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안이 될 수 없다
SKB비정규직지부 농성 현장을 찾아서
- 임성용
1. SK그룹 본사 농성 77일째
지난 9월 14일 저녁, 종각역 6번 출구에 있는 SK그룹 본사 앞에서 희망연대노조 산하 ‘SKB비정규직지부 투쟁 승리를 위한 금요연대문화제’가 열렸다. 77일째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문화일꾼들이 참여해 진행해온 연대문화제다.
SK브로드밴드(SKB)는 거대 통신사인 SK텔레콤의 자회사로, 인터넷, IPTV, 전화를 설치하고 유지 관리하는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전국에 103개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각 지역센터는 SK텔레콤과 위, 수탁 계약을 맺은 별도 법인 형태이며 노동자들은 전원 간접고용형태다.
문화제는 노동조합 정책실장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전남동부센터에서 상경한 조합원의 투쟁발언, 섹소폰 연주, 비보이 춤꾼의 신나는 춤, 시낭송, 노동가수 김성만 씨의 노래가 곁들여졌다. 참석자는 50여명,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요즘 분위기로는 적은 숫자도 아니다.
부분파업 중인 조합원들이 문화제 때마다 각 지역에서 교대로 단체 상경하고 있었다. 이날 순천에서 버스를 대절해 올라온 조합원은 활달하고 의지가 넘쳤다. 순천센터에는 30명 정도의 조합원이 있고, 순천과 여수 등 도시지역뿐 아니라 인근의 군ㆍ 읍면까지 전남 동부일대의 서비스를 담당한단다.
“노동시간 단축, 안정된 임금 보장도 중요하지만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자회사 전환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우리는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하면서 애초부터 ‘진짜 사장이 책임질 것을 요구’하고 투쟁을 벌여왔습니다.”
상경 조합원의 말에는 문제의 핵심이 담겨 있다. 여기서 SKB비정규직지부의 역사를 살펴보자.
2. 자회사 만들기 꼼수
SKB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것은 4년 전인 2014년 3월 30일이었다. 상부노조로는 ‘희망연대노동조합’에 가입했다.
‘희망연대노동조합’은 통신노동자, 콜센터, 물류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또한 노조 가입이 힘든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과 서비스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권리보장 사업을 하고 있으며, 지역이나 기업과 관계없이 개인도 가입할 수 있는 초기업노조이다. 노동조합이 지향하는 활동이나 신조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철폐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목표로 한다. 2009년 12월에 창립되었다.
SKB에 노조가 생기고 각 현장에 지회가 결성되자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노동자들이 센터의 부당한 처우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야간근무, 휴일 근무를 거부하기도 했다. 노조의 교섭 공문을 부착하지 않은 센터들은 조합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아야 했다.
2014년 11월, SKB지부는 다단계 하도급 근절, 고용 보장,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첫 전면파업에 나섰다. 이 시기에 현장지회장들이 자발적인 모임을 결성하여 즉각적인 파업에 나설 것을 노동조합에 촉구하기도 했다. 현장지회장들의 행동은 조합원들의 압력을 반영한 것이었기에 매우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SK의 태도는 변화가 없었다. 이에 노동조합은 파업 50일 만인 2015년 1월 6일 SK그룹 본사 건물에 대한 점거투쟁에 돌입했다. 이날, 200여 조합원이 종로구 SK그룹 본사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다 전원 경찰에 연행되어 크게 보도가 되었다.
한 달 후인 2월 6일에는 SKB와 LG유플러스 비정규 노동자 두 명이 장기파업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서울중앙우체국 앞 15미터 높이의 전광판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장연의, 강세웅 두 노동자는 고공농성에 돌입하면서 “원청인 통신대기업들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갖고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설 때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통신노동자들의 광고탑 농성은 80일 동안이나 이어졌다.
