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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빈집에는 누가 누가 살까~요

진보복덕방에 실렸던 '빈집이야기' 코너를 다시 연재해왔던,

우리신학연구소 http://www.wti.or.kr/ 발행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에서

연재 종료와 함께 마무리를 위해서 인터뷰를 오셨습니다.

 

갑자기 결정되는 바람에, 지음이 주로 대답을 했고 연두와 아규 등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함께했습니다.

한 사람의 대답일 뿐이고, 녹취하고 재정리되는 과정에서 다소 맥락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일단 원문 그대로 참고 자료로 올립니다.

 

조금 길지만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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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빈집에는 누가 누가 살까~요

비어 있다는데, 실은 가득 차 있는 이상한 빈집, 게스트하우스, 즉 ‘손님들의 집’이라는 데 손님보다는 주인이 많은 희한한 빈 집! 이 신기하고 신비한 집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지난 2009년 3월 - 11월까지 ‘빈집에 놀러와’라는 꼭지로 소개되었던 바로 그 빈집의 지음 씨를 만났습니다. 비어 있기에 누구든 맞아들일 수 있고, 또 무엇이든 채울 수 있다는 빈집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 빈집은 우리 독자들에게 낯선 이름이 아닌데요, 2008년 3월 ‘빈집’ 개방 후 큰 변화라면 어떤 걸까요?

가장 큰 변화는 빈집이 네 채로 늘어난 것이죠. 처음 생긴 집을 아랫집이라 하고, 두 번째는 윗집, 세 번째는 옆집, 네 번째는 가파른 집, 그리고 빈농집이라고 농사짓는 곳이 있어요. 집이 늘어나긴 했지만, 워낙 시스템이라는 게 별로 없었기 때문에 형태 변화는 없고, 오고 가는 사람들만 조금 달라진 정도구요. 시작할 때는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늘어나게 될지 몰랐는데, 단기 투숙하던 사람들이 장기 투숙자가 되고, 그러다 보니 공간이 좁아지고 자원들은 좀 늘고 해서 윗집을 구하게 되었죠. 그러다 다른 친구들이 좋다고 가까운 동네에 이사 와서 자신들의 집도 개방해서 빈집의 세 번째, 옆집이 되었고, 네 번째 가파른 집도 아는 친구들이 살던 집이었는데 자연스레 빈집이 되었고요.

▲ 그럼 각 집의 구성원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나요? 선착순? 남녀별? 연령별?

특별한 기준은 없구요, 주로 상황에 맞게 조정을 하는 정도예요. 각 집마다 남자 방, 여자 방, 손님 방 이렇게 구성이 되어 있는데, 옆집 같은 경우는 한 방에 한 커플씩, 세 커플이 살고 있어요. 한 커플은 아기까지 세 명이 살고 있구요. 커플들이 방 하나씩을 쓴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저도 제 아내랑 같은 방을 쓴 지가 얼마 안 되었고요. 워낙 빈집을 시작하면서 생각한 것이, 혼자 방을 독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방이 모자라는 것도 아니고, 커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는 두 명이 쓰는 거니까 괜찮겠다 싶어서 시작했어요.
그리고 한 달 정도 전부터는 처음 들어오는 사람은 되도록 아랫집에서 지내기로 했어요. 아랫집이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하고, 공동 공간이 넓은 편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에도 적당해 마을회관 같은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아무래도 사람들과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에 있는 편이 빨리 친해질 수도 있구요.

▲ 한 달에 한 번 회의가 있다고 하던데요, 참여 자격이 따로 있나요?

‘빈 마을 회의’인데요, 되도록 다 참석하자고 하지만 그 역시 유동적이구요. 함께 모여 살다보니 이런 저런 빈 구석이랄까, 필요한 일들이 생기는데, 누가 할지, 어떻게 할지 모를 때 누군가 ‘이게 문제야’, 혹은 ‘모여라’ 하면 해결되거든요. 회의도 그런 연장선상이었는데, 점점 사람이 많아져서 얼마 전부터는 아예, 팀을 만들었어요. 반찬팀, 운영팀, 노획팀, 농사팀, 공작반, 풍물반, 건강팀, 주류팀, 공부팀 이렇게요.

