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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13
    [펌]희망을 만들어 봅시다.
    찌니
  2. 2007/08/09
    화려한 휴가를 보고 (3)
    찌니
  3. 2007/07/24
    오랜 벗들과의 즐거움(4)
    찌니
  4. 2007/06/20
    전기세에 대한 주인집 아줌마의 항변(7)
    찌니
  5. 2007/06/02
    박창근과 연영석(3)
    찌니
  6. 2007/05/16
    우리 윗층 옥탑방 아저씨(7)
    찌니
  7. 2007/05/10
    역시 안성 용설호수 주변 풍경 사진(3)
    찌니
  8. 2007/05/10
    달껌님의 요청으로 안성사진 올립니다.
    찌니
  9. 2007/05/08
    안성 남사당놀이(5)
    찌니
  10. 2007/05/04
    메이데이의 허탈감.(2)
    찌니

[펌]희망을 만들어 봅시다.

이글은 노동문화사랑방에서 퍼왔고,

민주노총 경기본부장이 조합원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입니다.

낼 모레 여행을 떠나는 입장에서 이 글을 올리는 내 맘은 무엇일까..

기양 이렇게라도 면피하고 떠나고 싶어서?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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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휴가’가 끝났습니다. 그 휴가동안 뉴코아-이랜드 동지들은 다시 한 번 깡패같은 경찰들에게 짐짝처럼 들려 나와야 했습니다. 벌써 2번째입니다. 오랜만에 제대로 한판 싸움이 붙었습니다. 이번 싸움은 비정규보호법으로 모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서 영원토록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자본가와 모든 차별을 없애고 평등과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려는 진정한 이 땅의 주인인 노동자들의 한 판 전쟁입니다.

동지들이 ‘불편한 휴가’를 통해 투쟁의 동력을 재충전하고 있을 때 뉴코아-이랜드 동지들은 외롭게 전선을 지켜 왔습니다. 이제 동지들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그동안 뜸했던 금속노동자들이 나서야할 때입니다. 건설노동자들이 나서야할 때입니다. 사무노동자들이 나서야할 때입니다. 올해는 87년 노동자대투쟁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정신은 무엇이었습니까? 다름 아닌 ‘연대의 정신’이었습니다. 공단에 파업사업장이 생기면 그 공단에 있는 모든 민주노조 조합원들이 마치 제일처럼 나서서 연대를 했던 시절이 그때 아니었습니까? 밤새 규찰을 서면서 봉제노동자도, 철강노동자도, 서비스 노동자도 다 같은 노동자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구사대와 경찰 폭력에 맞서면서 동지애를 키웠습니다. 그렇게 민주노조를 만들고 지켜왔으며, 전노협을 거쳐 지금의 민주노총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직이 커가는 만큼 연대의 정신은 엷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하겠지. 이제 그만 했으면 됐어. 아직도 다른 사업장 일에 간섭해야 돼. 당장 내 코가 석잔데 누구 일을 도와. 우리 일이나 열심히 하자고’
그런 생각들이 단위사업장을 병들게 하고, 민주노총을 병들게 하고, 노동운동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랜드그룹 박성수 회장은 ‘성경에는 노동조합이 없다’며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창 꾸미고 싶은 나이인 20~30대 여성노동자들에게 근무시간에는 매니큐어도, 귀걸이, 목걸이 등의 액세서리도 못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야유회 때도 술을 못 먹게 했습니다. 지금이 어느 땝니까? 군사 독재 정권 시절도 아니고, 임금 맘대로 금주령을 내리던 조선시대도 아닙니다. 노동자들을 맘껏 부려도 되는 자기 집 종으로 여기지 않았다면 어찌 이럴 수가 있었겠습니까?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반을 넘어버린 상황에서, 이번 비정규법으로 더욱 더 비정규직이 늘어날 거라는 것을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면서 여론도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이랜드 자본에 빌붙어 기생하고 있는 점주들도, 이랜드 자본도, 이랜드 자본 뒤에 숨어서 열심히 불난데 부채질을 하고 있는 거대 자본들도, 자본가들의 이익만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정권도 이제 약이 오를 대로 올랐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몰아치면 이길 수 있습니다. 경기지역 12만 조합원들이, 아니 민주노총 80만 조합원이 똘똘 뭉쳐 싸운다면 무서울 게 뭐 있고, 하지 못할 게 뭐 있습니까? 우리 이 싸움 반드시 이깁시다. 우리도 이기는 싸움 한 번 해 봅시다. 우리도 싸워서 이겼다는, 뭉쳐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을 한 번 가져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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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를 보고

대학 1학년 때 광주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는 광주 학살이라고 했었다.

