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생각_펌 - 2005/07/05 08:36

1. X 이야기

 

아직도 만화 [X]는 끝나지 않았겠지?

만화방에 너무 오래 안 갔네.

 

X 에 보면 (편의상) 좋은 카무이와 나쁜 카무이가 나오는데,

좋은 카무이는 세상을 지키려는 카무이(인 듯 하)고,

나쁜 카무이는 세상을 멸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려는 카무이(인 듯 하)다.

 

여기서 나쁜 카무이가 '나쁜' 이유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싶은 욕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창조의 토대 마련을 위해 세상을 멸할 생각인데 곱게 멸할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구에 존재하는 인간들은 다 쓸어버릴 정도의 계획은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결정적으로 이 나쁜 카무이가 진짜 '나쁘다'고 판정되는 그 때가 언제였냐하면

자신의 친누이를 찔러 죽일 때였다.

근친 살해라니 참 악독한 범죄이지.



2. 며칠 전 버스안 이야기

 

출근길에 버스에 앉아 핸펀으로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뒷자리에서 어떤 아저씨가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자리도 양보를 ... 저런 년들은 우산으로 후려갈겨야해"

물론 뒤를 돌아보지는 못하고 앞으로 고개를 들었는데, 방금 전 하차한 정류장에서 타셨나보다. 할머니가 한 분이 서계셨다.

'아뿔사, 나한테 한 얘기로군.'

이젠 더더욱 뒤를 돌아볼 용기는 사라졌다. 안 봐도 비디오, 그런 아저씨는 잘 못 쳐다만 봐도 진짜 우산으로 한대 갈겨버린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나는 할머니에게 바로 일어나 자리를 내어드리지 못했다.

왕뻔뻔하다고?

나, 생각보다 소심하다.

그저 순간의 황당함과 모멸감에 상처받은 자존심 찌끄러기로 잠시 몇초 버틴 후 다음 정류장 즈음하여 카드 긁고 내렸을 뿐이다.

 

솔직히 왕 분하다!

할머니 발견, 자리 양보 여부에 대한 갈등, 소지품 챙김, 자리에서 일어남 등등의 시간적 여유도 없이 쏟아지고만 비난, 특히 그 말 하나하나는 정말 용서할 수 없다.

나처럼 '젊은 년'들은 양보 안 하고 버텨 앉아있는 게 더 힘들단 말이쥐.

 

여하튼...

분노에 찬 상태에서 머리속은 완전 전쟁통인데

순간적으로 드는 감정은 '한 대 후려갈겼으면 좋겠다.'였는데,

이게 점점 지나면서 (그 아저씨, 대략 40대쯤 아닐까 생각하며) '저 세대들, 빨리 사라져줬으면, 늙어 죽어줬으면 좋겠다'로 이전되고 있었다.

 

 

3. 고민하는 카무이의 선택

 

좀 지나면서 '내가 바랬던 게 뭐냐'를 고민해봤는데, 

그저 "후려갈겨야 해" 스타일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게지.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양보를 한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강압이나 폭력에 놀아난게 아니라 나의 의지이길 바란거고...

그래서 아주 구체적으로 내가 그 아저씨에게 정말 바랬던 게 나에게 그저 약간의 여유나 "할머니한테 자리 좀 양보해주겠어요?"라는 식의 인간적 문장이 아니었나 싶다.

 

좀 놀랐다.

단순히 아저씨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내 감정에 대한 공포.

 

갑작스레 나쁜 카무이와 이번 일에서의 나와 여러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1. (어떻게 변할 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아닌)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것.

 - 적어도 나는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양보해주겠어요?"라고 노곤노곤 권하는 세상에 살고 싶다.

 

2. 이를 위해서 기존의 것(전체이든 일부이든)을 멸해야 얻을 수 있다는, 특정 존재들이 사라져줘야 얻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

 

'확 엎어버려?'

