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 2022/12/18 16:39

2022/12/18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72쪽.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자유를 미리 포기하거나, 아니면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그것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거나. 사람을 진짜 미치게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면, 그가 겪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는 것, 그를 옥죈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은 그의 상상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 그런 문제로 괴로워하면 지는 것이고 그의 상상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 그런 문제로 괴로워하면 지는 것이고 입 다물거나 아는 사실을 알지 않기로 선택해야만 이기는 것이라는 소리를 든는 것이다. 이 난감한 궁지에서 어떤 사람은 실패와 위험을 선택함으로써 반항자가 되지만 어떤 사람은 순응을 선택함으로써 죄수가 된다.

73쪽. 내가 당한 부당한 일을 남들이 인식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의 분한 기분을 나는 안다. 피해자가 그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에게는 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강박적으로 늘어놓는 이야기꾼이 되기 쉽다는 것도 안다. 누군가 그의 말을 듣고 믿음으로써 저주를 풀어줄 때까지 그는 그 이야기를 계속 말한다. 나도 가끔은 그렇듯 직접 체험한 일을 말하는 이야기꾼이었지만, 다른 여성들이 겪는 폭력에 대해서 내가 느낀 감정도 나의 체험이었다.

78쪽. 그래서 나는 슬쩍 빠져나가거나 사라지거나 도망치는 법, 긴장된 상황을 모면하는 법, 원치 않는 포옹과 키스와 손길을 피하는 법, 버스에서 옆자리 남자의 다리가 내 좌석으로 넘어오는 동안 내가 차지한 공간을 점점 더 줄이는 법, 서서히 손 떼거나 갑자기 증발하는 법을 익혔다.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기에, 존재하지 않는 법을 익혔다. 일단 그 전략이 몸에 배니, 정작 내가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버릇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십수년을 회피하며 살아온 뒤에 어떻게 갑자기 누군가에게 마음과 두 팔을 활짝 열고 다가갈 수 있겠는가? 오래 위협을 겪으며 살아온 탓에 이제 회피하기를 멈추고 상대를 진득ㅎ게 믿고 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달아나는 것도 어려웠다. 가끔은 이러다가 내가 때 이르게 관에 드러누운 사람처럼 혼자 집에만 틀어박혀 있게 되는 것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82쪽. 아무도 나를 믿지 않을 때는 나도 나를 믿기가 어렵다. 그래도 끝내 자신을 믿는다면, 그것은 다른 모두와 대립하겠다는 뜻이다. 둘 중 어느 쪽을 택하든 나는 미칠 것 같을 테고,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86쪽. 하지만 강간은 겪지 않았다. 그러나 내 친구 중에서는 많은 수가 강간을 겪었고, 직접 겪었든 아니든 모두가 그 위협을 피하는 일에 젊음을 허비했으며, 지금도 세상 대부분의 장소에서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러고 있다. 설령 당신이 붙잡히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당신을 붙잡는다.

 

101쪽. 나는 내 몸이 실패작이라고 확신했다. 키 크고, 마르고, 흰 내 몸은 우리 문화가 여성의 몸을 평가하는 전반적인 잣대에 따르면 최선으로 여겨지는 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내 몸을 잘못된 점, 실패한 점, 확인된 수치스러움, 잠재된 수치스러움의 집합으로 여겼다. 세상은 여성의 몸에게 무릇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규칙들을 적용한다. 모든 여자는 자신이 그 이상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있는지 늘 잴 수 있다. 그 거리가 설령 아주 멀진 않더라도 말이다. 마약 형태 측면에서의 미진함을 해결하더라도, 인체의 기능과 체액이라는 생물학적 현실은 늘 이상적 여성성에 배치되는 것이거니와 온갖 분비물과 농담과 비웃음이 우리에게 늘 그 점을 상기시킨다. 여자는 늘 잘못된 상태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면 여자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그런 현실을 만드는 조건들을 거부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139쪽. 타인이 되어보라는 요구를 그렇게 자주 받으면, 자아 감각이 훼손될 수 있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시간만큼은 반드시 자신으로 존재해야 한다. 나오 비슷한 사람, 나와 같은 문제를 겪는 사람, 나와 같은 꿈을 꾸고 나와 같은 싸움을 싸우는 사람, 나를 알아보는 사람과 함께해야만 한다. 또 가끔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보아야 한다. 타인이 되어보는 시간이 너무 적은 사람에게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며 상상력이 발달하지 못하는데, 자아를 바꿔보고 자아에서 벗어나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이입은 상상력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법이다. 상상할 줄 모르게 된다는 것은 힘을 가진 사람이 겪기 쉬운 병 중 하나다. 대부분의 남자는 거의 전적으로 남성이 주인공인 이야기만을 저바는 유년기 초부터 그런 증상을 발전시킨다. 

이중의식은 백인 문화에서  흑인이 겪는 경험을 가리킬 때 곧잘 쓰이는 용어다. 이 표헌은 W.E.B. 두보이스가 19세기 말에 쓴 글을 통해서 유명해졌다.(그런데 두보이스는 대부분의 남자 작가들이 그보다 더 나중까지도, 이를테면 제임스 볼드윈까지도 그랬듯이 인간을 남성으로, 심지어 한 명의 남자로 지칭했다). "미국사회에서 흑인은 일곱번째 아들이다. 베일을 쓰고 태어난 자, 투시력을 타고 태어난 자다. 이 세상은 그에게 진정한 자의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른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그것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도록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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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8 16:39 2022/12/1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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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2/16 20:08

2022/12/16 미처 하지 못한 말

5쪽. 언젠가가 아니라 늘 쓸 수 있어야 하는 말, 한마디로 존중을 표현해 줄 말을 인권의 문장들에서 찾아보았다. 존중의 언어를 발견할 때 더이상 미처 하지 못한 말은 없을 테다.

다른 하나의 의미는 뉘우침이다. ‘미처 하지 못한 말’은 ‘미처 듣지 못한 말’이기도 하다. 왜 그토록 말해 왔는데, 때론 절규해 왔는데 듣지 못했고 듣지 않았는지 돌아보려 한다. 이 돌아봄의 동행이 이제야 마주하는 인권의 문장들이다.

6쪽. 애도는 그것에 대해 단지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골방에서 나와 서로의 고통을 연결하려는 것이 애도다. 서로 딴 세상에 사는 것 같던 사람들이 애도를 통해 우리 삶을 짓누르는 폭력에 대항할 힘을 찾는 것이 애도다.

22쪽. 용역폭력은 현 정권 들어 더 자주 더 심하게 등장했다.... 일부 세력만을 위해 봉사하는 공권력은 사적 폭력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리라.... 한 신문 사설에서는 그런 폭력이 기승을 부리는 근원적 토대는 현 정권이 “국가를 사적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표현을 썼다.