▲ 공식 투숙비가 6시간에 1,000원 이상, 그 시간을 초과하면 2,000원 이상이던데요, 그 비용으로 유지가 되나요?

저희는 ‘공간 분담금’이라고 부르는데요, 단기 투숙자들은 말씀하신 것처럼 그 금액이고요, 장기 투숙자는 한 달에 6만 원 이상이에요. 식비는 2만 원 이상을 추가로 내야 하구요. 사실 이 ‘공간 분담금’에는 단순히 잠자는 것들이 포함된 게 아니라서 숙박비 개념은 아니에요. 공간 분담금은 빈집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공과금, 세금, 물품 구입 등에 사용되고요. 살아보니, 그 정도 내면 대충 빈집살이가 진행되더라구요.

▲ 집 하면, 계약이라든가 법적 문제들이 발생하는데요, 빈집의 법적 소유자는 어떻게 정해지나요?

처음 빈집을 계약한 사람은 저랑 아규인데, 재미있는 게, 실은 이 집이 한 채지만 법적으론 두 채래요. 그래서 각각 아규랑 제 이름으로 되어 있구요. 그 이후 늘어난 집들은 회의에서 “누가 계약자 할까?” 해서 신용불량자 빼고, 집 있는 사람 빼고, 의료보험 이런 거 비싸지니까 빼고, 해서 제일 적당한 사람에게 “댁이 하시죠.” 해서 결정했어요.
이제 내년 3월이면 이 집도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제 이름으로 안 할 가능성이 많아요.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계약자로 해서 전세 대출 받은 돈으로 다른 집을 구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쓰려고요. 저희는 이미 대출을 받았던 상태라 안 되니까, 아마 그때 가서 전세 대출이 되는 사람이 계약자가 될 거예요.
결국 계약자 자체는 중요하지 않아요. 또 자기 돈이 출자되어 집을 구했다 해서 혜택을 받거나 그런 건 없어요. 분담금 내는 것도 똑같고요.

▲ 빈집은 따로 공동체 운운하지 않아도 형태는 이미 공동체로 보여요. 혹시 빈집을 시작하면서 염두에 두신 공동체가 있나요?

오히려 아이디어를 얻은 곳은, 공동체가 아니었고 배낭여행할 때 갔던 ‘게스트하우스’들이었어요. 아규랑 여행 다니면서 만났던 친절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인데, 스스럼없이 데리고 가서 재워주고 했던 일들에서요. 빈집을 시작하면서 그런 생각은 했어요. 빈집에 장기 투숙자가 많이 생기면 공동체 같고, 단기 투숙자가 많으면 게스트하우스 같겠다 하고요.
지금 생각해도 희한한 건, 여행지라서 그랬는지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한 방에 열 몇 명씩 같이 자고, 살았던 거예요. 그리고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사람들도 있고요. 또 대학 때 자취나 하숙을 생각해보면, 돈이 없으니까 당연히 여럿이 한 방을 쓰게 되고, 옆집에 가면 그런 사람들이 또 있고, 그런 게 대학가 문화였던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이 결혼하면 당연히 없어지는 주거형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꼬질꼬질한 자취방에서 좋은 번듯한 집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문화라면 문화, 분위기들이 없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여하튼 그때는 사람들이 모이는 거점의 집이 늘 있어서 서로 모여서 무슨 이야기든 했었거든요. 우리가 생각하는 공동체라면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이 집 구할 때까지는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저희가 여행을 끝내고, 처음 이 집을 구할 때만 해도 저희가 한 방 쓰고, 같이 구하는 친구가 한 방을 쓰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식구는 최대한 많았으면 좋겠다 싶었고요. 그래서 방이 여러 개인 5-6개인 집을 구하러 다녔어요. 그런데 그런 집이 없고, 그런 집은 저택이라 비싸고, 주로 4개인 집은 있었는데, 공간이 너무 작았고요.
그러다 이 집을 봤는데 방은 세 개밖에 없지만, 방과 공간이 다 크고, 서울의 정중앙, 그것도 남산터널 바로 앞에 있는 것도 신기하고 그래서 마음에 들었지만, 고민을 좀 했어요. 그래서 한 사람이 그 방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면 어떨까? 생각했고, 그게 시작이었어요. 그 결과 그때 같이 방을 구하던 사람은 ‘난 그래도 내 방이 없으면 안 돼’ 해서 떨어져 나갔죠.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상식적인 얘기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답이 안 나온다고 생각했고, 저희는 그렇게 결정한 것이었어요. 어쩌면 바로 그 순간이 빈집이 탄생한 순간이었던 것이죠.
공동체는, 관심은 있는데 공동체라고 불리는 것들이 갖는 딜레마나 문제점들이 마음에 들진 않아요. 이상하게 동일한 것으로 묶이면 그 순간 동일하지 않은 것이 생기고, 공동체 외부라는 게 생기고 그렇게 되면 공동체로 들어가기 위한 절차라든가 그런 게 생기잖아요. 또 다양한 많은 사람들을 묶어내고 동일한 가치 아래서 움직이게 하기 위해 종교라는 매개가 거의 필수적이 되어 결과적으로 다들 유사하게 되는데, 전 그런 게 공동체가 가진 본질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공동체는, 극단적으로 열린, 열려있지 않으면 안 되는, 열려져 있기 때문에 지속되는 그런 공동체에요. 그래서 누구나 와도 되고, 누구나 왔을 때, 그 자체가 공동체 자원이 되고 힘이 되는 그런 형태가 있으면 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은 했어요.