나중에 사진도 보고 영상자료도 어찌어찌 볼 수 있었다.

조금 시절이 좋아졌나... 망월동묘역에 참배도 가고...

2000년 광주항쟁 기념일이 국가 기념일 되고는

사실 광주를 마음속에 묻었다. 5.18 때도 혼자 음악이나 들으며 생각하고...

 

영화 화려한 휴가...

여기저기서 관련 글들을 먼저 접했다.

사실 난 너무 난리치는 유명한 영화는 잘 안보는 편이라... 극장도 잘 안가고...

꼭 보고 싶은 영화만 아껴서 골라 보는데

이 영화는 만들어진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 부터

봐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고민스러웠다.

볼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두근... 펑펑 울거 같은데 좀 민망할것도 같고...

작정을 하고 봐야할 것 같은 생각에 계속 생각만 하고 있던 차에

마침 기회가 왔다. 민예총에서 특별시사회를 한다고...

기양 일단 가보자...

 

초반에 나오는 평온한 광주가 평온한 느낌으로 다가오질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에 조마조마했다

항쟁을 묘사한 장면에서는 계속 사진과 비디오 장면들이 교차했다.

몸에 전율이 오면서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마구 흐느꼈다.

그런데... 아마 이게 감독의 의도였다면 성공이겠지만 -

드라마적 장면만 나오면 한 발짝 물러서졌다.

사실의 힘을 극적 요소가 뛰어넘지 못한다고 할까...

극적 구성이나 뭐 이런거는 별로 남지 않았다.

마지막 선무방송 멘트... (원래는 없었던 거지만...)

'광주 시민 여러분,저희를 잊지 말아주세요'

 

이런 사실이 진짜 있었냐고 묻는 20대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냐고... 믿기지 않는다는...

얼마나 세월이 흘렀다고,

이렇게 희미해져가도 되는건가? 고작 27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리고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는데...

학살의 주범, 살인마들과 같은 하늘아래 숨쉬고 살면서 말이다.

 

5.18 주간 때 말고... 한 번 광주 망월동을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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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벗들과의 즐거움

지난 주말에 20년 지기 소중한 사람들과 일박 이일로 야유회를 갔다.

장소는 울 남편이 위탁, 운영(무늬만 ?)하는 계곡 가든.

9가족이 모였다. (연구네, 민제네, 세라네, 희경이네, 기상,경희가족, 혜진네, 태수네, 상희, 우리)

사실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게 일이되는 게 싫어서...(미안... 담엔 꼭 연락할께)

또 무지 바쁘고 시간도 없고...

어른 15명에 아이 넷... 정말 아이들이 예쁘다...

가끔 보니 더 예쁘다. 맨날 끼고 살면 싸우겠지만...

 

예울림 활동을 거쳐 메이크업으로 꽃다지 공연을 빛내준 이혜진(지금은 이예나)의 딸 채원과

서기상 곽경희 부부의 딸 승아

 

예울림에서 꽃다지 가수로 활동한 <고귀한 생명의 손길로> 를 부른 김세라의 아들 준찬

 

노노단에서 꽃다지로 가수 활동을 한 김태언(내일이 오면),

장희경(창살아래 사랑아) 부부의 둘째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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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마흔둘.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 언제였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보면

역시... 청춘을 바쳐(?) 만들고 가꾸고 살았던 20대가 아니었을까?