29쪽. 국가들은 군사 및 보안 활동에서 외주 계약이 저대 금지돼야만 하는 유형과 외주 계약 가능한 유형에 적합한 한계선을 그어야만 한다. 일단 외주 계약하는 기능들이 한정되면, 그런 활동을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입법과 장치 뿐 아니라 국내적 규제가 수립돼야만 한다.

41쪽. 겉보기에는 똑같은 밥 한 그릇일지라도 그것을 시혜로서 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로서 존중받는다는 데 사회권의 의미가 있다..... 문제는 어떤 것을 존엄한 삶에 필요한 목록으로 여기는가 하는 것이다. 인권으로서 사회권에 무엇을 어느 수순으로 넣을 것인지는 인권 분야의 오랜 고민이다. 최소 기준을 주장하는 의견과 도달 가능한 최상의 수준을 주장하는 의견 사이에 지나친 최소화와 지나친 웅대함에 대한 염려가 있다.

44쪽. 사회권에 대한 밴스 개념

49쪽. 민주주의에 반하다. 저자 하승우. “나는 당신과 다르다가 아니라 나도 언젠가는 당신의 처지가 될지 모른다는 공통성. 그렇기에 함께 손을 잡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말한다. 결국, 이 우울한 얘기가 던져주는 깨달음은 ‘너도 당할 거야’라는 협박이 아니라 ‘고통에 손 내밀라.’라는 간절함이다.

59쪽. 환경은 인간을 포함하여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를 아우를 때 환경일 수 있다.

72쪽. ‘첼로의 성자’라 불리는 그는 훌륭한 예술인일 뿐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불의에 저항하는 것은 인류 양심의 문제”라 말하는 인간애의 소유자였다. 그는 조국의 독재정권이 들어서자 저항의 표시로 10년간이나 연주를 하지 않았고, 독재 정권을 돕는 어떤 나라에서도 연주하기를 거절했다.

73쪽. “우리는 매 순간순간마다 우주의 새롭고 진귀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이 순간은 전에도 없었고 다시 오지도 않을 시간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뭘 가르치나?.....너의 존재가 무엇인 줄 아니? 너의 존재는 놀라운 거야. 너는 유일한 존재야, 수백만 년이 흐르는 동안 너와 똑같은 아이는 없었단다. 그렇다. 너는 경이로움이다. 그러니 네가 자라서 다른 사람, 너처럼 경이로움인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겠니? 너도 우리 모두도 이 세상이 아이들에게 값진 것이 될 수 있도록 힘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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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6 20:08 2022/12/1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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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2/11 16:14

2022/12/11 겨울방학

290쪽. 1882년, 빈세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화가의 임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 고흐는 그것을 '의무'라고 했다. 나는 그런 의무가 무서웠다. 온 힘을 다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처절한 상황에서도 기어코 놓지 않던 고흐의 희망을 훔쳐서라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잘 안다. 나와 같은 인간은 그것을 손에 쥔다 하더라도 금세 잃고 말리란 걸. 희망은 손에 쥐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 뭉개지고 절망하며 형성된 감각의 심지를 한데 뭉쳐 몸속 깊이 심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297쪽.세상에 소설가가 왜 필요할까?

우리는 어제 겪은 일이 무엇이었는지 오늘에야 어렴풋이 알아차리며 살아간다. 어떤 일들은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겨우 제대로 알게 되기도 한다. 소설가가 세상에 왜 필요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고 싶을 때마다 최진영이라는 이름이 내 마음 속에 떠오른다. 내가 뒤에 두고 걸어온 미안함과 고마움과 부끄러움을 그의 소설이 주섬주섬 챙겨와 주기 때문이다.

'겨울방학'을 읽으며 거듭 어른이 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너무나 입체적인 어린이들이 이 책에 있어서다. 최진영이 그려 낸 어린이들처럼 나도 일면 나약하고 치사한 유년을 지나왔다. 나약해서 치사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랄수록 심해진 나약함도 있는데 그런 점에서는 손쓸 수 없이 치사해진 채로 사는 최진영의 소설 속 어른들과 닮았다. 치사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해지자고 나는 다짐한다.

이제 내겐 방학이 주어지지 않는데 그렇다면 '겨울방학'의 고모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가 아홉 살 조카에게 자신의 집을 내어 주는 방식을 보며 어떤 과시도 없이 내 삶을 소개하는 법을 배운다. 초라하고도 찬란한 고모처럼 말할 수 있다면, 네가 내게 배운 것이 가난만은 아니라면 좋겠다고 소망하는 고모의 얼굴을 닮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또다시 겨울방학의 계절이 다가온다. 어리고 나이 든 겨울방학이다.  

299쪽. 의자 모양의 희망

자신이 죄를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한 소설가가 세상의 모든 기준치를 의심하며 혼자 깃발처럼 서있다. 방향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생을 스쳐가는 수많은 인물들과 그들 마음 속의 가장 오목한 부분을 들여다볼 뿐이다.

그래서 그의 문장들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가 없다. 부당한 돈으로 생계를 유지ㅏ길 거부하는 장난감 회사 직원과 가난하지만 조카 앞에서 품위를 지키려는 고모, 미국 대륙만한 돌덩이가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절멸 직전의 순간에도 출근을 하는 감정 노동자와ㅏ 카드 값을 걱정하는 프리랜서 작가의 오목한 마음에서 건져 올린 문장들. 그러니까 히사의 부당한 돈벌이에 동의할 수 없다거나 따르지 않겠다고 말하는 대신, "그런 돈으로 나를 살아가게 히자 말"('돌담')라고 조용히 절규하는, 혹은 겨울방학 동안 헌신적으로 돌본 조카에게서 집에서 신발 냄새가 난다는 말으말을 듣고도 "네가 내게 배운 것이 가난 만은 아니면 좋을 텐데"(겨울방학)라고 줄얼거리는 그 화법은 최진영의 인물만이 구사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그의 소설 바깥에서는 이런 문장을 읽을 수 없으없는 것이다. 인물의 심장을 통과한 문장이므로 솔직하고 솔직하기 때문에 때로는 독자를 아프게 하지만, 결국엔 "우주가 생기고 없어지고 다시 생기길 반복해도 우린 영영 같이 있을 거"(어느 날)라는 독백으로 나아가는,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문장들. 

'당신 곁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이라는 놀라운 첫 장편소설로 처연한 비관의 세계를 열어 보였고 '해가 지는 곳으로'를 통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지옥이 된 세계에서 절망적이면서도 절대적인 사랑을 찾아갔던 최진영은, 그의 두번째 소설집 '겨울방학'에서는 자신과 독자를 위해 의자 하나를 만들어서 보여 주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등받이와 팔걸이가 부드러워 몸을 알맞게 감싸는"(의자) 의자, 누군가에는 희망이 그런 의자 모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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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1 16:14 2022/12/1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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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2/10 11:00

2022/12/10 튜브,내가되는꿈

튜브 145쪽. 뭐든지 한번에 한가지씩만 하는 겁니다. 밥 먹을 땐 먹기만, 걸을 땐 걷기만, 일할 땐 일만. 그렇게 매 순간에 충실하게 되면 쓸데없는 감정 소모도 줄일 수 있게 됩니다. 

