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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1
    문제는 계급 정치다.
    김산

문제는 계급 정치다.

강한욱님의 [나경원의원.. 이정희 의원..] 에 관련된 글.

나경원 의원이 한 잡지의 속지 모델!로 나왔다.
언론이나 정치인들은 그의 차분한 말폼새나 여성스러움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듯 하지만, 사실 그를 이 사회를 리드하는 여성으로 봤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판사 출신의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나씨가 보여 준 그 동안의 모습은 여성이라는 이미지보다 보수 정치인이었다.
그를 시대를 이끄는 여성으로 미화하고 싶은, 그가 속한 정당이나 사람들의 욕심은 욕심으로 끝이 났다는 뜻이다.

 

박근혜 의원을 보자.
암살된 개발주의 독재시대의 대통령의 여식이었다는 이미지가 그의 정치인 이미지에 덮어졌지만 그것이 그를 여성으로 보게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박근혜씨는 전통 보수 정치인들의 지도급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그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이냐 아니냐로 소외 계층의 정치를 주장하던 정체성의 정치는 부르주아 정치의 소산이지, 계급 정치의 수단이 될 수 없다. 여성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피지배계급의 일부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이정희 의원! 그가 여성임에는 확실하다. 피지배계급의 일부로서 여성말이다. 그것은 이 사회에서 이중의 착취를 받아야 함을 뜻한다. 그것은 이땅의 여성과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조건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계급기반을 무엇으로 하고 있는가를 보게 하는 것이다. 이정희씨는 미군반대 투쟁에서, 국가보안법 반대 투쟁에서, 촛불집회에서,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투쟁에서 엄청난 투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그가 단순한 여성으로 보아선 안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피지배계급 전체의 이익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잡지 모델로 나온 보수정당 여성의원의 사진과 민주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진보정당 여성의원의 대비는 어쩌면 그 자체로 선정적인 것일 수 있으리라. 그래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경원을 이정희에 비교하는 것은 그 진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진보적 계급 정치에 성 정체성의 정치를 들여 어떤 실익이 있겠는가?


한쪽은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여성과 노동자들을 쥐어짜려는 쪽에 있다. 다른 한 쪽은 민주주의를 방어하고 여성과 노동자들의 이익을 지켜내려 하고 있다. 한쪽은 사진 한 장에 엄청난 액수의 모델료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한쪽은 경찰에 억눌려 닭장차에 실리기도 하고, 실신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계급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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