물론 지금도 나의 활동은 진행형이고 또 지금 만나는 사람들도 누구 못지않게 소중한 동지들이지만

20대의 나는 예정에 없던 문화활동에 접어들면서 그 시절 누가 안그랬겠냐마는 정말 치열한 나날을 보냈다.

예울림 활동을 거쳐 꽃다지를 창립하고 그 속에서 노동자문화운동을 펼쳐나가던 시절...

떠올리면 아~~ 옛날이여! 같은 소회가 아니라 아직도 생생한 몸의 기억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 시기에 같이 활동했던 꽃다지 식구들은 정말 식구들이라 할 만큼 가까이 지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우고 또 같이 살았던...

지금도 그들은 나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다.

내가 구속되었던 96년, 추운 날씨에 눈이 오나 바람불거나

매일매일 탑골공원에서 거리공연을 하며 민예총 사무실에서 밤샘 농성을 하며

나를 지켜준 사람들...

구치소에서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한명 한명의 얼굴을 떠올리며 줄창 입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던 가사말.

"나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과 함께

지금 이순간 모든 것을 다 바쳐 오늘을 살아야지" (조민하 곡 <행복한 인생> 중에서)

아직도 이 노래를 흥얼거릴라치면 그 때 그 감정이 되살아난다.

늘 이 노래를 간직하며 그 때의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야지... 하며 되새기고 되새긴다.

그들에 대한 소중하고 고마운 마음.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겠지.

 

5년 전 꽃다지 10주년에 꽃다지 출신 중 가능한 사람들을 모아 10주년 기념 공연을 했을 때

그들은 대부분 아이엄마, 아빠가 되어 하나 혹은 둘씩 아이들을 데리고 연습에 참여를 했었다.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 밖에서 애들과 놀던 나는 순간순간 깜짝 놀랜다.

어쩌면 지 엄마, 아빠를 이렇게 닮았는지... 당연하다고? 물론... 그렇지요. ㅋㅋ

아이가 없는 나는 늘 입으로 주변에 있는 아이들을 같이 키우며 사는거지... 라고 하지만

그럴 성의가 부족하고 또 그럴만한 기회도 많지 않은게 현실이다.

이 아이들이 크면서 그 시절의 엄마 아빠의 삶을 늘 소중하게 인정해주길...

그러기 위해 같이 열심히 잘 키웠으면 좋겠다.

 

* 피에쑤 : 사진은 김현정님이 제공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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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세에 대한 주인집 아줌마의 항변

지난 번 옥탑방 아저씨의 죽음과 전기세에 대한 민망한 일이 있은 후

담날 저녁 술한잔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데 집앞에서 주인집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그 아주머니는 나를 보자 대뜸 전기세 받기로 했냐고 물으셨다.

나는 벌컥(술 한 잔 먹은뒤라 다혈질인 내 성질 그대로) 화를 냈다.

무슨 전기세를 받냐고, 아저씨 돌아가셨다는데, 그 이야기를 안해주고 전기세만 받으라하면 어떻게하냐고,

아줌마가 받아주시든지 했어야지, 얼마나 민망했는지 아느냐고,

또, 아무리 딸이라지만, 아주머니 같으면 같이 살지도 않았고, 돌아가신 분 전기세 대신 내고 싶겠냐고

으다다닥... 해댔다.

전기세 안받는다고 했느니 신경쓰지 마시라고...

 

며칠 뒤 아침 출근길에 집앞에 나와 앉아계신 아주머니와 또 마주쳤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가는데 부르신다.

"저기..."  괜스리 주변을 살피신다. 그리곤 아주 수줍고 부끄럽게 웃으신다.

볼도 살짝 상기된 느낌이다. "전기세 내가 줄께" 하신다.

나는 "됐어요. 그럴려고 말씀드린 거 아니예요. 그냥 저는 아저씨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전기세 받겠다고 전화한 게 너무 민망하고 그래서 그랬어요" 했다.

"아니, 내가 아저씨 돌아가셨다고 이야기 했는데..., 그리고 내가 줄께. 줄건 줘야지"

"아니예요. 됐어요.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아주머니가 악의가 있으신 분은 아니고 아주 순박하신 분인건 알고 있었는데

순박하다 못해 뭘 잘 모르시기도 했지만...