그 말은 성곤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등을 쭉 펴고 어깨를 여는, 목적 없는 단순함이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비결이었다는 걸 김성곤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하지만 그것만으론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박실영이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생각의 스위치는 끄고 세상을 그대로 바라보세요. 우린  항상 무언가를 판단하느라 에너지도 감정도 너무 많이 쓰고 있잖습니까. 그러다보면 자꾸만 소모적인 생각이 날아들고 세상을 그대로 바라보거나 이해하지 못하게 돼요. 생각이란 건 자신만의 선글라스 같은 거니까요. 그러니까 생각의 스위치부터 꺼야 하죠. 그다음은 쉽습니다. 낙엽은 낙엽으로 보고 전봇대는 전봇대로 보는 겁니다. 빨간 건 빨갛게 노란 건 노랗게 받아들이면 되죠.  

154쪽. 감각 자체가 인간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걸, 인간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걸 김성곤은 아영이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소중한 깨달음을 잊었고 대부분의 것들을 지루하고 피로한 일상을만 받아들였던 것이다. 

155쪽. 어느 새 성곤의 감각은 그저 생명 유지를 위한 퇴화기관에 지나지 않게 됐다. 몸이 감지하는 것들은 투박한 이유로밖에 쓰이지 않았다. 빨간불 앞에서 멍해졌을 때 빵소리가 나면 출발하고, 위스키 잔이 미지근해지면 얼음을 떨어뜨려 넣고, 맘에 들지 않는 화면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는 용도 따위로만 말이다. 

삶이 다채로운 맛과 향으로 구성된 서랍장이라면 성곤은 계속해서 한가지 서랍만 열고 있었다. 분노, 짜증, 울분, 격분, 우울, 좌절이 가득 담긴 서랍. 어느새 그는 다른 서랍을 여는 방법을 망각했다. 참다운 기쁨. 단어 안에 담아놓기 힘들 정도로 충만한 감정이 담긴 서랍은 꾹 닫혀 있었고 이제는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김성곤 안드레아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흐드러진 봄꽃이 길을 따라 피어 있었다. 언제 꽃이 폈는지도 몰랐는데 계절은 이미 봄의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바라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느끼지 못한다.

성곤은 시인처럼 중얼거렸다.

봐도 보지 않고 맛봐도 맛보지 않으며 들어도 듣지 않는다.

막상 말로, 소리로 된 음성으로 그렇게 사실을 고백하자 뜨거운 슬픔이 밀려들었다. 김성곤은 자조 섞인 웃음으로 그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몸이가진 그토록 많은 감각기관을 그는 쓸모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 것들은 그에게 입력되지 않았다. 만개한 꽃의 아름다움, 맛있는 음식, 누군가의 절망이나 슬픔을 느껴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세상 무든 게 시시했다. 다 알고 있었고 지겨울 만큼 충분히 겪었고 새로울 건 없었으며 삶은 남들이 만들어놓은 무대였고 그는 그 위의 먼지일 뿐이었으니까.

퇴화된 감각들은 토라진 아이처럼 안으로만 촉수를 뻗었다. 자연히 성곤은 자신의 슬픔과 절망에만 과도하게 집중했고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특히 가족을 탓했다.

애통하고 애달팠다. 한심하고 안타까웠다. 바보 같은 자신과, 그 바보가 아프게 만든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자 가슴 한편이 시리도록 아렸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마음속 어딘가 숨겨뒀던 서랍을 찾아 열어야만 잃어버린 영혼도 되찾을 수 있다는 것, 그래야만 그의 표정과 말투, 남에게 건네는 칭찬에 진심이 실릴 거라는 것을. 그러므로 김성곤은 자신이 어단가에 어딘가에 하찮게 유기한 감각들을 다시 불러내 사용법을 익혀야 했다. 걸음마를 처음 떼는 아기처럼, 순수하고 새롭게.

208쪽. -안드레아, 네 마음 안엔 아직도 피어나길 기다리는 작은 싹들이 있는 것 같더라. 나도 언젠간 그런 걸 꽤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은 어디로 다 사라진 건지 모르겠어. 내가 바라는 건 단순해. 가끔은, 아주 가끔씩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인생이 끌려오면 좋겠어. 내가 운전대를 틀면 인생도 조금은 그쪽으로 와주길 바라. 내가 핸들을 쥐고 싶어. 제멋대로 방향을 바꾸는 인생에 내가 끌려가는 것 말고. 너무 큰 목표지? 네 프로젝트에서 제시하는 건 조금 더 작고 사소하고 이루기 쉬운 것들인데......

271쪽. 언젠가 내게도 모든 게 침잠되고 고통이 점점 커져간다고 느껴지던 시간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를 견디게 한 건 가까운 사람들이 주는 위안과, 위로의 말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괜찮다거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거나, 이대로도 좋다는 말은 눈물을 그치게 했으나, 냉정히 말해 그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곧 그런 말들은 공허하게 휘발됐다. 나를 다시 일어서 걷게 한 건 언제나 다시 해보라거나 응원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혹은 내 내면의 담담한 어조였다.

응원을 받으면 아무것도 아닌 시도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바뀌었고, 다시 해낼 수 있을 것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괴로운 시간을 겪을 때 나는 지금의 상황을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미래를 떠올렸다. 아무리 길고 힘겨운 시간도 언젠간 '그땐 참 힘들었지'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될 거라고, 그 문장 끝엔 짧은  웃음이 걸쳐져 있을 거라고 기를 써서 생각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힘든 오늘을 보내고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고된 현재도 분명 그렇게 될 것다, 분명.

물론 원하는 것을 이루고 난 뒤에도 다시 가라앉을 수 있다. 영원토록 따뜻한 바닷물 위에 아무런 노력도 없이 둥둥 떠 있는 속 편한 삶이란 없으며, 혹여 그 비슷한 것이 어딘가 존재한다면 장담컨대 그 삶의 이름은 행복이 아니라 권태와 무기력일 것이다. 우린 실내 수영장이 아니라 풍랑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또 비바람을 만나야 하고 그러면 또 헤쳐 나와야 한다. 자신만의 기술과 혜안을 가지고.

이 이야기를 먼저 읽은 친한 지인이 말했다. 김성곤이 가진 초능력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뭔가를 시도하는 지점에 있다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초능력이 숨어 있다고 믿는 편이다. 어차피 우린 자신마의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면, 당신의 애씀은 언제나 아름답고 가치가 있다.

나는 안주하지 않고 힘을 다하는 영혼들에게 멀리서나마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작가의 말을 빌려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을 깊이 응원한다, 라고.

<내가 되는 꿈> 20쪽.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기분이 바닥을 칠 때마다 나를 가격하는 생각.

왜 이런 사람이 되었나.

