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mp3를 구워놓은 씨디가 많이 있길래 그 안에 담긴 파일들을 모두 하드에 옮겨보았다. 대학교 1학년 무렵부터 몇년동안 내가 모아놓고 들었던 음악들의 목록을 훑어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CD에 어떤 밴드의 음반이 하나 밖에 안 담겨 있지만, 다음 CD에는 그 음반 외에 다른 음반이 하나 더 담겨 있기도 하고, 이렇듯 어떤 식으로 듣는 음악의 범위를 넓혀나갔는지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보낸 시간과 기억의 조각들을 이런 식으로 뜻밖에 확인하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떠올려보면 내가 만들었던 컴필레이션 음반도 있는데, 그걸 주위사람들에게 선물하고 꽤나 뿌듯해 했었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난 어느만큼 멀어졌나.

 

CD10장 분량의 mp3가 지금은 DVD 한장에 들어간다. 지금 집에 쌓여있는 수십장의 CD는 정리하고 나면 DVD 몇 장 분량 밖에 안될텐데, 공간을 잔뜩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이 민망해할까 해서 머쓱하다. 불과 5년전만 해도 DVD를 집에서 굽는 건 꽤 드문 일이었단 말이다.

그만큼 사람마다 쥐고 있는 정보의 양은 끝모르고 많아지는데, 우리는 그 중 어느만큼을 담아내고 있을까? 지금은 예전만큼 음악에 탐닉하지 못하는데, 들을 수 있는 음악들이 많아질 수록 쉽게 물리는게 아닌가 싶다. 나를 살펴보면 고등학교 때보다 듣는 음악의 양은 많아졌을지언정, 어떤 음악 하나를 내 안에 담아내는 깊이는 더 얕아졌다. 몇 년 전엔 음악 하나에 심취해 그 음악을 구석구석 머리속에 그려넣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뭐, 그 땐 아예 mp3플레이어라는 게 없었고, 휴대용 기기는 cdp, mdp, 카세트플레이어 등이었는데, 난 cdp살 돈을 못모아 카세트플레이어로만 음악을 들었었다. 이미 절판돼 구하기 힘든 음반을 사기 위해 시내 모든 음반사를 돌아다니던 게 떠오른다. 지금은 설사 구하기 어려운 음반을 찾아야 한다 하더라도 발품을 팔기보다는 손가락에 일을 더 시켜야 한다. 어렵게, 어렵게 원하는 음악을 찾았다 해도 전선을 타고 온 음악은 발품을 팔아 손에 든것보다는 애착이 떨어진다. 옛날에 대한 향수인건가 질문을 던져보는데, 손과 발, 오감을 통해 촉지한 것과 전선을 타고 와서 모니터에 보이는 것 사이에는 그만한 '물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편이 더 맞는 것 같다. 우리는 결국 色의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