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만화영화책 - 2005/08/10 01:10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봤던 [착한 새끼고양이].

요시토모 나라의 1994년 작이다.

나는 오늘 요시토모 나라의 머리 속 서랍 한 켠을 구경했다.



나라(Nara)에 대해 가장 놀란 점은 그가 그(he)이고 59년생이라는 점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어리다 싶게 젊고 여성일 줄 알았다. 참 편견도 심하지.

but, 보라! 저 불량한 눈매를~. 그야말로 새로운 세대 대중문화의 정서같은 느낌 아닌감?

 

전시장 내부에 들어서자 합판으로 구성된 하얀 벽들 안에 커다란 하얀 집이 놓여있다. 문도 없이 창문만 3곳. 하지만 곳곳에 손가락 하나만한 구멍이 뚫려 있다. 집 안에는 [훌라훌라 정원](1994)이라는 작품이 있다.

나무 바닥에 꽃밭, 아이 3명은 동화책을 보다가 잠들어버렸고, 집 벽에는 9개의 가면들이 걸려있다. (가면중에 일본 가수 아무로 나미에의 가면, 정말 닮았다..^^)

어릴 때 부모의 맞벌이로 꽤 외로운 생활을 보냈다던데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왠지 기다리 듯, 외로운 듯 보인다.

 

 

1995년에 그린 [긴 긴 밤]에 보면 나라의 아이는 진한 테두리를 가지고 있다.

뚱한 표정 치고는 꽤나 으스스한 상황이다. 아이는 어두운 길을 초롱불 하나로, 그것도 굽이 엄청난 신발을 신고 걸어가고 있는것이다. 아무리 잘난 척 강한 척 해도 불안함을 느끼게 한다.

작품에 그려진 테두리는 점점 햇수를 거듭할수록 옅어지고, 아이의 눈매도 점점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나라는 자신의 작품 속 아이들은 바로 자신의 분신이라고 이야기했다던데, 본인이 점점 - 어떤 측면인지는 알 수 없으나 -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뜻인가?

 

이 작품은 [외로운 강아지를 위한 드로잉](1999)이다. 왠지 평온한 느낌.

작가는 93년까지 독일에서 유학하면서 학위를 취득하였고, 2000년까지는 일본과 독일을 오고가며 작품활동을 했다고 한다.

사실 90년대 초까지의 작품은 등장인물도 많고 그림의 느낌도 상당히 다른데(헉, 촬영도 안되고, 홈피에도 사진이 없어서리 올릴 수가 없네요. 꽤 재미있는데..-_-;;),

독일 유학이후부터(아마도 94년 전후?)는 '내게 소중한 것만 그리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인지 90년대 중후반 부터의 그림에는 배경들이 단일 색으로 정리되고 캐릭터에 집중되는 느낌이다.

그래도 왠지 외롭거나 두렵거나 하는 느낌이 조금씩 묻어있다. 특히 아이 캐릭터가 많아서 그런지 치켜진 눈매만 보면 '혼자 잘 버틸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여리고 잘 몰라서 힘들고 심장 벌렁거릴 줄 아는 그런 모습같다.

 


아래 2001년에 제작된 [생명의 샘]은 내 키보다 큰 구조물이다.

얼굴 하나 하나가 내 얼굴보다 더 크다.

이 큰 작품이 작품크기보다 더욱 큰 하얀 집 안에 있어, 역시 창문 3개를 통해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집을 한바퀴 돌면서 창문으로 들여다보는데 얼굴들이 점점 자라는 듯 싶다가도, 

모두 눈물을 흘리고 있어 매우 서글프게 느껴진다.

 

전시장 외부, 갤러리 바로 입구에는 [서울하우스]라는 거대한 집이 지어져 있다.

나라는 전시회를 할때마다 자신의 작업실(다 마신 커피와 잿더리까지 몽땅 다)을 그대로 옮기는 **하우스를 만든다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일, 삶을 관람객과 함께 느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원래 서울하우스 내부도 촬영 금지였지만, 집밖에 나 있는 구멍으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디스플레이 하나하나가 작가를 나타내는 것 같아서,

책상 앞에 작가가 앉아있을 것 같아서, 

많이 찍게 되었다.