21쪽. 언젠가는 네가 못하는 거를 네 엄마가 할 거고 네 엄마가 못하는 거를 네가 할 거고. 그런 거다. 사는 게. 지금이 영영일 것 같지만 나중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고.

30쪽. 우리는 꽃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다. 같이 사진을 찍는 사이도 아니다. 불행한 사람들도 아니다. 하지만 행복을 연기해 버린다면 진짜 불행해지도 몰라. 

90쪽. 모욕감은 남한테서만 받는 게 아니라는 것, 내가 나를 모욕하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92쪽. 마음을 글자로 전하는 건 정말 멍청한 짓이라고.

하지만 나는 한수의 편지를 사랑한다. 한수의 편지를 읽으면 나란 존재가 (잠깐이나마) 좋아진다. 한수의 편지는 주사 같다. 읽을 때는 아픈데 읽고 나면 어딘가 나은 것만 같다. 지금보다는 좋아질 수 있을 것 같다. 

98쪽. 내게 편지를 쓰면서 나를 괴롭게 하는 것에 관해서만 가득 썼다. 이것이 지금 내 상태를 말해준다. 해결될 일이라면 걱정하지 말고 해결되지 않을 일이라면 걱정하지 말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지금과 같은 나를 상상한 적도 없다. 과거가 아깝다. 살아갈 날보다 내가 분명히 살아온 지난날이 너무 아까워. 겨우 이렇게 되려고 그렇게. 

124쪽. 나는 왜 여기에 있지.

외갓집으로 이사 오고 중학생이 된 다음부터 종종 하는 질문. 어떤 그림에서 나란 사람을 오려 낸 다음 바람이 부는 대로 날려 가도록 내벼러 둔 것같았다. 난데없는 곳에 뚝 떨어진 나는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며 여기가 어디지, 난 왜 여기 있지, 원래 난 어디에 있었더라, 당황하는 것이다. 나는 늘 어딘가로 가는 도중 같았고, 어디에도 나만의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150쪽.나는 이 사람에게만큼은 비겁하지 않았어.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나를 나쁜 채로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썼어. 나의 좋은 순간을 가장 많이 담아 둔 이 사람까지 지운다면 내게는 무엇이 남는가. 내 인생에서 20년 정도는 내 뜻대로살 수 없었던 시기였다쳐도 나머지 세월은 그렇지 않았다. 

153쪽.나는 아직 이별이 서툴고 이런 식이 아니라면 어떤 식이어야 하는지, 모두가 납득하는 이별 방식이 과연 존재하는지 알 수 없지만 할머니는 그렇게 떠났다. 맑게 떠났다. 할머니가 남긴 2백만 원 이야기를 듣고도 짜증을 내는 내게 엄마는 고마워하는 마음이 먼저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뒤에도 그 마음은 내게 없었다. 뒤늦게 엄마의 말이 크게 다가왔다.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165쪽. 대체 무슨 소용이지? 물은 물이 되고 물은 다시 물이 된다는 게?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나밖에 될 수 없다는 게? 물고기는 물고기로만 살고 새는 새로만 사는 자연의 이치를 생각하자 너무 갑갑했다. 어째서 그래야만 하지? 신은 신으로만 살까? 신은 우주인가? 신은 우주인가? 우주는 우주로만 존재할까? 우주조차 우주로만 존재한다면 우주도 갑갑하다. 너무 따분하다. 세상은 칙칙한 해변과 먹먹한 하늘과 거대한 바다와 곧 바다가 될 빗줄기만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살면서 봤던 찬란하고 눈부신 것들은 모두 환상 같았다.

167쪽. 나도 정말 몰랐다. 이별이란 이 정도로 어렵고 복잡한 일이란 걸. 이별은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 아닌가? 엄마와 아빠는 아직도 이별 중일까? 벌써 이별했을까? 남과 남이 만나서 사랑하는 사이로 지내다가 다시 남과 남이 되는 거다. 그러니까 이별은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는 거겠지만......완전히 처음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젖은 채로 바람을 맞으니 추웠다. 그만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계속 바라보고도 싶었다. 물이 물이 되는 정직하고도 허무한 광경을. 분노의 춤을 추는 비내리는 바다를. 정국이와 만나는 동안 행복해하던 이모를 떠올렸다. 할머니의 못된 말에도 꿈쩍 않던 이모를 이제는 볼 수 없는 걸까. 하지만 행복해본 이모는 지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170쪽.여전히 비가 내릴까? 집은 변함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방에서 똑같은 이불을 덮고 누울 것이다. 하지만 이모는 어제와는 조금 다른 사람으로 잠들겠지. 비 내리는 바다를 봤고 사실을 확인한 나도 조금은 다른 사람으로 잠들 것이다. 비는 비고 바다는 바다다. 섞인다고 하나가 되는 건 아니지. 그러니까 이별할 수도 있다. 우리는 또 울겠지만 절대 같은 이유로 울지는 않을 것이다. 

180쪽. 엄마는 형편없어.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엄마의 글자가 이어지는 걸 바라봤다.

아빠도 형편없지. 형편없는 우리를 위해서는 뭔가를 할 자신이 없어. 그래서 핑계가 필요해. 지금보다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핑계. 네가 핑계가 되어 주면 좋겠어.

그렇게 쓰고, 엄마는 자기가 쓴 문장을 지우개로 천천히 지웠다. 엄마가 쓴 문장보다 그것을 굳이 지우는 행위가 엄마의 마음을 더 잘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이모는 엄마를 '추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을 나는, 상대를 차갑게 대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192쪽. 젊은 시절의 엄마 아빠처럼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상대를 증오하는 방법으로 정신없이 화를 내며 살고 있는 나를 찾아왔다. 어린 시절의 내가.

이거 야광이다.

말해 주려고.

204쪽. 창밖으로 낯선 풍경이 지나갔다. 나 말고는 전부 화목한 집에서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남들 부모님은 싸우지도 않고, 텔레비전에서 숱하게 본 다정한 가족처럼, 아빠 엄마 아들 딸로 구성된 가족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 거라고.

210쪽. 미지는 천천히 길을 건너 내게 다가왔다. 우리는 다시 차고지로 돌아가 버스를 탔다. 이제 정말 오지 않을 거라고 미지는 말했다. 같은 다짐을 계속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겠지. 남들은 절대 알지 못할 하루와 마음을 끌어안으며. 중요한 말일수록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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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0 11:00 2022/12/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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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2/06 10:29

2022/12/06 끝나지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끝나지 않는 노래>

263쪽. 1997년말, 최악의 외환위기를 겪던 한국은 결국 IMF관리 밑에 들어갔다. 위태위태하던 명호의 사업도 단번에 무너져버렸다. 기업의 연쇄 부도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일부 부유층은 고금리혜택으로 더 많은 부를 축적했다. 살기 어려워지자 전장 후와 비슷한 이유로, 사회는다시금 강한 어머니와 현모양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욕구와 감정은 억누르고 자식과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쏟아졌다. 전통적인 어머니상과 는 먼, 수다스럽고 욕심 많고 억척스럽고 무식한 엄마들에겐 '아줌마'라는 이름을 덧씌우고 무시하며 욕했다. 사회가 원하는 건 아줌마가 아닌, 오직 헌신과 희생밖에 모르는 엄마였다. '보리밥이 더 맛있다'고 말하던 엄마는 '자장면은 싫다'고 말하는 엄마로 바뀌었다. 아름다운 엄마랑, 나눠 먹는 방법을 가르치는 엄마가 아니라 오직 내 자식에게만 모든 젖을 먹이는 엄마였다. 

