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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4/07/21 18:47

20년이 넘게 주로 타고 다녔던 버스 번호가 바뀌었다. 7월 1일로 그렇게 됐다. 보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바뀐 번호를 외지 못하겠다. 아직은 기억력을 문제삼을 수 없는 30대인데 말이다. 코앞에 도착한 버스를 보고 순간적으로 판단해서 허겁지겁 탈 때마다 초긴장을 하게된다. 버스정류장에서 노점상을 기웃거리는 일도, 공상에 빠지는 일도, 신문을 들여다보며 긴장 풀고 버스를 기다리는 일도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다.




버스 요금이 하루 공짜였던 날, 그 공짜를 한번이라도 더 이용해보겠다고 환갑이 넘은 울 엄마는 버스를 7번 갈아탄 끝에 날 만나러 오셨다. 깨알같은 노선표와 안내문을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는 '아이고, 왜 그리 복잡하게 바꿔 놨다냐'며 숨차하셨다.

암호판독실같은 중앙차선 정류장에서 엄마를 보내 드리고 난 후, 노점도 할 수 없고 쌩쌩 도착하는 버스를 기웃거릴 틈도 없는 정류장을 돌아봤다. 잠시의 틈도 안주고, 빨리빨리 시스템에 맞춰 움직이기를 오만하게 명령하는 이 체계가 거대한 폭력으로 느껴졌다.

문득 엄마와 지독한 버스를 탔던 어린 날이 떠올랐다. 콩나물 시루같은 버스에서 어린 나는 어른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엄마와 잡은 손을 놓치지 않으려 버둥거렸다. 어른들의 가랑이에도 미치지 못했던 키 때문에 거의 짓눌린 상태여서 숨을 쉴 수 없었다. 위에서 안타깝게 내려다보시던 엄마는 '빨리 커야 덜 고생하지'라고 하셨다. 나는 이렇게 어른이 됐는데, 엄마 말대로 고생을 덜하고 있는 것인지, 새로운 교통체계로 인한 엄마의 고생은 어떻게 지켜봐야 하는지 우울하다.

학창시절, 난폭 운전을 심하게 하는 운전사 아저씨를 만난 날은 하루가 우울했다. 무거운 책가방 속에서 도시락 통 속의 숟가락 춤추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요란하게 달리던 버스에서 신음하던 사람들, '살살 좀 갈 수 없느냐'는 호소에 돌아왔던 '억울하면 자가용 타고 다니라'던 대꾸, '같은 처지에 너무 하시네요' 라는 승객의 핀잔에 고개를 수그리던 아저씨, 자기도 어쩔 수 없다고, 배차시간을 맞춰야 한다고, 스트레스를 조절할 능력을 잃은 기운 잃은 사내의 좌절을 어린 나도 느낄 수 있었다.

한 번 갈아타면 편히 갈 수 있는 길을 요금이 아까워 멀리 돌아가고, 걸어다니는 엄마를 볼 때마다, 그 돈 아껴서 몸 망가지느니 빨리빨리 돈 들여 다니시고 집에 빨리 와서 쉬시라고 해도 엄마는 계속 그렇게 다니셨다.

그러던 어느 날,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에 인권 연수차 가게됐다. 한 번 탈 때는 요금이 엄청나게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몇 달이 넘게 살다보니, 정액권이란 걸 알게됐다. 정액권 한 장만 있으면 버스건 지하철이건 무한대로 탈 수 있었다. 서너 번씩 갈아타더라도 계단이나 턱이 거의 없는 연결체계 때문에 불편함이 없었다. 유모차에 아이 둘을 태우고, 등에는 한 명을 업고 그렇게 세 아이를 데리고도 대중교통을 편하게 이용하는 파란눈의 어머니들을 보면서 경이로왔다.