기양 내가 술김에 좀 심했다 싶기도 했다.

 

또 며칠이 지났는데 아주머니가 부르신다.

"전기세는 이번 달에 수도세하고 정화조 청소비 나오면 그거 계산하고 나머지 내가 줄께" 하신다.

"아니라니까요... 괜찮아요"

"그게 아니라 나도 사실 그집에서 못받은게 많은데 전기세는 그 딸한테 내가 내라고 했어.

근데 나한테 주라하면 내가 받아놓고 안줬다고 할까봐... 어른이면 모르겠는데 어리더라고.

괜스리 내가 중간에서 떼어먹은 것 같은 오해 받을까봐 직접 주라고 한거야. 

그리고 그 집은 엄마도 있고 아파트도 자기네 거래잖아."

덧붙여 그 아저씨의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주 모질게 말씀하신다.

돌아가신 양반을 놓고 별소리 다한다 싶었지만 마땅히 대꾸하기도 그래서 가만히 듣기만 했다.

 

어쨌든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름대로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서 그냥 알겠다고 했다.

주면 고맙지. 안줘도 그만이고... 싶지만 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저씨 일찍 돌아가시고 아들하나 키우며 30년을 혼자 사셔서

뭘 잘 모르고, 그저 착하고 순박하기만 한 분이지만

그러다보니 고지곧대로만 생각하시고 이해 못하는 것도 또 많은가보다.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오해는 약간 풀린 것 같다. 

마음은 좀 홀가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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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근과 연영석

엊그제 전교조 대구 남부지회 직무연수 교육을 갔다.

내가 하는 건 늘, 노동자문화 아니면 민중가요 변천산데...

굳이 생각하자면 교사들 직무연수에 민가역사를 넣은 것이 좀 쌩뚱맞긴 하지만

작년부터 사이버노동대학 문화교육원 교육을 하기로해서 진행되고 있는 만큼

뭐, 그 연장선에서 받은 것일 수 있겠다 싶다...

하여간... 간만에 민가역사 교육을 하니 6,70년대 부터 시작해서 민가들을 쭉 뒤져보고 들어보고,

또 들려주고... 하게 되었다.

 

옛날 노래들... 나역시 옛 노래들을 들으면 참 감회가 새롭다.

내 인생에서 노래, 음악을 빼놓곤 이야기할 수 없을만큼...

노래 한 곡을 떠올리면 그 음악에 내 과거의 역사들이 다 배어있다.

무수히 많은 노래들로만 엮어도 내 인생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을 정도라고나 할까  ^0^;;

 

민가 이야기할 때 노래를 들려주기 전에 가사를 읊으며 먼저 불러주는 경우가 많은데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난 항상 <무노동 무임금을 자본가에게> 라는 노래와

<다시 한 번 투사가 되어> 를 이야기할 때 아직도 목이 메인다...

<다.투.사>는 박창수 열사 추모곡이니 그럴 수 있다쳐도 그놈의 <무.무.자.> 는 왜 그런지 참...

 

그런데 이번에 내가 강의 마직막 부분에 최근 솔로가수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박창근의 노래를 들려주었는데 노래를 따라부르다말고 울컥하더라는 거...

 

요즘 인천노동문화제 기획공연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는데

최근 노래들로 87이야기를 반추해보려하니 자연 요즘 솔로활동하는 노동가수, 민중가수들 노래말들을 꼼꼼히 분석하게 되는데 특히 꽂히는 게 연영석과 박창근 이더라고.

물론 전부터 그들 노래와 활동, 사상을 좋아했고, 그 외의 솔로가수들도 무지좋아하지만서두

87년으로 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바뀌었고,

노동자문화운동에서 고민해야 할 공존, 소통,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유연하고 형체없는 전선을 생각하면 특히나 와닿더라는 거지.

 

마침 오늘 창근이가 올라와 홍대 앞 클럽 '빵'에서 공연을 한다하고

또 연영석이 게스트로 나온다니 작품 구상을 하러 가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네

그런 김에 노래가사 두개... 떠올리는데

두 노래가 잘 들어보면 비슷하다는 거지, 아니 일맥상통하다고 할까...