 

 


 

이 집 1층 한 면에는 아래같은 곳도 있었는데 왠지 화장실 같은 느낌..^^

 

1층 반대편에 있던 [작은 순례자]인데, 조명도 어둡고 지하같아 무섭기도 할만 하지만 그런 생각 들지 않을 정도로 귀엽다.


 

나라의 작품에는 전쟁의 허망함을 나타내는 것도 제법 된다.

95년에 제작된 [교도소 카미카제]는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카미카제를 그리고 있다. 탑승자의 멍한 눈은 그야말로 허망함 그 자체이다. 그리고 카미카제 한 대 주변에는 눈이 흩뿌려져 있는데, 이 눈은 사실 하나하나가 소우주 또는 전쟁이 함께 싸우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홀로 고독하게 싸우는 것임을 나타낸다고 한다.

또한 전시장 한켠에는 나라가 전쟁터인 카불에서 찍은 사진 슬라이드가 돌아가고 있는데, 그는 카불에서 전쟁 속에서도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위의 작품들이외에 혹시 전시장을 방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왠지 아이러니한 연출의 [무제 중 날개없는 비행기](1991)와 [카이텐 어뢰](1994),

캔버스가 특이한 [몽유병](1995)과 [버려진 강아지](1995),

작가의 연륜이 느껴지는 석판화 [젠장할 정치](2003)와 [베~!](2003)

펑크락에 영향을 많이 받은 제목이라는 [차라리 타버리는 게 나을 걸 그랬어] 등은 꼭 봤으면 한다.

 

* 사족

8.21 까지 로댕갤러리에서 하는데,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보니 왠지 너무 자본적으로 보여 기분은... 음... 별로.

그래도 그저 신비롭게만 생각했던, 내가 전혀 모르던 나라의 세계를 잠시 엿본 것 같았고, 전시 자체는 좋았다.

 

오후 2시와 4시에 작품 설명을 40분 정도 하는데, 역시 그 시간대에는 사람 무지 많다...-_-;;;;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설명을 들었는데 - 개인적으로 잘한 일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 나라는 나보다 나이도 경험도 많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와 가슴에 남모를 뭔가를 잔뜩 담고 뚱한 아이를 그리는 그런 잘 모르겠는 사람이 아닌,

그저 외로울 땐 외롭게, 두려울 땐 두렵게 자~알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느낌.

 

* 사진 출처 : 로댕갤러리 홈페이지(http://www.rodingallery.org) + 직접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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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10 01:10 2005/08/10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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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요시토모 나라 전시회에 가서~

    Tracked from 2005/08/10 10:31  삭제

    jineeya님의 [내 서랍 깊은 곳에서 - 요시토모 나라] 에 관련된 글. 요시토모 나라 전시회에 가서~ 지희누나 글을 보다가^^ 나도 찍은 사진이 있어서링~

  1. 나탈 2005/08/10 0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전시회가서 거푸집 틈새로 서울하우스를 찍느라 땀을 흘렸어요. ^^

  2. jineeya 2005/08/10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탈/역시 저와 같은 분이 있을 줄 알았슴다..음훼훼..^^

  3. 미류 2005/08/10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가 감탄하게 만들기보다는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 그런 작품들인 것 같아요. 전부터 몇 번을 갈까말까 망설였는데 로댕갤러리에서 한다는 게 괜히 기분나빠서 튕기는 중이예요. ㅎㅎ

  4. 뎡야핑 2005/08/10 1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며칠 전에 서울역에 걸어가는 길에 전시회하는 거 보고 친구한테 우와 공짜야? 그랬더니 아니 만 원이야 재수없어라는 답변이 돌아왔는데 ㅎㅎ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좋습니다>_< 너무 귀여워요

  5. jineeya 2005/08/10 2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류/그죠? 왠지 기분이 안좋단 말이죠.
    덩야핑/5,000원이던데...O_O? 참고하세여.^^

  6. Tori~ 2005/08/11 0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아요.로댕갤러리라 아주 기분이 나빴어요. NO nuke나 No war의 메세지를 담고 있는 그림들도 있는데..왜 로댕갤러리인지..가격은 5000원이였는뎅.

  7. 뎡야핑 2005/08/11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성에서 돈을 받는 게 기분 나쁘다는 거라서 5000원이라도 안 갈 것 같지만 암튼 그렇군요 =ㅅ= ㅎㅎ

  8. jineeya 2005/08/11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우연찮게 3대 삼성미술관중 두 군네나 이틀 연속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