 

273쪽. 한 반에 두어 명은 꼭 따돌림을 당했다. 똑같거나 비슷한 것에 위안을 얻는 아이들은 상대의 다름을 그냥 넘기지 못했다. 쟤 너무 뚱뚱해. 쟤는 목소리가 이상해. 쟤는 말을 왜 저따위로 해? 존나 재수없어. 생긴 게 왜 저래? 짜증나. 존나 빈대야. 잘난 체 쩔어. 아, 역겨워. 쟤 나한테는 9시도 안 돼서 잤다고 해놓고 성적 열라 잘 나왔어. 미친년. 선생님한테 잘 보이려고 존나 내숭이잖아. 착한 척하는 것 좀 봐. 아, 토 나와. 적당함을 지키지 못하거나 만만한 아이는 언제든 표적이 될 수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누군가를 흉보고, 다음 날이면 그중 한 명을 다시 따돌리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오해와 허물은 말 한마디로 쉽게 만들어졌다. 서너 명의 무리가 한 명을 따돌리기 시작하면, 다른 아이들도 암묵적으로 그 아이를 상대하기 꺼려했다. 따돌림당하는 한 명을 이해하기 보다 무리에 흡수되는 게 몸도 맘도 편했으니까. 

 

324쪽. 엄마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언제나

'행복하다'는 말이어다.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게 순서라고 생각한다. 

 

작년 가을에 조카가 태어났다. 오래된 친구도 아이를 낳았다. 너무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볼 때마다 고개를 쳐드는 미안함과 걱정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미래를 긍정할 힘이 내게도 있을까. 동하의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두러웠다. 섣불리 상상할 수 없어다. 그렇다고 걱정과 불안만 늘어놓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내 감각의 끝은 끈질기게 그 세계만 가리켰다. 지금, 여기, 이 곳만을 똑바로 쳐다보고 싶었으나 자꾸 눈이 감겼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데, 고인 물에서나 풍기는 썩은 내가 났다. 그 냄새에 익숙해지긴 싫은데, 그것 아닌 냄새는 기억할 수 없었다. 글을 쓸 때면 내 손에서도 그 냄새가 났다. 나를 형성하는 감각이 죄다 이 모양인데,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내가 고단하면 남들도 다 그럴 것 같고, 내가 안온하면 남들 역시 그런줄 아는, 난 아직 그 세계에 머물러 있다. 세계의 틈이 조금 벌어질 때마다 당혹스러운 마음을 글자로 옮겼다. 틈은 점점 벌어질 테고, 이곳의 공기 역시 변해갈 것이다. 틈인 줄 알았던 그것이 결국 전체가 되는 순간, 나는 어떤 인간이 되어 있을까. 2011년 12월 최진영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144쪽. 사랑은 병이다. 이것은 문학적 수사나 낭만적 비유가 아니다. 사랑에 빠지면 몸고 정신에 이상이 생긴다. 없던 것이 생긴다. 혹은 잠복해있던 것이 드러난다. 침투하고 분열하고 증식한다. 증식하기 위해 무언가를 끊이멊이 잡아먹는다. 착각. 오해. 욕심. 집착. 기만. 상상. 기억. 기대. 실망. 허상. 환상. 잡아먹을 것은 많다. 타인은 나를 풍요롭게 하는 만큼 해친다. 해칠 수밖에 없다. 내가 아닌, 나와는 다른, 완벽히 다른 이물질이 몸과 정신에 들어와 나를 뒤흔들고 흩트린다. 끊임없이 충돌하고 격렬하게 반응한다. 조각나고 합쳐지고 작용하여 전혀 다른 것들이 새로 생긴다. 결국 내 안의 모든 조각과 요소가 재배치되는데, 그래서 이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내가 되고야 마는데, 그것을 두고 사람들은 '너를 만나기 전엔 몰랐던 내 모습'이라고 말한다. 당연하다. 모를 수밖에 없다. 내 있던 내가 아니라, 새로운 나니까.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육체와 정신은 살짝 미치면서 강해진다. 싸우려는 것이다. 내 안에 침두한 그것, 나를 해치려는 병균, 흔히들 사랑이라고, 당신이라고 부르는 그것과, 사랑에 빠져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증상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고열, 두통, 근육통에 시달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타인들, 이물질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랑할 수는 없다. 때로는 그것에 완벽하게 삼켜지길 바라는데, 결국 완전히 삼켜지지 못하고 팔이나 다리나 머리통만 씹힌 채 뱉어지고 만다. 불구가 되어, 다시 나를 삼켜줄 또 다른 괴물의 입 주변을 기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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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10:29 2022/12/0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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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2/04 07:57

2022/12/04 스트레스

할 일이 너무 많아지면

불안해지고 스트레스가 심해진다.

이럴 때 가족이 옆에 있는 것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좋은 건 혼자 가라앉지 않게 돕는다는 거고

나쁜 건 사소한 일에 화를 낸다는 거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은

동그란 구 안에 단단한 핵이 있고

그 핵을 둘러싼 젤리층 같은 게 있어야하는데

그 젤리층이 하나도 없을 때

그게 여유가 없는 마음상태이다.

약간의 충격만 가해져도

마음의 진피가 영향받고 상처받는다.

나의 능력은 예전같지 않은데

동료들이나 타인들은

예전의 나를 기준으로 바라보고 도움을 부탁해온다.

밤을 새워서라도 마감 안에 일을 끝내왔던 버릇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 채로

나는 그 일들을 꾸역꾸역 받는다.

그리고 지금처럼 젤리가 다 빠져나가버린

구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친구가 내게 상담을 받아보라 했다.

다시 상담을 받아볼까.

의지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나는 인정을 해야할까.

의지를 가져야하는데

그 의지를 가지려는 노력 조차 안하고 있는

스스로를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다.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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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4 07:57 2022/12/0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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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2/01 10:47

2022/12/01 새로운 시작

최진영의 소설을 발견해서 몽땅 다 읽는 중이고

이제 세 권 남았는데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에서 막혀있다.

왜 이렇게 안읽히는가

가 오늘의 질문이다. 

손원평의 소설과 함께

하루에 세 권도 읽었던 게 바로 엊그제인데

그러니까 밥도 안먹고 

줄은 못 치니 포스트잇을 빼꼭히 붙여가며 읽고

문장들을 컴퓨터에 옮기고

편집 중간중간에 불러오기나 랜더링으로 기다려야할 때

틈틈히 문장들을 들여다보던

그 흡입력이 

왜 이 책에는 없는가.

