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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서 온 편지
-남궁원 동지 10주기에
십 년이 지나서 동지라는 말도
그리운 형이 되고 아우가 되고 친구가 되었네
아득한 안개 속에 흩어진 얼굴 많았지만
예전처럼 푸른 미소는 한결같은 기억으로 떠오르네
돌아보면 폭풍도 없는 하늘에 먹구름 덮이고
몽롱하게 잠든 대지에 변함없는 계절이 오건만
우거진 풀숲에 이름을 묻고 노래를 묻고 칼을 묻고
아무런 광채로도 빛나지 못한 꿈이 있어
동지라는 나무에서 어떤 목소리로 떨어지는가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데
목숨은 늘 더러운 민주주의가 앗아가는 것인가
피냄새를 오래도록 잊은 혁명의 나무는 어디에서 자라는가
낭만적인 피여
벽화처럼 얼룩진 꽃이여
한 그루 나무가지 사이를 뚫지 못한 바람이
흔들리는 잎사귀 앞에서 머뭇거리네
노선도 정파도 구분없이 서로 섞인 무덤을 쓰다듬고 있네
거침없이 솟아나는 인간의 힘과 믿음은
지상에서 가장 차가운 목숨의 감옥에 갇히고
눈시울만 붉어져라
가슴치는 꿈과 목숨보다 짧은 말은
누군가 감옥에 써놓은 비밀스런 글씨가 되었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삶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투쟁이 얼마나 최선이었는가를 생각하네
우리가 버리지 못한 보잘 것 없는 영욕까지 모두 버리면서
오로지 견결한 전위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우리에게 약속할 수 있는 해방의 날이
나에게 더욱 짧아지는 것을 아파해야 하네
혁명의 실종은 혁명의 포기로부터 왔다고 했으니
우리 생이 남아 있는 날은 참으로 짧지만
우리가 우리에게 썩은 상처 한 가운데를 파고들어
박해받은 저 수많은 유골들이 빛나는 길을 걸어야 하네
전망이 없어도 좋아라
전복은 전망보다 앞서 오는 것이니
여기 신성한 해방의 언덕에서
동지라는 나무에게서 온 편지를 읽고 있네
詩 임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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