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무렵부터 수능시험 준비를 시작하며 강제로 기숙사에 보내졌다. 밤 12시까지는 잠을 재우지 않고, 아침 6시 반이면 무조건 깨운다. 자율학습이라고 이름붙여진 강제학습 시간이 너무 끔찍했다. 잠이 많은 나는 10시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데, 졸고 있으면 사감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괴롭혔다. 잠이 오는데 잠을 자지 못하고 버텨야 할 때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렀다.

 

이런 것과 더불어 기숙사에 정을 못붙였던 큰 이유는 같이 생활한 사람들에게 있다. 고등학교 기숙사는 성적순으로 강제 입사하는 것이었고, 학교생활에서 중심에 있는 아이들이 모여 지내는 공간이 되었다. 그 아이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 기숙사 안에서 만들어지고, 자신이 의식하든 하지 못하든 무언가 가진 사람들끼리의 관계를 구축해나간다. 요즘, 그런 생활을 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공간에 형성되었던 관계를 소위 인맥이라고 부른다는 걸 그 아이들이 모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기숙사는 한 방을 6명이 썼었는데, 2층침대 3대가 방 안에 들어가고 나면 남는 공간은 통로 밖에 없었다. 방은 잠을 자는 공간일 뿐이었다. 가뜩이나 잠이 부족해 12시 자율학습이 끝나면 바로 방으로 뛰어들어와 자기 위해 누웠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새벽 1시까지 자율학습을 하곤 했다. 방에 혼자 들어와 잠을 청하면 별 탈 없이 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미처 잠들기 전에  애인과 통화를 하기 위해 방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곤 했다. 난 한 번 잠이 들면 잘 깨진 않지만, 잠이 들기까지는 꽤나 예민하다.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면 신경이 곤두서고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그렇게 통화를 하던 사람은 어렸을 때 미국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와 영어를 매우 잘했다. 그렇게 유학을 다녀온 걸로 짐작해보면 집에 돈도 꽤 많은 것 같았다. 물론 성적도 좋았다. 축구도 곧 잘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남자학교를 다니는데 애인이 있기까지 했다.(그 무렵 남녀공학이 아닌 학교에서 이성친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곤 했다. 이성애 중심적인 생각이기도 할테고, 성을 비틀어 바라보던 것도 있었지만 어쨋든, 비슷한 기준을 갖고 있던 또래집단 사이에서 이성친구는 뭔가 특별한 것이었다.) 당시 내 기준으로 보나 지금 되짚어 생각해보나, 그 사람은 어느 것 하나 못가진 게 없었다. 기숙사에는 그렇게 뭔가를 잔뜩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새벽에 공부를 마치고 잠을 자러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통화도 어느정도 마무리되고, 들어온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나는 그 이야기들 까지 다 들어야 한다. 애인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진로에 대한 이야기, 학교에 대한 이야기 등등 자신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생각들이 오갔다. 지금 기억에 남는 특별한 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대화 자체가 공연히 불편해 끼고 싶지 않았다. 설사 그 아이들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기숙사 바깥에 있는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분명 달랐다. 내가 그 대화에 끼기 위해서는 그런 시선을 이해하거나 이해한 척 해야하는데, 어느 편이든 내가 하기 싫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떤 날은 그 아이들의 대화가 새벽 4시 5시까지 이어진다.  내가 속한 대화가 아닌데 듣고 있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미 잠든 척 하느라 숨소리 한 번 크게 못내고, 뒤척이지도 못했다. 몇 시간 동안을 머리속으로는 온갖 생각을 다 하면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게 얼마나 곤욕이던지. 차라리 잠을 못자게 하는 고문이 더 낫겠다 싶기까지 했다.

 

그렇게 그 아이들은 서로 유대감을 쌓아갔고, 졸업 후에도 자기들끼리 틈틈이 만날 것이다. 사실 졸업 후에 그 아이들이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었는데, 요즘 시험 준비로 사람들과 합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가 보았던 그 관계들을 체험했던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는 그 기억이 아무 문제 없는 당연한 것인 듯하고, 그 때 유대를 형성했던 사람들을 지금도 연락하고 만나고 있다 했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사시를 패스했고, 어떤 친구는 무엇을 하고 있고.... 이들 사이에 형성된 이 유대는 인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면서 이미 많은 것을 가진 그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난, 명확하진 않았어도 그게 느껴져서 그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분명히 시선이 서로 다른데, 어느 편에서는 자신의 시선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다른 편에서는 그 시선을 동경한다. 그 때 서발턴 이야기를 알았더라면 진지하게 고민해봤을 것인데..ㅋ

 

기숙사에 머무른지 한달이 조금 넘어 결국 난 퇴사당했다. 12시를 넘어서 하는 자율학습은 선택이긴 했지만 사람들에게는 이미 필수로 받아들여 지고 있었고, 난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었다. 같이 방을 쓰는 사람에게도 사감에게도 난 뭔가 삐뚤어지고 건방진 아이였다. 그 안에서 난 혼자였고 - 혼자가 아니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그게 아쉽다 - 그걸 견디고 있기 싫었다. 기숙사 바깥에는 그래도 같은 편이 될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몇 명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난 그 때도 지금도 많은 걸 가지고 있다. 내가 더 가지려고 하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가지고 있던 걸 놓지도 않았다. 그런 부끄러움이 언제나 나를 괴롭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