 

몇가지 가설

1. 내 집중력이 떨어졌다.

거의 매일매일 사건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사건 사고는 나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기에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과 감정을 써야 한다.

일들을 처리하느라 밤 10시 취침 다짐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어제는 큰 일 두 건을 처리하느라 또 머리를 쓰고

오늘 아침에는 믿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답을 기다리는 중.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할 일들이 수시로 터지고 있다.

아아아 정말 극한직업이다 싶다.

 

2.스토리 중심이 아니어서?

사건이 없다.

그러니까 죽어가는 남자가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설정인데

회상씬들조차도 모노로그다.

그러니까 모노로그 안의 모노로그.

창작자의 주관성,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에세이다큐도

동력은 의식이나 주관이겠지만

그에 걸맞는 영상이 확보가 되지 않으면 게으르게 느껴지고

완성도는 당연히 바닥이니

관객에게 제대로 다가가지 못한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의 구조와 통하는 것같기도.

책들을 다 읽고 빨리 정리하고 새로 일을 시작하고 싶은데 

이 소설에서 막혀있다.

그렇더라도 중간에서 포기할 수는 없다.

패턴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나의 상태 혹은 작품의 상태에 따라서

집중할 수 없거나 집중하기 힘든 조건은 자주 올 것이다.

그것을 고비로 생각하고 참고 넘지 않으면

아마도 좋은 기분, 평온한 상태에서만 책을 읽는 버릇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지금의 이 고비를 참고 참고 참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을 참지 못하면

세상에 참지 못할 일이 너무 많아.....

 

3. j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를 지키는 것이 남은 삶의 목표 중 하나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고립되어 있었으며

그를 지키자는 결의는 많은 사람이 했으나

정작 그에게 연락한 사람은 나 뿐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면서

몇일 전의 하은처럼 불편해서 술을 많이 마시고

불편해서 많이 떠들고 돌아왔었는데

만남이 이어졌다.

그게 2009년이니 올해로 13년째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만남은 이어져오고 있다.

j에 대해서 누군가는 맑은 물컵에 떨어지는 파란색 물감 한 방울같은 사람이라고도 했고

또 누군가는 고양이 같은 사람이니 거리가 있을 때엔 다정하다가도 너무 가까이 가면 할퀼지도 모른다했다.

j와 나에 대해서 오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왜 만나는지를 말해주면 그걸로 끝이다.

우리는 왜 만나는가

질문을 하다 보면 

그는 왜 나를 만나는가

또 질문을 하게 된다.

내가 그에게 가지는 만큼

그도 나에게

연민을 가지고 있는 건가

원치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 상태를 끝낼 생각은 없다.

누구에게 먼저일지 모르겠지만

상대방의 마지막을

타인을 통해서 전해듣고 싶지는 않으니까.

다만 가끔은

인의 장막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북적이는 것같은 

그의 일상을 보며

내가 그에게 필요할까

관계의 시작이 그렇다고 해서

지금도 그는 그런 상태일까

하는 의문이 생겨나곤 한다.

어쩌면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이 만남이 지속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애정과 예의가 반반 섞여있는.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이제는 세상에 없는 친구들에 대한 기억

누군가가 미우면

상대방도 나를 비슷한 강도로 미워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누군가가 그리우면

상대방도 나를 비슷한 강도로 그리워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누군가가 걱정스러우면

상대방도 나를 비슷한 강도로 걱정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 속에 기포처럼 떠오르는 어떤 감정들을

그냥 퐁퐁 터지게 두면 된다.

j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후회없는 끝을 위해

4. 새로운 시작

이제 끝난 활동에 대해서는 기대도 관심도 버리겠다.

새로운 활동을 준비하고 계획해야할 때다.

in이 없으면 out도 없는 거니

in을 위해 노력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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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1 10:47 2022/12/0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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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1/29 21:46

2022/11/29 응급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때 나는 편집을 하다가 11시가 다 되었기 때문에

잠은 오지 않았지만 침대에 누워서 페북을 보고 있었다.

페북 타임라인에 올라온 오마이뉴스 기사,

그러니까 이태원에서 딸을 잃은 아버지의 사연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폰이 울리고 '하은'이라는 이름이 떴다.

이번 주말에 하은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해야했고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걸로만 알았다..

응 하은아, 하고 전화를 받는데

남자목소리가 들렸다.

"저 119구급대원인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침대에서 스프링처럼 튀어올라왔다.

네? 하고 깜짝 놀라니

그렇게 놀라시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

그 전까지 읽었던 기사들에 비슷한 얘기가 있었다.

소식을 알리는 공무원들은 절대로 어떤 사실을 얘기하지 않고

빨리 와야한다고 말한다.

내게 전화를 한 구급대원도 빨리 응급실에 와달라고 했다.

강화에서 자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아무 것도 챙기지 않고 옷만 입은 채 응급실로 갔다.

비가 와서 낙상사고가 많다고 하고

이동식 침상은 줄을 서있었다.

응급실 입구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만 들어가야 한다고 하고

교대도 안된다고 했다.

남편은 장거리운전을 해야해서 내가 남았다.

어제밤 11시부터 오늘 아침 6시까지 긴 시간을 하은과 같이 있었다.

하은은 수술을 해야해서 처치실에 있었는데

처치실에는 각종 용품들이 가득 있었으므로

다양한 간호사들이 들락거렸다.

처음엔 그걸 몰라서 새로 누군가 오면

우리 하은이를 치료하러 오는 사람인가 하고 발딱 일어났지만

나중에는 그냥 덤덤히 앉아있었다.

하은 옆에 다른 남자가 한 사람 더 있었는데

아내로 보이는 여성한테

온갖 투정을 다 부렸다.

넘어져서 정신이 없는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인 건지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위해서 참았다.

가늘고 여린 하은의 손을 자주 잡아주고

흘러내리는 하은의 양말을 다시 올려주었다.

가슴이 뻐근해질정도로 사랑하는 하은

성형외과 인턴이 와서 1시간 가까이 수술을 했다.

그의 성의와 정성에 감복했다.

티끌하나 없던 하은의 얼굴에

상처가 남는다고 한다.

남편은 눈이나 더 중요한 곳 안 상한 걸 다행으로 알자고 했고

나는 자꾸 흘러내리던 하은의 양말을 생각했다.

이태원 소식은 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사진을 보았다.

하늘색 담요로 덮여진 누군가의 발이

신발없이 양말만 신겨진 발이 보였다.

내 아들 딸과 같은 또래의 청년이었을 

귀하고 뿌듯한 자식이었을 그 존재의

양말을 보고 하염없이 울었던 게 바로 며칠 전이었다.

너무 가는 손목

너무 가는 발목

그래서 바지도 빙빙 돌고

양말도 흘러내리는

가냘픈 내 딸의 몸을 만지고

양말을 다시 추켜올리는데 

며칠 전 본 그 양말이 자꾸 떠올랐다.