이런 투쟁에 힘입은 희망연대노조는 이듬해 3월 초, 중재인이 참여한 가운데 회사 측과 교섭을 벌인 끝에 그 결과를 전체 조합원 찬반투표에 붙여 통과 시키고, 4월17일 조인식을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시작이었다. 임단협이 체결되었으나 각 현장은 이를 적용하는 문제로 센터 측과 승강이를 벌여야 했고, 센터의 탄압은 노골화되었다.
게다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요구가 계속되자 SK는 교묘한 수법을 택한다. ‘홈엔서비스’라는 자회사를 만들어서 기존의 비정규직들을 이 회사에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SKB에 직접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요구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간접고용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았다. 무늬만 정규직인 전형적인 꼼수를 부린 것이다. 현재 투쟁 중인 노동조합의 이름은 ‘SKB 비정규직 지부’인데, 그 사용자 주체가 ‘홈앤서비스’로 바뀌었을 뿐이다.
회사 측이 노동자의 여망을 자회사를 통한 하청화로 교묘히 왜곡시킴으로서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복수노조가 만들어져 노동조합이 분리되고, 노동자들은 전환과 미전환으로 이간질되었다. 홈엔서비스가 만들어지면서 일부 노동자가 홈엔서비스 쪽 노조에 가입, 사측 입장에 동조해 투쟁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다행히 그 숫자는 훨씬 적어서 SKB비정규직지부는 2017년 8월, 창구단일화 절차를 통해서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획득한다. 2018년 현재 홈엔서비스 조합원은 760명으로, SKB비정규직지부의 1,600명보다 훨씬 적다. 또한 홈엔서비스 조합원 중에도 200명은 이번 파업에 찬성했고 극히 일부지만 파업에 동참하기도 한다.
회사가 자회사를 택한 이유는 당연히 직접고용을 회피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노동조건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임금도 변한 게 없고, 오히려 근로환경은 더 악화된다. 자회사는 노동자에 대한 통제를 쉽게 하는 수단임이 입증되었을 뿐이다.
결국 올해 2018년 6월 29일, SKB비정규직지부는 다시 파업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3. 파업의 의미와 문재인 정부
SKB비정규직지부 파업의 의의는 정치적으로도 크다.
공공부분을 비롯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다. 그러나 일부 공공부문에서 무기계약직 전환을 했을뿐,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었다. 오히려 여러 공기업들의 정규직을 가장한 기만적인 자회사 꼼수는 더 심했다.
민간부문의 비정규직 문제도 다를 바 없는 문제였다. 문재인 정부는 재벌 중에서 특히 현대, SK와 손발을 맞춰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발표하자 민간 기업에서는 최초로 SK가 비정규직 직고용을 발표했다.
문제는 그 직고용이라는 것이 한낱 자회사 설립이었다. SK 투쟁에서 보듯이,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실상 ‘정규직화 제로’이다. 따라서 SKB비정규직지부의 파업은 문재인 정부를 정조준하는 셈이다.
이번에 쌍용자동차 해고자 전원 복직 합의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쌍용차 해고자 119명 전원복직 합의에 매우 기쁘고 감회가 깊다”고 했다. “걱정이 많으셨을 국민께 희망의 소식이 되었기를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편으로 “긴 고통의 시간이 통증으로 남는다.”고도 했다.
대통령이 진심으로 고통을 느꼈다면,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마음속으로만 희망이니 기쁨을 생각할 게 아니라, 실제로 희망을 주는 정책을 실행하고, 비정규직에게 기쁨을 주고, 노동자 모두에게 위로를 주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노동, 사회에서 만연한 사회적 합의주의는 이젠 몇몇 개인이나 특정 노조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전 노동자적인 단결과 계급투쟁의 전망이 실종되면서 사업장도 변하고, 현장도 변하고, 노동자도 변하고, 노조도 변했다. 변하지 않는 것은 한가지다. 연대하여 투쟁해야 한다는 점이다.
