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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커플 음주가무 밴드를 결성하다.

 기관지 노힘 139호 삶글 <노동자의 취미, 여가.> 에 실린 원고입니다.

계획하고 글을 쓴 이후에 다시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즐거움이 생깁니다.

참, 그 사이에 드럼과 일렉 기타 포지션이 서로 맞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공연 때는 객원만 30명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ㅎㅎㅎ

마담 졸라가 주제가를 쓰고 있다고 하니 자뭇 기대가 됩니다.


[쌍커플 음주가무 밴드를 결성하다.]

연말연시 음주가무에 몸과 마음이 노골노골 해지던 시점, 2008년엔 뭔가 개인적으로 즐거운 목표를 세우자는 생각 중에 역시 술자리에서 우연찮게, 또 술김에 밴드를 하나 결성했으니 그 이름하여 [쌍(Two, Double) 커플(couple) 음주가무 밴드]라. 밴드 결성의 계기는 이처럼 아주 단순하지만, 이의 배경에는 다년간의 놀기 경험과 문화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먼저 구구절절하게 멤버 소개를 좀 해보겠다.

먼저 드럼머인 마담 졸라(여, 35세). 잘나가는 출판 편집, 기획자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 단체 후원회의 노래 소모임에서 다년간 모임을 주도했다. 음감과 리듬감이 좋지만 조절되지 않는 고음역대의 엄청난 목청을 자랑하며 노래방 가기를 즐긴다. 그럼에도 주변의 호응이 없어 늘 억울해 하고, 또 막상 노래방을 가서 각광을 받는 건 템버린을 휘두르는 그녀의 막춤되시겠다. 최근 2,3년간 꾸준히 재즈댄스 교습을 받았음에도 실력에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춤을 배운다기 보다는 운동삼아 하는 것이 확실하다.

다음으로 트럼펫과 일렉기타 주자인 놀쇠(남, 41세). 한 때 출판업에 몸담았으나 잡다한 일들을 하면서 고정적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그럼에도 노는 일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으로 노는 걸로 월급 주는 직업이 있다면 떼돈을 벌었을 테지만 절대 그런 일이 생길 수 없는 현실을 개탄하며 산다. 평소 인라인, 자전거, 탁구, 당구, 테니스, 등산, 헬스, 거기다 소설책과 만화책까지 두루 섭렵하고, 최근 다른 멤버인 자동머리를 따라 트럼펫을 배우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다. 혹자는 이 자를 보고 “진정한 자유인” 혹은 “영혼이 자유로운 자”라느니, “놀 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느니 하며 격려를 하는 통에 늘 일관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베이스기타와 건반을 치기로 한 나, 찌니(여, 42세). 한 때 전문음악단체에 몸담아 노래에서 건반, 기타, 편곡과 노래지도, 기획, 정책까지 올라운드 플레이어였으나, 그 당시엔 뭐든지 시키면 한다는 정신으로 임했던 터라 뭐하나 잘하는 게 없이 결국 전문활동을 접었다. 어린 시절 꿈인 음악가로서의 삶을 살고자 여러 계획을 세우지만 활동가를 자처하여 항상 공사가 다망했기에 한 번도 뭘 시도해 본 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어쿠스틱 기타와 코넷(트럼펫과 비슷하나 약간 짧은 악기)주자인 자동머리(남, 38세)는 멤버 중 유일하게 전문 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10년 넘게 전문음악활동을 하고 있으나 주 종목은 보컬이기 때문에, 코넷과 기타의 경우 아마츄어밴드로 결합하는 것이 맞다고 나머지 멤버들이 박박 우기며 끌어들였다. 

참고로 놀쇠와 나, 자동머리와 마담졸라는 부부이지만 자동머리와 놀쇠가 붙어있는 시간이 부부끼리 있는 시간보다 더 많다는 사실. 또 두 부부는 동네에서 자주 만나 음주가무를 즐기거나 철마다 건수 잡아서 여행을 다니곤 한다.


 밴드 결성을 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해 보겠다. 나는 노동자문화에 대해 교육을 갈 기회가 종종 있는데, 항상 건강한 노동자문화는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욕구를 찾아내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러면서 노동자로서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라고 하는데 문제는 여기부터다.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잘 찾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최근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설문조사를 해보니 도대체가 자신을 위해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참 많고, 그래서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니까 특별히 배우고 싶은 게 구체적일리 만무했다. 주 5일제도 시행되고 여가시간이 늘어나 노동자문화운동에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고 있는데, 실제로 주 5일제가 시행되고 나서 노동자들은 노동 외의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 잔업, 특근을 하거나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었다. 요즈음엔 쉬는 시간에 조합사무실에 올라가 주식동향을 파악하는 게 일이라고도 한다. 어쩌다 주말에 시간이 나면 패스트 푸드점이나 요상한 이름의 식당에서 외식을 하고, 또 놀이 공원에 간다. 외국으로 골프여행을 하거나 하는 일도 이제는 자본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카드를 긁거나 빚을 내서라도 더 비싼 아파트로 옮기고 멀쩡한 가구나 전자제품은 최신형으로 바꾸고, 고급스런 음식을 먹는 일로 욕구를 충족하고 있다.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는 생활이 진정 내가 바랬던 삶의 가치였다는 듯이 말이다.

