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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1/22
    선배 출판 기념식에서의 성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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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1/22
    문열이
    풀소리
  3. 2005/01/22
    장기표씨와 함께 산행을 하다.
    풀소리

선배 출판 기념식에서의 성연이

2001년 말엽이니, 성연이가 4살 초겨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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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열이

문열이

 

개나 고양이, 돼지 등은 한 배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여러 마리 새끼 중 간혹 유난히 작고, 젖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비실거리는 놈이 있다. 이놈을 문열이라 부른다. 제일 작고 비실거리니 뭔가 시원찮은 막내이려니 하지만 실은 제일 먼저 태어난 놈이다. 다른 놈들보다 앞장서서 길(?)을 열며 나오다 보니 힘이 빠져 동생들과의 생존경쟁에서 밀리고, 비실거린다고 한다.

 

‘…. 정 위원장님은 꿈이 있습니까. 이제 뭘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외롭습니다.

 

긴 재담 끝에 정석규 선배가 민주노동당의 정윤광 위원장에게 한 말이다. 말이 끝나고 어수선하던 좌중이 처음으로 잠시 침묵에 빠졌고, 몇 마디 더 오가고는 자리를 파했다. 나도 명치 끝이 묵지근해져 잠시 침묵했고, 한 마디 덧붙였다. 석규형 언제 소주나 한 잔 합시다. 결혼식이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김에 뒷풀이 겸 7-8명이 맥주집에 모인 자리에서였다.

 

모두 7-8-90년대 이른바 운동권의 한 복판에 있었고, 혹 현재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려운 한 시절을 공간을 달리해도 모두 함께 겪으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얘기가 나오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끝이 없이 이어졌다. 몸뚱이 일부가 잘리우면 그것이 곧바로 또 하나의 몸뚱이가 되는 아메바처럼 우리가 함께 했던 시절과 사건은 뻔히 알면서도 끄집어 내면 낼수록 새롭게 살아났다. 요즈음 흔히 그렇듯 깊은 얘기는 슬쩍 슬쩍 스치기만 하고, 예의 정석규 선배의 재담에 섞여 웃음을 이어갔다. 서로 아팠던 기억들도, 예전 같으면 가슴을 후벼팠을 만한 얘기들도 서울의 북부지역에서 주로 모인다고 하여 북부동맹, 무슨 조직이든 흔들어 놓는다고 하여 알 카에다 투의 농담에 섞여 커다란 웃음덩어리에 묻혀갔다. 때로 거친 말투나 화난 듯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여도 실은 모처럼 군대얘기를 곁들인 대포자리를 만난 아저씨들처럼 모두 신이 난듯했다. 특히 정석규 선배가 특유의 달변과 재담으로 전체 자리를 이끌었다.

 

그러던 선배의 표정과 목소리가 문득 바뀌었다. 깡시골에서 땅 한 마지기 없어 어머니가 먼 장터에 나와 장사를 하면서 학교에 보냈고, 이른바 명문대학에 다니게 되었다고 좋아하였는데, 요즈음 어쩌다 자신의 집에 오시면 마누라 눈치를 살핀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참으로 서럽다고 했다. 외롭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 위원장에게 묻듯이 이제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녕 서러움일까? 외로움일까? 서러움이나 외로움이란 한 낱말로 모두를 설명할 수 있을까? 모처럼 신나 들떠있던 사람들 모두를 빨아들여 침묵으로 이끌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분노와 절망, 모멸감? 그렇다면 누구에게?

 

70년대, 80년대, 90년대 우리가 운동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우리는 기꺼이 문열이이고자 했고 그렇게 행동했다. 올리비에 롤랭의 표현처럼 단도직입적이었고, 철학에 따라 행동했으며, 기꺼이 소수가 되었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에 힘과 자부심을 얻었었다. 그리고 외롭고 고립되어 있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었다.

 

그런데 이제 힘도, 활력도 없고 자부심도 빛이 바랬다. 자랑스러워 하거나 존경할 조직을 하나도 만들어놓지 못했다. 당과 신생 소비에트의 존속을 위해 스탈린이 요구하는 대로 제국주의의 스파이임을 인정하고 사형장으로 들어선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가 사고의 메비우스의 띠에 갇혀 끊임없이 회의하며 웅얼거리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하다. 이것이 인민을 위한 길인가? ……. 자본가들이 민중의 피로 축배를 들면서 돈 놓고 돈 먹기식 파티를 벌이고, 그 파티에 끼지 못해 안달하고,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넘쳐 나는 것을 보면서, 패배했으면서도 인정할 용기조차 없는 패배자의 모습으로,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로 끊임없이 웅얼거리기만 하는 나의 모습을 본다. 외로움이란 그런 것이다.

 

2002년 1월 희망을 얘기해야 할 시점에 나는 절망을 얘기한다. 온갖 상처로 그대로 두면 소생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질 게 분명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안고 사는 사람이 마지막 실낱희망이라도 잡고자 정신과 의사와 마주 앉아 치부를 들추어 낼 차례를 고통스럽게 기다리며 고개를 드는 만큼의 용기라도 갖고자 난 오늘 절망을 얘기한다.

 

<추신>

정석규 형은 58년 개띠에 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한 1세대이며, 기꺼이 현장에 투신하였고, 현장 활동 중에 몸에 병까지 얻은 사람이며, 내 알기로는 그 활동을 무기 삼아 제도권을 기웃거린 적도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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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씨와 함께 산행을 하다.

  1주일 내내 12시를 넘겨 집에 들어오다 보니 이제야 겨우 짬이 난다.

