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방의 추억(7)

어렸을 때라 더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뚝방 집에서 오목교까지는 매우 먼 거리였다. 연전에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현재 목동 이대병원에 갔다가 오목교까지 걸어간 적이 있는데 멀긴 멀더라. 어쨌든 마을버스라는 개념도 없던 그 때 아침마다 뚝방 사람들 중 젊은 사람들은 오목교를 향해 갔다. 안양천 건너 양남동과 영등포 일대로 출근을 하는 것이었다. 그 때 행인에게 안양천 건너편의 양남동은 일종의 다른 세계였다.

 

안양천에서 물장구를 치다가 어른들의 등쌀에 못이겨 그만 둔 이유는 '똥물'에 몸담그면 죽는다는 엄포때문이었다. 안양천이 왜 똥물이냐는 물음에는 언제나 건너편 양남동을 가리키며 저 동네에서 나오는 물에는 온갖 더러운 것들이 다 섞여 있어서 똥물보다 더 더럽다는 이야기가 대답이 되어 돌아왔다. 서울이라는 동네는 뚝방촌과 양남동, 그리고 이모가 사시던 영등포 정도로 알고 있던 행인은 점점 시커멓게 물들어가는 안양천에서 물놀이를 그만두어야 했다.

 

안양천 건너편에 마주보이는 양남동은 지금 기억에도 언제나 검은색이다. 빽빽하게 들어찬 낮은 건물들, 그리고 그 건물들 사이마다 삐죽삐죽 올라와 있는 굴뚝. 그 굴뚝마다 시커먼 연기가 사시사철 내내 솟아 올라왔다. 아침마다 오목교를 건너 양남동으로 일을 나가는 동네 어른들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던 건강한 어린이였던 행인은 아침마다 일나갔던 어른들을 저녁나절이나 밤에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그러나 그 대여섯살 된 어린 마음에도 공장지대인 양남동은 뭔가 그럴싸한 희망을 주는 곳이었다. 뚝길위에 올라가 검은 연기가 풀풀 올라오던 공장들을 바라보다가 언젠가 파죽이 되어 돌아온 엄니에게 "저기서 일하면 돈 주나?"하고 물었던 적이 있다. 엄니가 뭐라고 답을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크면 저 양남동 공장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던 행인이었다.

 

몇 달이고 지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노가다를 하는 아버지, 영등포 어딘가로 미싱을 밟으러 다니던 엄니, 뚝방촌 옆으로 펼쳐진 논밭에 일을 나가면서 버려진 배추껍데기, 무청 등을 줏어다 먹거리를 만들었던 외할머니. 왜 우린 가난하게 살아야하나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어차피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이 다 고만고만한 살림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우리보다 잘 사는 사람들은 별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양남동 공장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영등포에 사는 이모 집에서 본 것들 때문이었을 거다. 거긴 전기도 들어오고 TV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어차피 못사는 형편은 다 똑같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가 들어오고 TV가 나오는 그 정도면 어린 행인의 입장에선 더 필요할 것이 없는 판국이었다. 우리 집에 전기가 안 들어오고 TV가 없는 이유는 순전히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행인이었다.

 

나중에 세상 구경을 좀 하고 나서야 그 양남동 일대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시커먼 연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시커먼 연기를 보면서 희망을 가졌던 어떤 꼬맹이는 공장을 거쳐 어느 사무실의 연구원이 된 지금까지도 아련하게 그 연기를 기억한다. 양남동 그 많던 공장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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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6 21:18 2007/02/2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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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말 옛생각이 새록새록...
    공장지대를 보며 커서 돈 많이 벌겠다고 생각한 행인이 참 건강하게 보이는 게 제 왜곡된 생각인지... 전 어려서부터 돈 벌 생각은 않고, 세상을 구한다든지 하는 무거운 생각만 했다는... 그러면서도 구체적 방법을 찾거나, 노력은 하나도 하지 않는 .. ㅠㅠ

  2. 아마도..중국으로.. 원진레이온처럼..
    요즘 아덜은 다 고만고만한 아파트에서 비슷한 수준-또는 TV광고의 속물만 보기땀시.. 다른 환경에대한 고민 그런게 무척 적고.. 한숨만...에구구..

  3. 호아......

  4. 풀소리/ 전 커서 돈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중학교때까지도 아주 간단하게 해왔던 거 같습니다. 세상을 구할 거까지는 생각조차 못했다는... ^^;;;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어떻게 된 것이 지금 땡전 한 푼 제대로 쥔 것이 없네요. 쩝...

    pilory/ 헉... 그건 정말 최악인데요. 제 시골을 가는 기차길 옆에 항상 보이던 것이 원진레이온이었고, 언젠가는 버려져서 흉물처럼 휭한 바람만 불던 건물이 원진이었고, 나중에는 원진 레이온 노동자 투쟁으로 기억에 남은 원진이었는데, 중국으로 시설이 옮겨지고 그거 반대투쟁하러 사람들이 갈 때는 참 착잡하더군요... 저도 한숨만... 에구구...

    개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