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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생각해보는 영어공영어론

2011/10/09 19:50

90년대 후반에 영어공영어논쟁이 있었다. 복거일씨가 문제를 제기해서 발생했는데 찬성진영의 요지는 대략, 영어 잘해야 경제활동이 편해지고, 세계와 의사소통이 편해지고, 영어로 된 지식.정보를 좀더 쉽게 습득할 수 있다...뭐 대충 이런 것이었다.

 

영어로 된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영어를 첨부터 모국어로 습득시키자는 주장인데, 영어로 된 텍스트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오리지날 텍스트가 영어인 것만 따지자면 조금 계산이 달라진다. 즉, 원 텍스트가 프랑스어이고 그걸 영어로 번역한 텍스트가 있다면 그건 프랑스어로 쓰여진 텍스트를 영어사용자가 이해한 것이다. 영어로 쓰여진 그 텍스트를 이해한다는 것과 원래의 프랑스어 텍스트를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다시 말해, 영어로 쓰여진 그 수많은 텍스트는 영어사용자가 이해한 세상이지 세상에 대한 그 자체의 지식은 아니다. 물량공세에 현혹되어서는 안되는 법. 난 오히려, 영어로 된 텍스트를 잘 이해한다는 측면에서는 우리나라 사람이 영어사용자보다 더 유리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약간의 역설이지만, 내 똥냄새를 맡아본 사람이 남의 똥 냄새도 더 잘 분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반대로 남의 똥 냄새를 맡아봐야 내 똥 냄새를 분별할 수 있게 된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오늘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뭐 이런 세세한 내용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난 영어공영어론에 찬성하지도 않지만 발악발악 반대하지도 않는다. 뭐 우리가 한글을 지키기 위한 역사적 사명을 갖고 태어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당시 복거일씨가 좀더 근복적인 문제제기를 했기를 바랬다. 지금 대충 찬성론자의 말을 훑어보면 문제의식이 얼마나 얕은지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이다. 그럼 내가 바랬던 그 '근본적'인 문제제기란 무엇인가? 영어공영어론이 우리말의 약점을 공론화했다면 민족주의니 뭐니에 휩쓸려버리기보다는 좀더 우리말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뜻이다.

 

1945년 소위 해방이후 우리말에 대한 전략부재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 현대 산업사회에 걸맞는 존칭어법의 개발을 하지 못한 것이다. 아다시피 존칭은 우리말의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부분이 비산업사회에서 발생한 것이고 이는 현재의 산업사회에서 너무나 큰 불편함을 초래하고 있다. 이 부분을 국가와 국어학계가 개입해서 좀더 간편한 존칭어법을 개발하고 보급했어야 하며, 지금이라도 그렇게 해야한다. 극단적으로 반말을 표준으로 삼는 한이 있더라도 존칭때문에 우리 내부의 의사소통이 걸리적거려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생면부지의 상대방을 부르는 2인칭대명사의 부재도 문제다. 심지어 남영신씨는 영어의 '유'를 도입하는 한이 있더라도 남녀노소가 같이 쓸 수 있는 2인칭대명사의 개발을 요구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참고로 남영신씨가 쓴 국어사전 정말 강추다. 왜? 그 사전에서 '껍데기'라는 표제어를 보면 답이 나온다. 아마 오르가즘을 느낄 것이다.

 

철자법을 보자. 우리나라 어느 누구도 'ㅔ'발음과 'ㅐ'발음을 귀나 입으로 구별하는 사람이 없다.(글쎄..몇명은 아직 가능할까?ㅋㅋ) 훈민정음 창제 초기에는 당연히 양자의 발음이 구별되었다.(구별되니 구별해서 썼겠지~) 그러나 지금은? 다른 예를 들어보자. '부부'의 경우, 앞의 ㅂ과 뒤의 ㅂ이 발음이 다르다. 귀는 구별못하지만 입은 구별해서 발음한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달리 발음한다는 뜻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달리 발음된다는 뜻이다. 뒤의 ㅂ은 순경음ㅂ이라고도 한다. 유성음과 유성음 사이에서 무성음ㅂ이 유성음화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발음이 구별되지만 우리는 굳이 구별해서 쓰지 않는다. 그런데 'ㅔ'와 'ㅐ'는? 귀도 입도 구별못하는데 굳이 구별해서 써야할까?

 

이런 등등의 문제에 대해 해방이후 우리사회는 아무런 해법을 고민하지 않은 채 지금껏 흘러온 것이다. 이것에 대해 영어공영어 논쟁이 아주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영어공영어 진영에서 좀더 정확한 관점에서 문제제기를 했다면 말이다. 봐라. 우리말 존칭때문에 좃나 피곤하다. 영어쓰면 지위 고하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 우리말 씨바 호칭때문에 좃나 피곤하다. 영어를 쓰면 아무나 상대방을 이름이나 '유'라고 부를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 뭐 대충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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