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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민주주의

#. 최장집.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최장집
폴리테이아, 2012

 

읽은지 몇달이 지난 채로 책상 구석에 쌓여 있던 책들 대 정리 주간이다...

 

부담없는 두께와 평이한 문체에 비해 담고 있는 내용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문제를 지적해왔던 최장집 교수가, 이번에는 직접 현장을 둘러보고, 사람들의 삶 속에서 노동없는 민주주의가 어떤 '여파'를 낳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동안 현장 르포르타주들이 대개 사회학적 접근, 사회경제적 분석 혹은 문화적 분석에 치중했다면, 이 책은 드물게도 이를 민주주의와 정치의 문제로 끌어내고 있다.

 

사실, 민주주의 이론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을 노학자이지만, 이렇게 직접 현장을 찾고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한 것은 그로서도 낯선 경험인데다 다루기 쉬운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본인도 서문에서 '뒤늦게 인생공부 많이 하는구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동정심을 감정이입 (empathy)와 공감 (sympathy)로 구분했다고 한다. 전자는 스스로 경험하지 않았지만 가치와 이념의 도움으로 다른 사람의 사정에 동정을 느끼는 것이고, 후자는 사실의 구체적 접촉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사정에 동정을 느끼는 것이란다. 여기에서 인간행위의 급진성을 불러오는 감정 형태는 감정이입이고, 그래서 현실의 삶에 기초하지 않은 학생운동 전통이 과도하게 작동할 때 진보의 행동정향도 그런 형태들 띤다. 그러한 정조와 감정은 강한 신념윤리를 격발하고 추동하는 반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윤리의 부재 내지는 약화를 가져온다. 

 

* 별 강조 없이 슥 지나가는 문장인데, "지역의 자활센터에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은, 복지정책과 관련해 정당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구절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온갖 정치집단들이 다들 복지 복지 노래를 부르는데, 정작 현실 삶 속에서 정치체로서의 정당은 어디에도 보이지도 않는 작금의 상황은 안습... ㅜ.ㅜ

 

* 저자가 안철수 정책연구소로 자리를 옮기기 전에 썼고, 나오자마자 읽은 책이었는데, 당시에 그는 안철수에 대해서 상당히 호의적 평가를 하고 있었다. 평소 강한 정당론자였던 저자였지만, "앞으로 그의 행적이 어떠하든 또 그의 정치적 결과가 어떠하든, 젊은 세대들의 자기발견과 정치적 각성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발전에 기여했다"고 했다. 뭐가 되든, 정체되고 빈틈많은 기존 정당체제에 일종의 쇼크요법을 가져왔다는 점에서는 일정 정도 동의가 가능한데... 이는 최장집교수의 제자라고 흔히 거론되는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일관된 부정적 평가 (반 정당주의자로서의 안철수)와는 묘한 대조를 이룬다. 좋은 정당, 바람직한 정당정치를 만들고자 했던 정치학자의 이상이 현실에서 어떻게 발현될지 지켜볼 일이다. ㅡ.ㅡ 

 

* 최장집 교수의 진단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현재와 같은 노동없는 민주주의가 나타나게 된 것은 신자유주의, 비결정 (non-decision)에 의한 선택적 의제화, 잘못된 갈등 선택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의 복지정책은 사회적 권리로서의 복지권 부여 (entitlement)보다는 물질적 급부 (provision)의 증대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분명히 물질적 급부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 수혜자의 사회적 권리는 약화되고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내용이 퇴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영국 정치학자 콜린 크라우치에 따르면, 긍정적인 시민적 개념에서는 특정 집단이나 조직들이 스스로 집합적 아이덴디티를 발전시키고 집합적 이익을 공유하면서 정부 정책에 자신들의 요구를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독자적으로 형성한다. 반면, 비판과 불평을 중심으로 하는 부정적 시민행위는 집권 세력과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묻고 이들에게 강력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한다. 부정잭 시민행위는 정치란 기본적으로 엘리트들의 일이고 시민은 관중이나 감시자의 역할에 만족할 뿐이라는 수동적 관점을 견지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정치 계급에 대해 극히 공격적인 모습을 띤다. 우리사회는 어쩌면 긍정적 시민의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에서도 부정적 시민의 역할에 안주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 그동안 일관되게 강조해왔던 '노동있는 민주주의' '정당 민주주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현장과 함께 좀더 풍부하고 쉽게 풀어놓았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정당민주주의에 대해 더욱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원한다면, 이 책보다는 박상훈 대표의 [민주주의의 재발견]을 추천하고 싶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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