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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3/15
    퇴화하는 지능, 발달하는 촉수
    풀소리
  2. 2005/03/12
    이율배반(1)
    풀소리
  3. 2005/03/11
    긴 하루였다.(1)
    풀소리

퇴화하는 지능, 발달하는 촉수

* 이 글은 뻐꾸기님의 [당과 나] 에 관련된 글이기도 하며, 공공연맹 이근원 동지의 글 '기관지 후원회원을 탈퇴하며'라는 글에 관련된 글이기도 하다.
뻐꾸기님의 '당과 나'는 나의 글
'긴 하루였다.'를 트랙백 한 글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트랙백이 어떤 것인지 시험하는 글이기도 하다.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성공하여 업그레드된 블로거가 되길 희망할 뿐이다.


퇴화하는 지능, 발달하는 촉수

 

오늘 또 다시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가 무산되었다. 파행으로 끝난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를 보면서, 민주노동당의 실질적 최고기관인 '중앙위원회' 회의를 보면서 이성적 토론과 설득이 사라지고, 서로의 편가름만이 판단의 유일한 근거가 되가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해하는 이는 비단 나 하나 뿐이 아닐 것이다.

 

대학시절부터 이른바 운동권이었던 나는, 그러나 운동권에 대한 좋은 추억보다 나쁜 추억이 훨씬 많다. 사상투쟁이라는 차원 높은 실천활동이 실제로는 '사상' 없이 '투쟁'만 남아 나를 비롯한 다수를 괴롭혔다.
물론 사상투쟁이 살인으로까지 간 일본 '전공투' 정도는 아니었지만, 때론 각목으로 무장(?)하고 토론에 임해야하는 사태까지는 발전하였다.
문건이나 당시 유행하던 대자보는 서로의 차이를 좁히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 생각, 내 조직의 생각이 다른 이, 다른 조직보다 우월한가를 입증하는 강박의 공간이었고, 그런 만큼 독자와 대중이 배제된 '그들'만의 공간으로 전락해갔다.

 

나이가 들고, 소비에트가 붕괴되고, 현실 전망으로써 '사회주의'가 상상의 공간을 벗어났을 때, 우리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적개심에 불탔던 '과거'를 속죄(?)라도 하듯, 또는 서로의 치부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고, 인정한다는 듯이, 무조건 감싸주고, 차이를 묻어버리고, 좋은 게 좋다는 '온정주의' 속에서 '위로'를 주고받았다.

 

매번 선거에 나와도 1% 내외의 득표에 그쳤는데,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권영길 후보가 100만표 가까이 얻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기뻐했던가? 비록 4%도 안 되는 지지율이었지만 말이다.

 

2004년 4.15 총선을 앞두고 나는 의기투합한 당원들과 모여 '총선기획단' 모임을 하였다. 모두 월급쟁이들이라 겨우 1주일에 한번씩 모이는 모임이었다. 밤늦도록 토론하고, 그 와중에 뒤풀이하고, 주중에는 각자 자료를 모았다. 돌이켜 보면 힘든 일이었지만 그땐 힘든 줄 모르고 즐겁기만 했다. 모두 의욕에 차있었고, 투지에 넘쳤다. 고양시에서 1명의 후보를 내자는 게 다수 당원들의 생각이었고, 몇몇은 아예 후보를 내지 말자고 했지만, 우리는 그동안 모은 자료와 토론되고 정리된 자료를 근거로 2명의 후보(안)을 제출했고, 당원들을 설득했다.

 

전국 지구당 중 유일하게 2명의 국회의원 후보를 냈지만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은 선거를 치르고도 남을 정도였다. 후회 없는(?) 선거운동이 끝나고, 우리는 선거사무실에 대형 TV를 설치하고, 당원들이 모두 모여 함께 개표방송을 봤다.

 

방송사들은 앞다투어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민주노동당은 지역에서 2석, 비례대표 9석으로 11석을 예측했다. '와' 하는 함성이 터졌다. 꿈에도 그리던 '노동자 국회의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13.1%의 전국적인 지지를 받았다. 놀라웠다. 그리고 감격했다. 그러나 그것이 즐거워만 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불과 몇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우리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의 내용을 갖지 못한 진보정당이다. 말하자면 선언적 강령 수준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다. 그렇다보니 진보정당의 내용성에 대하여 당원들이 공유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떻게 보면 뭔가 보다 의미 있는 활동을 하자고 모인 사람들이 당원이 되고, 현 사회상황에 대한 극단적 반감이 표가 되어 민주노동당으로 쏠렸을 뿐이다.

