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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NATO에 반대하는 전 세계의 저항

 

4월 4일 저번 주 토요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나토에 저항하는 시위가 열렸다. 수천명이 참가한 이 집회를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사용하여 막았다. 미국과 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나토가 벌이고 있는 죽음을 부르는 폭력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사진)


나토는 스트라스부르에서 60주년 회의를 열었다. 이번 회의에서 핵심 의제는 아프가니스탄에 더 많은 군대를 보낼지에 관해서 였다. 이미 미국의 바락 오바마는 21,000명의 미군을 아프가니스탄에 보내기로 했으며 영국의 고든 브라운 수상도 군인 천명을 내기로 약속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결국 지난 4일에 NATO 회원국들은 미국의 희망대로 나토군 5천명을 추가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NATO는 얼마전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특히 북한의 무기 개발에 대한 NATO의 비판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많은 북한 사람들이 경제적, 정치적 억압 속에 살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무기개발에 힘쓰는 북한체제 지배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NATO에 속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그럴 자격은 없다. 지금 이 자들이 벌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파키스탄에 확전은 북한 미사일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당면한 위험이기 때문이다.


4월 4일 시위에 참가한 단체 가운데에는 얼마 전 결성된 프랑스의 반자본주의신당(NPA)도 보였다. 반자본주의 신당은 노동조합활동가와 청년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조직해 시위에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칫 비조직적이 되기 쉬운 시위를 잘 이끌었다. 또한 많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반 나토 시위에 참가했다. 이들은 얼마 전 총파업을 한 그리스 노동자들과 공공부문 총파업을 한 독일의 노동자들이다. 경기침체에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면서 한편으로 무기를 만들어 사고 파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한 당연한 분노다. 한국에서도 4월 4일 반전시위가 종로 보신각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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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파병 한국군 철군하고 피랍한국인의 무사귀환 보장하라!



2007.7.26 김승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피랍23인. 8명의 석방 소식을 듣자마자 날아든 비보에 참담하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의 동료들이 지금도 겪고 있을 그 공포를 상상하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니, 그의 죽음은 어떠했을까를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몇 년전 고 김선일씨의 죽음과 최근까지 이어진 이 죽음의 행렬들! 그리고 지금 이 전쟁이 우리에게 남겨준 이 처참함!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부터 왔는지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적국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기는 하나 많지 않은 사람들이 그들의 선교활동을 비난하였다. 그들이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누구를 해한 것이 아닌, 봉사를 위한 것인 한 그들을 탓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처음부터 아프가니스탄은 노무현 정부와 그의 동료들이 선택한 미군을 따라다니는 "군대" 의 파병이 아닌 "민간"의 지원이 더 필요하였다.

 

이들이 한국은 아프간과 무슬림 국가들에 의하여 "적국"이 되어있었던 상황을 무시한 탓을 논하고자 할 수 있으나, 그 탓이 어찌 피랍된 이들에게 돌려져야 하는가? 그것은 옳지 않다. 이들의 생명을 그 같은 공포와 위험에 빠뜨린 것은 그들이 "적국 국민"이었기 때문이었으며, 스스로 적국을 자초하며 부시와 그의 네오콘의 전쟁에 동맹한 한국 정부 그리고 "봉사"로서 "적대행위"를 감추고자 자국 국민을 이 나라에 보낸 한국 정부와 이 전쟁을 지지하는 자들의 무모함 때문이다.

 

피해자

 

새삼스럽게 테러에 의한 피해자를 열거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 정부의 패부가 드러나고 있다;
 

2003년 11월에는 오무전기 직원이었던 고 김만수씨와 고 곽경해씨가 이라크 저항단체에 의해 피격당하여 생명을 잃었다. 2004년 4월에는 두 명의 한국인이 이라크 민병대원들에게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적이 있다. 그리고 며칠 뒤 한국인 선교단체의 7명이 이라크 저항단체에 의해 피랍되었다. 그리고 한 달 뒤 2004년 5월 고 김선일씨가 납치되었다. 이때에는 아예 이 사실을 2주 이상 숨기고 있었지만,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서야 사람들은 알 수 있게 되었고, 24시간이내 철군하지 않는다면 살해하겠다는 위협에 현직 대통령이 파병철회는 없다고 선언하여, 결국 이튿날 팔루자 인근 도로에서 김선일 씨는 참수된 채 발견되었다. 2004년 8월에는 외국언론사 소속이었던 한국인 기자 한명이 피랍, 15시간여 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그리고 2006년 3월에, 팔레스타인에서 KBS특파원 한 명이 팔레스타인 저항단체에 의해 피랍된 적이 있기도 했다.