▲ 처음 빈집을 알았을 때는 대부분 미혼이고, 젊은이들의 새로운 놀이문화 정도로 생각했는데, 오늘 이렇게 와보니까 이미 부부도 있고, 아이와 같이 가족도 계신 걸 보니 정말 ‘집’이구나 ‘삶’이구나 싶어요. 그런데 부부들은 어떤 과정으로 이곳에 온 건가요?

한 사람은 이 동네에 살고 있었고, 한 사람은 여기 살던 커플이 있었는데 옆집이 생기면서 방 하나에 같이 들어갔구요. 애기 엄마는 갈 데가 없어서 왔어요. 처음에는 간난 아기와 둘이 살다가 나중에 남편이 들어와서 살았어요. 애기 이름이 두리인데, 두리가 들어오기 전에는 이런 시스템에서 아기를 키우는 게 가능할까 싶었어요. 사실 아무도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도 나머지 두 커플까지 합심해서 잘 키우며 살고 있어요.
그런데 핵가족이 집을 구하고, 혼자서 방을 구하고, 돈만 있으면 혼자 산다, 이런 관념 자체는 사실 진짜 얼마 안 된 거래요. 예전에는 방 한 칸에 한 가족이 다 같이 살았는데 그때가 행복하다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고요. 서양에서조차 한 사람이 방 하나를 쓴다거나, 또 커플은 절대 방을 따로 쓰면 안 된다거나, 그런 애매한 프라이버시 관념, 주거형태가 나온 지는 얼마 안 된다고 하던데요. 옛날 왕궁에서조차 왕과 왕비가 쓰는 침대가 있으면, 그 주위에서 사람들이 널브러져 자고, 이런 식이 더 일반적이었다고 하고요. 그럼 지금의 변화가 발전이냐, 저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거죠.

▲ 도전적인 질문일지도 모르는데, 혹시 빈집은 정치색이 있나요?

아~뇨~. 그런 거 없어요. 저희에게 중요한 건, 자기 밥은 자기가 잘 챙겨 먹나, 챙겨 먹으면서 옆에 사람이 있으면 같이 챙겨 먹나, 자기가 지저분하게 한 게 아니어도 더러우면 같이 치우느냐 이런 거예요. 살면서 제일 어려운 게 그런 거 같아요. 부부들 역시 신념이나 정치색은 달라도 충분히 사랑하면서 같이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집안 노동이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에게 집중되거나, 남편이 자연스럽게 가부장적으로 행동하거나, 여자든 남자든 밖에서 돈만 벌어오면 집안 살림은 나 몰라라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든가 하면 같이 못사는 거죠.
생각이 다른 건 싸우면 되요. 그러다보면 생각이 비슷해질 수 있고, 안 비슷해져도 ‘아, 저 친구는 저런 생각이지’ 하고 이해할 수 있어요. 논쟁을 할 때 감정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 근원을 잘 따져보면 ‘응 얘가 양말을 아무데나 벗어놓더라’, ‘나는 맨날 밥을 하는데, 쟤는 밥 한 번을 안 해’ 이런 거가 문제였던 경우가 많구요. 결국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건, 사소하게 보이는 배려들이 아닌가 싶어요.

