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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몇 권

오늘 서울에 강의 겸 세미나 참가 때문에 다녀왔다.

내려오는 기차 타려고 서울역으로 이동하는 지하철에,

웬 취객이 그리도 많냐?

불과 저녁 여덟시밖에 안 되었는데 말이지...

 

보아하니, 학생들은 아닌 거 같은데 직장인들이 낯술 즐겼을리도 만무하고...

도대체 얼마나 강도 높게 마셨으면 불과 그 시간에... ㅡ.ㅡ

미스테리로다!

 

오래전에 읽은 책들이 책상 위에 굴러다니고 있어 잠깐 정리를 해볼까 한다.

사실, 불질할 여유는 없는데...

 

0. 강유원 [책과 세계] 살림 2004

 

 

짧지만 매우 흥미로운 글모음.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 동안 살아있는 자연만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퍼덕퍼덕 움직이는 세계가 있으니 죽어있는 글자 따위는 눈에 담지 않는다.....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그렇구나...... ㅡ.ㅡ;;;

 

간결하고 (어찌 보면 껄렁해보이는) 특유의 문체로 책과 세계 사이의 연결고리를 아주 자유분방하게 늘어놓았는데, 특히,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관계, 또다른 컨텍스트로서의 매체에 대한 부분이 재미(?) 있었다.

 

매체 이야기를 하면서 '죽간' 을 소개하는데, 문득 친구 J가 드라마 "주몽" 보면서 엄청 흥분했던 게 생각났다. 아직 종이가 발명되기 전이라 죽간에 쓰여진 글을 읽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물론 나는 한 번도 못봤음), 창호지(!)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 아주 휘영청이더란다 ㅎㅎㅎ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런 거 생각하면 드라마 못 본다~

 

이 글모음은 첫머리에서 '길가메시 서사시'의 쓸쓸한 세계관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에 '종의 기원'이 보여준 참혹하고 쓸쓸한 인간세계를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끝을 맺는다.

"먼 옛날의 서사시들은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 없이도 세계가 쓸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또다시 같은 것을 알아차리는 건  너무 허망하다. 쓰라린 것이다"

과연 그래?

 

 



0. 고종석 [바리에떼] 개마고원 2007

 

 

버라이어티한 건 좋은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1부는 "어스름의 감각"이라는 제목 하에, 그야말로 자신의 취향에 대한 글 4편을 담고 있는데, 그냥 귀엽고 철없는 아저씨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라. 

계급도 인종도 성별도 대화에 장애가 되지 않는데 오로지 세대만은 장애가 된다니, 그게 말이 되나? 얼마나 본인의 사회적 경험이 풍부한지 모르겠으나 부르디외가 보면 피토하겠다. 동시대의 대중문화 (이를테면 유행가) 체험을 통해 계급과 성별을 넘나드는 동질성을 확인하는 건 좋은데, 그건 자신의 경험을 지나치게 일반화시킨 것 아닌가 싶다. 동시대라고 다들 비슷한 (대중)문화를 경험하는 건 분명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백수 예찬도 맘에 안 든다. 이거 뭐냐 싶더라니...지나친 강박일지도 모르겠으나, 일자리가 없어서 아둥바둥하는 시대에, 선택받은 소수로서 자발적 백수가 된 것을 동네방네 떠드는 것은 최소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그동안 주변에서 자발적 백수가 된 인간들에게 그리 좋은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 없으면 없는대로 살지라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없는대로 사는 것에도 최소한의 마지노선이 있는 법이다. 철들고 나서부터 (최근까지) 경제적 불안에 시달려온 나로서는, 도저히 '체질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밥벌이의 지겨움 운운하며 위악을 떠는 김훈을 싫어하는 이유 중에 이것도 아마 포함될 듯.

더구나 여자들 이야기는 더 싫었다. 그가 기억하는, 이름이 관련된 여자들을 내가 왜 비싼 돈 주고 산 책에서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건 그냥 본인 일기장에 남겨놓고 추억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

결국, 1부는 내가  싫어하는 신변잡기, 주변사에 대한 자기애적 기술로 온통 채워져있고, 차라리 책에 포함이 안 되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이건 사실 3부에도 약간 해당하는데, '친구의 초상'이라는 제목 하에 문화예술인 친구들 - 황인숙에서 강금실까지-의 작품이나 생활에 대한 비평/단상들을 적고 있다. 그런데 읽다보면 의문이 든다. 내가 왜 그의 친구들을 알아야 하나? 내 친구들과 속깊은 대화 할 시간도 부족한데 말이다. 이래서 까칠하다는 소리를 듣는지 모르겠으나, 혼자 보는 일기장 아니라면 이런 글을 좀 빼주셨음 하는 소망이 있다.

 

그나마 2부 '정치의 둘레'는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자유주의자(?) 복거일에 대한 비평/비판이나 한국보수주의에 대한 비판글들이 그러했다. 워낙 문장이 유려하고 분명하니까... 그러나 17대 총선을 앞두고 썼다는 '제안'글이나 '노무현'론은 읽는 내내 맘이 불편했다. 정치공학적 해석과 전략제안은 좀 안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까지 나서지 않아도 한국사회 정치공학자 차고 넘친다.

 

글을 쓰면서 보니까 온통 불만이다.

그렇다. 문화와 정치에 대한 사려깊고 아름다운 시평을 기대했는데, 일부는 너무 사변적이고 일부는 너무 '거칠게' 공학적이었다.

흠, 좀 실망인걸....

 

 

0. 김동춘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 도서출판 길 2007

 

 

웬만해서는 책을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없는데, 이건 정말 해도 너무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스테리는 도대체 기대하고 있는 독자층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나름 이론서적으로서 아카데미아를 대상으로 한다고 보기엔, 너무 엄밀성이 떨어지고 추상적이다. 참고문헌이 거의 인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논리적 타당성이나 근거가 확보되지 않은 언술들이 지나치게 난무한다고나 할까?  (가장 웃긴 거 중 하나는 '진화론'을 언급하며 단선적 역사관을 비판한 경우... 좀 너무하시지 않나?) 

그런데 또 내용을 보면, 일반시민보다는 아카데미아를 대상으로 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학계에 대해 비판적 자성을 촉구하는 듯한...???

그니까, 무슨 토론회 자료집 성격이 물씬....

읽는 내내, 지금 이걸 가지고 날 가르치려 드는겨? 이런 생각이 들더라니... ㅡ.ㅡ

결국 절반만 힘겹게 읽고, 맘편하게 포기했다.

다 읽었다. 라는 자족감 이외에 추가로 얻을 편익이 없을 거 같아서다.

이 분은 왜 이러셨을까나? 

 

0. 강주성 [대한민국 병원사용 설명서] 프레시안 북 2007

 

 

얼마전 프레시안의 K 기자가 서평을 부탁해서, 허겁지겁 읽고 썼다.

우리 학생들 강의 와준거 고마운 마음에 냉큼 수락했는데, 하필 가장 바쁜 때에...

그나마, 주말에 허둥지둥 써줬더니만, 정작 업로드는 일주일 있다가.. ㅜ.ㅜ

 

강주성 대표, 참 훌륭한 분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사람들에게 혼자만 돈 아끼는 법이 아닌, '사회적 책임성'을 환기시킨다는 점 아닐까 싶다.

책이 좀 많이 팔리면 좋겠다. 프레시안도 사정이 엄청 어렵다고 하던데...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71116143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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