 

  지난 4월 마지막 일요일이었으니 벌써 1주일 전 일이다. 선배 한 분이 주도하는 산악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10시에 옛 구기파출소 앞으로 나갔다. 걱정 2/3, 기대 1/3의 마음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몇 일 전 그 선배로부터 이번 산행에는 사회당, 개혁국민당, 사회민주당 소속원이 모두 골고루 참여할 것이라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때때로 주변 사람들과 격한 충돌을 빚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소속 정당 등 드러난 정치적 표상 그대로 상대방을 평가하지도, 대우하지도 않는다. 우리 사회처럼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사회에서 정치적 견해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대방의 진의를 충실하게 이해하려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애정의 유무, 타인에 대한 배려가 그 본체인 예의 등을 더 따진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격한 충돌을 하는 경우 그 대상은 우파(?)보다는 나 스스로 그러하기를 바라는 사회주의자 또는 좌파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구기파출소 앞으로 다가갈수록, 사람들 얼굴이 또렸이 보일수록 걱정은 더 커져만 갔다. 30여명쯤 올 거라 들었는데 낯익은 얼굴은 불과 5-6명이었다. 옆에 일군의 사람들 틈에 앗, 또 한 사람의 낯익은 얼굴. 그 분은 바로 장기표씨였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말없이 악수를 하고 한 걸음 비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면서도 머리 속은 온통 어지럽기만 했다. 설마 장기표씨를 하는 맘도 있었지만 떼거지로 왔다면 오늘 산행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에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이때부터 시작한 두통은 뒤풀이 때 끝내 약을 먹고서야 진정되었다.)

  장기표씨가 주례 약속이 있다하여 서둘러 산행이 시작되었다. 화창한 날씨에 신록이 싱그럽고, 산벚의 흰 꽃잎들이 바람결에 흩날리는 4월 마지막 일요일, 사람들은 다른 때보다 곱절은 많아 보였다.

 

  나는 산을 잘 타는 편이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행의 맨 뒤에 섰다. 곰곰이 생각에 잠기느라 말없이 걸음을 옮겼고, 주변 사람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실없는 농담이나 주고받고 깊이 있는 얘기는 삼갔다. 산란한 내 마음과 달리 주변 풍경은 왜 그리도 아름다운지...... 바람에 흰 꽃잎을 뿌리는 산벚은 물론이요, 늦은 진달래, 한창 피어난 철쭉, 떠질 듯 붉은 자주빛으로 부픈 병꽃, 내 특히 좋아하는 흰 물앵두꽃, 온 산을 꽉 채운 투명한 새 이파리들...... 그중에서도 키작은 붓꽃이 제일 눈에 들어왔다.

 

  사실 나는 붓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장식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붓꽃이 매우 장식적으로 보여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눈길은 이 붓꽃에서 저 붓꽃으로 옮겨갔고, 생각은 옛 공자님부터 내 앞에 선 장기표씨까지 이 얼굴 저 얼굴로 옮겨갔다.

 

  옛날 공자님이 자신의 뜻을 현실정치 속에서 펴보시고자 수레를 타고 천하를 도는 그 유명한 주유천하를 하실 때 얘기다. 세상을 경륜할 풍부한 학식과 포부, 인재 집단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떤 제후도 공자님을 쓰려고 하지 않아 매우 실망한 공자님이 의기소침하였다. 그러던 어느 깊은 산길을 지나고 있을 때 맑은 향기가 나 따라가 보았더니 수풀 속에 난초 하나가 맑은 향기를 사방을 퍼트리며 단아하게 피어있었다고 한다.

 

  이 난초를 보시고 공자님은 주유천하를 끝내고 고국인 노나라로 수레머리를 돌렸다고 한다. 저렇게 향기롭고 아름다운 난초도 알아주는 이 없이 수풀 속에서 홀로 피었다 지기도 하고, 그 향기가 너무나 아름다우면 움직이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찾게 됨을 보면서 자신의 조급성을 깨달았고, 이 일은 공자님 일생의 일대 전환기 구실을 하였다고 한다.

 

  붓꽃은 난초는 아니다. 하지만 난이 살기엔 기후가 추운 서울에서는 그 중 난에 가장 가까워 보인다. 실제 화투패의 난초는 붓꽃이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얼마나 조급증을 가지고 있는가. 그러나 조급증을 뒤집어 보면 오히려 자신이 내세우는 이상과 배치되고, 인민에게 해악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욱이 권력집단의 조급증은 2000만 명에 달하는 스탈린의 대숙청/학살, 중국의 문화혁명,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서 보여지듯 인류의 대 재난이 되기도 하지 않았던가.

 

  산을 오르며 많은 사람들이 장기표씨를 알아보았고, 악수를 청했으며, 함께 온 아이들에게 이분이 장기표 선생님이셔 하고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저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청하고, 아이들에게 자랑스레 소개까지 시키는 마음은 어떤 것인가. 과연 저분은 그네들의 진정을 얼마나 담아내고 있는가. 무엇이 저분을 역사의 뒤켠으로 저물고 있는 한국노총의 정치조직의 수장으로 서게 하였는가. 함께 한 동지들에 대한 실망감 때문일까. 먼저 제도권에 자리잡은 후배들에 대한 부러움 때문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세상에 대한 무차별적인 분노 때문일까.

 

  그 어떤 이유도 나에겐 정당화 될 수 없는 이유로 보인다. 모든 것이 그저 조급증으로 보이고, 이면에는 개인적 출세의 욕심이 이상을 뚫어 넘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산행에서 먼저 반가이 인사를 건넨 사람들이 장기표씨가 사회민주당의 총재임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사회민주당이 어떤 당인지는 알고 있을까......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대로 가만히만 계시면 그 자체로 우리의 자랑이고, 많은 이의 등대가 될 터인데......

<2003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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