 

그러나 13.1%는 대단한 숫자다. 난 민주노동당이 안정적 15% 지지를 받으면 기성정당들은 개헌을 시도할 것이라고 늘 얘기했었다. 일본처럼 간선제 효과가 있는 내각책임제로 말이다.
난 최소한 8년 정도 지나야 안정적 15%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니 개헌을 예상하면서도 사실은 먼 훗날의 얘기일 뿐이었다.
13.1% 지지는 총선의 일시적인 효과라고 생각했다. 또 다시 한자리수로 내려갈 것이라고...
어찌되었든 13.1%라는 숫치는 감격은 할만한 것이지 이 숫자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 우려의 숫치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13.1% 지지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것이지만, 반대로 민주노동당으로 보면 그 지지를, 그 지지에 의해 주어지는 정치적 지분을 감당할 준비와 자신이 있는가 라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가 주어졌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거인이 된 아이가 성인의 판단과 행동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런 상황이랄까?

 

그러나 정치와 권력에 민감한 사람들은 13.1% 지지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불행(?)하게도 정확히 간파했다. 그리고는 조직적으로 당권을 장악하였다. 당원들 중 10%밖에 당의 사정에 관심을 두지 않는 상황(평당원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겸손과 순수성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고 난 생각한다.)에서 5%의 결속은 이미 과반의 영향력을 획득한 것이었다. 더욱이 불행한 것은 그들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당권을 장악할 것이라고 판단한 당원이 소수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원하던 대한민국의 권력에 있어 노동자들의 정치적 지분은 이렇게 하여 특정 정파의 정치적 지분으로 전락하는 위기에 처했다. 그러니 내부의 충돌이야 오죽하랴.

 

난 불행인지 다행인지 2004년 총선이 끝나고 바로 당 중앙위원이 되었다. 첫 번째 중앙위원회의부터 삐걱거렸다. 당시는 경기도지부 지부장 선거문제로 시끄러울 때였는데, 어쨌든 격돌이 심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많은 토론을 하였고, 설득력 있는 주장은 호응을 받기도 하였다.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성원확인하는 대의원>

 

그러나 중앙위원회 회수가 지나가면서 반대로 토론은 줄어갔다. 설득력 있는 간절한 호소조차 고정표의 높은 언덕을 넘지 못했다. 지난 2월에 있었던 마지막 중앙위원회에서는 아무리 간절한 호소를 해도 집행부의 표는 '118표' 요지부동이었다.

 

이미 이성은 마비되고, 지능은 쓸모 없는 것이 되었고, 순식간에 발달된 촉수로 내 정파의 목소리와 페르몬에 따라 손을 드는 거수기만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마치 페르몬을 쫓아 '길'을 찾고, '먹이'를 찾는 개미들처럼 일사분란했고, 어쩌다 방향을 잃은 자가 있지만 집단을 붕괴시키는데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나도 미미한 것이었다.

 

지도부에서는 토론을 회피했고, 의도를 가졌든지, 아니면 자포자기했든지 중앙위원들은 토론을 포기한 채 표결에 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회의시간이 줄어들지 않은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진보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의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성문을 박차고 전투에 나갔다 귀환해 보니 우리 '성'에는 이미 남의 깃발이 꽂혀있는 꼴이랄까. 허전하고 허망하고 막막하다.
2005년도 중앙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아직 단 한 차례도 회의가 없었다. 이번 중앙위원회는 어떠려나?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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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배반

이율배반(二律背反)

 

며칠 전 박석삼 선배님의 지적으로 문득 생각이 났다.
난 정형을 싫어했다. 뭔가 틀지어지지 않는 것을 좋아하고 추구했다. 액체나 기체처럼 말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 열심히 하는 게 싫었고, 자기 관리 잘 하는 건 더더욱 밥맛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런데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는지 참으로 의문스럽다. 사상이나 조직이나 실천으로 볼 때 고농도 이성적 조합을 필요로 하는 맑스레닌이스트가 되었는지 이상하다. 하긴, 몸에 맡지 않는 옷이었지. 그런데 자꾸 입으니 중독이 되었을 뿐.