이만하길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며

기도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은이 같이 보자고 했던 영화

이만큼의 거리를 두고

늘 같이 있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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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9 21:46 2022/11/29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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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1/28 13:21

2022/11/28 작년 상영회소식

https://indieground.kr/indie/notice.do?mode=view&articleNo=730&title=%5B%EC%86%A1%EA%B0%80%EC%B9%98%EC%9D%98+%23%EC%BB%A4%EB%AE%A4%EB%8B%88%ED%8B%B0%EC%8B%9C%EB%84%A4%EB%A7%88+%EB%8C%80%EC%9E%A5%EC%A0%95%5D+%EC%84%9C%EC%9A%B8+%3C%EB%AC%BC%ED%91%B8%EB%A0%88+%EB%B6%81%EC%B9%B4%ED%8E%98%3E+%ED%8E%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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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8 13:21 2022/11/2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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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22/11/20 15:59

2022/11/20 해가 지는 곳으로, 내가 되는 꿈

36쪽. 가족을 잃고 피난민이 된 우리는 웃을 수 없는 자들.

농담과 웃음을 고향에 버리고 온 사람들.

어른들은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않았다. 그들에게 말이란 감정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 같았다. 말이 길어질수록 비난과 원망처럼 차디찬 감정이 찰랑찰랑 흘러 넘쳤다. 언성 높여 싸우거나 흉한 말을 내뱉는 것도 아닌데 대화의 끝은 자꾸 서늘해졌다. 살아남은 것도 죄고 살겠다고 도맟치는 것도 죄라는, 너나 나나 몹쓸 인간이라는 자조와 책망이 눈빛에도 말투에도 깃들어 있었다. 안다. 불행해서 그렇다는 걸. 죽음에 억눌려 있다는 걸. 그래서 난 더더욱 불행을 닮아 가고 싶지 않았다. 삶을 업신여기고 싶지 않았다. 죽음이나 삶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그것을 어떤 잘못이나 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는 엄마의 죽음도 나의 삶을 견뎌 낼 수 없다. 

55쪽. 불행이 바라는 건 내가 나를 홀대하는 거야.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고 망가트리는 거지. 난 절대 이 재앙을 닮아 가진 않을 거야.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을 거야.

58쪽. 오늘은 며칠이나 되었을까. 새해는 이미 시작되었을까. 더는 그런 것 아무 의미 없지. 우리는 겨울의 심장을 걷고 있다. 여기선 아무도 나이 들지 않고, 시간은 하루나 1년 단위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러다 갑자기 봄이 오고 여름이 되어 말간 호수에 비친 내 얼굴이 늙은 마녀처럼 보이더라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있다. 카드에 적혀 있는 러시아 글자를 보며 이젠 잊고 살아야 할 메리 크리스마스와 해피 뉴 이어를 떠올렸다. 지나라면 다를 것이다. 소중한 날을 소중하게 보낼 것이다. 

60쪽. 그들은 자기들 나라에서도 멀고 전쟁에서도 먼 곳에서 외로이 죽었다.(크리스토퍼 바타이유,이 화영 옮김. '다다를 수 없는 나라'(문학동네, 42쪽)

89쪽. 열심히 버는데도 늘 쪼들렸다. 중요한 일을 다음으로 미루거나 대충 처리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가족 여행, 가족사진, 생일파티, 칭찬과 위로, 오늘은 어땠어? 키가 이만큼이나 컸네, 안아주고 사랑한다 말하는 것, 오늘을 기억하고 내일을 기대하는 것,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잘 자라고 말해주는 것.

정신을 차려 보면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이러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아도 소용없었다. 아이들이 아니면 개수대의 그릇에게 화를 냈다. 세탁기 속 뒤엉켜 있는 빨래에게 화를 냈다. 소음이 심한 청소기를 돌리며 화를 냈다. 허공을 떠도는 먼지를 향해 화를 냈다. 화장품 살 시간을 따로 내지 못해 아이들 로션을 같이 발랐고 세탁소에 겨울 외투 맡길 시간이 없어 가을 점퍼를 연말까지 입고 다니다 몸살을 앓기도 했다...... 집은 점점 좁아졌고 아이들의 비밀은 늘어났고 단은 말이 줄었고 나는 비쩍 말라 건조해졌다. 분명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데, 최선이 답은 아니란 생각이 세금 고지서처럼 주기적으로 날아들었다. 삶이 마디마디 분절되어 흘렀다. 직장에서의 나와 아이들 앞에서 나와 단을 대할 때의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내가 징그러울 만큼 달랐다. 나라는 사람이 흐트러진 퍼즐 같았다. 애초의 내가 어땠는지 밑그림은 기억나지 않았고 퍼즐은 흩어진 채 여기저기 떠돌았다. 무언가 미세하게 어긋나고 있어서 먼 훗날 완벽하게 분리될 것만 같았다. 나와 내가, 나와 단이, 나와 아이들이.

92쪽. 가족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족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하지만 가족과 함께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금방 가난해졌다. 가난하면 아이들은 상처를 받았다. 친구도 사귀기 힘들어했다. 버젓한 브랜드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 다들 다니는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했다. 그 상처를 부모의 사랑만으로 치유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의 눈총과 무시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나는 몰랐다. 몰라서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수도 없었다. 책이나 교양 프로그램에서 종종 그런 방법을 알려 줬다. 그건 글자로만 배우는 요리와 비슷했다. 차라리 돈을 버는 게 쉬웠다. 돈으로 아이들의 조건을 평균까지 끌어올려 주는게. 그러려면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을 포기해야 했다. 

128쪽.그러니 내가 권지나 아니 누구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권지나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느냔 말이다. 우린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이다. 묵묵히 맞으면서도 나름 삐뚤어지지 않고 지낸 세월이 있으니까 하느님이 내게 그 정도 행운은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나요 하느님?

148쪽. 우린 이제 어떡하지. 여보, 우리 어디로 가지. 어디로 갈 수 있지.

물이 뚝뚝 떨어졌다. 단은 울고 있었다. 이 남자가 사랑했던 여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 사람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해 봤을까. 정말 사랑했을까. 아직도 사랑할까. 우리가 대체 사랑이란 걸 알긴 아는가. 피로나 자괴감, 분노나 질투가 사라진 궁금증이었다.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은 사랑이 어떤 건지 정말 아느냐고. 우리가 해림과 해림에게 느끼는 그런 사랑이 아닌, 완전한 타인에게 느끼는 사랑이란 감정을 당신은 경험을 해 보았느냐고.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올려 입었다. 단도 콧물을 훌쩍이며 바지를 입었다.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물었다. 단이 얼굴을 훔치며 나를 쳐다봤다. 5년 전쯤에 당신이 만나던 여자 말이야. 단의 얼굴이 굳었다. 한 번은 물어보려고 했어.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진지한 관계였는지, 그때 왜 나와 헤어지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 알면서 가만있었던 거냐고 단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단이 별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말해 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한테 어떻게 그런 얘길 해. 내가 아무리 개자식이어도......

