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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7강> "인터내셔널과 코뮤니스트좌파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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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7강> 
 
"인터내셔널과 코뮤니스트좌파 역사"
 
 
강사 ㅣ 이형로
 
일시 ㅣ 2024년 11월 30일(토요일) 오후 2시
 
신청 ㅣ https://forms.gle/Yk1fp4297LCd1z7U8 (줌 병행) 
 
 
(이메일 문의 및 신청 : communistleft@gmail.com)
 
 
국제노동자연합(1864-72), 사회주의 인터내셔널(1889-1914),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1919-1928) ... 기회주의, 반(反)혁명 세력에 맞선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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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호를 내면서

코뮤니스트」 20호를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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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축적의 위기에서 비롯된 전쟁과 기후위기의 일상화는 자본에는 이윤추구의 수단으로노동계급에는 고통과 죽음으로 다가오고 있다국제 부르주아지는 선거에 대한 환상과 민족주의를 내세워 노동계급을 무력화시키고 체제 유지와 전쟁에 동원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스라엘에 의한 가자/레바논 인민 학살을 포함하여 현재 전 세계적으로 50여 개의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분쟁에 노출된 인구수가 20억 명에 달하고 1억 800만 명이 난민으로 내몰렸다분쟁 지역 중 여러 곳에서 인종 청소공동체 사이의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또한해마다 기후위기 난민이 증가하고 있지만국제 부르주아지의 대응은 겉으로는 녹색으로 포장하고 뒤로는 자본주의 사회·경제적 관계 보존과 자본축적을 위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제국주의 전쟁에서 한쪽을 지지하는 자본의 좌파에 맞선 국제 코뮤니스트좌파는 일관되게 혁명적 패전주의와 노동자국제주의를 방어했다.

 

그런데 이른바 좌파’ 세력특히 혁명적이고 국제주의적이라고 주장하는 세력 상당수는 ()제국주의’ 또는 차악(次惡)’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에게 한쪽 또는 다른 쪽을 지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그들은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논리로 노동자들에게 한쪽 편을 드는 전쟁 지지를 촉구한다그들은 억압받는 국가(민족)의 노동계급이 지배계급 사이의 전쟁에 총알받이로 동원되어자국 지배계급을 위해 싸우다가 희생당하는 것을 해방을 위한 투쟁으로 왜곡하고 있다하지만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에 '피억압 국가'든 '억압 국가'든 특정 자본주의 세력이 반()제국주의의 한 축을 구성할 수 없다제국주의는 세계 체제이며자본주의 세계 운영의 한 단계이므로 모든 국가는 어떤 식으로든 이 체제에 참여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따라서 모든 국가가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에 참여하는 시대에 진정한 반()제국주의 투쟁은 체제 자체를 전복하는 투쟁뿐이다물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투쟁은 자본주의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이다이른바 '좌파'가 그토록 사랑하는 '()제국주의투쟁은 실제로는 제국주의 사이 투쟁이다그들의 실제 내용은 제국주의의 협력 속에서 한 국가의 지위를 바꾸는 것이다.”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NWBCW 한국위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이번 코뮤니스트」 20호에는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국제 코뮤니스트좌파의 대응과 올해 주요 국가에서 치러진 부르주아 선거를 다뤘다또한코뮤니스트좌파 진영 내부 논쟁자본주의 경제적 토대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등 연재 기사와 코뮤니스트 혁명가 안톤 판네쿡 서평을 실었다그 외에도 현 정세에 참고할 만한 글과 흥미진진한 주제가 풍성하게 실렸다.

 

 특집제국주의 전쟁과 국제주의에는 오늘날의 혁명적 패전주의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평화 요구는 전쟁 게임의 일부이다’, ‘학생 시위 뒤섞인 신호를 실었는데평화주의에 대한 비판과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강조하고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혁명적 패전주의를 다루었다.

 

평화주의자들은 제국주의와 전쟁이 자본주의 체제에 본질적으로 내재하여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자본주의 내의 평화는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적 계략을 숨기기 위한 홍보 수단으로 노동계급을 호도한다그들이 찬양하는 자본주의적 평화는 용어상 모순이다대신전쟁에 대한 유일한 진정한 반대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다.” (‘평화 요구는 전쟁 게임의 일부이다’,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오늘날 혁명적 패전주의는 동지들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나요?

 

현재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혁명가들이 전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의 질문을 전면에 불러일으켰습니다이에 대한 우리의 분명한 답변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혁명적 패전주의',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입니다.

 

우리는 제국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자본주의는 이제 세계적인 체제이며전쟁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세계와 자원을 재분할하기 위한 수단입니다경제 위기의 시기에는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군사적 해결책을 선호합니다전쟁이 가져오는 자본의 파괴는 또한 체제의 수익성을 회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호황이 끝난 지 50년이 지난 지금지배계급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고 자본주의는 새로운 생명선이 필요합니다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가운데 편익 동맹(alliances of convenience)이 형성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어떤 국가 프로젝트도 이 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국지배계급이 강대국 파트너의 공범인 약소국은강대국의 제국주의 체스판에서 졸에 불과하며전시에는 자신의 노동대중과 마찬가지로 강대국이 도구로 이용하고전쟁 후에는 자본주의의 이익을 위해 희생될 뿐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따라서 민족 해방민족의 자결권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역사적 모순이 되었습니다제국주의 전쟁에 계급전쟁으로 맞서는 혁명적 패전주의는 한 세기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오늘날의 혁명적 패전주의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

 

 코뮤니스트 정치에는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노동자에 국가와 민족은 없다’,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전복의 전망’,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을까?’를 실었는데자본주의 위기에서 비롯된 전쟁의 일상화와 기후위기의 배경과 지배계급의 행태와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체제 유지와 제국주의 이익에 복무하는 민족주의기후위기를 통해 이윤추구의 새로운 방법을 구사하는 자본의 적나라한 모습과 왜 노동계급만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인지를 보여준다.

 

자본주의 쇠퇴기에 전쟁은 삶의 방식이 되었다자본주의는 잔인함과 야만성을 더 많은 영역으로 확산할 뿐 인류의 미래를 제공할 수 없다전쟁을 일으킨 자들에게 전쟁을 멈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역사는 전쟁이라는 자본가계급의 살인 기계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노동계급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독일혁명의 위험 때문에 자본가계급이 휴전 협정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지금도 마찬가지이다지배계급은 노동계급이 계급전쟁을 벌일 위험에 처할 때만 전쟁 중단을 고려할 뿐이다오늘날 세계 노동계급이 대대적인 계급투쟁을 즉시 벌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계급투쟁의 확산과 발전만이 그러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오직 노동계급만이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를 전복함으로써 제국주의적 긴장의 물질적 기반을 파괴하고 인류에게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NWBCW 한국위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자유민주주의적 사고와 비판으로 박정희를 비판하는 것은 박정희 신드룸과 박정희 동상을 잠재우기는커녕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대한 집착과 향수만 자극했다마찬가지로 뉴라이트 사관의 극복은 한국 민족주의가 아니라 코뮤니즘을 향한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 속에서 노동자국제주의로 가능하다.” (‘노동자에 국가와 민족은 없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국제에서는 미국영국프랑스의 지배계급이 부르주아 선거를 어떻게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환상을 심어주는지를 분석하고 있다또한북미 지역 노동조합의 한계와 그것을 넘어서는 노동자 투쟁의 절실함과 볼리바르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실었다.

 

모든 선거는 위기이며자유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국민투표가 된다부르주아지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잃고 있다고 선언하며 우리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말한다투표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투표하지 않았으니 불평할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그러나 우리에게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공허한 반동적 활동(자본주의 선거에서 투표)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을 벌이고선거를 집단행동의 대체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을 대안이 있다.

해리스나 트럼프 모두 미국과 세계 자본주의가 나아가는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노동계급은 투표를 통해 계급 지배를 정당화하는 대신누가 당선되든 일어나게 될 경제적 공격과 전쟁 준비에 맞서 스스로 조직하고 싸워야 한다.” (‘미국 민주·공화 양당하나의 썩은 체제’, 국제주의노동자그룹)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과거가 이미 의문을 제기한 문제이다……… 프롤레타리아 여러분우리는 이 선거가 우릴 위하여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체제를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임을 알기에이 모든 것을 거부하자좌파든 우파든 우리의 적들에게 투표하지 말자그들은 모두 우리를 착취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선거에서는 언제나 자본주의가 이긴다!’), 국제주의혁명그룹)

 

 코뮤니스트좌파 진영 내부 논쟁에는 혼돈의 시대'인가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인가?’, ‘또 다른 가짜 인터내셔널’, ‘부르주아지가 조직하는 방법을 실었다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의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 참가 이유와 국제맑스주의경향(IMT)에 대한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의 비판과 포푤리즘에 대한 분석을 소개했다.

 

자본주의의 전복과 새로운 코뮤니스트 세계의 토대 구축은 전 세계 수백만 노동자의 의식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이는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강령을 중심으로 계급을 통합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국제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우리의 과업은 자본주의가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에 대한 선전을 확산하는 것이며이는 나머지 노동계급에 도달할 만큼 충분히 광범위한 운동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이러한 정신과 이러한 동기로 우리는 더 광범위한 계급 저항을 향한 구체적인 단계를 제공하기 위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했다이번 호에 보도된 프라하 국제 모임과 아레초에서 열린 소규모 모임에도 이러한 정신으로 참석했다.” ('혼돈의 시대'인가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인가?‘,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더 오래되고 최근의 이 모든 예는 IMT의 국제주의가 사기이며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에 대해 지지를 표명한다고 주장하는 구호가 거짓말임을 보여준다! IMT는 다른 모든 트로츠키주의 조직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전복을 위한 모든 노동계급의 투쟁을 방해하는 반()혁명의 도구다……… 그러나 일단 '혁명적 패전주의'에 대한 강령을 정확하게 인용하고 나면그들은 구체적 문제로 넘어가서실제로는 기존의 전쟁 전선에 참여하고 노동자들을 제국주의 학살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구분하기 시작한다."[9]. 이는 트로츠키주의에 있어 정치적 입장보다 정치적 실천이 더 결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그리고 그 실천은 제국주의 전쟁을 위한 동원에 끊임없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기사에서 CWO가 쓴 것처럼 파산한 정치적 경향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트로츠키주의는 노동자 투쟁이나 제국주의 전쟁의 영향을 받아 급진화하는 계급 내 소수를 통제하고 탈선시키는 부르주아지의 중요한 도구이며이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더 거대하고 정치화된 계급 대립으로 가는 길을 막는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부활하는 IMT의 정책이다.” (‘또 다른 가짜 인터내셔널’, 국제코뮤니스트흐름)

 

 혁명가에서는 혁명적 맑스주의자로서 안톤 판네쿡을 조명했다안톤 판네쿡(1873-1960)은 노동자 운동에서 엄청난 기복의 시대특히 제1차 세계대전을 끝낸 혁명적 파고를 겪었다판네쿡이 그 사건들에 직접 참여한 기간은 비교적 짧았지만노동계급 역사에서 격동의 시기를 겪었던 판네쿡은 평생 맑스주의자로 남았고혁명적 변혁의 열쇠는 노동계급 대중의 계급의식 발전에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전체적인 전망은 노동계급이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의식을 획득한다는 관념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판네쿡은 다른 평의회주의자들과 다르다그리고 의식은 조직적 형태를 취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판네쿡은 평의회를 이상적인 형태로 보지만혁명적 계급의식은 노동자들 사이의 논쟁과 토론 없이는 도달할 수 없으므로 그 과정에 기초한 이라는 개념도 배제하지 않았다그는 이렇게 말한다잠재적으로 혁명적인 위대한 시기는 당쟁의 소음으로 가득할 것이다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그룹을 형성하여 자신들을 위해 자신들의 생각을 논의하고 동지들을 계몽하기 위해 그 생각을 선전한다이러한 공통된 의견 그룹을 당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그 성격은 이전 세계의 정당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의회주의하에서 이 당들은 서로 다르고 상반되는 계급적 이해관계를 지닌 기관이었다노동계급 운동에서는 이 당들은 계급을 선도하고그 대변자이자 대표로 활동하며지도와 지배를 열망하는 조직이었다이제 그들의 기능은 정신적 투쟁일 뿐이다노동계급은 실천적 행동을 위해 당이 필요하지 않다노동계급은 행동을 위한 새로운 조직…… 즉 평의회 조직을 만들었고행동하는 것은 전체 노동자 자체이며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것도 전체 노동자 자체이다.” (‘혁명적 맑스주의자로서 안톤 판네쿡비평’,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기회주의에 맞선 코뮤니스트좌파의 투쟁에서는 헤르만 호르터의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중 의회주의에 관련된 내용을 실었다헤르만 호르터는 서유럽과 러시아의 정치경제 상황은 다르며따라서 의회주의 전술도 달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의회주의에 대한 이론적 방어에 이어저는 동지의 의회주의 방어에 대해 자세히 답변하고자 합니다동지는 영국과 독일의 의회주의를 (36쪽부터 68쪽까지방어합니다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러시아(그리고 극히 일부 다른 동유럽 국가)에만 유효하며서유럽에는 적용될 수 없습니다앞서 이야기했듯이 바로 그 점이 동지의 실수입니다그것은 동지를 맑스주의자에서 기회주의 지도자로 전락시킵니다이에 따라 맑스주의자이자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의 급진적 지도자인 동지가 서유럽과 관련해서는 기회주의에 빠지게 합니다그리고 동지의 전술이 여기서 받아들여진다면서유럽 전체를 멸망으로 이끌 것입니다이 점은 동지의 주장에 대한 답변에서 자세히 입증하겠습니다.” (헤르만 호르터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문화에서는 낯선 땅에서 노동자로서 삶을 시작하는 소박한 청년의 일상을 소개한 나의 스무 살과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요?‘를 실었다조혜영 시인의 시 미투를 통해 고 박영근 시인이 행한 성폭력 사건을 알게 된 조성웅 시인이 박영근 작품상 반납에 대한 이유와 앞으로의 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글은 조혜영 시인의 요청에 대한 제 화답입니다일생일대의 결단놀라운 용기를 보여준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저의 지지와 격려입니다문단 내에서 그녀의 삶이 안전하게 보장되고 노동자 시인으로서의 긍지가 지켜지기를상처가 아물어 치유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기원입니다……

저는 조혜영 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줄 수 있는 이 한 사람이 되고 싶고우리가 조혜영 시인의 이 한 사람이 되자고 제안하기 위해 박영근 작품상을 반납하고자 합니다.” (조성웅,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요박영근 작품상을 반납합니다’)

 

 코뮤니스트좌파 역사에서는 창립 45주년을 맞이한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탄생 배경과 간략한 연표를 실었다.

 

이번 코뮤니스트」 20호에는 자본축적의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경제 분석부터 지배계급의 반동적 전쟁과 여기에 맞서는 국제 코뮤니스트좌파들의 원칙(노동자국제주의), 역사투쟁을 깊게 다루었다.

 

미래는 노동자의 것이다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여전히 그것을 알지 못한다.” (안톤 판네쿡, 1907)

 

다시 한번 소개하는 안톤 판네쿡의 생애와 사상은 노동계급에 영감을 불어넣기에 부족함이 없다앞으로도 우리는 독자와 지지자들의 격려와 다양한 의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일 것이다.

 

한국-북한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반대!