SKB비정규직지부 노동자들이 아직은 자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싸우고 있지만, 상급노조와 노동자조직에서는 이 중대한 투쟁의 불씨를 전국적으로 상승시켜야 한다.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싸우고 있는 SKB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모든 노동자들이 지지와 연대를 보내야 할 것이다.
4. 승리를 위하여 연대를!
이번 파업을 이끌고 있는 정범채 지부장은 이날 문화제 마지막 발언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화수목, 교섭을 했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사측에서 우리 조합원들을 징계하고 고소고발하고,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어떻게 교섭이란 걸 할 수 있겠습니까? 저들도 사람이라면 우리 민족의 명절인 추석도 앞두고 있는데, 이렇게 탄압일변도로 나올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교섭장에 나간 겁니다. 저들에게 얘기했습니다. 교섭 이틀 전에 대표에게도 얘기했습니다. 진짜 추석이라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대체인력부터 빼고, 징계와 고소고발도 무효로 해라! 저들은 이야기합니다. 대체인력은 고객서비스 때문에 뺄 수 없고 징계라든가 고소고발은 법과 원칙에 따라서 하겠다고 합니다. 교섭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일 쟁대위를 통해서 앞으로 투쟁방향을 동지들과 함께 결정을 내릴 것입니다. 저는 투쟁에 있어서 동지들이 정말 가열차게 잘 싸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측은 이렇게 잘 싸우는, 특히나 가열차게 선봉에선 부대들을, 대표적인 조합원들을 징계하고 고소고발하고, 그것으로 우리 노동조합의 예봉을 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내일 쟁대위를 통해서 앞으로 우리 투쟁기조가 진짜 생활임금이고 뭐고 다 좋은데, 그런 생활에 필요한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소중한 동지들에 대한 징계와 고소고발을 기필코 막아낼 수 있는, 그러한 강력한 투쟁계획을 같이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현재 저들이 벌이고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의 작태들, 저런 기세를 우리가 꺾지 못한다면, 교섭도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교섭위원들에게 많은 좋은 말씀을 해주십니다. 근데, 교섭자리에선 그런 게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강하게 저들을 압박할 때, 저들은 꼬리를 내리는 것이지,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교섭에서 물론 최선을 다하겠지만, 정말 우리 노동자들의 이 절박한 마음 하나하나가 묶여서 투쟁심으로 똘똘 뭉치지 않는 이상 교섭은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소중한 동지들, 정말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교섭이고 투쟁이고 정말 나를 지키고 내 앞에 동지를 지킨다는, 내 가족을 지킨다는 그러한 각오와 투지로 싸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여름, 그 무더운 폭염을 이겨내고 농성장을 지켜온 정범채 지부장은 6월 말에 보았을 때보다 얼굴이 많이 거칠어져 있었다. 지친만큼이나 목소리도 차분했다. 그러나 그가 외치는 “질긴 놈이 승리한다 끝까지 투쟁하자!”는 구호 한마디에는 절박함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SK그룹 본사가 있는 서린빌딩 기둥을 등지고 세워진 농성천막, 빌딩 앞 도로변에 묶인 많은 현수막들, 가로수를 이은 줄에 매달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와 결의가 적힌 빨간 리본들 너머로 수많은 행인들이 무심하게 또는 궁금한 듯 바라보며 지나간다.
저 펄럭이는 것들, 나부끼는 것들을 깨끗이 걷어내고 SKB비정규직지부 노동자들이 투쟁의 승리를 만끽하며 활짝 웃는 날은 언제일까?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기업에게만 맡겨둔 채 방관하고 있는 한, 그런 날은 요원해 보인다. 우리가 비정규직 투쟁을 개별사업장 문제로 보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다면 역시 좌절의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보다 많은 관심과 격려,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압박이 필요하다. 자회사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필자 : 임성용. 운수노동자, 시인. 시집으로 <하늘공장> <풀타임> 산문집 <뜨거운 휴식>이 있다.
*월간 '시대' /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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