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마저 빼앗는가?

행인님의 [헌법 제21조를 돌려받자] 에 관련된 글.

행인이 존경하는 분께서 행인과 비슷한 취지의 글을 당 기관지 '진보정치'에 실으셨다. 진보정당판 조선일보 '진보정치'에 이 분의 글이 올라온다는 것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나 어쨌든 그 글을 같이 한 번 봤으면 싶어서 전문을 펌질(이라고는 하나 죄다 타이핑을 해서...)한다.

 

 

<한상희 칼럼>

길거리마저 빼앗는가?

 

지난 9일 창원시 의회는 집시법을 위반하여 집회 및 시위를 주최했거나 그에 동참한 단체에 대하여 보조금의 지원을 중단하는 조례안을 전국 최초로 통과시켰다. 가뜩이나 어려운 시민단체들의 재정상태를 볼모로 시민사회의 입과 귀를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실제 행자부장관의 강력한 권고를 바탕으로 입안되었던 이 조례는 어느모로 보나 위헌성의 시비를 벗어날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시위를 막는다는 명분하에 지방자치단체가 시민단체의 활동자체를 통제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방정치의 민주화를 가로막는 최대의 악법이 되기에 충분하다.

 

다른 한편에서는 한미 FTA에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들의 불허처분이 줄을 잇는다. 한미FTA의 부당성과 불법성을 비판하는 광고가 대중매체를 통해 시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조차 거부당한 이 현실에서 그나마의 외침조차도 주요도로에서의 교통소통이라는 이유 하나로 원천봉쇄되어 버린다. 현행 집시법이 개정될 때 인권단체등에서 그토록 반대하였던 바로 그 독소조항이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살아나 우리들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포항건설노조의 파업에 대한 포항지청의 대응방식은 점입가경의 격에 걸맞다. 수사와 공소유지라는 본연의 임무는 제껴둔 채 스스로 공안경찰의 역할까지도 떠맡고 나선 검찰은 집회와 시위의 과정 자체를 통제하여 나선다. 대통령은 "도둑 맞으려니까 개도 안 짖는다"라 한탄하고 한나라당이 개헌에 관한 논의조차도 못하게 한다고 푸념하고 있지만, 정작 그의 정부는 도둑이야 어찌되었건 그저 국민의 입단속에만 여념이 없다.

 

이 정부는 시위를 불법시위와 평화시위로 굳이 분별하여 처리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상의 조치들은 바로 이 불법시위를 없애고 평화적 시위문화를 정착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시위의 자유가 헌법상의 권리이자 인권의 한 항목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우리 사회가 활성화된 시민사회를 바탕으로 자유와 민주를 구가하는 사회라고 한다면 이런 이분법은 그 자체 하나의 폭력이 된다. 정부가 시위의 불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라 내세우는 현행 집시법 자체가 실질적으로는 헌법상 금지되어 있는 허가제를 도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 권위주의시절부터 잘못 길들여 온 경비경찰의 체계 등을 고려할 때 불법과 평화를 구분하는 기준부터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위는 그 자체 헌법적 보호의 대상이다. 혹은 시위과정에서 발생하는 주민의 불편이나 교통의 혼잡 등은 민주주의를 실천함에 수반되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비용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불편은 상당부분 시민들이 수인하여야 하는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나 지자체의 부담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그래서 불법시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게 된다. 단지 왜곡된 집시법의 체계하에서 불법이라 선언된 시위만 있을 뿐이다. 혹은 시위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사고 뿐이다. 그럼에도 이런 개념조작이 공공연하게 정부의 입을 통해 공식화되고 있음은 아직도 우리의 정치가 구태에 갇혀 있거나 혹은 참여정부라는 슬로건 자체가 한갓 치장에 불과한 것이거나 함을 의미한다.

 

실제 중요한 것은 시위의 '불법성'을 따지고 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시위를 평화적으로 관리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사전적이든 사후적이든 시위를 불법으로 단정하는 것보다는 그 시위를 통하여 어떻게 공공의 여론이 형성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시민사회가 어떻게 활성화되며 모든 생활영역에 있어서의 의사결정과정이 민주화될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87년체제의 한계론이 드높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 수준에서의 민주화조차도 여전히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80년 '서울의 봄'이 꽃 피우고 87년 6월 항쟁이 터잡아 나갔던 바로 그 길거리가 참여를 외치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취를 자랑하는 바로 이 정부에 의하여 봉쇄되고 있다는 이 서글픈 역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건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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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8 14:37 2007/02/2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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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흠- 행인은 타이핑, 당고는 프린팅-
    잘 봤습니다-

  2. 타이핑꺼정... 수고 만땅이셔...

    "진보정당판 조선일보" -> Good!

  3. 당고/ 켁... 행인은 어쩌다 한 번씩 한다구욧~!

    말걸기/ 이번주 진보정치 편집한 거 분석하면 완전히 조선 삘이얌. ㅋㅋ

  4. 저는 글 읽을 때도 프린트를 안 해서;; (총학실에서 그런 짓 했다가는 덜덜덜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