자본가 정권 타도제국주의 전쟁 타도!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자본주의 전복을 향한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민족에 맞선 민족이 아니라 계급에 맞선 계급으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2024년 11월 9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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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전국노동자대회 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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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전국노동자대회 전단>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년 8개월이 넘었고,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조직적인 학살도 1년이 넘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1만 명 넘게 사망했고, 양측의 군사 사상자는 50만 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가자 지구에서는 사망자가 42,000명을 넘어섰고, 이 중 45%는 어린이였다. 레바논에서도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으로 2,000명 넘게 사망하고, 1만 명 가까이 다쳤다. 이 무자비한 전쟁 폭력 속에서도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계속 돈을 쏟아붓고, 러시아는 계속 공세를 유지하면서 희생자를 늘려가고 있다. 게다가 심각한 체제-정권의 위기에 빠진 한국과 북한의 통치자들이 위기 모면의 수단으로 이 전쟁에 개입하려고 하면서 제국주의 전쟁의 불길이 한반도에 옮겨붙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향하는 자본주의
 
오늘날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에서 이러한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결과는 필연적으로 전 세계 노동계급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적 투쟁, 즉 제국주의적 쟁탈전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전쟁은 지난 120년 동안 거의 끊임없이 이어졌다. 현재에도 전 세계에서 50여 개의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있고, 전쟁의 평균 지속 기간도 길어졌다. 2023년 기준으로 분쟁에 노출된 인구수가 20억 명에 달하고 1억 800만 명이 난민으로 내몰렸다. 분쟁 지역 중 여러 곳에서 인종 청소, 공동체 사이의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60년 동안의 성장률 하락으로 인해 위기가 심화하자 세계 자본가계급은 체제 유지를 위해 지난 40년 동안 세계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화해 왔고,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부채로 미래를 저당 잡히며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임금, 연금, 사회 서비스의 삭감을 동반한 대규모 투기가 발생했고, 극소수의 부유층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다수 인류는 가난해지는 세상이 되었다. 여기에 자본주의 생산이 지구에 초래한 환경 재앙까지 더해지고, 세계 경제 위기로 인해 점점 더 많은 국가가 붕괴하거나 이웃 국가를 공격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망의 지형 변화는 생활 수준에 대한 위협과 기후 변화로 인한 환경 재앙이라는 측면에서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자재 확보 경쟁은 분쟁의 핵심인데, 원자재가 중요한 이유는 세계 지배를 위한 제국주의 패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대전의 근처에 와 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레바논 등에서 주민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주변에 어떤 일이 닥칠지를 보여준다. 제국주의 전쟁은 전면전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히 양측 군대 또는 두 국가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두 제국주의 이해관계 사이의 전쟁이다. 그 이해관계는 모든 지역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이다. 자본가계급이 '국가'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국가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희생당한다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일이다.
 
진정한 반(反)제국주의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계급전쟁
 
전쟁은 자본의 위기로 인해 발생한다. 자본가계급은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그런데 그 전쟁은 지배계급의 이념에 종속된 노동계급이 벌이는 전쟁이기도 하다. 전쟁과 관련하여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노동계급을 이용하는 이념은 ‘민주주의’, ‘국가-민족’ 방어 또는 ‘국의 수호 등 다양하게 포장되어 있다. 지금 진행 중인 두 전쟁도 민족주의 기치 아래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노동자들이 착취자를 위해 죽고, 자기 계급의 이익을 잊도록 세뇌하는 대표적인 거짓 이념이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민족(해방)투쟁이 진보적인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지지했지만, 오늘날에는 이러한 민족투쟁이 억압받는 민족 노동계급의 임무가 아니라 경쟁하는 제국주의 국가 사이에서 지속적인 분쟁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러한 투쟁은 어떤 경우에도 제국주의를 약화하지 않는데, 제국주의의 뿌리, 즉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제국주의 시대에 ’진정한 반(反)제국주의 투쟁은 체제 자체를 전복하는 투쟁뿐이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은 모든 형태의 민족주의와 전쟁을 거부하고 자본주의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평상시에는 과잉 착취당하고, 전쟁 시에는 학살당하는 노동계급은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노동계급이 무언가를 위해 일하고 때때로 희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 계급의 적(敵)인 자본가계급의 이익이 아니라 오로지 노동계급의 이익이어야 한다. 이는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와 지구 생태를 위한 이익이다. 자본주의는 오래전에 세계 인류 공동체를 위한 사회, 경제적 기반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중단하고, 계속 쇠퇴하고 있다. 
 
이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전복해야 한다. 지금 인류와 지구에 필요한 것은 임금 노동, 화폐, 국가가 없는 새로운 사회, 바로 코뮤니즘이다.
 
 
 
생존권 위협, 전쟁 위기에 맞서
노동계급의 반격! 자본가 정권 타도!
 
 
몰락하는 윤석열 정권의 러-우 전쟁 개입 반대!
 
윤석열 집권 2년 반은 자본주의 위기 심화 속에서 자본가 독재의 폭력성과 총체적 무능을 보여주었다. 윤석열 정권은 시작부터 노동계급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노조 탄압, 부자 감세, 대기업 규제 완화, 민영화 추진, 복지 축소 등 자본주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뿐인가. 물가 폭등, 실질임금 하락, 가계부채 증가 등으로 생활 수준은 계속 악화하고, 사회적 참사에 대한 책임 회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옹호, 채상병 사건 수사 방해, 의정 대란 등으로 일상적인 삶마저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미, 일 제국주의 세력과 동맹을 강화하면서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를 조장하고,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으로 제국주의 전쟁에 개입했다. 이렇게 노골적인 반(反)노동, 친(親)자본, 친(親)제국주의 정책으로 일관하던 윤석열 정권이 임기 절반을 앞두고 가족과 본인에 대한 끝없는 의혹으로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거의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들어섰다.
 
선택지가 없는 윤석열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처럼, 북한의 파병설로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모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에 맞서 노동계급은 제국주의 전쟁 개입 자체를 반대해야 한다. 북한군 파병설과 윤석열 정권의 살상 무기 지원과 관련해 노동계급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파병-무기 지원에 대한 정당성 여부가 아니라 양측의 정권이 개입하려는 전쟁의 본질과 노동계급의 희생이다.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모든 군사동맹은 무슨 명분이든 지배계급을 위한 동맹이다. 그것은 제국주의적 질서를 위한 동맹일 뿐이며,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원리이다.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떠한 군사개입(파병, 무기 지원)도 반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노동계급을 대규모로 살상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군이 파병된다면 유럽의 전장에서 총알받이가 되거나 우크라이나 노동계급 군인을 죽이는 역할을 할 것이며,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량 살상무기는 러시아 노동계급 군인과 민간인을 학살하는 데 사용된다. 그것은 결국 제국주의 전쟁의 확장과 한반도 전쟁 위기를 고조시켜 양측의 노동계급에 큰 고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노동계급의 반격! 자본가 정권 타도!
 
그동안 자본가 독재의 폭주에 맞서 제대로 싸우지 못했던 노동자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되어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윤석열 정권은 스스로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노동계급의 대대적인 반격 없이는 '퇴진' 이후에도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다. 노동자와 수많은 사람을 고통과 죽음으로 내몬 윤석열 정권을 퇴진시키는 일은 노동계급의 당연한 과제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이 단지 부패하고 무능해서가 아니라 현재 위기의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투쟁은 더 나아가야 한다. 그동안 자본가 정권이 강요한 모든 굴욕과 희생을 거부하고, 생존권 투쟁을 전면화하여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야 한다. 그동안 노동자 투쟁을 교란하고 후퇴시켰던 야권연대, 조합주의, 선거주의를 넘어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확산하고 자본가 정권 타도를 위한 계급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경제위기, 전쟁 위기, 노동자 희생이라는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기에 노동계급의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계급전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2024년 11월 9일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한국위원회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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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4년 20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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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4년 20호
 
 
차례
 
 「코뮤니스트」 20호를 내면서  
 
□ 코뮤니스트 정치
▸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 노동자에 국가와 민족은 없다 
▸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전복의 전망 
▸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을까? 
 
□ 특집, 제국주의 전쟁과 국제주의
▸ 오늘날의 혁명적 패전주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 평화 요구는 전쟁 게임의 일부이다 
▸ 학생 시위 : 뒤섞인 신호 
 
□ 국제
▸ 미국 : 민주·공화 양당, 하나의 썩은 체제 
▸ 영국 : 노동당이 이겼지만, 노동계급의 승리가 아니다 
▸ 프랑스 : 선거에서는 언제나 자본주의가 이긴다! 
▸ 볼리바르 '사회주의'의 허세 
▸ 전투적 노동절이 필요한 노동계급 
 
□ 코뮤니스트좌파 진영 내부 논쟁
▸ '혼돈의 시대'인가,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인가? 
▸ 또 다른 가짜 인터내셔널 
▸ 부르주아지가 조직하는 방법 
 
□ 혁명가
▸ 혁명적 맑스주의자로서 안톤 판네쿡 : 비평 
▸ 계급투쟁에 관한 5가지 테제 - 안톤 판네쿡 
 
□ 코뮤니스트좌파 역사
▸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창립 45주년 
 
□ 이론
▸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 (4부) 
▸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 (5부) 
 
□ 기회주의에 맞선 코뮤니스트좌파의 투쟁
▸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3) 
 
□ 문화 
▸ 나의 스무살 
▸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요? 
 
□ 코뮤니스트 정신 계승
▸ 올리비에를 추모하며  
▸ 올리비에 동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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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전복해야 한다
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은 임금 노동화폐국가가 없는 새로운 사회바로 코뮤니즘이다.
 
 
□ 가격 :  20,000원 
□ 구입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코뮤니스트」20호는 2024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배포/판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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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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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년 8개월이 넘었고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조직적인 학살도 1년이 넘었다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1만 명 넘게 사망했고양측의 군사 사상자는 50만 명을 넘어섰다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가자 지구에서는 사망자가 42,000명을 넘어섰고이 중 45%는 어린이였고거주자의 90%가량인 190만 명이 피란민으로 내몰렸다레바논에서도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으로 2,000명 넘게 사망하고, 1만 명 가까이 다쳤다이 무자비한 전쟁 폭력 속에서도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계속 돈을 쏟아붓고러시아는 계속 공세를 유지하면서 희생자를 늘려가고 있다게다가 심각한 체제-정권의 위기에 빠진 한국과 북한의 통치자들이 위기 모면의 수단으로 이 전쟁에 개입하려고 하면서 제국주의 전쟁의 불길이 한반도에 옮겨붙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향하는 자본주의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의 전쟁은 훨씬 더 광범위한 세계적 갈등으로 가는 첫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으며자본주의가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경제 위기와 제국주의 긴장이 최고조로 달한 상황에서 벌어진 두 전쟁은 수많은 분쟁 지역 중 일부가 터졌을 뿐이며또 다른 분쟁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두 전쟁은 특히어느 쪽도 타협할 수 없는 수십 년에 걸친 분쟁의 산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이러한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그것은 적()-경쟁국의 완전한 패배로만 끝날 수 있는데주로 경제적 고갈로 인해 잠시 멈췄다가 언젠가 다시 발발할 뿐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에서 이러한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난다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결과는 필연적으로 전 세계 노동계급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적 투쟁즉 제국주의적 쟁탈전으로 이어진다기존 자본과 비교해 잉여가치의 양이 감소할수록 이 쟁탈전은 더욱 폭력적으로 변해 결국 전쟁을 일으킨다이러한 전쟁은 지난 120년 동안 거의 끊임없이 이어졌다. 1914~1918년과 1939~1945년에는 '세계대전'이라고 불리는 제국주의 대학살 전쟁이 있었고그 후로도 전쟁은 거의 모든 대륙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다현재에도 전 세계에서 50여 개의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있고전쟁의 평균 지속 기간도 길어졌다이에 따라 2023년 기준으로 분쟁에 노출된 인구수가 20억 명에 달하고 1억 800만 명이 난민으로 내몰렸다분쟁 지역 중 여러 곳에서 인종 청소공동체 사이의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60년 동안의 성장률 하락으로 인해 위기가 심화하자 세계 자본가계급은 체제 유지를 위해 지난 40년 동안 세계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화해 왔고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부채로 미래를 저당 잡히며 유지하고 있다그 결과 임금연금사회 서비스의 삭감을 동반한 대규모 투기가 발생했고극소수의 부유층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다수 인류는 가난해지는 세상이 되었다이에 따라 세계 자본주의는 경제사회환경건강까지 모든 영역에서 엄청나게 복잡한 모순이 발생하고 있고이 체제는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

 

여기에 자본주의 생산이 지구에 초래한 환경 재앙까지 더해지고세계 경제 위기로 인해 점점 더 많은 국가가 붕괴하거나 이웃 국가를 공격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망의 지형 변화는 생활 수준에 대한 위협과 기후 변화로 인한 환경 재앙이라는 측면에서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원자재 확보 경쟁은 분쟁의 핵심인데원자재가 중요한 이유는 세계 지배를 위한 제국주의 패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평화로운 선택지가 바닥난 국제 자본가계급은 점점 더 일반화되는 제국주의 분쟁의 각본을 쓰고 있으며이들은 모두 경쟁국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그 결과 제국주의 경쟁특히 세계 주요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제국주의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자본주의 전쟁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끔찍한 잔인함을 초래한다그러나 최종적인 '승자'에게는 시장 경쟁자를 제거하고 그들의 영토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으며이는 구조적 위기에 처한 현대 경제의 생산 요구에 유용하다이는 원자재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의미하며또한 이윤율을 높이려는 시도이며결과적으로 자본 자산과 가치의 파괴를 통해 축적 주기를 새롭게 시작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오늘날 자본주의는 우크라이나에서 중동과 홍해콩고에서 수단에 이르기까지모든 곳에서 무력 분쟁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세계 노동계급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쇠퇴하는 자본주의가 인류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미래는 파괴와 죽음전례 없는 잔인한 야만으로 가득 찬 미래다.

 

우리는 세계대전의 근처에 와 있다오늘날 우크라이나가자지구레바논 등에서 주민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주변에 어떤 일이 닥칠지 미리 보여준다제국주의 전쟁은 전면전을 의미한다이것은 단순히 양측 군대 또는 두 국가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두 제국주의 이해관계 사이의 전쟁이다그리고 그 이해관계는 모든 지역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이다자본가계급이 '국가'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들은 국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생산수단과 국가를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희생당한다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민족주의’ 기치 아래 벌어지는 전쟁민족(해방투쟁의 성격

 

1914년 민족주의라는 바이러스는 1차 세계대전의 학살로 이어졌다심지어 대부분의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조합도 민족주의에 감염되어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결의를 포기했다이들 모두는 노동자들을 학살에 나서게 부추기고 파업권을 포기할 구실을 찾았다소수의 국제주의자만이 전쟁에 반대했고 그들 대부분은 지금의 우리처럼 조롱을 받았다.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하라는 레닌의 요구가 전쟁 반대 투쟁을 사회주의 투쟁으로 만들겠다는 침머발트 좌파의 결의안에 반향을 일으키기까지 거의 1년이 걸렸다.