 

전두환 시절에 대학을 다녔다. 엄혹한 시절이었다. 어쩌다 가투에 나가면 언제나 대열 뒤쪽에 자리잡았다. '나이도 있고 한데 뭘' 하며 소심함과 비겁함을 위로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집회가 시작되고 전경들하고 대치하다보면 늘 내가 맨 앞줄에 있는 거다. 왜일까. 내가 흥분했나? 아니면 앞줄 녀석들이 다 도망갔나? 아무튼 찍어놓은 필름도 없으니 지금 와서 뭐라 확신할 수는 없다.

 

이후의 삶도 마찬가지다. 조직(?) 활동도 책임 역할을 후배들에게 맡기고 설렁설렁 했는데, 어쩌다보니 노동판에 남아 있는 게 나 하나다. 지금도 모이는 학교 후배들만 해도 70명이 있는데 말이다.

 

나는 지금도 꿈꾼다. 대열이탈을 말이다. 이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라고 늘 도리질친다. 그래도 이탈은 쉽지 않다. 이유를 모르겠다.

 

혹시 나와 거의 한몸이 된 '범생이 기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학 다니면서 여러 조직의 문건을 보면 내겐 다 옳은 소리로 보였다. 그런데 후배들은 이상하게 차이를 명확히 지적했고, 더욱이 그 이면은 어쩠다는 등 예리하게 분석했다. 그 얘기를 듣고 다시 보면 맞는 듯도 했다. 나는 매양 그런 식이다. 반역을 꿈꾸면서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범생기질.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수학을 잘 하는 편이다. 내 두뇌 능력에 비해서 말이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나의 범생이 기질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답이 있다. 그것도 숫자화 되는 명확한 답(모두 그렇지는 않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이 있다는 게 늘 안심이었고, 안심되는 순간 반은 푼 듯 했다.

 

머리는 반백인데도 답이 없다. '넌 뭐냐' 는 물음에도 답이 없다. 왜 이 모양일까 하고 스스로 답답해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범생이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정형성을 추구하고, 로맨티스트의 머리로 리얼리스트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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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였다.

긴 하루였다.

 

정발산역에 내렸을 때는 이미 어둠이 내렸고, 당 사무실로 가는 골목길은 안개에 묻혀있었다.
당 사무실은 벅적거리며 아연 활기가 있다. 포럼 준비모임과 여성위원회 회의가 겹치는 관계로 많은 당원들과 아이들이 와 있다. 1000명 당원이 있는 당 사무실이니 매일 이래도 될 것 같고, 좋을 듯도 한데...

 

유난히 모임이 많이 잡힌 날이다. 여성위원회 회의, 화정분회 번개, 행신분회 주말농장모임, 파주 준비위 회의, 기타 등등.
결속력 높은 여성위원회, 생각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은 화정분회 번개모임, 참석 안 하면 땅을 안 주겠다고 으름장 놓는 행신 주말농장모임. 포럼은 이 쟁쟁한 모임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걱정이다. 예상대로 모인 사람들이 적다. 적게 모인 이들조차 2차, 3차로 들러야 할 잿밥(?)에 더 마음이 가 있는 듯하다. 물론 그렇다고 회의를 '대충'할 우리는 아니지만^^;;

 

회의를 끝내고 우선 행신 주말농장모임이 있는 이정환 동지 집에 갔다. 이크, 안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 내가 주말농장 배제 1순위였다는데, 그 자리에까지 불참하였다면 국물도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맛있는, 안주에 맛있는 술자리까지. 이정환, 유현이 엄마, 유현이 고맙소!

 

모든 게 동날 때까지 눌러 있고 싶은 심정이지만 화정번개모임이 기다린다. 김해근 동지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한다. 먼저 그리로 가신 박석삼 선배님이 드라마 '해신'을 포기하고 포로로 잡혀있는 것 같다.

 

도착해보니 굉장히 많은 당원들이 와있다. 일산3,4동 번개모임 긴장해야 할 것 같다. 내기하자고 덤볐는데 최소한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다.
에너지가 넘치는 최김재연 동지가 역시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뭐람. 최김재연, 노상규, 최영희 이번 지역위원회 선거에서 낙선한 3인방이 모두 화정분회! 3인방은 자기들끼리만 건배하고, 낙선분회라고 자학하고...

 

나중에 술값 떨어진 우린(김종호 동지와 함께니까)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대체 몇시나 되었을까?
화정분회 동지들 고맙소! 원당분회로 한번 오시오. 내가 아니면 분회장이라도 대접하지 않겠소!

분회장이 알면 욕하겠지^^;; 분회장은 내 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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