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제2의 촛불은 시작되는가?

제2의 촛불은 시작되었는가?

 

곳곳에서 노무현의 죽음을 추모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국민의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말과 뒤썩인다. 심지어 김대중 조차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추모를 위해 든 촛불은 제2의 촛불인가.


작년 5월 1일, 노동자대회 집회가 있던 대학로. 정말 이튿날 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고 있었던 것만 빼면, 그 집회는 이명박 정부에 맞선 투쟁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던 자리였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런 결의의 한편에는 노동 운동 지도부의 패배주의도 함께 존재했다.  이명박이 집권 하자마자 보여준 '불도저식 밀어붙이기'에 질려버린 활동가들은, 저런 이명박을 찍은 국민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한동안 선진 활동가들의 고단한 싸움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힘들게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탄압하는 정부와 자본의 매우 전형적인 노/자 대립구도를 자기 내면화하며 긴 투쟁을 준비한 것이다.

 

그러나 5월 2일 저녁, 서울 도심에  어린 여학생을 중심으로 한 무리와 몇몇 시민단체들이 미친 소, 미친 교육을 반대하는 촛불 문화제를 벌였다. 그리고 그것은 일주일, 이주일, 그리고 한달이 조금 넘었을 때는 전국에서 1백만명이 넘게 모이는 집회로 커졌다.

 

좌파 성향의 선진 활동가들에게 무겁게만 느껴졌던 시간의 무게가 이곳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1달이다. 사태의 진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활동가들의 개입은 무척 이나 더뎠고, 끝까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주저 않았다.

 

용산 학살(보통 용산 사태라고 부르지만, 필자는 이것은 그 규모에 상관없이 국가권력에 의한 학살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어날 때, 운동진영은 지난 여름과 가을에 걸친 촛불에서 많은 교훈을 이끌어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용산에서 제2의 촛불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2 촛불이 일어나기 바란 희망이 컸던 만큼 실망도 클 수 있었지만 운동이 이에 대해 기권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제2의 촛불로 옮겨 붙을 수 있는 불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앞의 나의 글에서, 추모기간 동안 현정부에 불만을 가진 급진적 시민들이라 할지라도  스스로의 행동(급진적으로 나아가고자 하여도)을 자제하려 들것이라고 했으며, 이것은 추모 기간이 끝난 시기를 전후로 한 매우 유동적인 정치 상황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점차 국민장이 열리는 금요일로 다가가면서, 그유동성에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글을 쓰는 이순간, 김대중이 이명박에게 한마디 했다고  한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마디 했다. "검찰이 노전대통령의 가족을 조사했는데... 죽는 날까지 검찰은 뚜렷한 증거를 대지 못했다" 

지배계급내 감정적 골이 깊어지고 있음을, 아니면 이미 깊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무현의 죽음, 촛불에 대한 정부 여당의 히스테리, 이러한 상황은 이명박에 대한 반감을 더 부채질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한겨레는 오늘(5/28) "노 전대통령 추모열기, 이 슬픔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제하의 분석기사를 실었다. 기사의 내용을 좀 길게 인용하자면, "문화비평가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문학)는 "이 대통령의 집권 이후 삶의 고통이 커진 상태에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극단적 사건'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여기에 자신의 슬픔을 투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 또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는 '... "보통사람들의 조문은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던 '효율'이나 '경쟁' 등 경제적 가치와 대비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런 뜻밖의 '노무현 신드롬'은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의 부재가 그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역설'을 낳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택광 교수는 "절망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받은 이 슬픔을 다독여줄 이가 없다는 것"이라며 "이 대통령은 그런 '아버지'로서의 자격도, 역할도 이미 포기했고, 사람들도 기대를 접었다"고 말했다 "

 

동아일보는  "이런 큰 충격에는 충분한 애도과정을 거치는 것이 최선...만일 그러지 못할 경우 슬픔이 분노로 변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추모 열기 모두를 반이명박 정서로 해석할 수도 없다. 그것은 억지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를 모두 피억압계급의 허위의식이라고 해석할 수도 없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피억압계급의 의식속에서 저항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했듯이,  역사 행위자들은 체제 내 모순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그에 대하여 저항도 한다. 이를 캘리키코스는 "구조적 능력"이라고 했는데, 무엇보다 개인들이 조직된 행동을 보이려고 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을 때, 그 구조적 능력의 한계가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된다. 

 

어제 27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다수 포함한 연대체가 건설되어 시민추모를 주도하고 있는 듯 하다 아마도 민주노동당 도 여기 포함된 듯 한데, 운동의 기준에서 놓고 보면, 정말이지 오른쪽에 해당하는 사람이나 단체들의 집합체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전체 대중의 기준에서 놓고 보면, 제법 왼쪽의 사람이나 단체도 포함되는 것으로 여겨지리라. 하지만 이러한 추모 자체를 위한 연대체가 지속될리도 없을 뿐더러 전체 운동에 개입하거나 견인할 수 있는  능력에도 한계가 분명하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의 뿌리가 어디서 부터인지 정확히 이해한다면 이런 추모를 위한 시민단체 연대체 류에 굳이 계급 운동에 뿌리를 둔 조직이 들어갈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비판도 가능하다. 어쨌든 이들은 의도했든 안했든 시민들의 분노를 조직하려는데(진정한 조직화는 못 이뤄내겠지만) 일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작년 촛불운동의 원인은 미친교육과 미친 소 반대라는 그 자체가 가지는 쟁점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대한  불신도 불신이지만,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전반의 질서 내지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감과 당시 경제 위기로 나타난 신자유주의의 실패가 복합적으로 드러난 결과적 측면이 더 강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현재 약화되었다기 보다 더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한겨례신문의 분석기사가 다루고 있는 것처럼, 현재의 슬픔의 정체는 "노무현의 죽음"이 직접적으로 던져준 것이지만, 그것은 연결고리였을 뿐, 신자유주의 실패라는 결과 앞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정부에 대한 피억압계급들의 반감이, 이명박 정권이 벌인 전직 대통령(어쩌면 386)에 대한 정치적 복수의 피해자와의 감정적 연민과 뒤섞인 결과라고 해야 옳다.

 

따라서 이제 추모가 거두어지고 나면, 저항이 시작될런지도 모른다. 지금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국민이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들려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선진 활동가들과 조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결합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명박에게 신자유주의 실패와 자본주의는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인정하게 하는 결정적 힘은 촛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된 노동자들에게 있다. 그 반대는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적 연민 만이 남게 되는 일이다.

 

앞서 작년 촛불 운동의 대중과 선진 활동가들의 시간의 무게는 서로 달랐으며 활동가들은 그 시간의 무게에서 끝내 자유롭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도 그런 분위기를 느낀다. 대중의 시간은 활동가들의 시간과 다르다. 대중들이 싸우기 시작했다고 하자. 하지만 활동가들에 비해 뒤쳐졌던 시간을 대중들이 거의 다 따라잡을 수 있을 때 쯤, 그 때는 대중들에게 뻗는 활동가들의 손을 잡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