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누군가를 밟고 있었다면

공놀이 경기장, 폐허를 짓느라고

산을 뒤집고 계곡을 메워, 황무지를 조성하느라고

무너뜨리고 자르고 뒤집는 공법으로, 녹색사막을 건설하느라고

흙먼지 바위 나뒹구는 곳에 꼬리치레도롱뇽 한 분

고비사막보다 거친 땅 위에 탈진한 그놈 한 분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자니 하,

절로 탄식이 나오네

 

뭉툭한 입엔 변변한 이빨 하나 없고

퉁방울눈은 겁을 먹도록 진화한 기관 같고

적은 보아서 어쩌랴 시력도 형편없고

날을 세운 발톱도 날카로운 귀도 없고

튀어 달아날 뒷다리도 몸 색깔을 바꾸거나

죽는 시늉을 하거나 털을 곧추 세우거나

냄새를 피우거나 혐오감을 주거나 아부를 하거나

혹은 노래를 잘 부르거나 예쁜 귀를 가졌거나

그런 힘도 잔꾀도 배짱도 노리개도 못되는 것이

 

어떻게 대대손손 대를 이어왔을가

습지에는, 초일급수에는 저들만이 누리는

상생의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땅 위의 생명들을 떠받치고 있느라

저리 납작하게 엎드린 것일까

 

그래, 저리 생긴 사람들 있었지

볕이 드는 곳 번듯한 곳은 그를 외면해도

그늘진 뒷일 도맡아 말이 없고

있는 둥 없는 둥 궂은 일 묵묵 눈 맑은 사람들 있지

기죽지 마시게, 그대들이 내일의 사람이네

미래는 늘 오늘의 발바닥에 있다네

길과 맞닿아 길과 한몸인 사람이라야

희망을 말할 수 있다네

만약 그러지 못했거든 발바닥을 보시게

그대들이

다시 누군가를 밟고 있었거나

 

- 백무산, <누군가를 밟고 있었다면>, <<거대한 일상>>, 창비

 

 

 

어제 닷닷닷에서 같이 읽고 싶었던 글이 있어 올립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