 

끊임없는 위협이 있었으며, 정부는 서울의 지하철 역사 및 공공시설의 쓰레기통을 전부 치워버렸을 정도였다. 테러의 위협때문임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이 전쟁과 동맹을 맺은 모든 국가에서  이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암살과 테러와 납치가 멈추지 않았다. 결국 이 전쟁의 진정한 피해자는 모든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이 정부는 이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

 

참전은 정부와 국회가 내린 결정이었다. 그들이 전 국민을 대변한다는 자유민주주의의 신념이 결국 오늘의 참상을 불러왔지만, 이들은 아직도 자신의 신념에 수정을 가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 멈추지 않는 죽음의 행렬들이 세계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이들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기 보다, "국익"을 민주주의로 둔갑시키는데 여념이 없었다. 제 국민이 죽고 납치되어도 이를 국익이라 부르거나 '남는 장사'라 부르기를 더 선호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진정으로 누구를 대표해야할 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다. 이 전쟁의 진정한 피해자가 제 국민이 되어있음에 대하여.

 

협상

 

정부는 23인의 생명을 담보로 협상을 벌이고 있다. 무엇을 위한 협상일까? 그리고 대다수 언론들은 한국 정부의 외교력의 시험대에 올랐다고 이야기한다. 한 명이 결국 생명을 잃고 이제 22명. 이들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협상이라 칭하는 것이라면 이는 100% 위선이다.

 

아프가니스탄, 이 테러와의 전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수 만명이 죽고, 병들고 자신의 고향과 집을 떠나 사막과 국경에서 인간 다운 삶은 커녕, 단지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정부가 이 같은 수 만명의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지 못하다. 자신의 나라에서 표류하며 일상적인 테러가 일어나고 있는 나라의 정부가 무엇을 대표할 수 있을까?  아프간 정부는 미국의 대리정권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황폐해져버린 아프가니스탄의 대중들이 미국 정부에 의해 세워진 꼭두각시 정부가 아닌, 탈레반과 같은 무장 저항 단체에 자신의 안위를 맡기는 일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이 과연 군대인가? 이 군대가 제 국민으로 부터 버림받은 정부를 지원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로도 그 국민들로부터 적대를 사기에 충분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지금의 일이 이런 정부와의 외교력을 강조하면서 그 외교력의 시험을 자처하며 협상을 벌일 일일까? 더우기 탈레반이 요구하는 그 포로들의 석방에 주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이 전쟁과 아프간 정부를 지탱하고 있는 미국정부임을 세상이 다 아는 처지에 말이다.


한국정부가 협상을 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22인의 무사귀환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협상이 아니라, 즉각적인 철군 선언과 이 전쟁 동맹으로부터 나오며, 탈레반의 포로들의 석방을 미국에 요구하는 것이다.

 

노무현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속았다고 이야기한다. 뭐든지 잘못되어도 그것이 '노무현 때문'이라는 말들이 심심찮게 들릴 정도다.

 

그는 김선일 씨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을 진 자이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을 테러의 위협에 내맡겨버린 데도 책임을 져야 한다.

 

어디 그 뿐인가? 한,칠레 FTA체결 당시 2명의 농민의 죽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고 이용석씨와 같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죽음, 사람으로서 노동자로서의 삶 그것 하나를 요구했던 고 하중근씨와 수없이 많은 지금도 투쟁하고 있는 KTX 승무원,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외침,그리고 한미FTA반대와 노무현의 퇴진을 요구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한 택시 노동자의 절규! 이 모든 것의 한 가운데에 대통령 "노무현"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말을 아낀다. 고 김선일씨의 죽음에서와 같은 화를 불러들일까 노심초사하는 것일까? 그리고 되려 국민들에게 차분한 대응을 호소한다. 과연. 한 나라의 대통령이다.  한나라당의 두 경선후보나 대통령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자들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후신들! 그들은 이번 피랍이 있고 나서 유독 23인의 피랍에 대해서만큼은 차분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할 지, 어떻게 정권을 잡아야 할지, 헐뜯고, 물어뜯고, 헤쳐모여하는 그 긴박함 속에서 유독 이 23인의 피랍에 대하여만큼은 차분한 것이다. 어찌 이들이 지금의 대통령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 중 누가 대통령이 된다하여도 어찌 지금의 대통령보다 더 나을 수 있을까? 제2의, 제3의 노무현들에 지나지 않다!

 

무사귀환, 즉각적 철군

 

여전히 한 사람의 죽음에 침통한 심정이다. 더우기 남은 22인의 안위도 걱정 그 이상의 심정이다. 모든 한국의 국민과 세계인들이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들의 무사귀환을 정말이지 진심으로 염원한다. 그러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들과 우리 모두를 이토록 불안에 던져 넣어버리고도 무책임한 지금의 정부에게 모든 파병 한국군의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여야 한다. 그것만이 피랍 한국인의 무사귀환을 보장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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