더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바램을 꼭 나쁘다 할 순 없지만 신자유주의는 바로 이렇게 삶의 방식과 욕구, 취향조차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신의 삶을 꼼꼼히 되돌아 봐야 한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임금인상 투쟁해서 따낸 성과를 고스란히 대자본에게 갖다바치는 소비적인 삶을 풍요로운 삶이라고, 성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본에 의해 포섭당하지 않는 취향과 욕구를 계발, 증진시켜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문화를 만들어가도록 프로그램 기획과 조직을 하는 나와 내 주변의 여가와 취미활동은 또 어떠한가? 앞서 소개한 이력에서 보여지듯 우리 두 부부의 취미활동은 다양하고도 왕성했고, 술자리에서의 대화도 주로 그런 주제였다. 그런데 이 역시도 관성에 젖어들어 어느 순간 그저 좀 더 맛있는 안주거리에 술을 먹게 되고, 점점 씀씀이도 커져가고 있었다. 어떤 취미활동을 같이 하더라도 이는 그 다음 술자리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 정도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관계도 식상해지고 재미도 없어졌다. 남편과 이 문제를 놓고 여러 번 토론 아닌 토론을 하면서 반성도 많이 했다. 좀 더 생산적이고 건강한 공동의 취미를 만들어 갈 순 없을까? 고민 끝에 구체적이고 뚜렷한 목표의식과 실천이 뒷받침 되지 않아서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고, 앞으로 의미없이 먹어대는 술자리는 자제하기로 하였다. 별로 대단한 결심은 아닐지 모르지만 술먹고 사람들과 노는(?) 게 일이면서 여가면서 낙이었던 우리에겐 아주 간단한 일은 아니기에 이 결정은 대형할인마트 안가기, 최소한 집에서는 음식 남기지 않기, 무엇이든 적게 사기에 이어 남편과 내가 다짐한 실천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막상 그런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많이 심심해졌다. 뭘하지? 집에서 책읽고 영화보고, 간식 해먹고. 뭔가가 좀 부족하고 재미가 없었다. 탁구를 같이 칠까? 둘만하면 좀 심심하지 않나? 누군가들과 시간 맞춰 같이 하려면 또 그런 취향이 맞아야 하는데 참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이것저것 고민하던 차에 역시나 그동안 어울려 놀던 장단이 맞는 자동머리 부부와 조촐한 송년회를 하며 이런 이야기를 꺼내니 바로 죽이 맞아 악기를 하나씩 배우기로 했고, 결국은 밴드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야기는 바로 진척되어 구체적으로 연말에 공연을 하기로 결정했다. 연주를 못하면 어떻고, 완성된 공연이 아니면 또 어떠리. 연주실력이 부족하면 일어나 춤도 추고 같이 놀아도 좋고. 관객이 많이 안와도 좋고, 돈이 부족하면 후원도 조직하고. 물론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시작할거라는 다짐에 우리의 송년회는 환호성으로 들떠있었다. 드디어 밴드 이름을 정할 시간. 우리는 둘다 아이가 없는 부부니까 ‘애무부부’로 하자는 첫 번째 의견은 너무 에로틱해서 19금(19세이하 관람불가)이 될지도 모르다는 우려에 바로 탈락하고, 두쌍의 부부인 ‘쌍커플’에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는 ‘음주가무’를 붙이자는 의견은 굳이 누구의견이랄 것도 없이 일사천리로 이어지면서 낙찰을 보았다. 그.리.하.여... “쌍커플 음주가무 밴드”가 탄생했다.

이야기를 풀다보니 무지 쑥스럽기도 하고 또, 참으로 별일 아닌 사소한 일을 거창하게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일상이나 여가가 사소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재미있고 즐거운 일을 끊임없이 찾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믿고 또 그렇게 살아왔다. 운동도 재미있게 해야 의욕도 높아지고 성과도 더 쌓이지 않는가 말이다. 나에게 운동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고 또 내가 변화하지 못하면 남들도, 세상도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2008년 새해엔 모두가 하나씩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 혹은 그동안 해보고 싶었는데 미루어두었던 것을 찾아내어 지금부터 실행에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그럼 우리들 인생도 더 재미있을텐데 말이다.

자, 기대하시라... 연말에 열릴 우리 밴드 공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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