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2013/09/04 11:15

며칠전 '지정학은 이데올로기보다 중요하다'는 환추시보의 사설을 읽었다. 뻔한 순망치한이야기였지만 눈길을 끄는 건 그런 상황이 명나라 이후 줄곧 유지되었다는 그들의 역사 인식이었다. 즉, 명나라 이후 혹은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일본문명이 중국문명에 명백한 위협이 되었다는 것이다.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그들은 임진왜란을 어쩌면 일본문명과 중국문명의 격돌(조금 양보하면 일본 대 중국-조선연합.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군사적 역할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해전은 몰라도 육전에서는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분명한 건 임진왜란 출정은 명나라가 무너지는데 결정타였다는 것이다.)로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사가 수능의 필수과목이 될 것같다.(딱 잘라서 말하자면, 나는 국사과목의 필수지정에 반대하지도 않지만 찬성하지도 않는다. 여기서는 국사는 당연히 동아시아 문명사라는 틀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말만 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그 와중에 교학사 국사교과서가 논란이다. 오래전부터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가 퍽 궁금했다. 처녀가 강간당하고나서 강간범 덕분에 섹스를 알게되었으니 고마와해야한다는 이 해괴망측한 논리를 버젓이 주장하는 그들의 심리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현재까지 내가 이해한바로는, 19세기 후반에서 식민지시대를 통해 마주친 일본 문명에 압도당했다라는 것이다. 아마 식민지시대 많은 조선인들이 그런 심정적 절벽을 느꼈을 것이다. 19세기 마주친 일본문명은 16세기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던 셈.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압감. 그 위압감은 곧바로 자괴감으로, 자괴감은 자학으로 발전하여 마침내 식민지근대화론을 구성했다는 것이 나의 인식이다.(1910년대 일본은 연평균 20%라는 가공할 만한 성장으로 미국과 함께 세계경제의 양대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은 엉뚱한 이야기 하나.(이 부분은 내가 정확한 사실관계에 대해 자신이 없다. 그냥 상상정도로 이해해도 좋다.) 정묘/병자호란 때 일어난 의병에 대해 들은 바가 별로 없다. 워낙 속전속결로 당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임진왜란 때 의병장에 대해 국가가 얼마나 부당하게 대접했는가에 대한 민중들의 학습효과 때문일까?

 

앞으로 30년 50년 이후를 상상해보자. 만약 미국의 패권적 지위(혹은 능력)이 조금씩 약해지면서 동아시아에서 그들의 지분이 지금의 러시아 수준으로 떨어진다면 남는 것은 중국과 일본. 이 경우 중국은 수세적이고 일본은 공세적이다. 그리고 만약 남북이 여전히 통일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남쪽은 일본의 강력한 영향력하에 놓이게 되는 건 필연일 터. 어쩌면 국민투표를 통해 남한이 일본연방에 귀속하게 되는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물론 통일이 된 상태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어쩌면 우리 손자 세대들은 지금 우리가 영어에 몰두하듯이 일어를 공부하게 될지도 모른다.(히라가나로 쓰여진 게다가 그에 대한 한글 표기조차도 없는 가게 간판을 보면 문득문득 이런 끔찍한 상상이 떠오른다.) 학습효과에 의해 무수히 많은 자발적 친일파가 등장할 것이다. 임진왜란이 16세기말, 식민지가 19세기말이었으니 다음번은 21세기 말쯤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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