▲ 빈집에 대해 처음 아이디어를 내고 시작한 사람으로서 그 동안 보람되고, 즐겁고, 힘들었던 일이라면?

빈집을 시작한 지가 2년이 채 안되었는데, 이렇게 집이 4채로 늘어나고 살아가는 게 참 신기하고, 황당할 수 있는 생각들이 현실로 실현되고 있는 그 자체가 보람되다면 보람되고요.
제가 자전거 퀵, ‘자전거 메신저’(지음 씨는 자전거로 서울 시내를 수용하는 자전거 퀵서비스를 하는데, 실제 오토바이 퀵과 시간상으로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를 하는 것도 황당한 건데요, 다른 주거 형태로 살고 있었으면 절대 못했을 거예요. 제가 메신저를 해서 버는 돈이 많을 때가 한 달에 30만 원이에요. 그 걸로는 아규랑 둘이 살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런 면에서 빈집은 정말 비용이 안 들죠. 분담금만 내면 생활은 되고, 그러면서도 좋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고. 사람이 집안에만 있을 수 없는데, 빈집은 집안에만 있어도 일도 많고, 노래도 들리고 문화적인 부족함도 없고요. 뭐든지 가능해요. 그렇게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된 그 점이 기쁘고요.
힘든 일이라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좀 그랬어요. 사람들의 생각이 나 같지 않구나. 사실 원래 그런 건데, 여러가지 일이 겹치면서 그랬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오다 보니까 좀 이기적인 사람들이 있었어요. 다들 돈이 없어서 같이 사는 건데, 여기선 돈 아끼고 다른 데서 돈을 많이 쓴다던가, 우리가 정한 최소한의 분담금이 ‘2,000원 이상’이었고, 이 ‘이상’이 더 중요한 거였거든요. 실제 모두 2,000원으로만 내서는 빈집의 바퀴가 굴러갈 수 없어요. 일하는 것도 자기가 먹은 것만 치울 수 있는데, 늘 잉여분이 있고, 그러면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치우지 않으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분담금도 더 내는 사람이 있고, 일도 더 하는 사람이 있고요.
그런데 분담금이나 일에 무관심하기도 하고, 우리는 자본주의적으로 계산하지 않고 가는 방식인데, 그걸 철저히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그걸 막지도 않았고, 막을 수 있는 기제도 없었고요. 그래서 시스템을 만들고, 미래에 대한 준비도 하고, 규칙도 만들고 해야겠다 생각하면서, 이게 뭐하는 건가 싶어졌죠. 그런데, 우연히도 <예수전>이란 책을 보고, 그 슬럼프를 넘어갔어요. ‘예수도 그랬구나. 사람들은 이해하면서 사는 게 아니지. 내 생각이 저 사람과 같았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한 거지. 예수도 제자들 보고 깝깝했겠구나. 별로 같은 생각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겠구나’ 그랬어요.
그래서 시스템이고 뭐고 다 그만 두고 반찬이나 만들자 해서, 팀이 시작된 거죠. 반찬 팀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씩 일괄적으로 재료구입을 하고, 반찬을 한꺼번에 모여서 만들어요. 물론 반찬 팀만 반찬을 만드는 건 아니죠. 아무튼 각자의 방식으로 공동의 노동 부분들을 해결해 갔어요. 결국 ‘알아서 하겠지’ 생각하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 부모님들의 입장은 어떠신가요?