난 아무렇지도 않아.

.....

알잖아.

몰라. 모르겠어. 어떻게 아무렇지가 않아?

사랑하지 않으니까.

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당신도 그렇잖아.

왜 그런 말을 해?

여보, 그딴 사랑 아니어도 우린 정말 많은 것으로 이어져 있어. 지금껏 힘든 일을 같이 겪었고 여기까지 함께 왔어. 그게 사랑이라면 사랑이지만, 아니어도 상관없잖아.

......

......

그래도 그렇게 말하지 마.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가 되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이해할 수 없어.

...... 궁금해.

그럼 그 때 물어봤어야지.

그땐 궁금하지 않았어.

어째서.

여유가 없었어.

지금은 여유가 있어?

나는 피식 웃었다.

그렇잖아. 우리한테 남아도는 건 시간뿐이잖아.

한국에서였다면 물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각자의 가정을 꾸릴 때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달았을지도.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 버렸다는 걸. 아니, 어쩌면 나조차 생각지 못한 어느 때 폭발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느라 이렇게 힘든데 당신은 양심도 없이 여자나 만나고 다닌 거냐고 무조건 화를 냈을지도. 그때 우리가 함께 해내야 했던 것들, 아이들 교육과 적금과 내 집 마련과 챙겨야할 경조사와 집안 행사들, 주변의 시선과 뒷말과 참견과 편견....... 이젠 그런 것이 없다. 오직 서로의 목숨만이 남아 있다. 그것에만 골몰하면 되는 것이다.하지 못한 말을 하고, 듣지 못한 말을 들어야 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나니 그 말에는 사실 아무 뜻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는 걸 확인하고 인정하자 오히려 단순하고 개운해졌다. 우린 서로에게 해민의 엄마이고 해민의 아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166쪽. 단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단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 버리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사랑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사랑한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면 내겐 당신의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어야 했다. 사랑한다는 말 없이도 충분하다고,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렇게만 말했어도 단은 알아들었을 것이다. 내가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을. 언어로 나타낼 수 없는 진심을. 함께 보낸 무수한 어제가 직조해 낸 우리만의 문양을 확인하고 간직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에 남은 한 마디가 위험으로 굴러 떨어지는 단을 붙잡아 줄 마찰력이 되었을지도. 

170쪽. 돌아가야 한다. 더 멀어지기 전에 만나야 한다.

안 돼. 언니. 위험해.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 만나.

언니. 민이는. 애를 데리고 저기로 다시 돌아갈 순 없잖아.

지나가 하얗게 트고 갈라진 손으로 내 얼굴을 닦았다. 지나가 눈물을 닦아 줘서 내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흐느낌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내 얼굴을 닦아 주는 지나도 울고 있었다. 단과 나는 너무 무난하고 뻔해서 위태로웠다. 그래서 충분히 생각해 보지 못했다. 우리의 사랑에 제대로 헌신하지 못했다. 이대로 멀어진다면 살아남더라도 평생 후회할 것이다. 그런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지나가 나를 부둥켜안으며 중얼거렸다. 

언니, 일단 살아야지. 살아야 만나지. 

......저절로 만날 수는 없어.

도리가 말했다.

만나기도 전에 죽을지도 몰라.

지나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알면서도 가겠다는 거죠. 죽고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까.

도리가 나를 부며 말했다. 우리 중 가장 작고도 단단한 도리의 음성. 그렇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제발 언니, 우리랑 같이 가.

우리와 함께 간다고 목숨이 보장되는 건 아니야, 지나. 이들에겐 이들의 기적이 있어.

우리의 기적. 그런 것이 아직 남아 있을까. 평생에 단 한 사람은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A,B,C가 아니라 완벽한 고유명사로 기억될 사람이. 어떤 이는 지름길로 나타나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가장 먼 길을 지난하게 지나고 모든 것에 무감해진 때에야 비로소 거기 있는 풍경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기적을 만나려면 그곳까지 가야 한다. 멀어지며 그것을 갈구할 수는 없다. 그곳으로 돌아가 다시 노예가 되더라도, 그렇게라도 단을 만나 또 다른 탈출을 기대할 수 있다면....... 나는 지나를 끌어안고 가만히 다독였다. 꼭 살겠다고 다짐했다. 동쪽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부지런히 자라는 나의 또 다른 기적, 해민이 먼저 발을 떼었다.

살아야 해, 꼭 살아.

지나가 말했다.

매일 생각할께요.

도리가 말했다. 

우리 아무도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못했다. 

191쪽. 돌고 돌아 오래전 그 자리 근처에 닿은 느낌이다. 느낌만 있을 뿐 그때의 나도 당신도 여기 없다. 나를 지우고 오직 당신의 기쁨에만 몰두하던 시절이 있었다. 잊지 않았으니 그처럼 살아갈 여지가 있다. 삶을 흐름이 아니라 덩어리도 볼 때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은 없다는 걸,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며, 그럼에도 알 수 없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은 당신이 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듣지 않고 보지 않았기 때문임을...... 돌고 돌아 다시 이 근처에 닿는다면 그때에도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길. 부디 당신이 기쁘길 바란다. 

.....

언젠가 인류가 멸망하고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이 한 줌 재로 돌아갈 그날에도 사람들은, 당신은, 우리는 사랑을 할 것이다. 아주 많은 이들이 남긴 사랑의 말은 고요해진 지구를 유령처럼 바람처럼 떠돌 것이다. 사랑은 남는다. 사라지고 사라져도 여기 있을 우주처럼. 

205쪽. 돌이켜보면 최진여잉 오래 지켜 온 이야기들에는 사라지는 빛에 붙들린 당신의 얼굴을 발견하려는 의지가 있었고, 당신의 서글픔을 놓치지 않으려는 절박함이 있었고, 닮은 마음의 무늬로 머뭇거리는 우리의 만남을 그려 내려는 다감한 시도가 있었다. 그 의지와 절박함과 다감한 시도를 빠짐없이 담기 위해 그의 소설들은 자주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날을 세워 '인간적'이라는 수사가 무색해진 시대를 겨누어야 했을 것이다. 공들여 빚어진 문장과 표현으로 소설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정서적 교감의 가능성을 두드렸을 것이다. 사람에 대한, 소설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비어져 나온 최진영 소설만의 어떤 사랑의 방식이라 해도 좋겠다.

이제 짐작해 본다. 이 소설을 떠나는 우리가 겪어 낼 삶에는 분명 시차가 있겠지만, 하여 우리가 바로 오늘 견뎌야 할 어둠 역시 결 다른 것이겠지만, 밤이 온전히 우리를 장악하기 전 그 사랑이 나에게, 당신에게 건너갈 수 있을 것이라고.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노래가 깨어난다.(프리드리히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문예출판사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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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15:59 2022/11/2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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