 

전쟁은 자본의 위기로 인해 발생한다자본가계급은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그런데 그 전쟁은 지배계급의 이념에 종속된 노동계급이 벌이는 전쟁이기도 하다전쟁과 관련하여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노동계급을 이용하는 이념은 민주주의’, ‘국가-민족’ 방어 또는 국의 수호 등 다양하게 포장되어 있다지금 진행 중인 두 전쟁도 민족주의 기치 아래 벌어지고 있다이러한 민족주의는 노동자들이 착취자를 위해 죽고자기 계급의 이익을 잊도록 설득하는 대표적인 거짓 이념이다자본주의 초기에는 자본가계급의 민족투쟁이 진보적인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코뮤니스트들이 지지했지만자본주의 쇠퇴기에는 이러한 민족투쟁이 자국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이 서로를 학살하는 광범위한 제국주의 투쟁의 일부가 되었다오늘날 민족투쟁은 노동계급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반()혁명적인 것이 되었다.

 

그런데 이른바 좌파’ 세력특히 혁명적이고 국제주의적이라고 주장하는 세력 상당수는 ()제국주의’ 또는 차악(次惡)’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에게 한쪽 또는 다른 쪽을 지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그들은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논리로 노동자들에게 한쪽 편을 드는 전쟁 지지를 촉구한다그들은 억압받는 국가(민족)의 노동계급이 지배계급 사이의 전쟁에 총알받이로 동원되어자국 지배계급을 위해 싸우다가 희생당하는 것을해방을 위한 투쟁으로 왜곡하고 있다하지만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에 '억압받는 국가'든 '억압 국가'든 특정 자본주의 세력이 반()제국주의의 한 축을 구성할 수 없다.

 

제국주의는 세계 체제이며자본주의 세계 운영의 한 단계이므로 모든 국가는 어떤 식으로든 이 체제에 참여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물론 제국주의 체제에 참여하는 것은 동등하지 않다약소국은 강대국의 하위 파트너 또는 강대국 블록의 하위 구성원으로서 참여한다따라서 모든 국가가 제국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약소국의 경우 이러한 야망을 사실상 실현할 수 없다제국주의의 근간은 잉여가치를 지배적인 제국주의 열강에 이전하는 과정이며이러한 이전이 모든 국가에 혜택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이 과정의 주요 수혜자이자 지배자는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국과 유럽일본 등의 제국주의 강대국 자본이다여기서 주변국(군소 강대국)의 역할은 강대국의 하수인 역할이다이들의 역할은 주로 노동자들의 잉여가치가 이들을 착취하는 제국주의 강대국 자본으로 원활하게 이전되도록 하는 것이다다시 말해그들이 속한 지역에서 자본의 지배가 위협받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다자본주의 체제를 지배하는 강대국의 지배력과 그로 인한 특권은 중국러시아인도브라질 등 신흥 강대국으로부터 항상 위협을 받지만신흥 강대국의 도전이 체제 전체의 작동 방식을 바꾸지는 않는다. 20세기에 보았듯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 주도권은 바뀌었지만세계 체제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진정한 반()제국주의 투쟁은 자본주의 전복을 향한 계급전쟁

 

따라서 모든 국가가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에 참여하는 시대에 진정한 반()제국주의 투쟁은 체제 자체를 전복하는 투쟁뿐이다물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투쟁은 자본주의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이다이른바 '좌파'가 그토록 사랑하는 '()제국주의투쟁은 실제로는 제국주의 사이 투쟁이다그들의 실제 내용은 제국주의의 협력 속에서 한 국가의 지위를 바꾸는 것이다아프리카남미베트남의 유명한 해방 투쟁은 실제로 여러 국가의 지위를 미 제국주의의 고객에서 러시아 제국주의의 고객으로 바꾸기 위한 투쟁이었다최근 아프리카아시아남미 국가들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방향을 바꾸려는 노력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민족(해방)투쟁은 억압받는 민족 노동계급의 임무가 아니라 경쟁하는 제국주의 국가 사이에서 지속적인 분쟁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하게 되었다그러한 투쟁은 어떤 경우에도 제국주의를 약화하지 않는데제국주의의 뿌리즉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민족투쟁이 제국주의 블록 하나를 약화하면그와 더불어 단지 다른 하나를 강화할 뿐이다따라서 제국주의 전쟁에서 한쪽 편을 들어 노동계급 운동이 발전한다거나 혁명적 국제주의의 부활에 이바지한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다어떤 구실이나 명분으로도 전쟁에 참여해서 전쟁에 맞설 수는 없다반대로 국제주의자의 첫 번째 임무는 민족 자본가계급과 국제 제국주의의 수많은 촉수로부터 노동계급을 해방하는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모든 형태의 민족주의와 전쟁을 거부하고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위한 혁명적 대안을 옹호해야 한다.

 

한국과 북한 정권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에 대해서도 노동계급은 양측 모두를 거부해야 한다북한군 파병설과 윤석열 정권의 살상 무기 지원과 관련해 한국과 북한의 노동계급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파병-무기 지원에 대한 정당성 여부가 아니라 양측의 정권이 개입하려는 전쟁의 본질과 노동계급의 희생이다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모든 군사동맹은 무슨 명분이든 지배계급을 위한 동맹이다그것은 제국주의적 질서를 위한 동맹일 뿐이며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원리이다노동계급이 자본주의-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떠한 군사개입(파병무기 지원)도 반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노동계급을 대규모로 살상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북한군이 파병된다면 유럽의 전장에서 총알받이가 되거나 우크라이나 노동계급 군인을 죽이는 역할을 할 것이며마찬가지로 한국의 대량 살상무기는 러시아 노동계급 군인과 민간인을 학살하는 데 사용된다그것은 결국 제국주의 전쟁의 확장과 한반도 전쟁 위기를 고조시켜 양측의 노동계급에 큰 고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쇠퇴기에 전쟁은 삶의 방식이 되었다자본주의는 잔인함과 야만성을 더 많은 영역으로 확산할 뿐 인류의 미래를 제공할 수 없다전쟁을 일으킨 자들에게 전쟁을 멈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역사는 전쟁이라는 자본가계급의 살인 기계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노동계급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독일혁명의 위험 때문에 자본가계급이 휴전 협정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지금도 마찬가지이다지배계급은 노동계급이 계급전쟁을 벌일 위험에 처할 때만 전쟁 중단을 고려할 뿐이다오늘날 세계 노동계급이 대대적인 계급투쟁을 즉시 벌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계급투쟁의 확산과 발전만이 그러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오직 노동계급만이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를 전복함으로써 제국주의적 긴장의 물질적 기반을 파괴하고 인류에게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평화의 시대에는 과잉 착취당하고 전쟁의 시대에는 학살당하는 노동계급은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노동계급이 무언가를 위해 일하고 때때로 희생해야 한다면그것은 오로지 우리 계급의 적()인 자본가계급의 이익이 아닌 노동계급의 이익이어야 한다그것은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와 지구 생태를 위한 이익이다자본주의는 오래전에 세계 인류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경제적 기반을 발전시키는 진보적 역할을 중단했다이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전복해야 한다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은 임금 노동화폐국가가 없는 새로운 사회바로 코뮤니즘이다.

 

한국-북한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반대!

자본가 정권 타도제국주의 전쟁 타도!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자본주의 전복을 향한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2024년 11월 5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한국위원회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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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9호] 레닌과 레닌주의

레닌과 레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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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혁명가들이 살아 있는 동안억압하는 계급은 끊임없이 그들을 괴롭혔고가장 야만적인 악가장 격렬하게 증오하고 가장 파렴치한 거짓말과 비방 캠페인으로 그들의 이론을 받아 들였다그들의 죽음 이후그들을 해가 없는 상징으로 바꾸고말하자면 신성시하고억압받는 계급의 위로를 위해 그리고 후자를 속이기 위한 목적으로 그들의 이름을 어느 정도 거룩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혁명 이론의 실체를 빼앗고 혁명적인 예리함을 무디게 하고 저속하게 만든다오늘날 부르주아지와 노동운동 내 기회주의자들은 맑스주의에 대한 이러한 도용에 동의하고 있다그들은 이 이론의 혁명적 측면즉 혁명적 영혼을 생략하거나 모호하게 하거나 왜곡한다그들은 부르주아지가 수용하거나 수용할 수 있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고 찬양한다.” (레닌국가와 혁명, 1917)

 

레닌의 시신이 방부 처리되어 모스크바에 공개 전시된 지 100년이 지났는데이는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레닌의 진정한 공헌을 체계적으로 왜곡하는 것과 더불어 '붉은부르주아지의 기괴한 제스처였다시대가 변하면서 러시아는 더는 레닌을 '건국의 아버지'로 여기지 않고 제국 붕괴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묻고 있으며()동구권의 많은 국가에서는 '()코뮤니즘화'의 목적으로 레닌 동상이 철거되고 있다따라서 레닌 서거 100주년은 큰 틀에서 보면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위기와 전쟁의 세계에서 '코뮤니즘사상은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지난 수십 년 중 그 어느 때보다 인기가 높은 것 같다따라서 자본주의 너머 세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애매모호한 기념일은 '코뮤니즘'이 라는 개념과 함께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한 사람을 다시 돌아볼 기회이다.

 

레닌집단적 조직가

 

1870년 레닌은 오늘날 상류층 가정으로 묘사되는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Vladimir Ilyich Ulyanov)로 태어났다아버지는 농노 출신이었지만대학에 진학하여 교사가 되었다어머니 역시 교사 자격을 갖추고 있었지만대부분 시간을 자녀를 양육하면서 보냈다일곱 형제가 있었는데그중 두 형제는 유아기에 사망했다자유주의적이고 보수적인 부모의 설득에도 자녀 중 다섯 명은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장남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Aleksandr Ulyanov)는 대학 재학 중 나로드나야 볼랴(Narodnaya Volya)에 가입했는데암살 음모 혐의로 체포되어 1887년 차르 당국에 의해 처형당했다이 사건이 레닌이 사회주의에 관심을 두게 된 직접적인 동기였는지 모르겠지만그 후 2년 동안 지역 도서관을 뒤져 급진적인 서적을 찾다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의 저작과 칼 맑스의 자본을 접하게 되었고곧 나로드냐와 맑스주의 연구 서클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은 제국 전역에 퍼져 있는 혁명 세포와 연구 서클이 정치적으로 이질적인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었다레닌은 특히 게오르기 플레하노프(Georgi Plekhanov)와 베라 자술리치(Vera Zasulich) 등이 주도한 '노동해방그룹의 맑스주의 사상에 매료되었다그는 1895년 노동계급 해방을 위한 투쟁 연맹을 설립했고곧 체포되었다.

 

감옥과 망명지에서 그는 사회주의 운동 내에서 나로드닉 사상을 반박하기 위해 경제 문제를 연구했다(사회주의혁명당(SR)이 창당된 이후에도 계속 유지됨). 레닌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 러시아에 자본주의적 사회관계가 존재한다.

• 더 많은 수의 농민이 아닌 노동계급이 미래의 혁명에서 주도 세력이 될 것이다.

• 이 혁명은 사회주의(계급제 파괴를 목표로 한 자본가계급과의 투쟁)와 민주주의(정치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절대주의와 투쟁과제를 모두 결합하게 될 것이다.

• 러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던 혁명가들은 이후 과제에 맞서기 위해 하나의 통합된 정당으로 뭉쳐야 했다.

 

사회주의 운동 통일을 레닌 홀로 추진한 것은 아니었으며, 1898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RSDLP) 1차 대회가 민스크에서 열렸다그러나 경찰의 탄압과 내부 다툼으로 인해 새로운 RSDLP는 주로 이름만 존재했다레닌의 수정주의와 경제주의에 대한 비난이스크라를 중앙당 기관지로 만들려는 시도, 1902년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은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당시 레닌은 러시아에서 부상하는 계급 운동에 개입할 수 있는 정치적조직적 일관성을 갖춘 당을 건설하기 위해 직업 혁명가들로 구성된 고도로 중앙집권적인 조직을 주장했다이러한 당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레닌은 동맹 중 일부와 결별하게 되었고, 1903년 제2차 RSDLP 대회에서는 당원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사소한 정의 차이로 인해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라는 두 당파가 등장하게 된다그러나 그 이면에는 1905년 혁명에서 드러난 실질적인 정치적 차이가 있었다.

 

레닌혁명적 국제주의자

 

1905년 사건은 정교회 사제에서 경찰 스파이로 변신한 가퐁 신부가 이끄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평화 시위가 차르에게 탄원서를 제출하려는 의도로 별다른 생각 없이 시작되었다그런데 그들은 소총 공격을 받게 되었다이 학살 사건은 러시아 제국 전역 대중의 분노를 일으켜 시위파업봉기그리고 노동자 평의회(소비에트)의 창설을 촉발했다. 1905년은 노동계급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조직에 불을 지피는 시기였다.

 

레닌은 1905년 혁명이 발발했을 때 망명 중이었지만, 1789, 1848, 1871년 혁명을 연구하며 통찰력을 얻기 위해 사건을 면밀히 추적했다그는 러시아 제국의 거리와 공장에서 볼셰비키 동지들에게 파업을 연장하고노동자들이 무장할 것을그리고 군인들이 정부에 대항할 것을 촉구했다차르가 두마(의회)의 설립과 언론 및 결사의 자유를 약속하는 10월 선언을 선포한 후 레닌은 러시아로 돌아왔다그는 이제 당이 새롭게 부상하는 노동계급 요소에 개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민주적 중앙집권주의를 기반으로 당을 변화시키기 위해 싸웠으며모든 상급 기관이 선거를 통해 선출되고 책임을 지며 소환될 수 있도록 했다볼셰비키와 멘셰비키는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같은 당이었지만두마 선거를 통해 분열의 깊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볼셰비키가 봉기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수립을 요구했지만플레하노프와 파벨 악셀로드 같은 멘셰비키 지도자들은 바로 이때 입헌민주당이나 카데트(Kadets)와 같은 부르주아지의 진보적 요소와 의회 연정을 제안하고 있었다.

 

이 혁명적 열기의 시기에 볼셰비키는 역동적인 조직이 되었고, 1907년에는 4만 명이 넘는 당원을 확보했으며그중 대다수가 노동자였다레닌은 1902년 악명 높은 팸플릿에서 공식화한 전술이 정치적조직적 일관성의 토대를 마련했지만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이야기했다차르가 모든 자유주의 개혁을 되돌리면서 촉발된 반()혁명 시기는 새로운 문제도 생겨났다많은 사람이 체포되어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DLP)의 세력이 약화하면서 분파주의가 더욱 심해졌다레닌은 다시 망명길에 올랐고그곳에서 당 조직(악셀로드와 멘셰비키 청산파 반대), 맑스주의 정통성(알렉산더 보그다노프와 볼셰비키 사이에서 맑스주의 영향력 반대), 민족의 자결권(폴란드독일러시아 당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와 그녀의 추종자 반대논쟁에 참여하게 된다.