 

확 엎어버리자는 게 나쁜 생각일까? 그게 왜 나쁘지?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그것을 행하는 방식이라는 게

인간 존재의 부정 하나로 획일화되었다는 것은 분명 내가 나쁜 교육을 받았다는 증거다.

 

세상의 그 어떤 영웅도 세상을 지키는 녀석들이 좋은 녀석들...

세상을 좀 바꾸려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사람 하나 죽이는 그 순간부터 나쁜 놈으로 전락한다.

왠지 심하게 세뇌받은 느낌이다. 이 세상은 고대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원래의 의미와 무관하게 주인공들이 행하는 잔혹 무도한 방식에 신경이 꽂혀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그 빛을 바래게 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 나 자신은 아무 의미없이 지루하게 봤던 영화 [마지막 확제].

어느날 쭌모 가 [마지막 황제]에서 마지막 황제가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닌 노동자로 살아가게 만드는 마무리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물론 무슨 노동수용소 같았던 기억이 있으나(앗, 이것도 세뇌?)

어쨌든 자본가나 권력자를 같은 노동자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이게 맞다면)은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생각인 것 같다.

 

가능성이든 강제성 여부든 간에 이것저것 고민이 되지만 그래도 뭐든 단계적으로 고민하도록 전환해봐야겠다.

언제나 머리속에서 하루에 몇명씩 저 세상 보내시는 극약처방만 내리는 것도 이제 짜증난다.

 

 

* 음... 물론 아저씨의 욕지거리를 노곤노곤 말투로 전환하는 건 매우 매우 불가능한 프로젝트로 보이긴 한다. 솔직히 같이 살기 싫다.

그래도 그 아저씨는 '언어폭력을 통한 강압으로 도덕 유지, 남성우위 확인'한다는 목적에 매우 충실히 사는 것 보면 나랑 이 세상 같이 사는 게 살만한가 보다.

박카스 광고기획자한테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 말고 '대중교통 이용하면서 언어폭력 삼가'도 기획해달라고 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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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05 08:36 2005/07/0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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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호 2005/07/05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어떻게 그런 황당무개되먹지못한아저씨가 있대요! 지니야(?)님 너무 얌전하게 내리신거 아니에요?? 그 아저씨에게도 제대로 된 게 무엇인지는 알려주고 내리셨어야죠! 비록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흠. 제가 다 분하네요.

  2. jineeya 2005/07/05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호/폭력에 굴한거죠..._(-_-)_;;; 전 무서워서 피한 거 맞거든요.
    예전에 지하철에서 스님 복장한 왠 아저씨가 파마했다는 이유로 어떤 젊은 여자 머리를 우산으로 인정사정없이 갈기더라구요.
    그거 본 이후로 전 입에 담긴 말이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진짜 '행동'을 전제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용기내어 좀 맞고 개긴다'는 게 참 어렵슴다.
    우산 맞을 각오가, 굴욕과 짬뽕된 폭력에 맞설 자신이 없어서리...^^;;

  3. 레이 2005/07/05 2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무지무지 공감되는 내용이네요. 특히 '솔직히 같이 살기 싫다'는 말에 1000% 공감. ^^

  4. jineeya 2005/07/05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레이/하하, 그러실 줄 알았슴다.^^;;

  5. lsj 2005/07/06 0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딴얘기. 예전 우리 오라버니가 고딩시절. 버스에서 당한 황당사연.
    버스를 타고 있다. 할머니가 타신다. 웬 친절한 신사가 오라바니를 두번째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친다. "할머니 여기 자리 있어요" 다음순간 오라바니는 투명인간이 되어 일어난다. 상황종료.
    연소자와 여자가 살기 힘든 세상...

  6. 부깽 2005/07/09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글을 읽으면서 마구 분해하다가 결국은 lsj님 댓글로 웃어버렸네요. :)

  7. jineeya 2005/07/13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lsj,부깽/저도 투명인간 보고 훗^^ 그래도 왠지 씁쓸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