나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두 뭐... 상관없스~~~

 

 

이런 생각 한번 어때요? (박창근 글, 곡)

 



이런 생각 한번 어때요?

햇볓 따사롭던 어느 날 모든 것이 평온 해보이는 소녀 손에 쥐어진 소세지

그 녀석의 삶은 우리완 다르지 어떤 오감의 반응도 인정받지 못해

인간이 예쁜 입으로 공존을 이야기 할 때

그들은 오늘도 산채로 매달려 껍질이 벗겨지곤 하지


후라이드 치킨 좋아하세요? 생구이 삼겹살은 또 어떤가요?

멋진 그녀와의 데이트 화려한 조명아래 스테이크

오늘도 그대는 남의 살을 몇 점이나 삼키셨나요?

또 그대는 남의 젖을 몇 통이나 마셨나요?

의심 없이 통용되는 주저 없이 허락되는 이 모든 행위가 이 모든 가능이

오히려 당신에긴 악영향을 준다면 어떠하시겠어요?


나의 삶이 너의 삶과 맞물려 있고 인간의 불행 또한 다른 생명체의 불행을 먹고살죠

진정한 평화를 원하세요? 행복한 그대 삶을 꿈꾸나요?

파괴 없는 삶을 원하세요? 전쟁 없는 삶을 바라나요?

주어진 만큼만 누리는 것 나눠진 만큼만 갖는 것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 허락된 만큼의 욕망


간절히                              연영석 글, 곡


1. 누구는 뺏고 누구는 잃는가 험난한 삶은 꼭 그래야 하는가

앞서서 산 자와 뒤쳐져 죽은 자 그 모든 눈에는 숨가쁜 눈물이

왜이리 세상은 삭막해 지는가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음-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2. 거리로 내몰린 수많은 사람과 오늘도 여전히 불안한 사람들

모두들 제각기 제 길을 가지만 난 아직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내 할 수 있을 때 일하는 세상 내 일한 만큼만 갖는 세상

** 반복


3. 누구를 밟고 어디에 서는가 왜 같은 우리가 달라야 하는가

살아남기 위해 그렇다 하지만 그 모든 눈에는 고독한 눈물이

왜 이리 갈수록 지쳐만 가는가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 반복

내 마음만큼 일하는 세상 내 일한 만큼 갖는 세상

내 마음만큼 일하는 세상 내 마음만큼 갖는 세상을

**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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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윗층 옥탑방 아저씨

재작년 7월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 집은 반지하에서 2층까지 두가구씩, 옥탑방 포함하여 총 7가구가 사는 다세대 주택이다.

우리는 2층 202호인데 무슨 연유인지 옥탑방과 우리집은 전기가 이어져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달이 옥탑방 아저씨가 우리에게 전기세를 1만원씩 주신다.

고지서에 보면 가구수 2, TV대수 2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

수도도 가구 전체가 물려있어 두달에 한 번 집주인 아주머니가

인원수대로 요금을 나누어 받으러 다니신다. (덕분에 한 두집이 세탁기를 돌리면 물이 거의 안나온다.)

 

처음 몇달은 윗층 아저씨가 문을 두드리며(우리집은 초인종이 없다) 찾아와 돈을 주고 가시곤 했다.

그 아저씨... 나이가 50대 정도고 체구가 아주 작고 왜소하다.

얼굴은 창백하리 만치 하얗고 너무 착하게 생기셨다...

어디 호텔 경비를 하신다는데 24시간 교대인지, 주야간 교대인지 모르겠으나

새벽에 출근하기도 하고 어느날은 하루종일 집에 계시기도 한단다.

부인과는 이혼을 했는지, 자식은 있는지...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 없고 혼자 사신다.

남편과 나의 생활 사이클이 불규칙해서 아저씨를 만나지 못할 때가 많다보니

한두달씩 밀려 두달치, 세달치를 주시곤 하신다.

