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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의 힘. 또는 고급 사기.. (2004.9.17)

어제 아침에 센터의 첫 저널 클럽이 있었다. 꼭 레지던트 하는 거 같다. 어찌나 수업과 각종 세미나가 횡행하는지 정신을 못 차리겠다. 영어가 딸리니 미리 안 읽어갈수도 없고...  이 나이에 갑자기 모/범/생 (!!!)이 된 기분....
하여간... 이번 논문은 센터소장인 라이쉬가 골라온 것인데 특허가 개발도상국에서 필수의약품의 접근에 방해가 되느냐.. 이런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이었다. 결론은 정말 웃긴다. 저자가 통계를 내본 결과(물론 예의 그 regression, p-value 같은 전가의 보도들이 등장한다) , WHO 에서 지정한 필수의약품들 중, 실제로 개도국에서 특허가 법적으로 혹은 실질적으로 적용을 받고 있는 것은 불과 1.4%에 불과하단다. 특허기간이 만료되었거나 혹은 제약회사의 관용 내지는 무시(?) 정책에 힘입은 결과란다. 그리고 오히려 특허보다는 국가의 빈곤 수준이 의약품 접근성에 더 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동안 활동가들이 주장해온, 특허가 의약품 접근성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며, 제약회사 또한 이렇게 미미한(^^) 시장에서 굳이 아둥바둥하기보다는 volunteering or price discouting 을 하는게 도덕적으로 훨씬 바람직하다는 친절한 평론까지 곁들였다. 더욱 압권은... 빈곤 해결의 예시로서, 그동안 많은 선진국들이 자국 농업에 대해 상당한 금액의 보조금을 지급해왔는데, 이것만 없애도 가난한 개발도상국가들의 농업 수출이 늘어남으로써 빈곤 탈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정말 깜찍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특허가 적용되고 있는 극히 일부(1.4%)의 약들이 뭔가 하면 대개 항 바이러스 제제(에이즈 치료약) 들이다. 중요한 것은 특허가 적용되는 의약품의 갯수가 아니라 인구집단 영향(population impact) 가 아닌가? 저자가 이걸 몰랐으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글리벡 사건(?)이 터졌을 때, 정말 환자도 몇 명 안 되는데 노바티스가 약가 인하를 단행하지 않은 이유, 정부에서 compulsory licensing 을 하지 않은 이유..  이런 현실을 저자가 진정 몰랐단 말인가?
 
당연히도.. 토론모임은 저자에 대한 성토와 의심의 자리가 되고 말았다. 이 저널이 과연 peer-reviewed journal 이냐에서부터 이 사람의 소속이 어디인가, 이걸 굳이 발표한 이유가 무엇인가 등등등...
언젠가 부르디외 가라사대, 사회학의 가장 큰 분석 도구는 사회학자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부터 면밀하게 분석해보아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연구는 숨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기술적인 힘, 통계 결과에 휘둘려 진정한 본질을 왜곡하거나 폄훼하는 경우가 충분히 생길 수 있다. 경계.. 또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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