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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 | 노조 | 이야기 - 2005/04/22 22:43

19일 올라온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의 월례포럼 공지를 읽다가 엄청나게 당황하며 글 씀.

 

"여성인력 활용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는 대부분 간병, 보육, 서비스 등의 '여성적'인, 즉 주변화되고 보조적이고 소위 숙련이 필요없는 일자리입니다"

 

[소위 여성의 노동이라 일컬어지는 돌봄노동은 과연 무엇인가?]

 

돌봄은 사람이 사람을 보는, 자신의 욕구가 아닌 타인의 욕구를 들여다봐야 하는 타인지향적 노동이다.

돌봄을 노동이라 칭할 때 마르크스가 칭하는 필요노동에 배치될 이 노동은 다른 노동이 목적 충족을 위해 생산물을 내는 것과는 달리 그 자체가 목적인 생산물(즉, 사람)에 노동이 투여된다.

따라서 이 노동은 자동화나 여타의 기제를 통해 감소나 효율화될 수 없는, 투여되는 시간을 줄이면 바로 목적 자체가 훼손되는 노동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필요노동의 '0', 자유노동의 추구, 자기 실현의 노동에 다다름과 같은 노동의 변증법 상으로는 해소되기 어려운 점이 명백히 존재한다.

 

또한 이 노동이 서비스 노동과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지점은 바로 그 필요성이라는 부분과 더불어 긴급성과 강제성을 들 수 있다.

즉, 남편에게 제공하는 밥상은 서비스지만 아이에게 제공하는 식사는 돌봄으로 볼 수 있는데(물론 몇몇 아내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한 근거를 찾기 위해 남편의 밥상을 돌봄으로 탈바꿈시키는 경우도 있다지만),

돌봄이 제거되면 돌봄받는 대상은 결정적인 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극단적으로는 아이에게 계속 밥을 안주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긴급성과 강제성은 특정 윤리(주로 가족주의겠지?)나 심리학에 묶여 착취 이데올로기를 양산한다.

집에 누워있는 노모를 돌보지 않으면 외부에서 욕먹는 것은 당연하지만, 더불어 자연스러운 측은지심 발동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옆에 노모가 있기 때문에 나의 자기 실현과 전혀 관계없어도 반드시 돌봄노동을 행해야 한다.

즉,  - 늘 여성에게 부과된 -  돌봄을 제공하는 자는 착취에 취약한 집단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이 '늘 여성에게 부과'되었다는 점에서 여성적 노동이란 주변화되고 보조적이고 숙련이 필요없는 노동이 아닌,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오랜 전통의 전수와 각종 윤리의식과 심리적 작용을 통해 여성이라는 나름대로 숙련된 - 또는 숙련이 기대되는 -, 그리고 피권력자인 집단에게 매우 필수적인 노동으로 강제되어 온 셈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는 일자리입니다"

 

 

[돌봄노동의 공공성을 제기하는 이유]

 

돌봄노동에 대해 공공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단순히 종사자의 정규직화나 여성의 업무(?)라는 것을 덜어주기 위한 개념이 아니다.

(물론 닥친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점도 존재하겠지만)

 

지금까지 돌봄을 포함한 필요노동이 분배되는 과정은 모두 잘 알 것이다.

계급, 인종, 성별에 따라 착취자가 피착취자로 하여금 필요노동에 종사하게 하여 자신의 필요노동을 줄이는 방식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노동은 자연스레 피권력자, 유색인종, 여성에게 부과되고 착취되어 왔다.

따라서 돌봄노동은 '주변화되고 보조적이고 숙련이 필요없어서' 저평가된 것이 아니라, 착취를 내재한 노동의 하나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피착취자에게 그 몫이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건가?

돌봄을 제공하는 자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설사 '그 일이 좋아서' 시작한 자라 할 지라도 적합한 보상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지치게 된다.

하지만 돌봄노동은 누군가 대신할 수 없는 상황과 지속적인 요구가 발생하게 된다.

돌봄노동자는 항상 고민하게 된다.

이 '자기착취적 노동을 해소'해야한다는 생각과 '돌봐야한다는 윤리' 사이에서...

그리고 '돌봐야한다는 윤리'가 언제나 승리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돌봄이 제거될 경우 결과는 매우 심각하지만

착취에 자신을 내버린 결과는 스스로 자괴감이 들 지언정 돌봄의 제거보다는 덜 긴급하고 덜 위험한 것이다.

(물론 계속 쌓이면 정신질환에 시달릴지도...)

 

따라서 돌봄노동자가 매일 빠지는 딜레마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돌봄에 대한 착취 문제가 제사회 문제로 인식되어져야 하며, 결과적으로 돌봄노동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평등하게 분배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의 공평 분배는 공산주의 사회의 탁아소같은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탁아소같은 역할 분담 방식은 결과적으로 사적 돌봄(육아, 가족구성원 돌봄등)에 있어서의 역할 분담으로 이어지고 그 역할에 '여성'이 배치되는 것은 우리가 익히 많이 보아온 수순이다.