 

러시아에서 점진적으로 부활하던 노동계급 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혼란에 빠졌다레닌의 관심은 이제 국제무대로 옮겨져 제인터내셔널 붕괴와 배신의 원인을 파악하고 자본주의 제국주의 본질을 설명하고자 했다침머발트와 키엔탈에서 열린 회의에서 그는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주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고혁명가들이 제인터내셔널로 재결집할 수 있도록 투쟁했다. 2월 혁명이 발발하자 그는 러시아로 돌아와 자신의 관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레닌은 러시아 제국 전역에서 다시 생겨나고 있는 소비에트가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을 가능하게 하고더 발전된 서구 혁명과 연대함으로써 사회주의를 의제로 삼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봉기해야 한다는 그의 요구는 처음에는 당내 일부의 반대에 부딪혔지만볼셰비키 대중은 이를 열렬히 받아들였다볼셰비키는 당원 수가 급증하여 당시 약 20만 명으로 늘어났고, '소비에트에 모든 권력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점차 운동 내 주요 정치 세력으로 부상했다. 10월 혁명의 발발은 전 세계에 혁명의 물결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레닌정부의 수반

 

소란스러운 절차 끝에 2차 전 러시아 소비에트 회의는 권력 이양을 승인하고 새로운 중앙집행위원회(VTsIK)를 선출했으며중앙 집행위원회에 인민위원회(소브나르콤)를 구성하는 임무를 맡겼다레닌은 이 새로운 기구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볼셰비키는 러시아 코뮤니스트 당으로 재조직하고 제인터내셔널 창당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10월 이후 6개월 동안 소비에트 원칙은 러시아 전역으로 확대되었고노동자와 농민은 착취와 억압의 체제를 뒤집기 시작했다역사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례인 파리 코뮌은 72일 동안만 지속하다가 잔인하게 진압되었기 때문에 본받아야 할 청사진이 없었다그러나 초기의 혁명적 열정이 객관적 현실을 감출 수 없었다노동자들이 물려받은 러시아는 기근과 전염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수년간의 전쟁과 혁명으로 경제는 엉망이었다뿐만 아니라다른 나라에서 혁명이 실패하게 되면서 제국주의의 개입이 가시화되고 있었다.

 

1918년 3월에 체결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은 중요한 최초의 후퇴였다레닌은 페트로그라드 진격을 불과 몇 주 앞둔 독일군의 진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그런데도 이 결정은 당내에서 광범위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소비에트 권력을 지지하는 좌파 사회혁명당(2차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소비에트 권력이 채택된 후에야 모당과 분열했다)과의 갈등을 야기했다좌파 사회혁명당은 소브나르콤에서 철수하고 독일과의 전쟁 재개를 목표로 봉기를 일으켰다레닌의 팸플릿 소비에트 정부의 당면 과제는 다음과 같이 사고의 전환점이 되었다이러한 끔찍한 상황에 직면하여 이제 "움직이고후퇴하고기다리고천천히 건설하고무자비하게 닦달하고엄격하게 규율하고느슨함을 분쇄"하는 것이 과제로 떠올랐다. 1918년 8레닌은 공장 대회에서 연설한 후 최근 해산된 제헌의회 지지자가 쏜 총에 맞았다레닌이 거의 죽을 뻔한 상황에서 소브나르콤은 '백색 테러'와 '적색 테러'에 맞서기로 했다.

 

독일과의 평화조약으로 인해 러시아혁명의 고립이 다른 곳의 혁명으로 해소될 때까지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는 희망은 얼마 가지 못했다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의 반란북부에 대한 연합군의 개입콜차크(Kolchak), 랑겔(Wrangel), 데니킨(Denikin)의 백군 정복은 모두 길고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이어졌다. 1920년까지 소비에트 권력에 대한 주요 내부 위협이 패배하면서 새로운 '평화 건설'에 대한 희망이 잠시 생겨났지만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공세로 인해 또 다른 전쟁이 발발했다이 시기에 소비에트 러시아는 전직 차르 관리들이 이끄는 징집병으로 적군을 구성하고체카가 경쟁자 정치 세력을 탄압하고산업계에 1인 경영을 도입했으며농촌에 곡물 징수를 시행하는 등 포위망을 구축하는 방식을 채택했다한편 새로운 제인터내셔널은 러시아 외교의 이해관계에 의해 점점 더 지배되고 있었다러시아 밖에서 혁명이 실패하자 서방에서는 사회민주주의에동방에서는 민족주의 운동에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당 내부에서는 당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다양한 반대파가 등장했다(코뮌주의자민주적 중앙주의 그룹군부 반대파노동자 반대파노동자 그룹). 이에 대해 레닌은 혁명가는 전진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후퇴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이들의 제안 중 일부를 수용하려 했지만이러한 그룹에 대해서는 반대했다그러나 그는 또한 당 지도부의 일부 과잉 행동(보기노동의 군사화에 대한 트로츠키그루지야에 대한 스탈린)에도 반대했다결국엄청난 역경을 딛고 소비에트 러시아의 존립은 보장되었지만소비에트 성격을 점진적으로 상실하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전쟁과 억압 상황은 노동자들의 민주주의를 약화했다지역 소비에트는 회의를 열지 않았고회의를 연다 해도 주로 위에서 내려온 결정에 고무도장을 찍는 수준이었다소브나르콤은 소비에트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기관이 아니라 소비에트 위에 군림하는 권력이 되었다. 1921년 크론슈타트 봉기는 이러한 부분의 증가로 인해 나타난 하나의 징후였다이 비극적인 진압 이후 레닌은 또 다른 필수적 후퇴로 간주하는 신경제정책(NEP)을 도입했다전쟁 경제를 시장에 개방하는 것은 수년간의 혼란으로 인한 경제적 혼란을 해결하고 노동계급 기반을 재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레닌의 마지막 저서에는 혁명의 진전 부족과 혁명이 만들어낸 제도의 부적절함에 대한 실망감이 담겨 있다그는 관료주의의 부패에 대한 대안으로 더 많은 노동자를 체제 운영에 참여시키기 위해 다양한 행정 개혁을 제안했다하지만 1922년 뇌졸중으로 두 차례 쓰러진 레닌은 전신이 마비되었다레닌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었던 국가 기관의 가택 연금에 가까운 강도 높은 감시 아래서 그는 비서에게 유언을 남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923년 3월 세 번째 뇌졸중으로 활발한 정치 활동을 중단하고 1924년 1월 21일 혼수상태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

 

레닌주의

 

여기에 요약된 레닌의 전기는 혁명의 물결에 올라탔지만혁명이 무너지면서 함께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복잡한 그림을 그려낸다그가 어떻게 쓰러졌는지그리고 개인으로서 어떻게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는지는 러시아혁명이 관심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한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다하지만 이는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다레닌이 사망할 무렵 소비에트 권력이 당 국가로 전환된 후누가 당을 이끌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싸움이 시작되었다.

 

전에는 '레닌주의'라는 용어가 구어체로 사용되었다면이제 스탈린의 레닌주의의 기초(1924)와 지노비예프의 레닌주의 연구 입문(1925) 같은 팸플릿에서 경쟁적으로 해석이 등장하면서 공식 이데올로기로 만들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이미 1923년 3월에는 당 안팎에서 '레닌주의'를 홍보하기 위해 카메네프가 이끄는 레닌 연구소가 설립되었다스탈린-지노비예프-카메네프 3인방은 이른바 '레닌 레비'를 통해 트로츠키에 대항하는 분파 투쟁에서 조종하기 쉬운 약 50만 명의 경험이 부족한 당원들을 당에 대거 끌어들였다. 1924년 레닌이 완전히 불참하게 되는 첫 번째 대회인 제인터내셔널 제5차 대회가 열렸다이 대회는 "우익의 위험"과 "극좌의 일탈"에 맞서 "맑스-레닌주의"의 정신으로 제인터내셔널의 "볼셰비키화"를 요구했다트로츠키룩셈부르크아마데오 보르디가헤르만 호르터안톤 판네쿡과 같은 인물에 대해 코뮤니스트당의 볼셰비키 화에 관한 테제(1925)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정치 지도자들이 레닌주의에 가까울수록 레닌주의와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서 그들의 견해는 더 위험하다." 1926년 모스크바에 레닌 학교가 설립되어 전 세계의 당 간부들에게 '볼셰비키화기술을 가르쳤다.

 

"볼셰비키화는 ... 맑스-레닌주의(제국주의 시대와 프롤레타리아혁명 시대 맑스주의)가 마침내 이념적으로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 레닌의 죽음은 러시아코뮤니스트당에서 그랬던 것처럼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모든 부문에서 맑스-레닌주의 이론의 선전에 큰 자극을 주어야 한다." (1924년 7, '코민테른과 지부의 선전 활동에 관한 제5차 코민테른 대회 테제')

 

모스크바의 책략과 추방을 통해 제인터내셔널 정당들은 모스크바의 충실한 대변인으로 변모했다. 1928년 스탈린은 권력 투쟁에서 우위를 점했고, 5개년 계획 도입과 함께 그의 '일국 사회주의이론이 국가 정책이 되었다그는 1930년대 대숙청을 통해 자신의 정적과 옛 동맹들까지 물리적으로 제거하며 쿠데타를 성공시켰고그 중에는 옛 볼셰비키도 많았다. '맑스-레닌주의이데올로기는 선전과 군사력을 통해 전 세계로 수출되었고특히 국가 통제집단화산업화가 급속한 자본주의 발전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는 저개발 지역(주로 중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후 모스크바 지배계급은 공식적으로 '탈 스탈린화'와 '레닌주의로의 회귀'를 통해 면죄부를 받으려 했지만중국과 알바니아 같은 곳에서는 이를 '수정주의'라고 비난했다어느 쪽이든동서양에서 공식적으로그 이후로 다양한 '인민 공화국'과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가 어떤 식으로든 레닌의 유산이라고 주장해 왔다이러한 해석은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스탈린주의자와 마오주의자뿐만 아니라 많은 아나키스트와 평의회주의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요소다.

 

그러나 레닌의 러시아와 스탈린의 러시아를 항상 구별하는 경향이 있다가장 유명한 것은 추방된 트로츠키와 그의 추종자들이지만이들은 스탈린주의에서 테르미도르주의적 반동만 보았을 뿐 반()혁명은 보지 못했다덜 알려졌지만더 중요한 것은 이탈리아 코뮤니스트좌파의 선배들이다.

 

우리의 '레닌주의'와 그들의 레닌주의

 

우리의 경향은 종종 너무 '레닌주의적'이거나 충분히 '레닌주의적이지 않다'라는 비난을 받아왔다오늘날 우리는 명확성보다는 혼란을 일으키는 이 딱지를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다혁명이 고립된 상황에서 레닌이 옹호한 타협은 레닌을 비방하는 자들과 그의 선배들이 '레닌주의'라는 이름으로 가장 간절히 호소하는 타협이다후자는 타협이 객관적 현실에 의해 강제될 수 있다는 사실과 타협을 출발점으로 삼는 정치 강령을 혼동한다.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나고 북부 이탈리아의 공장에서 계급투쟁이 되살아나던 시기에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을 설립한 우리 선배들은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다르게 보았다.

 

"우리를 가장 매료시키고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는 중요한 인물인 레닌은전술가 레닌이 아니라최초의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이끌면서 다가올 새로운 혁명적 물결에 대한 기대 속에서 사나운 적인 부르주아 세계의 함정 사이를 능숙하게 움직였던 전술가 레닌이다또한러시아에서 여전히 살아남은 자본주의 세력과의 타협즉 그가 항상 고통스러운 후퇴혁명의 행진에서 중단을 고려했던 기발하고 매우 위험한 편법인 신경제(NEP)의 레닌도 아니다레닌우리의 레닌오늘날의 레닌은 4월 테제와 10월 봉기의 레닌이다그리고 그가 사망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그를 기억하고 싶은 것은 이론가정치가지도자로서 그의 삶에서 바로 이 순간이다." (레닌 오기(Lenin Oggi), 프로메테오(Prometeo), 1944년 2월 1)

 

"우리레닌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이것은 또한 그의 경험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토대를 구축하는 요점을 보여준다.

 

• 레닌은 계급투쟁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정치 조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볼셰비키는 종종 동질적이고 독단적인 정당으로 묘사해 왔지만이렇게 묘사된 당은 스탈린주의 신화다볼셰비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상황에 항상 대응하며 발전하였다.

• 소비에트이미 1905년에 레닌은 당과 소비에트가 다가오는 혁명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그는 1917년에 이 개념을 더 발전시켰다레닌은 최선을 다해 소비에트를 "노동자 국가"로 만든 것이 이러한 소비에트 권력의 존재라는 것을 이해했다.

• 국제주의레닌은 사회주의 혁명의 국제적 의미를 이해하고노동자 운동 내에서 쇼비니즘민족주의사회애국주의 경향에 대항했다그는 자본주의가 새로운 제국주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며사회주의를 위한 혁명적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레닌은 영향력 있는 당 지도자가 되었지만결국 다른 사람들처럼 당의 일원이었다그는 비판에 직면했고때때로 자신이 소수임을 알게 되었으며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1906년 볼셰비키에 가입한 젊은 투사 가브릴 미아스니코프(Gavril Miasnikov)는 창당부터 1921년까지 당 활동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볼셰비키는 비판과 반()비판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모든 우상을 타도하라! 대회의지방 또는 중앙위원회에서 비판을 허용했다오히려볼셰비키는 소수가 당 기구에 대항하여 글을 출판할 수 있는 포괄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보호할 용기가 있었다따라서 모든 허풍모든 가십과 모든 추문에서 벗어나고 분명히 하기 위해 그것을 신념을 견지하는 투쟁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배치하기 위해 투쟁을 강화하려고 했다… 1905년과 1917년 사이에볼셰비키의 이러한 관행은 혹독한 세 번의 혁명 과정을 통과했다당의 내부 구조는 혁명에서 살아남은 세력에 제대로 계승되었고이것은 세계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승리로 이어졌다.” (미아스니코프, 1930년 최근의 속임수)

 

10월 혁명의 전제는 언제나 러시아 국경 밖에서 혁명을 비교적 빨리 확대하는 것이었다경제적으로 낙후된 혁명 요새는 아래에서 보여주듯이 다른 곳의 노동계급에 영감을 주는 것 이상의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소비에트 권력은 관료제경찰정규 군대가 없는 새로운 유형의 국가다. ... 러시아에서는 거의 시작하지 않았고 잘못 시작되었다. ... 우리는 유럽 노동자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지향하는지어떻게 지향하는지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줘야 하며이를 통해 유럽 노동자들은 사회주의를 어떻게 달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러시아인들이 가치 있는 일을 시작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해야 하며러시아가 잘못하고 있다면 우리 유럽은 더 잘해야 한다. ... 우리는 유럽 노동자들이 그 길에 들어서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그들은 우리가 하는 일을 하되 더 잘할 것이고무게 중심은 형식적인 관점에서 구체적인 조건으로 옮겨갈 것이다." (레닌, 1918년 3월 8강령 검토 및 당명 변경에 관한 보고서)

 

러시아혁명의 비극은 이러한 도움이 절대 없었다는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코뮤니스트당인터내셔널 그리고 소비에트 러시아는 스스로 점점 더 비상시적이고 임시방편적 성격의 정책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볼셰비키는 진정한 혁명 정당이 가능한 역사의 한계 내에서 기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그들이 기적을 이루어 낼 수는 없다세계대전으로 지친제국주의에 목이 졸리고국제 프롤레타리아트에 배신당한고립된 땅에서 모범적이고 흠잡을 데 없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은 기적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혁명은 정치권력 정복과 사회주의 실현이라는 문제를 실질적으로 실행하면서국제 프롤레타리아트 선두에서 행진하고 끊임없이 역사적으로 공헌하였으며세계 전체 자본과 노동 사이의 균형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러시아에서는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그리고 그런 점에서 모든 곳의 미래는 "볼셰비즘"을 비껴갈 수 없다.” (룩셈부르크, 1918년 러시아혁명)

 

혁명 과정 퇴보의 씨앗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 1918년 3월까지 볼셰비키는 소브나르콤에서 대표되는 유일한 정당이었고그 다음 몇 년 동안 지역 소비에트가 공동화했지만, (때로는 선거의 게리맨더링을 통해) VTSIK에 대한 점점 더 많은 지배력을 확보했다사실상볼셰비키는 유일한 통치 정당이 되었고 점점 더 당과 국가의 구별이 사라졌다. 1922년에 레닌은 당 기구가 정부 기구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지만그가 제안한 개선책은 결국 실현되지 않았고 너무 늦었다단지 소비에트 권력 부활만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었지만그것은 혁명 물결의 부활이 요구되는 일이었다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정당화가 고안되었다(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계급 전체가 아니라 그 전위즉 당에 의해서만 행사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트로츠키는 그 후에 소비에트를 '노동자 국가'로 만든 것은 국유화된 재산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편내전 기간 정당 민주주의는 상당한 타격을 입었지만, 1921년 3월 분파 금지령이 도입되었다고 해서 분파가 즉시 소멸하지는 않았다그러나 그 후 몇 년 동안 정치국과 당 사무국은 스스로 권력이 되어 당 대회와 중앙위원회의 권위를 약화했다이에 따라 권력은 본질적으로 스탈린과 그 분파의 손에 집중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우리는 미래의 인터내셔널은 기다리는 정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평의회와 같은 집단적 권력기관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전체 노동계급이다인터내셔널은 더 광범위한 운동 지침이 되어야 하며이와 같은 의미에서 집단적 권력기관 내에서 목소리를 내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볼셰비키처럼 그 기관을 대신하거나 그 안에 녹아들 수는 없다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 운명을 혁명적 보루에 묶어두는 것을 의미하며혁명적 보루가 자본주의 세력에 굴복하게 되면 세계 혁명운동의 구심점이 되는 것을 멈추게 된다.

