였던 것은 틀림이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 인간이라는 것이 혐오스러웠으니까.

건전지로 충전하고 살면 참 좋겠다.

 

여자주인공이 참 예뻤다.

특히 머리가 참 예뻤다.

 

돌아오면서 김상에게 물었다.

개토라도 괜찮아?

 

응. 개토라도 괜찮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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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8 12:42 2006/12/08 12:42

한 세대를 넘어서도 계속 읽히고 사랑받는 창작물을 고전이라 부른다.

슈퍼맨은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고전'이라 할만한 작품들이다.

미국은 이제 나름 '고전'이 무더기로 생길 정도의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이다.

말하면 입아픈 스타워즈로 시작해서

최근 유행하는 미키마우스 등 디즈니의 오래된 캐릭터 상품들과

온갖 맨 시리즈 영화들, 심지어 '오만과 편견'같은 작품까지...!

 

헐리웃은 고전으로 꽤나 돈을 벌어들인다.

 

나는 사실 미국의 '고전' 코믹스들을 단 한권도 읽은 적이 없다.

"맨시리즈 코믹스들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 경우가 많다"는 둥

뭔가 그안에 대단한 아우라가 있는 것처럼 포장한 글들을

영화잡지 등에서 읽어본 적은 있지만

직접 보고 정말 그렇구나! 느껴본 적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시리즈는 꼭 극장에서 보게 된다.

 

왜냐구?

이런 영화는 큰 화면으로 봐야 제격이거든.

 

장르도 액션 '스펙타클' 아닌가

스펙타클이라 함은, 호사스럽고 거대하고 화려하고 일단 보는 것으로 압도하는 것을 의미하니

결국 극장에 가서 그 스펙타클에 짓눌려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스펙타클 영상에 이성을 잃은 내 마음 한켠에,

마치 고전을 접한 것과 비슷한 뿌듯함이 약간 켕기면서도 자랑스럽게 숨어 있다.

 

참고서에 요약된 '죄와 벌'을 읽고서 남들 앞에서 읽은 척 하는 것과 비슷한 심정이랄까.

실제 코믹스를 한번도 읽은 적이 없으면서도

영화만으로 이미 슈퍼맨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으며

고전을 하나 내것으로 만든 것이다.

부족한 부분은 인터넷에서 잘 주워 담으면 된다.

 

흠...

 

이렇게 자기를 기만하고 나면 영 뒤가 켕긴다.

 

일찌기 디즈니가 인어공주, 백설공주, 신데렐라를 똑같은 예식장에서 결혼시키는 것을 보며

경악했던 경험도 있지 않은가

인어공주는 거품이 되었어야 마땅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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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4 17:54 2006/07/04 17:54
오랫만에 좀 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제목도 생소한 '투스카니의 태양'.
김상이 짐 캐리 나오는 영화래서 그냥 웃어나 볼까 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웬걸, 한참 한참 지나도 짐 캐리가 나올 생각을 안한다.
여주인공이 이사를 하고 나니 옆방에서 매일 울어대는 변호사 목소리가
아무래도 짐 캐리 같아서 둘이 언제 만나려나 보고 있었더니
갑자기 주인공이 이태리의 투스카니로 훌쩍 떠나버린다.

짐캐리가 언제 나올 것인가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였으나
결국 짐캐리는 나오지 않고......

어쨌든 보는 동안 내내 이 영화는 여성 감독의 영화구나 싶었다.
일상에 대한 시선이 섬세하다.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따스한 시선을 갖고 있다.
뭐랄까 내가 원하는 것들을 원한다.

알고 보니 '개와 고양이의 진실'을 감독했던 오드리 웰스 감독의 영화였다.

영화는 한 여성의 일상을 담은 것임에도 전혀 잔잔하지 않고
상당히 강약이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어쩌다 한번씩 겪게 되는 스릴도 만나 볼 수 있다.

대체 볼 영화가 없다 생각될 때, 영화 본 뒤 기분이 좋고 싶을 때
'내 어머니의 여자친구(제목이 맞나?)처럼
이 영화도 볼 만한 영화라는 생각이다.
별 다섯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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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6 10:35 2004/11/06 10:35

질투는 나의 힘

from 영화에 대해 2004/02/23 21:46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려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시집 [입속의 검은 잎] 중에서

도식적으로 이 영화를 해석한다면,

주인공 원상이 사랑하는 배종옥 분의 두 여성은 그가 쫓는 이상이다.
그도 순수하게 이상을 쫓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상은 현실에서 권력에 무릎꿇고 그를 배신하며
한 번 배신당한 이상, 그는 그의 이상을 쫓아갈 생각이 없다.
그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는 놈이다.

권력은 역겹지만 아름답다. 단순 명쾌하다.
노동자 계급은 안스럽지만 구질구질하고 복잡하다.
그들과는 살 수 없다.
공부도 많이 했는데, 그들과 살기 위해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내 이상을 위해서 공부한 건데, 그 이상이 권력 없이는 못 산댄다.
권력을 사랑한댄다.
공부를 했다한들 뭐 인생이 역전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권력과 함께 살아갈 수는 있게 되었다.

권력은 쉽게 이야기한다.
'노동자 계급을 사랑해? 아니잖아. 그쪽에서 불편하면 이쪽으로 와서 나랑 살아.'

내 이상이 권력에 놀아나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이미 한번 권력에 놀아난 이상, 사실은 이쪽에서 버리고 싶었던 이상이었다.
순수한 이상은 버리리라.
이상이 권력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버리고
권력에게 가리라.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이 영화와 비교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시선이라는 단어가 두 영화를 이어줄 수 있을까?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집요한 시선이 스스로에 대한 처벌처럼 느껴지는 반면,
박찬옥 감독의 이 영화는 그야말로 담담하며 타인에 대한 냉정한 관찰로 느껴진다.
주인공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
홍상수 감독의 시선은 주인공 내면을 잘 이해하고 있고 공감하거나 괴로워하고 있지만
박찬옥 감독의 시선은 주인공을 약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는 왜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일까?'

박찬옥 감독이 여성이기 때문에 홍상수 감독과 다르다는데 한 표 던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4/02/23 21:46 2004/02/23 2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