어느날은 아저씨가 찾아오셔서는

'이번 달은 제가 돈이 없으니 다음달에 꼭 같이 드리겠습니다.' 하신다.

전기세 만원도 없는 때도 있다니 참 힘들게 사시나 보다.

 

1년쯤 지나 작년 하반기 부터 아저씨가 통 찾아오시지 않는다. 집에도 안오시는 것 같다.

몇달 지나고 오셔서는 몸이 아파 그동안 병원에 있었다며 밀린 몇달치를 주신다.

어디가 편찮으시냐고 했더니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암이라고 한다.

깜짝 놀라 괜찮으신거냐고... 누가 병원에 돌봐주실 사람은 있냐니까

그냥 웃으신다. 이제 얼마있다 또 치료를 받으러 입원하셔야 한단다.

 

올해들어서 거의 얼굴을 못봤다. 벌써 4, 5개월은 된거 같다.

집 주인 아주머니 한테 물어보니 그 아저씨 못나올 거 같단다.

집도 이사를 할 거란다. 그럼 어떻게 되시는 거냐니까 전기세 못받았냐고 물어본다.

그렇지요... 얼마나? 한 5개월? 어떻게 하냐고 나한테 되묻는다.

집주인 아주머니 순박하고 뭘 잘 모르시는 분이시긴 한데...

그걸 자기가 주인인데 알아서 해결해야지 우리한테 어떻게 하라고... 참, 무책임하다.

하여간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다.

어느날 남편이 낮에 아주머니가 올라와 윗층 이사갔다고

딸이 왔었는데 밀린 전기세 분할로 갚는다고 했다며 전화번호를 하나 적어주셨단다.

전화해서 계좌번호 하나 알려주라며...

 

직접 아저씨와 통화하는 것도 아니고 같이 살지도 않았던 딸한테 전화하려니 좀 그렇다.

해봐야 6만원인데 그것도 분할로 입급시킨다니 딸도 살림살이가 그런가 보다.

나이도 20대 초반인데 학생인지...직장다니는지 잘모르신단다.

고민고민하다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저... 000씨 되시나요?'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저는 화곡동 사는 사람인데... 저기... 저희 윗층 아저씨...' (뭐라 설명을 해야 하는지...대략 난감.)

'아, 네...'

'아저씨하고는 어떻게 되세요?'  (이미 들어놓고....)

'딸인데요'

'네... 아버님은 좀 어떠세요?' (일단 좀 친근감을 좀 줘볼까?)

'돌아가셨는데요?' (허걱!!! 갑자기 머리속이 하얘지면서 너무 당황을 한 나머지)

'어머... 언제요?'

'두 주 전에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 그랬군요. 많이 상심하셨겠어요. 경황도 없으실텐데... 제가 나중에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냥 말씀하세요. 무슨 일이시죠?'

'아... 저... 그게... 주인 아주머니가 전화를 해보라고 해서...저기.. ' (허둥지둥 허둥지둥 막 줏어다 댄다)

'아, 네... 전기세 때문이시죠?'  (어쩌나... 이야기를 계속해야 하나 어째야 하나)

'아... 네... 근데... 지금 경황도 없으실텐데... 제가 참... 전화를 ... 나중에 다시 통화하지요'

'아니예요. 계좌번호 불러주세요. 제가 다달이 2만원씩 보내드릴께요.'

'아... 저...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나중에 제가 이 번호로 메시지보내드릴까요?'

(어떻게든 빨리 끊고 싶다 ㅠ)

'아니, 그냥 불러주세요.' (헐~~~ 어쩌지? 어쩌지?)

'저... 국민은행이구요...(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냐?)  000-0000000 (이럴 때 나는 왜 이런 걸 다 외우고 있어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줄줄 나오냐고오오오오!!!!)

저는 (헉!! 이제 이름도 이야기해야 하는데... ) 000 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이달 말부터 보내드릴께요.'

'아... 그러시겠어요?  (뭘? 그걸 원한거면서...) 괜찮으시겠어요? (누가 누굴 걱정하는건지...촴~~놰) 그럼... 저기...'

'네. 보내드릴께요.'