 

오늘날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또 다른 논쟁은 레닌이 민족 자결권을 옹호했다는 이야기다이는 종종 추상적으로 민족 자결권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그러나 그는 민족 자결권이 반동적 목적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면 반대했으며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억압 민족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피억압 민족이 분리 독립권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국가에 대한 평등권과 국제 노동계급 연대의 인정은 사실상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한 위선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반면에 피억압 민족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피억압 민족 노동자와 억압 민족 노동자의 단결과 통합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야 하며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자국 부르주아지의 동맹자가 될 것이다." (레닌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와 민족의 자결권, 1915)

 

두 번째 조건은 이른바 많은 '레닌주의자'들이 종종 잊어버리는데이들은 타락한 제인터내셔널의 '통일 전선'과 '인민 전선개념을 받아들여 민족 부르주아지와의 동맹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우리는 레닌 시대부터 모든 민족 전쟁이 제국주의 경쟁과 필연적으로 얽혀 있다는 것을 보아왔다레닌이 제국주의 시대에도 민족 전쟁이 제국주의 전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민족 전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면자본주의 발전은 룩셈부르크와 그의 동지들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자유로운 제국주의 시대에는 더는 민족 전쟁이 있을 수 없다국익은 노동 대중을 속여 그들의 숙적인 제국주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만 작용할 뿐이다. ... 지배계급이 강대국들의 부속물이자 부속품에 불과한약소국들은 강대국들이 벌이는 제국주의 게임에서 졸에 불과하다그들도 노동 대중과 마찬가지로 전쟁 중에 도구로 악용되고 있으며전쟁이 끝난 후 자본주의 이익에 제물로 바쳐질 것이다." (룩셈부르크양자택일, 1916)

 

우리가 항상 반복하듯이러시아혁명은 모방할 모델이 아니라 배워야 할 하나의 교훈이다혁명이 결국 탄생시킨 당 국가는 오늘날까지 노동계급 운동이 회복하지 못한 유산을 남겼다그리고 반()혁명에 직면하여 레닌을 포함하여 혁명에 참여한 사람 중 그 진정성을 온전히 지켜낸 사람은 거의 없었다그러나 이윤의 이해관계로 병든 지구에서 또다시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레닌이 오늘날 남긴 최고의 유산은 그가 러시아 밖의 노동자와 혁명가들에 바랬던 바와 같이 미래 세대가 "더 잘 해 내는것이다.

 

다이즈바스(Dyjbas)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2023년 12

 

<출처혁명적 전망」 23, 2024년 1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4-01-21/lenin-and-leni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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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9호] ‘선택적(파트타임) 국제주의’에 대한 간략한 비판

선택적(파트타임국제주의에 대한 간략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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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팔레스타인또는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백 건의 군사 분쟁(1) 등 현재 제국주의가 초래하고 있는 공포는 국제 노동계급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지금 우리는 일반화된 전쟁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현재의 심각한 상황은 진정한 국제주의자들의 단결을 촉구한다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진정으로 국제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에게 질문한다.

 

이전 글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자본의 좌파 대응이 "제국주의 전선(나토 또는 러시아중 어느 한쪽을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같은 입장을 숨긴 가짜 평화주의"라고 비판했다.(2) 우리는 그러한 입장이 전쟁 없는 세상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노동계급을 멀어지게 하는 데만 기여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우리가 자세히 다루지 않은 것은 트로츠키주의스탈린주의마오주의 진영에서 표면적으로 국제주의적 입장을 제시하려고 시도한 사람들이다. '혁명적 패전주의또는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라는 구호를 내세운 국제맑스주의경향(IMT)(3), 사회주의노동자당(SWP)(4), 그리스코뮤니스트당(KKE)(5), 진보노동당(PLP)(6) 등이 포함된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이 단체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제국주의 사이 전쟁이며따라서 자본주의 한쪽을 지지해서는 안 되고사회주의를 위한 노동계급 투쟁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인식한다여기까진 괜찮다이것은 침머발트 좌파와 10월혁명의 모든 혁명가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준점으로 삼고 있는 척도이다트로츠키주의스탈린주의마오주의 그룹은 반()혁명 산물임에도 계속해서 그 유산을 고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 다른 분쟁에 대한 같은 그룹의 반응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 암담하다. 그리스코뮤니스트당(KKE)은 팔레스타인 투쟁 목표를 "외국의 이스라엘 점령을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것"으로만 보고 있으며심지어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제국주의 분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며 일반화된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7) 한편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하마스에 대해 노골적으로 지지를 표명했는데이는 "사회주의적 입장을 채택하는 것을 조건으로한 것이 아니라 '친제국주의 붕괴로나아간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8) 둘 다 우리가 "선택적 국제주의"(9)라고 부를 수 있는즉 어떤 분쟁이 제국주의이고 어떤 분쟁에서 자본주의 세력 편을 드는 것이 허용되는지를 취사선택하는 노골적인 사례다.

 

적어도 중동에 관해서는 국제맑스주의경향(IMT)이 좀 더 일관된 모습을 보인다. IMT는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지지팔레스타인에 대한 사회주의 계획 부재"를 이유로 KKE를 비판하는 대신 "팔레스타인 대중의 투쟁은 이 지역의 모든 반동적 자본주의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혁명적 투쟁으로만 성공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10) 그러나 IMT도 비슷한 혼란을 겪고 있다베네수엘라에 대해 IMT는 차베스를 "진정한 국제주의자"이자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칭송했다.(11) 물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는 러시아의 중요한 군사적경제적 동맹국이었으며 이란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이는 오늘날 IMT가 제국주의 국가로 비난하는 것과 같은 러시아이고, IMT가 '전체주의'로 간주하는 것과 같은 그 이란 정권이다차베스가 '형제'인 푸틴과 아마디네자드(Ahmadinejad)에 아부했을 때 그는 '진정한 국제주의자'였을까?, 아니면 차베스가 국영 TV에서 앨런 우즈의 말을 인용한 것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의 다른 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까?

 

진보노동당(PLP)은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례다. PLP는 자본주의를 종식하기 위한 민족해방 투쟁의 실패로 인해 이전의 입장을 재고하게 되었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20세기 내내 반()식민지 투쟁은 정착민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서 민족을 해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이 전략은 자본주의와 착취를 종식하는 데 실패했다. PLP는 이러한 많은 투쟁을 지켜보고 참여했지만이 전투에서 얻은 이익이 역전되는 것을 목격했다.”(12)

 

드물게 인정하는 경우다그러나 이것이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 과거와의 단절로 해석할 수는 없다. PLP는 현재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 반()제국주의 축이 없다고 보지만소련(1950년대까지)과 중국(1970년대까지)은 여전히 이러한 축을 구성했다고 간주한다(중국코뮤니스트당에 따르면 소련과 중국은 "사회주의국가였기 때문이다). 문제 핵심은 국제주의 문제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사회주의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그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사회주의를 돈국경계급국가가 없는 전 세계적으로 자유롭게 연합하는 코뮤니즘과 동의어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소련(혁명 물결의 확산 실패로 탄생한 국가자본주의 체제)과 중국(애초에 노동계급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이 기존 강대국의 제국주의 경쟁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혁명의 유산

 

이러한 사례가 전부는 아니지만자본의 좌파 우여곡절을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된다트로츠키주의자든스탈린주의자든마오주의자든 이 모든 그룹은 타락한 제인터내셔널에서 물려받은 일련의 전술적 편법을 받아들인다사회민주주의 정당 입당좌파 정부 참여 또는 지지소련이나 중국이 본질적으로 '사회주의적'이라는 믿음통일 전선 또는 인민 전선 옹호또는 단순히 민족해방에 대한 지지 등을 통해 '선택적 국제주의'에 도달하든 도달하지 않든다음 질문에 대해 그들은 항상 어느 정도 비판적으로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제국주의 시대에 '피억압국'이든 '억압국'이든 특정 자본주의 세력이 반()제국주의의 한 축을 구성할 수 있을까?

 

우리의 대답은 '아니오'이다이 질문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레닌은 제국주의 시대에도 민족해방 전쟁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물론 제국주의 전쟁으로 변질할 수 있다는 점도 이해했다). 인터내셔널은 터키와 중국 같은 곳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민족해방 투쟁을 지원했다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 세력(국가 또는 비국가) 사이의 모든 갈등이 레닌 시대보다 훨씬 더 발전한 제국주의 체제에 얽혀 있음을 알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단체들의 표면상 국제주의 입장이 일시적인 정치적 편의주의이든(상황이 바뀌면 버려질), 진정으로 새로운 방향이든자본의 좌파 조직은 오래전에 루비콘강을 건넜다그들은 과거의 교훈을 배우지 못했고결국 그들이 모집한 노동자와 자신을 자본주의 사각지대로 이끌 수 있는 공식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

 

전쟁으로 향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그리고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군사적 충돌이 고립된 현상이 아니라는 인식 아래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은 다양한 경향의 진정한 국제주의자들과 함께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위원회를 부활시키는 데 기여했다.(13) 아래 다섯 가지 사항은 공동 활동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자본주의제국주의 및 모든 민족주의에 반대한다어떤 국가 자본, '덜 악한국가국가가 형성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 국가임금 노동사유 재산화폐이윤을 위한 생산이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세계로 대체되는 사회를 지향한다.

• 현재 전쟁과 앞으로 일어날 전쟁이 노동계급에 가할 경제적정치적 공격에 맞서기 위해.

• 노동계급의 자기 조직화한 투쟁독립적인 파업 위원회대중 집회노동자 평의회의 결성을 위해.

• 억압과 착취에 반대하고노동계급 단결과 진정한 국제주의자들의 단결을 위해.

 

장기간의 어려운 작업이지만, '선택적 국제주의'가 아닌 일관되고 명확한 국제주의 메시지를 이미 벌어지고 있는 계급투쟁과 앞으로 벌어질 투쟁에 전파해야 한다.

 

다이즈바스(Dyjbas)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2024년 1월 22

 

<>

(1) https://geneva-academy.ch/galleries/today-s-armed-conflicts

(2)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07-05/the-no-war-but-the-class-war-initiative

(3) https://socialistrevolution.org/no-war-but-the-class-war/

(4) https://socialistworker.co.uk/features/ukraine-year-one-of-a-terrifying-imperialist-war/

(5) https://inter.kke.gr/en/articles/No-to-imperialist-war-Greeces-involvement-must-stop/

(6) plp.org

(7) https://inter.kke.gr/en/articles/Short-answers-to-current-ideological-political-questions-concerning-the-Israeli-attack-and-massacre-against-the-Palestinian-people-in-the-Gaza-Strip/

(8) https://socialistworker.co.uk/features/free-palestine-why-we-say-by-any-means-necessary/

(9) 이탈리아의 동지들이 SI 코바스 기지노조 내에서 나온 팔레스타인 관련 성명을 비판할 때 사용한 용어를 빌려온 것이다.

(10) https://www.marxist.com/the-communist-party-of-greece-and-the-struggle-for-the-liberation-of-palestine-a-necessary-debate.htm

(11) https://www.marxist.com/a-tribute-to-hugo-chavez.htm

(12) plp.org

(13)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07-05/the-no-war-but-the-class-war-initiative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4-01-24/a-brief-critique-of-part-time-internat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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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아마데오 보르디가의 옥중 선언

아마데오 보르디가의 옥중 선언

 

소개

 

아마데오 보르디가가 1923년 대부분(2월 3~10월 26)을 로마에 있는 감옥에서 자신과 30여 명의 동료 피고인들의 변론을 준비하는 한편창립 2년밖에 안 된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이 직면한 위기에 대한 정치적 선언을 작성하고 전체 당원들이 토론했다는 사실은 이른바 '코뮤니스트좌파진영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보르디가의 체포 이후 당원에 대한 체포와 탄압이 잇따르면서1) 조직이 약화할 수밖에 없었지만이는 보르디가가 우려했던 위기가 아니었다그가 선언문에서 분명히 밝혔듯이더 심각한 위기는 이탈리아 당의 원칙적인 전체의 틀과 그가 정중하게 인터내셔널과 그 집행 조직의 다수파라고 부르는 러시아 코뮤니스트당즉 점점 더 반()혁명적인 소련의 외교 정책이라는 목표를 위해 구성 정당들을 관료적인 '예스맨'으로 만들려는 인터내셔널 내에서 권위적 입장을 꾸준히 행사하고 있는 러시아 코뮤니스트당 사이에 균열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었다물론 이것은 100년이 지난 후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당시 보르디가는 1921년 1월 이탈리아당이 사회민주주의에서 이탈한 이후 인터내셔널이 채택한 전술과 이탈리아당이 채택한 정치적 틀과 정책 사이에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해 인터내셔널과 이탈리아당 내부에서 완전히 공개적인 토론을 요구했을 뿐이다.

 

논쟁의 주요 쟁점은 a) 리보르노 분할이 너무 좌파에 치우쳤다는 모스크바의 원래 불만과 이탈리아 사회당(PSI) '다수파'와의 융합을 통해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b) 1922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인터내셔널 집행부가 처음으로 공식화했고 보르디가가 '아래로부터의 통일전선'(코뮤니스트가 다른 정당과의 정치적 거래로 정책을 타협할 수 있는 기초가 아니라 집단적 노동자 행동을 위한)으로 이해하기로 한 '통일전선정책을 해석하는 방법. c) 이로부터 전쟁 직후 피우메(Fiume)를 점령했던 다눈치오(d'Annunzio)의 전()파시스트 부대를 모방한 반()파시스트 저항투사 인민군대(Arditi del Popolo)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d) 보르디가가 주로 초안을 작성하고 제2차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 대회에서 다수결로 승인한 로마 테제를 코민테른 집행부가 단지 권고문으로 축소했다.2)

 

이러한 문제 중 그 어느 것도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에서 보르디가의 입지를 심각하게 훼손하지 않았으며비록 인터내셔널의 나머지 이탈리아 대표들이 제4차 세계대회(1922년 11/12)에서 PSI와 원칙적으로 융합하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되었음에도 그 자신이 당 지도부에서 사임하겠다고 위협했지만아무도 그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1922년 10투라티(Turati)의 개혁파가 국제코뮤니스트당 대회에서 축출되자 러시아가 원하던 정치적 융합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이 정책은 코민테른 의장 지노비예프(Zinoviev)가 추진하였으며그는 이 정책을 통해 투라티 당에 대항하는 통일전선을 구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따라서 보르디가를 제외한 '융합위원회가 구성되었다그가 하던 지도부 역할은 지난 6월 '이탈리아 문제'에 관한 확대집행위원회(ECCI) 회의 이후 러시아에 머물고 있던 그람시가 대신하게 되었다.