(탁아소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공평 분배의 의미를 설명했을 뿐이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아마도)

돌봄이라는 영역은 타인지향적이고 매우 착취적 노동이지만 매우 근본적인 필요 노동이며, 그 긴급성과 강제성으로 인해 주변인은 - 괴로움을 감내하고라도 - 해내야 하는 노동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당연히 이 '여성만의 것이 아닌' 노동에 대해

순전히 '여성의 업무(?)'를 덜어주기 위해

보육시설을 많이 짓고 복지관을 투명화하고 수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 줄어들지 않는 부담의 노동은 계급과 인종과 성별을 초월하여 나누는 수 밖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남녀 역할 분담을 통해 이루어지는 피의 역사가 아닌,

전사회의 머리 속을 뒤집어서라도

전 사회구성원이 돌봄의 의무에 엮일 수 밖에...

 

* 참고자료 : 노동으로서의 돌봄(care)에 대한 여성주의적 이해를 위해서

(제가 위에서 주저리주저리 적은 건 모두 위 참고자료에서 나온 소리들입니다.

훨씬 정돈되고 깔끔. 강추~!)

 

위 참고자료에 의하면

돌봄을 시민적 의무로 받아 여성,남성 모두가 일생 일정 기간을 '돌봄서비스'에 참여하도록 하는 사회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국가가 제공하는 돌봄만이 아닌 ...

(끔찍하죠?^^;;)



여성위원회 4월 월례포럼 진행합니다.
2005.04.19
사회진보여성위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4월 월례포럼

노무현 정부의 여성정책 비판 및 여성운동의 대응 분석
- 여성가족부 출범의 의미와 출산장려정책을 중심으로

일시: 2005년 4월 25일(월) 저녁 7시
장소: 사회진보연대 회의실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기치로 내건 노무현 정부의 여성정책은 지금까지 보육정책의 확대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현재 몇 가지 쟁점이 추가되고 있습니다. 한 축으로는 가족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개편하는 준비가 진행 중입니다. 또 한 축으로는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을 쟁점화하면서 여성들의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는 현재 이런 흐름들이 여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이고 물리적인 공세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우선 현재 여성이 처한 현실을 냉정히 분석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 정책 이후 만연한 경제위기와 소득의 저하 속에서 여성들은 가정 내에서 어머니로서의 역할과 부족한 소득을 보충하는 역할 모두를 책임져야 했고, 여성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출혈판매’해야 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70% 이상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노무현 정부가 이야기하는 ‘직장과 가사의 양립’이란 여성들의 출혈판매를 가능하게 만드는 정책을 말합니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제시하는 ‘여성인력 활용 방안’을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성인력 활용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는 대부분 간병, 보육, 서비스 등의 ‘여성적’인, 즉 주변화되고 보조적이며 소위 숙련이 필요 없는 일자리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대부분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는 일자리입니다. 결국 노무현 정부가 이야기하는 ‘직장과 가사의 양립’이란 여성의 노동력을 저임금으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유연한 여성의 노동력을 전체 노동시장 유연화의 기반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여성들은 가정 내에서 가사노동과 육아, 보살핌 노동을 책임져야 하는 역할까지도 떠맡아야 합니다. 이는 전통적인 성차별주의에 기반을 둔 성별분담에 따른 문제지만, 신자유주의 정책 이후 축소된 복지와 소득 때문에 가정 내에서 보살핌 노동이 더욱 강화되면서 여성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가족의 위기가 심화되고 결혼률과 출산률이 저하되는 상황은 여성이 직면하고 있는 이런 현실에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여성가족부로의 개편과 출산장려정책은 원인은 덮어둔 채, 현재의 위기를 여성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여성가족부의 경우, 일각에서는 가족정책에 젠더적인 관점을 도입하는 것으로 환영할만하다는 입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가족기본법을 기본으로 하는 가족 정책을 여성부로 이관하는 것은 가족의 위기라는 현실의 책임과 부담을 여성에게 지우는 것입니다. 건강가족기본법은 이혼이나 독신, 성적 소수자를 ‘건강 가족’이라는 개념에서 배제하면서, 문제를 가진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를 여성 업무를 주관하는 여성부에서 책임진다는 것은 결국 이혼, 독신 등에 있어서 여성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지금도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 여성의 이혼의 권리, 독신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것입니다.

게다가 ‘1.2.3 운동’과 같이 여성에게 출산을 장려하는 움직임이 덧붙여지고 있습니다. 비록 민간단체들의 운동이지만, 이것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은 분명합니다. 이는 현재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실의 원인을 가린 채, 여성들의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로 치환하는 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요즘 여성들이 이기적이어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 등등의 비난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여성들은 자신의 권리와 삶의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채, 아이를 낳고, 가정을 돌보며, 노동력을 출혈 판매해야 하는 모든 책임을 떠맡게 됩니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에서는 현재의 흐름과 정책을 비판하고, 여성운동이 이런 현실에서 제기해야할 진정한 쟁점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와 관심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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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2 22:43 2005/04/2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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