'아...네... 고맙습니다... 경황도 없으신데...이런 전화를... 저기...'

'네...' 

삐~ 뚜뚜뚜...

 

이게 뭐~~ 야?

에이씨... 정말 짱나... 왜 이런 상황이... 나 정말 왜 이래?

그 아줌마는 왜 돌아가셨다는 이야긴 안해가지구... 우이쒸... 이러면 안되는 거 같은데...

괜히 전화했다...난 몰라 난몰라...

집에가서 아줌마 한테 따져야 할까나? 휴우~~~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고인의 명복이라도 빈다고... 상투적인 말이라도 할걸..

기양 나중에 전화한다고 할걸...

아니... 여유있게... 너그러운 척... 인간적인척...

아, 됐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구요... 조의금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랬어야 하는 거 아냐?

아닌가? 그거 쫌 이상한가?

아~~~ 우울하다...

 

얼굴이 하얗고 작은 체구를 가진, 정말 너무 착하게 생기다 못해 좀 안스럽게 생긴

윗층 옥탑방 아저씨가 돌아가셨다.

살면서 얼굴 마주한 건 한 10번이나 될까... 싶지만... 사람이 사는 게 이런 건 아닌데...

 

다음날 문자를 보냈다.

'주인아줌마한테 이야기를 못들어서... 어제는 제가 큰 실례를 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의금이라고 생각하시고, 전기세는 그냥두십시오."

 

"아저씨... 좋은 데 가셔서 편안히 쉬세요... 명복을 빌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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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안성 용설호수 주변 풍경 사진

안성 용설 호수 주변 (우리 숙소 주변) - 역시 사진은 사월님이 제공 ^^

 

 

 

 

 

 

 <위에 있는 이쁜 것이 배꽃 이래요>

 

 

 

 

 <해뜨는 풍경>

<해지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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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껌님의 요청으로 안성사진 올립니다.

사진은 사월님이 제공해 주셨습니다.

 

<안성마춤 남사당 놀이 - 토요상설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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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남사당놀이

 

작년 3월말부터 문화예술교육정책연구모임...이라는 거창한 네임으로 진행하는 스터디 모임이 있는데, 

초반에는 열의에 차서 누가 돈한푼 주는 거 아니지만 열심히 돌아다니고 연구하고 했었다.

11월에 토론회도 열고... 했는데... 뭐랄까...

이게 딱히 뭔가 동력이 계속 붙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마무리는 지어야 하기에 올해에도 계속 모여 지지부진한 논의를 계속하다보니

어쩌다 문광부 연구과제로 기금을 받게 되었네... 참...

기왕 해온 거니까 마무리 지으면 좋겠다 싶어 박차를 가하는데

올해 들어오면서는 어느 부분에선가 계속 맴돌고 프로그램 사례를 분석하는데 계속 어수선하기만 하다.

일단 역할 분담을 해서 초고를 쓴 뒤에 다시 검토를 하기로 했는데

쩌비~~ 두달이 되도록 초고가 안나온다는 애로~~ 가~

우리 팀장님... 궁리끝에 급기야 어디 근사한데 가서 완성하자.는 당근을 던지셨다.

날 좋은데 배꽃향기 그윽한 안성 모 처에서 집필을 위한 수련회를 하자는 제안.

다들 이건 뭔가 속는 거다 하면서도 배꽃향기에 끌려 덜컥 추진.

헐~~~ 근데...

3박 4일 동안 숙소에 감금당하다시피 하면서 한 무더기 책에 파묻혀

각자 가지고 간 노트북과 씨름...씨름...끙~~

이건 아냐, 이건 아냐...윽!! 정말 아냐...

 

그러다 마침 토욜날 몇분이 일이 있어 나간 틈을 타 배꽃구경을 가고

또 저녁에 안성 남사당 놀이 귀경을 갔다. ㅋㅋㅋ

마침 사진이 몇장있어 기양 소개하려고 이렇게 사설을 길게 풀었다는 거. 흐흐

주말... 좋은 공연 없나... 고민하는 양반들 괜찮은 볼거리라오...