 

1923년 4월 이탈리아 사회당(PSI) 총회에서 그 정책을 부결시켰다.3) 어느 정도 상설화된 인터내셔널의 확대집행위원회(ECCI) 회의에서 통일전선을 준수하도록 러시아에서 끊임없이 괴롭혔음에도 불구하고러시아의 책략에 대한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의 정치적 탄력성에 유일하게 균열이 생긴 시기는 1921년 5월이었다이는 인민군대에 대한 신질서(L’Ordine Nuovo)에 실린 기사에서 그람시의 열정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다른 정치조직에 가입하는 것은 당 규약과 양립할 수 없다는 당의 결의문을 발표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4) 당시 인터내셔널은 부하린의 방식으로 개입했는데그 방식은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이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를 저지르고 있다고 선언하여 불화를 더욱 부추겼다.5)

 

어쨌든 점점 더 러시아가 지배하게 되고 주로 러시아가 자금을 지원하지만국제적인 정치조직이 이탈리아당이 통일전선 정책을 계속해서 준수하지 않아도 용인할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그리고 보르디가가 더 순응하지 않는다면 ... 그람시는 무솔리니의 손이 닿지 않는 러시아에서 치료 기간을 연장하고 코민테른의 확대집행위원회(ECCI) 회의에 항상 참석하여 이탈리아 문제 (현재 우리가 재판을 받는 보르디가의 문제로 점점 더 인식되고 있는 문제)를 고려할 수 있었다.

 

전체의 재판 과정은 긴 여정이었다보르디가와 그의 공동 피고인 31명은 국가 전복 음모 및 공모 혐의로 기소되었다적어도 1924년 로마의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이 만든 기록에 의하면 보르디가의 경우에는 장시간의 예비 심리가 있었다보르디가는 당이 지하 본부를 세우려던 프라티나(Frattina)의 한 아파트 블록 밖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3,000리라약 3,000파운드(1923년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액수)를 소지하고 있었다보르디가는 3,000파운드가 크라신(Krasin)이라는 '러시아 담당자'에 의해 송금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자신이 외국 국가의 돈을 받고 있지 않다는 점즉 외국의 음모에 연루되지 않았다는 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곤혹스러워했다.

 

판사 모스크바 집행위원회는 러시아 정부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까?

 

보르디가 아니오그 정부와 혼동해서는 곤란하며이제 이 두 기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설명하겠습니다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집행위원회는 다른 국가에 상주할 수도 있습니다보기를 들어로마의 비아 프라티나(Via Frattina)에 있는 우리 본부를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된 경찰이 없었다면 집행부의 본부를 이곳으로 옮기는 것에 반대했을 것입니다기존 인터내셔널은 브뤼셀제네바 등에 본부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제인터내셔널은 모스크바에 본부를 두고 있습니다인터내셔널에는 가장 중요한 정당 중 하나이자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정당인 러시아 코뮤니스트당이 포함되어 있고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가장 경외심을 갖고 있으며 또한 가장 부러워하는 정당입니다.

 

러시아 정부러시아 코뮤니스트당과 제인터내셔널은 완전히 별개의 조직입니다자금 송금은 여러 국가의 동지들로 구성된 제인터내셔널 예산위원회에서 이루어졌으며우연하게도 이 위원회의 의장은 이탈리아 출신이었습니다그래서 그 금액을 보내기로 한 사람은 실제로 이탈리아 사람이었습니다그는 러시아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일 수도 있지만이는 우리에겐 모두 똑같았습니다인터내셔널과 러시아 정부 사이의 차이는 분명합니다우리는 전 세계 코뮤니스트당이 가입된 제인터내셔널에 소속된 코뮤니스트당입니다러시아에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다른 나라와는 다른 상황에 처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이런 의미에서정부의 조직이 아니라 정부가 인터내셔널의 조직이라는 의미에서또는 적어도 인터내셔널이 정부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국가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에 종속되는 관계가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 러시아 정부와 여러 조직은 인터내셔널 코뮤니스트 운동 문제에서 행동할 권한이 없으며오직 인터내셔널만이 이를 수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러시아 코뮤니스트당 대회와 지도 조직의 지시를 받는 러시아 정부의 정책은 인터내셔널에 의해 논의되고 수정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러시아 정부의 대외 대표에 불과한 크라신과 어떤 교류도 할 수 없었습니다그는 내가 감사하고 존중하는 나의 동지이지만우리와 러시아 국가의 다른 대외 대표 사이에 어떤 관계도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와 아무런 조직적 관계도 없는 사람입니다.6)”

 

부르주아 법정에서 열린 재판에서 보르디가는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러시아 국가 사이의 분리를 강조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그가 이것을 얼마나 깊이 믿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그의 선언문은 '이탈리아 문제'뿐만 아니라 우익으로의 일탈에 맞서 싸우는 인터내셔널 강령조직 및 전술적 문제에 관한 공개 토론이 여전히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실제로 1923년에 일어난 사건은 완전히 반대의 결과를 보여주었다3차 대회 이후 러시아는 인터내셔널 내부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 '올바른결정즉 자본주의 세계에서 러시아 국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리한 결정이 나오게끔 관료적 변화를 강요해 왔다우리는 1922년 말 인터내셔널 코뮤니스트당과 통합을 논의하기 위한 위원회에서 그람시가 보르디가를 대신해 단순히 교체된 것을 보았지만더 일반적으로는 러시아가 통제하는 인터내셔널 집행위원회 위원들이 총회 사이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사전에 각 정당의 성원이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총회 현장에서 '선출'했다.7) 또한대회 사이에 보르디가가 선언문을 작성할 무렵이었던 1923년 중반부터 1년에 두 번씩 확대집행위원회(ECCI) 회의를 개최하는 패턴이 확립되었는데여기에는 선출직 위원도 포함되었다러시아에서 반()혁명이 일어나면서 '레닌의 당'의 근본적인 목표는 새로 출범한 소비에트 및 지금의 소련 코뮤니스트당(CPSU)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었다한편으로는 러시아 국가의 고립을 깨기 위해 혁명적 봉기특히 1923년 불가리아 사태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독일 10월혁명을 기획하고다른 한편으로는 무역 협정을 체결하여 자본주의 열강과 화해를 시도하는 등 결과적으로 초래된 불규칙한 외교 정책은 언급할 수 없다코민테른 당원들의 충성심이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에 매우 중요해졌을 뿐만 아니라코민테른 내부에서는 소련 코뮤니스트당(CPSU)의 지도력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었다이탈리아 법정에서 보르디가가 묘사한 러시아는 이보다 더 선명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러시아 정부러시아 코뮤니스트당인터내셔널은 완전히 별개의 조직이다.”

 

좌파가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의 다수를 차지했다 하더라도 러시아가 지배하는 코민테른이 보르디가그리고 필요하다면 당 지도부 전체를 편들기 시작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였다러시아 정당의 정치적 방향과 미래 지도력을 둘러싼 내분이 심화하면서 이탈리아 문제는 이러한 책략에 얽히게 되었다보르디가의 구속으로 인하여 확대집행위원회(ECCI)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6월에 그람시는 스코치마로(Scoccimarro), 타스카(Tasca), 테라치니(Terracini), 포르티차리(Fortichiari), 보타(Vota)와 함께 확대집행위원회(ECCI) 회의에 참석하여 이탈리아 문제에 대해 연설했다그 결과 우익의 소수파 대표들이 포함된 새로운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 '혼합집행위원회가 임명되었고포르티차리는 이 위원회에 합류하기를 거부했다이 새로운 집행부는 그동안 중앙위원회에 속해 있지 않았던 톨리아티스코치마로타스카보타겐나리(Gennari)(포티차리 대신)로 구성되었다. 8감옥에 갇혀 있던 보르디가와 그리에코(Grieco)는 새로운 집행부의 소식을 듣고 물러났다.

 

이제 보르디가는 이탈리아 당 내부와 외부에서 자기 선언문에 대해 최대한 폭넓은 지지를 얻는 데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놀랍게도 감옥에 갇혀 있어도 간단한 암호와 협조적인 교도관을 통해 외부 세계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후자는 주로 톨리아티에게 메시지를 전달했고톨리아티는 이탈리아의 다른 당원들지노비예프와 부하린을 포함한 코민테른그리고 보르디가는 잘 몰랐겠지만그람시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확대집행위원회(ECCI)의 내용을 충실히 따르는 지도부이탈리아 당을 위한 새로운 지도부즉 타스카로 대표되는 우파에 너무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보르디가와 구()집행부보다는 '온건'한 지도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이미 갖고 있던 그람시였다그람시가 보르디가를 약화하려는 첫 번째 움직임이 그람시 자신의 표현대로 파시즘의 승리에 대한 책임은 당신들(, PCd'I 전체)에게 있다는 지노비예프의 확대집행위원회(ECCI) 선언에 의해 타격을 입었다면그는 장어처럼 미끄러지는’ 방법보르디가와 달리 당의 어떤 권위 있는 자리에서도 물러날 이유가 없는 직책을 지키는 전쟁에서 교묘하게 움직이는 법을 알고 있었다한편 보르디가는 분파 작업을 하는 것은 모스크바의 지시에 대해 공개적으로 대놓고 반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당의 대표 자리에서는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그가 감옥에서 석방된 후 1923년 말확대집행위원회(ECCI)의 최고 간부 회의(Praesidium)는 다시 한번 보르디가에게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 집행위 위원으로 합류할 것을 요청했다보르디가는 어떤 경우에도 전 이탈리아 집행부 전체를 복직시켜야 하는데그들은 그럴 권한이 없으며그렇게 하려고 한다면 코민테른 집행부가 승인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고 응수했다그러나 그 무렵 보르디가는 미끄러지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에 의해 완전히 조종당했다그람시는 처음부터 보르디가의 선언문에 서명하기를 거부했고톨리아티가 수정하여 제출했음에도 계속해서 서명하지 않았다보르디가가 석방될 무렵에는 다른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이탈리아에서 러시아를 모방하여 당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이미 9월에 그람시는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노동자 일간지를 발행하기로 한 코민테른의 결정을 이탈리아 당 집행위원회에 알렸다이는 1924년 2월에 정식으로 창간하여 1926년 제3차 당 대회를 앞두고 좌파에 대항하는 코민테른의 볼셰비키화 캠페인의 수단이 되었다그람시는 이탈리아로 돌아온 직후에 열린 1924년 5월의 특이한 코모(Como) 대회에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리옹에서 열린 연정을 위한 일종의 사전에 진행된 리허설에서 좌파(투표권이 없는 유일한 좌파 대표 보르디가), 중도톨리아티), 우파(타스카)를 대표하는 세 가지 논제가 발표되었다.

 

총 65표 다음과 같이(중앙위원회 14연방 및 지역 간부청년 연맹당 언론 및 선전 기관 대표 49표 중 41표가 보르디가 후보, 10표가 우파 후보에게 그리고 중도 후보가 11표를 얻었다투표가 이루어졌다두 명은 기권하였고 한 명의 표는 분실된 것으로 간주 되었다대회에서 선출된 집행부의 일원이었던 보르디가포르티차리(Fortichiari), 레포시(Repossi), 그리에코(Grieco)는 사임했다 하여 투표권이 인정되지 않았고중앙위원회에 불참한 세 명의 위원(겐나리라베라레오네티)이 중앙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 개표에서 확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좌파 논리가 다수의 표를 얻었다이러한 절차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결과는 45 대 8로 좌파가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8)”

 

위 그람시에 친화적인 저술가조차 인정했듯이"당 전체가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보르디가 방식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분명했다이는 그람시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게 시작된 것이었다."

 

장어처럼 미끄러지는 법을 배운 사람에게는 할 일이 더 많았다인테사(Intesa) 위원회와 그람시에 대한 팸플릿을 참조하라.9) 여기서 인터내셔널의 퇴행에 대한 보르디가의 적극적인 정치적 저항은 1930년 무렵에 줄어들고 중단되었지만이탈리아 코뮤니스트 좌파의 투쟁은 그가 없는 상태에서도 계속되었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이는 많이 가려져 있지만 중요한 역사적 에피소드에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다음번에는 전 세계 노동자들이 최소한 혁명적 인터내셔널을 위한 강력한 틀을 이미 갖추고 있다면 훨씬 더 나은 위치에 설 수 있을 것이다둘 이상의 국가에 기반을 두고개별적인 유대를 기반으로 성원 자격이 부여되므로 어느 한 부문의 통제를 받기 쉽지 않은 구조의 조직이다.

 

E. 레이너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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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 소개에서 노트 NO. 1,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들의 재판, 1923, 5:

움베르토 테라치니(Umberto Terracini)는 1923년 2월 13일에 제인터내셔널 집행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썼다.

"일주일 만에 경찰은 5,000명이 넘는 동지들을 체포했다. ... 당원의 1/4이 체포되고지부가 해산되었으며지도자 보르디가 동지를 빼앗겼고당원들이 죽음과 고문의 위협을 받고 있지만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은 이미 당의 작업과 활동을 재개했다.“

아마데오 보르디가를 비롯한 거의 모든 집행위원이 체포되었고(테라치니 외에 브루노 포르티차리안토니오 그람시는 수배된 상태였다), 반란 선동탈영국가 권력 전복 음모 및 계급 증오 선동 등의 범죄 혐의로 로마 형사재판소에 기소되었다재판은 1923년 10월 18일부터 26일까지 열렸으며 증거 불충분으로 피고인들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2)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PCd'I및 코민테른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1925년 인테사 위원회의 강령, 1925년 팸플릿 소개를 참조하라.

3) 세라티는 추방된 후 수천 명의 성원과 함께 단일한 코뮤니스트 분파를 결성했고, 1924년에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PCd'I)에 합류했다그는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 중앙위원에 선출되었다그는 1926년 코뮤니스트당 비밀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중 54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4) 1921년 7월 31일 신질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코뮤니스트들은 인민군(Arditi del Popolo) 운동에 반대하는가그와는 정반대로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를 무장시켜 부르주아지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가 창출한 새로운 생산력의 조직과 발전을 감독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 군대를 창설하기를 열망합니다.” (우리의 번역)

의심할 여지 없는 반()파시스트 동기를 가지고 있고(조직적으로는 원래의 파시스트 아르디티를 모방했지만아나키즘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이 공동 당원은커녕 공식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에 회의적이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반면에 파르마의 올트레토렌테(Oltretorrente)와 같은 노동계급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다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 및 아르디티 성원들은 종종 무솔리니의 갱단에 대항하여 함께 투쟁했다.

5) 그리에코의 답장에는 부하린이 "... 세컨다리가 이런 반()맑스주의적 오류를 범하는 동안 코뮤니스트들은 어디에 있었습니까?"라고 반문했던 무솔리니의 로마 진격 직후 파시스트들의 공격으로부터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아나키스트이자 인민군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아르고 세컨다리(Argo Secondari)에 대한 비판이 포함되어 있었다.

