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대학 후반기를 보낸 집들은 꽤 널찍했다.

오래되어 낡은 집을 골라서인데, 그런 집이 방값이 쌌다.

오히려 방이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는 집들은 대개 비싸다. 물론 걔중에는 특별히 비싸 널찍하기까지 한 방도 있다.

 

널따란 방을 고른 건 내 욕심이기도 할 것이다. 경계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이것저것 갖춰놓고 싶은 물욕이 불뚝불뚝 올라오곤 한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모르겠는데, 갖춰놓을 공간이 없다면 굳이 갖다놓지 않았을 것들이 많다. 어떤 공간에서 지내느냐는 내 생활방식의 많은 부분을 좌우한다.

 

며칠전부터 기숙사에 들어와 지내고 있다. 방 하나에는 침대 두개, 책상 두개, 책장 두개 옷장 두개가 있다. 그러고 나면 두사람정도 누을 수 있는 바닥만 남는다. 이런 넓이의 공간에서 지내는 게 몇년만이라 어색한데, 내가 바라왔던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어 설렌다. 굳이 이것저것 갖춰놓을 필요 없이, 당장 생활에 필요한 옷가지 몇벌, 이불, 세면도구, 컵, 노트북, 읽을 책 정도만 있으면 된다.

 

밥을 해먹고, 빨래를 하기 위해 세탁기, 밥솥, 냉장고, 조리기구 등등을 갖춰놓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넓은 방을 청소하느라 청소기까지 있었는데도, 내가 관리할 수 있는 면적을 벗어난 것인지 방바닥은 언제나 지저분했다. 기숙사에는 우선 그런 물건들을 안갖춰놓아도 되니 좋다. 방바닥을 쓰고 닦는 것도 두어바퀴 뒹구르면 될 면적이라 그리 어렵지 않다.

 

어차피 물건정리는 워낙 엉망이라 지낸지 1주일 남짓에, 방바닥 군데군데 책과 짐들이 널어져 있지만, 공간이 좁으니 그리 흉해보이지 않는다. 넓다란 방바닥 가득히 짐이 널어져 있는 건 참 심란하다.

 

그냥 나에게 이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좋겠다고..ㅋ

물론, 밥과 빨래는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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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재생산노동을 공동으로 처리하면 자원이 훨씬 덜들어가는데 말이다.

수십명이 지내는데 세탁기 몇 대면 된단 말이다.

물론, 식당에서 일하고 건물을 청소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저평가된 노동이 있긴하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그것을 각 가정내로 되돌려보내봤자 여성의 노동은 여전히 저평가 된다.

공동으로 수행하느냐, 개별가정에서 수행하느냐가 여성노동 저평가의 쟁점은 아니다.

공동으로 수행하되, 어떻게 같이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