버스 체계가 바뀐다 길래, 나는 엄청난 착각 속의 기대를 했다. 한국에도 해외 물 먹었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으니 그런 교통체계를 배워왔겠지, 장애인이동권연대 등이 그렇게 많은 운동을 했으니, 교통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조금은 있겠지 라고 막연히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7월 1일은 재앙의 날이 된 듯하다.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는지는 되풀이해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런데 엄청나게 복잡했지만, 하루 공짜였던 대중교통에서 느낀 해방감을 생각해본다. 동료 중 하나가 그날, 진짜 대중교통임을 느꼈다고 했다.

누구나 자기 능력과 상관없이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대중교통이어야 한다. 그래서 요금을 내리는 것도 모자랄 판국에 올리는 것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울려서야, 내 엄마와 같은 교통약자의 발을 묶어서야 '억울하면 자가용 타고 다니라'는 비아냥거림이 아닐 수 없다.

국제인권조약 중에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이란 게 있다. 그 11조에는 '모든 사람이 적당한 식량, 의복 및 주택을 포함하여 자기 자신과 가정을 위한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 이 조항을 기초하면서 유엔인권위에서는 많은 토론이 있었다. 그중 중국 대표는 '교통수단'에 대한 권리를 포함하여 적합한 생활에 대한 권리를 정의하자는 의견을 냈다. 적합한 생활수준에 포함되는 것을 다 정의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는 이유로 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교통수단이 인간다운 식량, 의복, 주택을 얻기 위한 필수수단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내일이면 지하철 노조의 파업이 있다. 또 뻔한 레퍼토리가 시작된다. "시민의 발을 볼모로 어쩌고저쩌고..." 우리 시민들이 이번에는 일꾼들의 말을 들어주어야 한다. '지금 이대로는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고, 돈 벌려고 지하철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지하철은 공익사업이라고' 주장하는 일꾼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땅속 먼지를 하루종일 마시며 일하는 일꾼들, 혼자서 그 거대한 전동차와 인구를 책임지는 것이 불안하다는 일꾼의 말과 지상 높은 건물 안락한 회의탁자에서 이 모든 것을 결정한 사람의 말을 제대로 비교해봐야 한다. 우리 모두의 '적합한 생활기준'에 대한 권리를 위협하는 이 체계에 맞서려면, 인간다운 교통수단의 권리를 누리려면 이들과 먼저 손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펌 : 류은숙의 가방 - 미디어참세상 칼럼

http://media.jinbo.net/news/view.php?board=b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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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1 18:47 2004/07/2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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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4/07/21 18:32

확실히 사람들을 모으고 싶은 욕구중에는 토론을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부인할 수 없어요. 그냥 두런두런 아는 사람 몇몇을 만나도 의견이 서로 다른데, 왜 온라인에서는 이야기가 쉽지 않을까?

 

그나마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 유도를 위해 완전 오픈으로 해놓으면 토리님이 이야기한 사이버마쵸 및 기타 등등의 공격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고... 어느 공간에서나 토론의 활성화는 쉽지 않은 과제인 듯 싶습니다. 하지만 진입경로가 얼마나 복잡한가는 운영의 묘에 해당되는 것 같아요. 각자의 커뮤니티에 어울릴만한, 내지는 긴급히 취해져야만 할 상황이란 게 표준화되기는 힘들테니까요.

 

최근 드는 생각은 역시 [토론의 주제거리가 얼마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느냐] 인듯 싶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 등이 주제로 적절히 던져진다면 사람들의 참여란 아주 당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을지...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는 진보네 아줌마 같은 존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블로거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없이는 유지가 힘들지 않을까요? 운동사회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주제,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서로에게 고민케 하는!(좀 심한가?) 노력... 그리고, 가끔 날라드는 진보네 아줌마의 지령!(당근인지 채찍인지..^^ 말해봐 네가 X지?)

 

'중요한건 내용성' 아닌가 싶다는 얘기를 이렇게나 길게...-_-;;;

 

* 토론방에 올린 글이랍니당...^^

 

블로그에 대한 고민..

http://blog.jinbo.net/chat/chat_list.php?type=&board_page=1&id=28&page_nu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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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1 18:32 2004/07/2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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