6) 1923년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 Il Processo,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 로마 1924) 79~82쪽에서 번역.

7) 이는 1921년 6월 22일부터 7월 1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3차 대회에서 결정된 사항이었다더욱 중요한 것은 러시아가 정당 규모에 따라 확대집행위원회(ECCI) 대의원 수를 결정하도록 하여 러시아가 과반수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이다어쨌든 다른 모든 정당은 위원회에서 수적인 열세로 자문하는 상황이 되었지만러시아 당만이 다수였기 때문에 결정하는 투표를 할 수 있었다.

(8) Luciano Beolchi, Dal Partito di Bordiga al Partito di Gramsci, 248

(9) 1925년 인테사 위원회와 오노라토 데이먼의 강령맑스주의와 관념론 사이의 그람시에 대해서는 모두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주소와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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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오 보르디가의 옥중 선언문 (1923)

 

이탈리아 코뮤니스트 당의 모든 동지에게

 

확실한 신념과 오랜 숙고 끝에 우리는 동지들에게 현재의 성명을 발표하여 코뮤니스트로서의 우리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당은 전체 당원의 참여가 있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위기를 겪고 있다우리는 이탈리아에서 반()프롤레타리아 세력이 승리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효율성과 조직의 위기를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 위기도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또 다른 위기가 없었다면 당의 주요 기구가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쟁점은 불행하게도 첫 번째 위기의 결과를 더 악화하는 또 다른 위기즉 당의 전반적인 방향에 대한 내부 위기가 개별 전술적 문제에서 이제는 원칙과 당의 정치적 틀 전체 위기로 확대되었다.

 

이 위기는 내부의 불일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 당과 현재의 다수파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및 집행 기관 사이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정확히 지금의 위기는 절대적으로 비정상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동지들에게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고 기본적인 문제를 토론하고우리 당의 사상과 행동 강령이 무엇인지에 대해 최종적으로 결정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 (전체당 앞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당 활동이 마비되고 무력화될 수 있다공개적으로 당 회의를 개최할 수 없고 자유로운 언론이 없는 상황에서도 이 문서에서 그러한 작업의 시작을 제안하고자 한다.

 

리보르노 대회에서 우리 당이 설립되면서 만들어진 강령은 동지들이 이미 알고 있다그들은 이는 특히 전후 몇 년 동안 사회당의 본질적인 잘못에 대한 당 내부의 비판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다.

 

리보르노 직후 당의 지도부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당의 상황과 과제를 어떻게 보았을까당의 이론은 러시아 혁명과 제인터내셔널의 창립으로 부각된 혁명적이고 맑스주의적인 기초 위에서 분명하게 확립되었다국제적 연계의 힘으로 구별되는 이탈리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새로운 투쟁 조직은 구()당에 치명적이었던 전통적으로 피상적무질서개인 분파를 피하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해야만 했다진지함을 기반으로 냉철하게 성찰하는 새로운 기준이 공동의 대의를 위한 모든 개별 성원의 무한한 헌신과 결합하였다따라서 우리 활동의 가장 큰 문제는 코뮤니스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이탈리아의 상황에 구체적으로 적용해야 할 전술이다.

 

1921년 초 프롤레타리아 투쟁은 사회당의 결함으로 인해 우리와 같은 소수 정당이 혁명적 공세를 펼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타협적인 상황이었다그러나 당의 활동은 부르주아지의 공세에 대항하여 프롤레타리아트가 최대한의 저항을 끌어내고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투쟁력을 당의 기치즉 재건을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가진 당을 중심으로 최상의 상태로 집중한다는 측면에서 구상할 수 있었고또 그래야만 했다.

 

코뮤니스트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즉 어떻게 하면 산업주의자들의 공세에 맞서 프롤레타리아를 방어하는 단결을 최대한 보장하고동시에 이미 이탈리아 대중의 슬픈 경험이었던 모순된 지침으로 인한 안타까운 융합을 통해 대중이 겉으로 보이는 단결의 망상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우리는 반동과 파시즘에 대항하여 코뮤니스트가 노동자 조직의 통일전선을 구축하려고 시도하는 역사를 여기서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프롤레타리아트의 추종자를 가진 다른 정당의 행동 때문에 시도는 실패했지만적어도 사실에 근거하여 이러한 실패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전투적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코뮤니스트당에 모이는 경향이 증가함으로써 우리가 이득을 취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선전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분명하게 코뮤니스트의 지도를 받아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침묵한 적이 없으며이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코뮤니스트가 다른 정당의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할 것을 제안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에 이루어진 이러한 실험의 결과는 당과 인터내셔널이 논의하여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대차대조표를 정확하게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위험은 "당의 전술이 잘못되어 프롤레타리아트의 패배를 초래했다"고 말함으로써 이러한 질문이 사라진다여기서 핵심은 다른 정당의 누구도 선의와 다른 자질을 부인하지 않는 한 개인의 활동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것즉 전체 경험의 중요한 부분맑스주의 정당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이탈리아 역사의 현 단계에서 국제적 의미에 의해서만 더 중요해진 부분에 관한 판단이다이는 또한이러한 실험의 결과가 나온 후 당이 그 구성 기반을 검토하고 수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그리고 지난 1년 간 이탈리아 정치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명백한 사실즉 코뮤니스트당이 되돌리기에는 너무 깊고 오랜 원인에서 비롯된 사건의 진행을 막을 수 없었다는 점을 언급한 후우리가 리보르노에서 수립한 노선은 잠시만 따를 수 있었다는 점을 즉시 지적해야 한다여기서는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함을 동지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질문의 개요를 제시하고자 한다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 ‘인터내셔널’ 코뮤니스트 전술에 대한 이탈리아 당의 입장은 인터내셔널의 입장과는 다르다.

· 이탈리아 상황에 대한 견해 차이는 전술의 한계를 넘어 당 조직의 토대를 훼손하기 때문에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이다.

· 인터내셔널은 전술에 관한 정책을 수정했고지금도 수정하는 과정에 있을 뿐만 아니라이제는 강령과 기본적인 조직 규범도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요점은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이는 로마에서 열린 당 대회(1922년 3토론을 통해 잘 알려져 있으며당 대회에서 승인된 전술에 관한 논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두 번째 요점은 당원들이 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프롤레타리아 운동 내에서 이탈리아에 적용될 전술 문제의 차이점은 최근에 그리고 매우 느리게 나타났다제 3차 대회에 참가한 이탈리아 대표단은 인터내셔널의 전술에 이미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었지만당시와 그 이후까지 당의 구체적인 활동은 여전히 인정되고 찬사를 받았다.

 

나중에 '통일전선'과 '노동자 정부'라는 슬로건에 직면 한 우리 당의 노선은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두 가지 근본적인 초석의 사실에 근거하여 전술적 방법과 선전의 본질 사이의 충돌을 피하는 기준을 근거로 수립했다즉 "프롤레타리아트는 코뮤니스트당과 그 지도부의 정책을 지지함으로써만 부르주아지를 이길 수 있다"는 것과 프롤레타리아 권력은 혁명적 독재에 의해서만 건설될 수 있다는 것그래서 우리는 인터내셔널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했을지는 결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노동조합 통일전선선'에 참여하고 기회주의의 그늘에 맞서 공개적으로 캠페인을 벌였다.

 

인터내셔널은 때때로 구체적인 비판을 하기도 했고심지어 1922년 6월에는 당이 '노동자 정부'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이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가명'으로 규정할 정도로 비판했지만이후에 실제로 그것은 장관과 의회 참여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노동조합과 파시즘에 대한 문제에 대해 인터내셔널이 우리에게 대신 무엇을 하라고 요구했을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최대 강령주의 정당과의 융합 문제로 인해 이견은 더욱 깊어졌고상당히 중요한 분야로 확대되었다우리는 당의 '계보'가 리보르노에서 당이 설립되었을 때 역사적으로 확립되었다고 보았고당의 주요 목표인 다른 프롤레타리아 요소의 유입은 다른 운동에서 그들을 끌어내어 우리의 정치적 틀에 편입해야 한다고 항상 주장했지만다른 정당과 대중적으로 융합하려는 어떤 생각에도 반대했다또는 우리 대열에 합류하게 하는 대신 그 안에서 지지자들을 일부 만들려는 시도(우리는 '침투'나 세포 건설에 반대했다), 오늘날 인터내셔널은 리보르노를 일시적인 해결책으로 간주하고 사회당의 다른 '일부 조직'을 대중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그것에 따르면최대 강령주의자들은 개량주의자들과 분리되기를 주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와 분리되었다우리가 보기에 최대 강령주의는 개량주의만큼이나 위험한 기회주의의 한 형태이며그 전통과 주도 세력에 비춰볼 때 결코 혁명적이지 않고 무능과 관성 상태를 가장한 기만적인 말로 대중을 계속 잘못된 길로 인도할 것이다인터내셔널은 이탈리아 프롤레타리아트가 입지를 잃고 당원 수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최대 강령주의를 인정함으로써 상황을 바꾸고 국제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믿었다우리는 이를 (측근들의 비열한 지도자들에 의한패배주의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고전투적 프롤레타리아트의 불가피한 후퇴에도 불구하고 다른 정당의 청산으로 강화된 코뮤니스트당의 우위를 유지하고 싶었다.

 

이러한 사실은 최대 강령주의자가 조직을 혁명적 기반 위에 올려놓고 인터내셔널과의 유착을 충직하게 받아들인 것에 대한 정치적 저항을 보여준다예전에는 이것이 세라티 (일반적인 코뮤니스트 경향의 출현을 막음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우리는 세라티 자신이 당에 의해 또는 오히려 최대 강령주의라는 노동자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하는 수십 명의 지도자에 의해 제거되는 것을 보았지만후자는 그들이 잡혀 있는 그물을 찢어야만 이길 수 있다그리고 그들은 ... 코뮤니스트들이 융합을 막았다고 말한다 !!!

 

인터내셔널의 이러한 입장이 이탈리아에서 어떤 결과를 불러왔을까통일전선으로 인하여 당의 전술적 작업이 방해받게 되어 그들이 우리 전술에 얽매여 있던 상황에서 벗어날 기회를 다른 당에 제공했다그들은 코뮤니스트들의 제안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감추기 위해 '정치적연합을 제안했다노동총동맹과 노동동맹 내부에서 최대 강령주의자들은 모스크바가 이들에게 그러한 정책의 고수를 권유한 덕분에 오랫동안 지속해 온 치명적인 실수를 이어가면서 개량주의 게임을 하고 마지막까지 노동자들을 속일 수 있었다노동조합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1922년 8월의 운동을 매우 다른 지반 위에서 재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1922년 7월 제노바에서 열린 (노동연맹 회의에서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그곳에서 개량주의자들은 소수에 불과했지만다수파들은 의회 협력에 반대하는 선언을 하는 대가로 그들의 자리를 유지하게 되었는데이는 프롤레타리아 행동도 협동도 안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공식만큼이나 해로운 것이었다분명히 세라티와 다른 사람들은 투쟁에 대한 오래된 혐오감 외에도 인터내셔널에 다시 가입하는 대가로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조금씩 교환하면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우리에게 합류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 남아있도록 초대받은 제국제주의 분파의 형성은 기본적으로 모호성을 영속화하는 데 기여했다결론적으로개량주의로부터 분열 이후 사라졌어야 할 최대 강령주의 정당은 인터내셔널과 반복되는 제안을 조롱하면서도 아무런 약속도 이행하지 않고 안일한 기회주의로 상황을 악용하고 있다안타깝게도 이 어려운 시기에 노동자들의 관성적 경향을 악용하여 몇 가지 혁명적 문구를 통해 수동적이며 가식적인 충실함의 기치를 내걸고 어느 정도 노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것은 상황이 변하든 변하지 않든최악의 무력감 속에서 스스로 소진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세력이다.

 

그리고 비록 통합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더 심각한 이유로 당원 수가 감소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이기는 하지만노동자들이 코뮤니스트당에 호감을 갖는 경향을 보이는 특정 상황에서도 인터내셔널의 정책으로 인해 코뮤니스트당이 이점을 얻지 못하게 했다따라서 8월 파업 이후 인터내셔널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여전히 사회주의 분열의 가능성이었고어떤 의미에서는 파시즘의 출현과 우리 당에 반대하는 반동적 행동이 일어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그 대신 우리 당은 심각한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고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모든 가능성과 모순되는 위화감이 커지고 있으며 활동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의회 체제에 종속되어 있다더욱이 인터내셔널과의 차이로 인해 이른바 '소수파'라는 흐름이 형성되었는데이들은 정통 코뮤니스트로 위장했지만실제로는 리보르노 이후 낡은 사회주의 방식에 다소 집착하고 (새로운서투른 작업과 책임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모아 고상하고 근거 있는 주장이 아니라 난폭하고 때로는 조용한 험담으로 인터내셔널의 테제를 지지해 왔다.

 

이 모든 결과로 당은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부분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이러한 융합주의접근 방식의 결과는 리보르노에서 발생하여 명예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2년 넘게 투쟁해 온 당을 청산의 위협에 빠뜨리고 있다이는 이탈리아 프롤레타리아트를 가장 사악한 최대강령주의적 '중도주의'의 늪으로 다시 빠뜨릴 것이며이탈리아 노동계급은 이러한 시련의 과정에서 미래에 필요한 경험조차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좀 더 일찍 경고음이 울렸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전술적 문제에 대해 앞에서 말했듯이 실제로는 이견을 좁히기 어려웠다인터내셔널의 방식은 어떠한 구호를 한 번에 하나씩 제시하는 것이었지만우리는 더 넓은 범위에서 정의하는 표어를 사용하고자 했다융합과 연속적으로 이어진 사회주의 대회에서 제시된 다양한 대안과 관련하여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보기를 들어, 1921년 이후에는 더는 융합을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인터내셔널 분파와의 관계조차 적어도 우리가 아는 한 공식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1922년 말에 이르러서야 이 분열이 심각하게 드러났고이후 사건들을 통해 당이 거의 인식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그리고 최근에는 길고 고통스러운 협상과 개인적 성격에 지나지 않는 편법을 통해 도출된 미봉책이 아닌인터내셔널 내에서 폭넓고 진정한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졌다.

 

최소한 우리가 검토하기 위해 제안한 일반적인 사항을 언급하고자 한다3차 대회 이후 등장한 인터내셔널의 새로운 전술적 구호(제 4차 대회에서는 전술적 테제를 논의할 시간이 없었다)의 의미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이는 강령과 원칙에 대한 변화의 위험, 1924년 강령과 규약의 문제가 반복적으로 연기된 것에서 분명한 위험성을 수반한다동시에조직 규율의 심각한 문제는 많은 정당과 중앙과의 관계에서 불쾌한 내부 위기를 초래하는 무미건조하고 때때로 불연속적인 절차가 되었다.

 

이는 매우 심각해질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우리는 아마도 인터내셔널 진영에서 위기의 전야를 맞이하고 있으며우리 이탈리아 당은 위기에 깊이 빠져있다이러한 비정상적인 조건은 중앙 기관이 수행하는 규율을 잠시도 중단하지 않고 모든 성원 앞에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진지한 사항을 고려하여 가능한 한 더 자세히 밝힐 것을 약속하며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정 사항에 대한 동지들의 지지를 모으려고 한다.