남사당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 정리해서 올려볼까 하니... 쫌만 기둘리시고~~~

 

아! 사진은 사월님이 찍은 것을 슬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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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데이의 허탈감.

몇가지 갈등이 있었단 이야기는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찌되었는지는 자세히 모르고...

그치만 결과적으로는 회의에서 논의되었던 연출안은 변경되었고 그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고...

몇년간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다.  어디서 부터 꼬이기 시작한 걸까?

결자해지라 했던가? 근데 누가 결자인지... 참...

 

메이데이가 다가오면서 올해는 어떻게 참여를 할 건지 참 많이 고민되었었다.

케케묵은(?) 메이데이 문화행동도 꺼내보고 뭔가 재밌는 거리...도 찾아보고 했는데,

물론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아주 적극적으로 뒤지고 조직하고 하진 않았다.

 

1시즈음 꽃다지 태수와 사월과 같이 대학로에 도착해 창환형의 문자를 받았다.

두리번 거리니 여기저기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띤다.  살짝 비가 흩날리기 시작한다.

몇몇 사람이 문자를 보내왔다. 음... 다들 속속 도착하는군.

선봉형은 보자마자 '깃발 가져왔어?'   엥? 무슨깃발?

우리 무슨 조직이야?

선봉형 천연덕스럽게 '노문센터 깃발~'

오잉?!  해산한 조직 깃발을 어디서 찾고 있다냐?

생각해보니 메이데이 문화행동 깃발이 있었는데 2, 3년 전에 분실했다고 들은 거 같다. 치이~~

 

이래저래 사람들이 하나씩 모이고 무대 옆에 비를 피해 어영부영 서있는다.

왜 우린 늘 무대 옆을 못떠나는 거야? 무슨 맨날 관계자라고...

비가 멎고,  누구는 단체로 몇명이 같이 왔으니 대오에 들어가 앉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떨거지처럼 여기 서있지 말고 같이 들어가 앉잖다.

잠시 갈등...하다가 좀 있다가... 라고 답변.

왠지 대오 중간에 들어가 앉기도 께림칙한 느낌.

누군가 옆에서 농으로 한마디 던진다.  '저것들이 드디어 체제에 순응하기 시작했군. '

허걱!! 홱 돌려 째려본다.  민망한지 '흐흐흐'

 

집회는 참으로 지루하게 느껴졌다.

투쟁이, 집회가 관성에 젖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 내 마음이 허탈해서 더 그런건 아닌지...

사전집회가 늦게 시작했고, 또 늘어지다보니 본대회도 늘어졌다.

시간은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갑자기 드는 생각 하나.

우린 왜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걸까?

메이데이는 무슨...  가서 니 생일 술이나 먹자...는 이야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말 왜, 우린 이 자리에 무슨 이방인처럼 겉돌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있냐고오오~~~

상징의식? 이 끝나고 행진이 시작되려나 보다....자리를 이동했다. 술자리로...

 

우린, 아니 나는 왜???... 민주노총 메이데이 집회에 왔을까?

누구 말처럼 집에서 아이들과 혹은 주변사람들과 메이데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메이데이 음악이나 틀어놓고 메이데이 자료나 다시 꺼내 읽거나 하지 않고 말이다.

누구는 이번 문선은 완전 80년대 후반으로 퇴행한 끝장을 보여준거 아니냐고 한다.

참담하다... 근데...나는 책임이 없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나? 괴롭다.... 허탈하다...

 

내년 메이데이 때는 집에서 책이나 보고 주변사람(남편하나밖에 없는데...쩝)과

메이데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100여년 전에 투쟁했던 시카고 노동자들의 정신을 기릴까? 정말?

'대중이 모인곳에서 감동을 받지 못하면 그땐 떠날때라고' 하면서

7,8년전쯤 인천본부에 사표를 던지고 떠난 동지 생각이 났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또 잊고 살다 막상 내년 메이데이 일주일 전 쯤부터 또 이모양이겠지?

뭔가 의미있던 메이데이를 지낸 사람있음... 누가 좋은 이야기 좀 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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