처음에는 그냥 친구들과 같이 살 거다 이 정도로만 말씀드렸고,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셨죠. 그런데 점점 식구들이 많아지고 나서 오시면서는 은근히 재미있어 하시더라구요. 예전에는 완성된 반찬을 가져다주시곤 했는데 요즘은 천일염이나 생선 등 재료를 보내주시구요.
지금 저희가 사는 게 옛날에 사는 방식과 비슷한 게 있어요. 저희가 의료비 지불하고 그럴 사람들이 아니라서 건강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먹는 것만큼은 좋은 걸 먹으려고 해요. 또 가난하니까 돈도 없고, 남는 게 시간이니 뭐든 만들자 싶어서 케이크도 만들고, 술도 만들게 되었어요. 옛날 집에서처럼 그러다 보니 어른들 보시기에는 훈수 드실 게 많으신가 봐요.
지금 계신 장기 투숙객 중에 50대로 추측이 되는 아주머니가 계시는데, 많이 신나하세요. 옛날에는 했지만 식구가 적어서 안하는 거 이런 거 다 해보시는 거죠. 또 저희 어머니는 지난 일요일 김장할 때만 해도 저희가 김장 백포기 한다고 하니까, ‘내 것도 좀 해주라’ 하시는 거예요. 마늘하고 기타 재료들을 갖고 오신다고 하시면서요. 아버지도 제 미래를 걱정하시면서도 채소 씨앗도 챙겨주시고, 블로그도 들어와 보세요. 저희는 명절에 집에 갈 때, 선물을 살 수도 없고, 돈을 드릴 수도 없고, 그래서 음식을 만들어가요. 막걸리, 가자미 식혜, 송편, 간장 같은 거 만들어 가요. 그러면 황당해하시면서 좋아하세요. 저희 커플이 둘 다 4형제 중 막내인데, 부모님보다 오히려 형제들이 이해하기 힘들어해요.

▲ 마지막 질문인데요, 빈집의 꿈은 어떤 걸까요?

‘빈 마을’에 대한 꿈이요. 이 공간이든 아니든, 자기가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런 거요. 마을 개념은 동네 분들하고 만나면 인사하고, 가끔 집에 놀러 오시고 놀러 가고 하면서 즐겁게 지내는 거죠.
세부 계획은 여러가지가 있는데요, 우리가 사는데 이게 좋지 않을까 싶은 것들을 실현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반찬팀 이야기를 하자면, 월 식비 2만 원에 주곡류는 유기농으로 하고, 일체 첨가물 넣지 않고, 대체로 국내산을 쓰려고 하고 그렇게 먹고 있거든요. 그걸 마을로 확대하는 거죠. 일주일에 한 번씩 정도 와서 반찬을 가져가신다든가 하는 거죠. 또 귀농한 분들이나 저희가 옳다고 생각한 방식으로 생산하는 사람들의 생산물을 가져와서 중개도 하구요. 혼자, 두 사람 만을 음식을 하기보다, 같이 해서 같이 먹고, 생산자들도 돕고, 우리가 쓰는 좋은 물건도 같이 쓰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죠.
또 하나는 복덕방을 해볼까? 생각했어요. 이 동네만 해도 재미있고, 용도에 맞게 좋은 집들이 많은데, 몰라서 못 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비싼 복비 내며 방 구하는 걸 보면 안타깝기도 했고요.
그리고 지금은 모두 자전거로 하지만 가끔 차의 필요성도 있어서 차 한 대 사서, 마을 공용으로 쓴다든가 또, 밭도 처음엔 옥상 한켠에 지었는데 이번 김장엔 저쪽 빈 땅에 가서 농사를 지은 걸로 했거든요. 그렇게 농사도 늘여가고 싶고요. 저희가 일 년에 먹는 쌀이 10가마 정도인데 논 800평이면 된대요. 어제부터는 그것도 고민하고 있고요.
보험이나 신협 같은 것도 생각해 봤구요. 당장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이룰 필요도 없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 천천히 생각하는 거죠. 음, 그러고 보니, 사람이 살면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실현해가면서 사는 일, 그게 빈집의 꿈이랄까요?

▲ 크고 거창하지 않아 더 실현가능한 빈집의 꿈들, 적극 지지하구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취재 : 김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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