 

현재 상황에 보이는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당을 위한 투쟁 경험의 가치와 당의 강령적 및 전술적 초점에 대해 당 내에서 광범위한 토론과 협의를 끌어내기 위해.

인터내셔널의 강령조직 및 전술적 행동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고우파의 수정에 맞서 싸우며무엇보다도 지침을 결정할 때 최대한의 분명함을 확보하기 위해.

이러한 토론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공동의 평가를 수행하여 당의 활동을 안내할 완전하고 분명한 계획이 작성되도록 한다이를 바탕으로 모든 성원이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모든 역량을 가장 합리적으로 투입하여 이전의 심각하게 불안정한 상태가 된 이유와 원인을 극복함으로써 당의 업무와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시작될 것이다.

 

이 토론이 공동의 원칙에 기초한 일련의 결정에 대한 실질적인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다면인터내셔널 대다수의 의지에 따라 코뮤니스트 성원으로서 우리의 입장을 유지하면서우리는 당의 주요 조직이 그들이 적용하도록 요구되는 지침(이러한 지침은 일관된 방식으로 그리고 적용해야 할 지침에 대해 완벽하게 확신하는 동지들에 의해 작성되어야 한다)에 따라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당의 주요 조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사항

 

이 문서를 받은 동지들이 복사하여 당원들에게 배포하고 이 글도 복사해 주었으면 한다.

 

동지들은 이 문서에 대한 동의 또는 반대 의견그리고 이 문서와 관련된 모든 통신을 이 사본을 준 동지를 통해 보내주시오답장은 같은 방식으로 전해질 것이다.

 

이 문서는 당 중앙위원회와 인터내셔널에 발송되었다.

 

해외에 전파하게 된다면 이는 또한 큰 관심을 받게 될 것이다번역을 해주시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발기인들

1923년 여름감옥에서 작성

 

혁명적 전망」 22

2023년 8월 14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08-14/amadeo-bordiga-s-prison-manifes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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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6강>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전복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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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6강>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전복의 전망"
 
 
강사 ㅣ 윤태상
 
일시 ㅣ 2024년 9월 28일(토요일) 오후 2시
 
신청 ㅣ https://forms.gle/Yk1fp4297LCd1z7U8 (줌 병행) 
 
 
(이메일 문의 및 신청 : communistleft@gmail.com)
 
 
자본주의 체제 전복 없이 기후정의, 체제전환 없다!
기후정의를 위한 체제전환은 혁명을 통한 코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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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창간호] 의식의 문제 : 당 계급 토론을 위한 기초

의식의 문제 당 계급 토론을 위한 기초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프랑스 코뮤니스트 사이 일련의 토론 부분을 담은 글이다특별히 이 글은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의 내부 분파로 부르는 동지들이 제출한 문서에 대한 답변이다그 분파가 ICC에서 탈퇴한 지 몇 년이 지났다글 끝에 실린 인용문은 그 내부 분파의 문서에서 발췌한 것이다.

 

의식의 문제는 폭넓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 문서는 당과 계급 사이의 관계만을 다루고 있다그것은 1차 세계대전 후의 혁명들의 실패특히 러시아혁명의 실패라는 불행한 유산 중의 하나다다시 말해 자본주의에 맞서는 강령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이끈 당에 대한 모든 생각이 신뢰를 잃었다는 점에서 그렇다볼셰비키(나중에 코뮤니스트)당이 자본주의 반(反)혁명의 도구가 되었다는 것은 1917년 지주자본가그리고 사회민주주의 협력자들의 임시정부를 전복하기 전과 전복 과정에서 당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명료한 표현으로서 수행한 역할을 흐려버렸기 때문에 사실이다당이 점차 계급의 기반을 대체한 러시아 내전(1918-21)에서 벌어진 일들은 당이 사회주의를 위한 선전을 확산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에 맞서는 반란으로 이끄는데 계급의 가장 의식적이고선진적이며명료한 부분이라는 전반적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거부하게 만들었다당이 봉기를 이끌고 당의 임무를 시작하기 위해강령으로 계급에 되돌아간 인간의 대대적인 변혁만이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이는 말 그대로 노동계급의 절대 다수의 작업일 수 있고 또한 말 그대로 사상의 생산의 주인(자본가계급)이 극복되는 시작일 수 있다이러한 생각의 확장은 혁명적 전망(21-30)에 게재된 계급의식에 대한 연재물에 실려 있다이는 수정되어 소책자로 재출간될 것이며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에서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 중에 있다.

 

의식의 문제는 당과 계급 사이의 관계 분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그 관계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방법론적 정식화의 실질적 차이를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기 때문에 그 차이가 존재한다면 몇 가지 기본적인 개념을 여기서 다시 서술하는데 논의를 한정하려고 한다.

 

 

첫째혁명혹은 코뮤니스트 의식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이 개념은 부르주아지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서 즉자적’ 계급의 의미만을 뜻하지 않는다그것은 착취당하고 있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깨달음과 그 착취를 끝장내기 위한 투쟁의 필요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코뮤니스트  의식은 자본주의 생산과 분배의 관계가 부과한 예속의 조건을 실질적으로 극복하는데 필요한 시간의 길이수단투쟁의 형식전술전략과 정치 강령에 대해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적 인식을 하고 있음을 뜻한다또한 코뮤니스트 의식은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주고 있는 정치적 형식을 극복하는 것을 뜻한다맑스의 말을 빌리면 프롤레타리아트가 즉자적 계급에서 대자적 계급으로 나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계급투쟁의 역사는 객관적 조건에 의해 떠밀린 프롤레타리아트가 당면한 이해를 방어하는 기반 위에서 싸울 수 있고 또한 반드시 싸워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그 역사는 또한 투쟁의 도구를 줄 수 있고 계급투쟁의 궁극적 결과인 봉기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데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그러나 총체로서 완전한 계급의식에 도달할 수는 없다다른 말로 그것은 전술적이고 전략적인 문제를 풀 수 없고 혁명당이 그 안에 구체화되지 않는다면 완전한 정치 강령에 도달하기도 어렵다.

 

올바른 유물론적변증법적 해석으로부터 관념적기계적평의회적경제주의적 입장을 구별해 내는 것이야말로 의식의 문제이고 당과 계급 사이의 관계 문제이다본질적인 문제는 특정한 수준에서 정치적이 될 수 있고스스로 피할 수 없는 의식의 성숙으로 이끄는경제적 요구 투쟁의 발전을 통하여의식이 계급의 내부로부터 생겨나는지를 아는 것이 아니다또는 계급 외부로부터 의식이 들어온다면그것은 계급의 바깥에서 당이 만들어지고 혁명적 정치의식의 위로부터 주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우리가 이러한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이 계급 바깥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당면한 경제적인 계급의 모든 요구를 종합하고 역사적 과업에 속하는 요구를 종합하는 것은 더 진전된 논의의 부분이다이러한 의미에서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만이 그 의식은 외부에” 존재한다사회학적 구성으로 볼 때 프롤레타리아든소부르주아든부르주아지에서 나온 지식인이든 간에당은 계급 안에서 태어난다당은 조그만 경제적 요구로부터 완전한 정치 강령에 이르게 하는 보다 보편적인 전략적 요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급투쟁의 요구를 스스로 만든다당의 정치 지식은 다양한 계급 경험의 역사적 종합의 결과이다그것은 승리의 원인을 맨 앞에 내세우듯이 패배의 원인으로부터도 배운다그것은 매일 계급투쟁의 뒤틀림과 반전으로부터 때로는 숨겨져 있거나 본능적이고 부문적인 계급투쟁으로부터 나오는 충동 뒤에서 이끌어낸다당은 전 계급에게 정치적 전술과 전략을 통해 이 계급투쟁의 경험을 되돌려준다이처럼 그 관계는 계급과 그로부터 분리되고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와 더 앞서는 사려 깊은 부분 속에서계급 스스로 내부에서 형성되는 관계다이러한 앞선 부분은 아래로부터노동자로부터 충동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정치적 전략으로 만들어 다시 그들에게 되돌려주는 부분으로서의 당이다.

 

이는 투쟁하는 동안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이 일정 정도의 정치의식을 발전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그러나 특히 오늘날 같이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적 지배 아래에서 경제적 요구의 부분적 측면과 계급투쟁의 최종목표에 대한 세계적 전망의 결여가 당의 존재를 요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당은 세계적 계급의식을 제공하고 있으며전위로서 당 내부부터 그 의식을 만들 수 없다면 계급의 적에 맞서는 투쟁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의식을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의식은 하늘로부터 떨어지듯이 외부로부터 주어지지 않는다왜냐하면 당은 계급 밖에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그러나 의식은 변증법적으로 연관된 두 가지의 분리할 수 없는 계기의 산물이다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에게는 계급의 정치적 도구로서의 당이 항상 존재해야 하고계급투쟁의 매 순간에 정치적 준거가 되도록 추구해야 한다우리는 혁명을 향한 계급투쟁의 정치적 진화가 당 없이 일어날 수 있다거나 당이 단순히 조직자이며 전 계급이 독립적으로 정치 강령과 그를 실행할 수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처럼 투쟁을 일반화할 뿐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우리는 또한 당을 기껏 대부분의 반혁명 시기에 연구센터로 여기면서 오직 혁명 시기에만 그 필요성을 설파하는 논지를 위험하다고 본다이는 객관적 조건이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프롤레타리아트를 투쟁으로 강제한 후 주요 경제위기가 당을 만드는 시점과 두 실체 사이의 모든 연결고리를 기계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이 경우에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투쟁이 그 투쟁의 과정에서 정치적 지도력의 부재또는 너무 늦게 만들어진 당 때문에 정치적으로 유린되었고유혈적으로 억압되었는지를그리고 하루에 날조될 수 없는 정치적 관계를 형성하는데 심각하게 지체함으로써 계급으로부터 멀어졌는지를 역사는 가르치고 있다.

 

객관적 조건은 계급투쟁을 작동하게 할 수 있다그 조건들은 계급과 당 사이의 관계를 편하게 하고 강화할 수 있다그러나 그 조건들은 무에서 만들어질 수 없다만약 그럴 수 있다면 어쨌든 너무 늦은 것이다아주 한참당은 봉기 단계 전에 역사적 시기에 이미 존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당은 계급 자체와의 관계를 작고사소하지만 효과적으로 세우는 데 성공해야 한다그렇지 않을 경우 사건들위기와 프롤레타리아의 투쟁 의지는 이른바 당에 의해 쥐어질 수 없다그래서 그 모든 결과로 또 다른 정치적 패배로의 길을 닦을 것이다이는 계급투쟁의 앞으로의 소생을 어렵게 만든다왜냐하면 당이 계급의 부분즉 계급투쟁의 일시적 도구가 아닌 영속적 도구이기 때문이다당이 계급과 함께 성장하고 정치적 지도력을 줌으로써 계급과 함께 진화하지 않으면 불가피하게 패배의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당이 오로지 계급투쟁이 시작된 후에만 만들어지고 그 투쟁과 함께한다는 이론을 지닌다면 패배는 더욱 확실해 질 것이다계급투쟁이 사라지거나 낮은 수준의 투쟁만이 있는 시기에 그늘과 같은 후퇴가 있더라도.

 

이는 당이 당 주위의 사회적 맥락과 독립적인 자율적인 삶을 살 수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엄청난 반혁명 시기에 당과 계급을 통일하는 박약한 관계는 깨어지고 프롤레타리아트는 계급의 적에 의해 패퇴되어 당은 말 그대로 지워져버린다그러나 이는 그 상황에 따른 최소한의 정치적조직적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수행하는데 더욱 진전된 요소들을 막아낼 수 없다당은 개입되거나생성하고 사라지는 조건들을 선택할 수 없다반대로 경제적사회적 조건들은 계급투쟁의 리듬과 당의 개입 가능성의 정도를 규정한다그 수위가 어떠하든 계급투쟁을 위한 준거가 되려는 시도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투쟁의 요구를 궁극적 요구로 만드는 것 외에 경제투쟁에서 당의 주요 임무는 투쟁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다른 말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일상 투쟁이나 방어적인 경제 투쟁은 경제적노동조합주의적 투쟁을 정치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피할 수 없는 필요조건이다경제 투쟁은 요구수준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을 일으키고 정치적 적을 떠나지 않으면서 쇠퇴한다계급의식의 더 높은 수준에서 다음 투쟁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정치적 지식으로 어떠한 경제투쟁도승리하든 패배하든 간에변혁시키는 임무가 있는 혁명당의 개입이 없는 한 그렇다는 뜻이다.

 

보다 명확하게 말하면당의 우선성은 당면 요구라는 자연스러운 영역으로부터 계급투쟁을 정치투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투쟁이 착취의 의식과 계급의 적에 대한 투쟁의 필요성으로 볼 때조직적 측면이나 정치적 수준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그 투쟁을 유발시킨 경제적 상황을 넘어서 나아가지 않고계속해서 요구투쟁의 틀 안에 머무르게 된다이러한 의미에서 당의 존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며그와 더불어 혁명적 습격으로 이끌고  코뮤니스트 강령을 정교화하는 전략적 준거의 틀로서 당의 역할을 요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정식화가 가능하다.

 

노동계급이 당면한 경제적 이해를 방어하는 투쟁을 하게 될 때그것은 객관적으로 계급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의식의 문제를 결정한다.”는 정식화는 의식의 문제에 관한 당과 계급 사이의 이 관계에 대한 어떠한 해석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것이다만일 그렇다면 계급의 경제적 요구는 스스로 전술전략그리고 코뮤니스트  강령으로 구성되는 역사적 역할에 대한 의식을 기계적으로 결정할 만큼 충분하다그렇다면 당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모든 것이 계급의 운동과 그 역사적 역할의 독립적 성숙에 위임되기 때문이다현실적으로는 그 반대가 진실이다경제적 수준으로부터 정치적 수준으로 투쟁을 연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질적인 도약을 수행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적 부분인 계급 전위곧 당이기 때문이다.

 

위와 똑같이 다음의 정식화도 허약한 주장이다.

 

경제적 요구투쟁은 계급과 그 투쟁의 역사를 통해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표현다시 말해 일정한 발전의 수준에서 계급정당이 되는 정치적 표현으로 나타나는계급의 경험을 종합하고 이론화하기 위한그리고 일정한 수의 노동자를 지배이데올로기의 혼돈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의식을 위한 객관적 조건이다.”

 

이 경우 당의 역할은 우선적으로 계급에 맡겨지고 그래서 당은 계급 스스로의 정치의식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으로 특징지어지는 이미 결정된 역사적 단계에서만 만들어진다당은 계급 투쟁의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그리고 전술과 전략이 된 것도 그것이 갇혀 있는 경제적 우리를 부수면서 계급을 혁명적 길로 되돌리는 일련의 경제투쟁그리고 그것의 종합과 정교화의 역사적 성과가 된다그러나 당은 전체로서 계급이 의식을 획득하는 과정을 독립적으로 끝내고 난 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또한 당은 계급투쟁이 매번 반복되는 동안 이미 결정된 진화적 과정을 논리적으로 끝내고 나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계급관계는 학문적인 문제가 아니다반대로 코뮤니즘 이론과 실천의 기본에 대한 근본적 동의와 명료성은 우리가 열정적으로 바라는 어떤 것모든 일관된 혁명적인 힘이 함께 오는 과정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Bilan & Perspectives No. 6 (2005년 12월)

번역 ㅣ 오세철

 

<원문 출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23호,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2005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05-06-01/the-question-of-consciousness-a-basis-for-discu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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