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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문제 ; 밥과 반찬

2015/08/07 17:11

밥과 반찬을 한자로 주식, 부식으로 표현하다보니 영어로 번역할 때도 main dish, side dish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밥과 반찬을 서양의 main dish와 side dish로 번역을 하면 좀 곤란한 점이 생긴다. 서양요리에서 side dish는 보통 없어도 그만인 경우가 많다. 설령 꼭 있어야 하는 경우라도 사람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다. 피클 먹을려고 피자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 음식에서 반찬은 오히려 주된 관심사다. 아래 예를 보자.

1. 퇴근후 집으로 돌아가는 Tom. 아내가 저녁으로 무엇을 준비했는지 궁금하다. 이 경우 톰이 궁금한것은 main dish일까 side dish일까?

2. 퇴근후 집으로 돌아가는 홍길동. 아내가 저녁으로 무엇을 준비했는지 궁금하다. 이 경우 홍길동이 궁금한것은 밥이 쌀밥이냐 잡곡밥이냐일까? 아니면 반찬이 김치찌개냐 된장찌개냐일까?

위 두 예를 비교해보면 서양음식에서 주된 관심은 main dish이지만 우리는 반찬이다. 식당을 이햐기할 때도, 어떤 집은 스테이크가 맛있다, 돈까스가 맛있다, 피자가 맛있다, 추어탕 잘한다, 김치찌개 맛있다, 칼국수 맛있다 등등으로 말한다. 즉, 스테이크, 돈까스, 피자, 추어탕, 김치찌개, 칼국수 등은 우리의 사고에서 같은 층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반찬을 side dish로 번역하기가 망설여지는 이유다. 어찌보면 차라리 반찬을 main dish라하고 밥을 side dish라 하고 싶을 지경이다. 또는 밥과 반찬을 모두 main dish라고 하는 것도 나름 타당해 보인다.

우리나라 음식은 냉면이나 칼국수처럼 하나의 그릇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밥'이 나오고 밥만 먹으면 곤란하니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 이런저런 반찬이 나오는 걸로 이해할 수 있다. 샐러드 없이 스테이크만 먹을 수는 있지만 밥 없이 김치찌개만 먹는 경우 본 적 있는가?

나는 보통 외국인에게 설명할 때 밥은 primary dish라 하고 반찬은 main dish라고 말한다. 그리고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는 정도다.

 

생각난 김에 이른바 한식을 외국에 보급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뭐든지 오리지날부터 시작하면 안된다. 처음에는 눈높이를 낮춰서 일단 퓨전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입맛이 점점 길들여지면 조금씩 조금씩 오리지날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생각해보라. 우리가 첨부터 지금처럼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즐겼는가? 우리가 첨부터 지금처럼 다양한 파스타/피자를 즐겼는가? 아니다. 첨에는 아주 간단한 수준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원래의 오리지날에 대한 갈증이 생기면서 종류가 다양해졌다. 외국에 한식이 보급되는 것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처럼 밥과 다양한 반찬을 탁자에 진열하는 식은 곤란하다. 특히나 반찬이나 찌개를 같이 먹도록 하는 것은 정말 곤란하다. 기본반찬은 반드시 1인용으로 준비해야하고 갯수도 한두가지 정도로 줄여야한다. 핵심 요리(추어탕, 김치찌개 등과 같은 우리가 그 식당에 가는 근본 이유인 메뉴)가 나오고 곁들여서 '약간의' 밥이 제공되는 정도가 지금 내가 생각하는 기본 셋팅이다. 나아가 밥 대신에 면도 가능하다고 본다. 즉, 예를 들어 추어탕/찌개/잡채 등을 면과 함께 먹는 식이다. 방법이야 아주 많겠지만 일단 첨에는 현지의 음식 문화와 퓨전을 해야한다는 원칙이 중요하다. 우리가 지금 먹는 방식 그대로 들이대면 안된다는 거다. 외국 나가서 한국식당 가면, 대부분 현지인을 위한 한국식당이 아니라 한국인(주로 관광객)을 위한 식당이다.

얼마전 프라하에서 한국식당에 갔다. 모든게 한국과 같다. 심지어 기본반찬이 많이 나오고 남은 반찬을 재활용하는 것까지 똑같다. 그 식당에서 일하는 체코사람이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친구들에게 "한국식당에서는 남은 반찬을 다른 손님에게 제공한다"고 말할텐데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이 한국식당에 가보고 싶을까....?

외국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현지인이 요리를 하는 한국식당.... 내가 보고 싶은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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