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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2/28
    비오는 겨울바다
    풀소리
  2. 2008/02/26
    진보신당(10)
    풀소리
  3. 2008/02/18
    여름궁전(2)
    풀소리

비오는 겨울바다

지난 월요일(25일) 운수노조 버스본부 중상집수련회가 울산 정자해수욕장에서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지만, 바다를 좋아하는 난 짬을 내 바다로 갔다.

 

바람없는 바닷가/ 그러나 파도는 유난히 높았다.

 

잔잔히 그러나 꾸준하게 내리는 겨울비는 자연스럽게 안개장막을 쳤고,

바람없는 바다는 왠일인지 높은 파도를 해변에 쓸어내고 있었다.

 

감포 쪽을 바라본 해변모습

 

텅빈 바다라 더욱 좋은데, 오래 있을 시간이 없다.

위기의식 때문인지 점점 빡세지는 수련회는 쉬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울산 쪽을 바라본 해변풍경

 

봄이 일찍 오는 울산은 마른 풀 사이로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시간이 되면 들로 나가 새생명들을 실컷 보고오려고 했는데, 끝내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아쉽다.



수련원 건물/ 방에서 베란다 문을 열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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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지난 일요일

진보신당 창당을 위한 토론회가 대방동 여성프라자에서 있었다.

300여명이 참석한, 근래 보기 드물게 성황을 이룬 토론회였다.

 

토론자들/ 조돈문 교수, 정태인 교수, 홍세화 선생, 이덕우 변호사, 정종권 민주노동당 전 서울시당 위원장(왼쪽부터)

 

아마 진보블로거들 중에도 참석한 분들이 꽤 있을 것 같다.

뉴스에도 제법 나왔으니 소식들도 대충 알고들 계실 거다.

진보신당을 지지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딱히 다른 평가를 할 것은 없다.

그러나 나에겐 좀 색다른 느낌의 토론회였음은 분명하다.

 

나는 토론회를 싫어하는 편인데도 중간 쉬는 시간을 빼고 4시간 토론 내내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리고 나오는 얘기들도 제법 재밌었다.

내가 집중하고, 색다르게 느꼈던 것은 민주노동당 언저리에서 보지 못했던 '소통'이 있는 토론회였기 때문이리다.

 

평등과 연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시선도 따뜻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적들과의 싸움에서는 치열할지라도 대개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있고...

오랜만에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레디앙에 난 참석자들 사진/ 나도 들어있다. ㅎ

 

나는 지난 4년 동안 꼬박 민주노동당 중앙위원으로 활동해왔었다.

민주노총 대의원은 하다말다를 반복했고...

 

양대 조직의 핵심이라면 핵심이랄 수 있는 대의기구에 참석하면서 느꼈던 점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정의'는 없고 '힘'만 있다.'로 정리하겠다.

그래서 망한 것이겠지만...

 

중앙위원회고, 대의원대회고 새로 선출된 후 처음 열린 회의에 가보면 1년 상황이 점쳐진다. 그리고 안건이 제출되면 '통과' 또는 '부결'이 예측된다. 그것도 몇대 몇으로 될 것이라는, 오차범위 내의 대략적인 예측도 가능하면서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논리도, 가슴 뭉클하게 하는 웅변도 고정된 숫자의 벽을 넘지 못한다.

세월이 갈수록 발언은 줄어들고, 줄어드는 발언에 비례해서 발언의 질 또한 떨어져갔다.

 

예를 들면 비대위 구성을 위한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당이 서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건설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민주노총 모연맹 부위원장의 발언처럼 말이다.

 

휴~

 

실패할 것인가? 아님 성공할 것인가?

분열인가? 아님 새로운 모색인가?

 

난 다른 어떤 것 보다 그런 숨막히는 곳으로부터 나왔다는 게,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왔다는 게 우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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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궁전

예전에 노보에 싣느라고 급하게 썼던 글이다.

급하게 쓰다보니 매끄럽지 못했다. 오죽하면 너그럽기 그지없는 감비까지 지적할 정도였다.

시간이 되면 수정을 해야지 하면서도 많이 미뤄왔다. 그러다가 이번 출장길 버스 속에서 손을 봤다. 물론 손을 봤다고 별반 다를 건 없지만 말이다.

 

여름궁전 포스터

 

여름궁전

 

로우 예(Ye Lou) 감독이 연출한 여름궁전은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다. 그리고 한국에서 광주민주화항쟁만큼이나 중국 사회에 엄청난 상처를 남긴 천안문사건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로우 예 감독은 ‘천안문 사건의 격렬함이 사랑의 격렬함과 같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천안문 사건을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것은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랑의 격렬함을 드러내기 위해 천안문 사건을 배경으로 삼았는지, 아님 천안문 사건의 격렬함을 드러내기 위해 사랑의 격렬함과 무수한 상처를 비유했는지, 아님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상처 이상의 무엇을 남기기도 한다는 측면에서 사랑과 천안문 사건이 닮아 있음을 그리려 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주인공 위홍

 

영화는 주인공 위홍이 북경에 있는 북청대학교 합격증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위홍은 북한과 중국의 접경도시 조선족자치구 투먼을 떠나 북경으로 온다. 위홍이 처음 접한 대학은 통제사회 속의 해방구라는 측면에서 우리네 80년대와 흡사하다. 학생들은 사회의식이 분명하더라도 소란스럽고, 사랑과 일탈을 추구한다. 그곳에서 위홍은 자유롭고, 유쾌한 성격의 리타를 만났고, 리타를 통해 우수로 가득한, 한없이 깊은 눈을 가진 남자 저우웨이를 만났다.

 

우수깃든 눈이 깊은 남자 저우웨이

 

위홍은 저우웨이가 운명적인 남자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그에게 깊이 빠져든다. 저우웨이도 마찬가지이지만 그가 전부인 위홍과 달리 다른 여자들 사이로 방황한다. 그런 저우웨이를 보면서 위홍은 그에 대한 사랑이 깊어갈수록 사랑에 대한 불안감 또한 커져간다. 불안감을 이기지 못한 위홍은 결국 결별을 선언한다. 그리고 천안문 사건이 일어난다.


트럭을 타고 흐드러지게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천안문 광장으로 향하는 젊은이들. 그 틈에 위홍도, 저우웨이도, 리타, 그리고 주변의 모든 친구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시들어 흩어질 운명이라는 걸 알게 될지라도 흐드러지게 핀 봄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천안문에서 시위가 격렬해지고, 구호가 온 세상을 덮을 때, 저우웨이와 리타는 기숙사에서 섹스를 하다 학교 당국에게 발각되면서 둘의 관계가 모두에게 알려지고, 손을 잡을 듯 말 듯 위태롭던 그들의 친구 관계는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위홍과 저우웨이의 밝은 한때

 

비록 결별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저우웨이를 가슴 속 깊이 사랑한 위홍은 분노하고 절망한다. 사랑은 어쩜 젊음의 전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의욕을 상실한 위홍은 천안문사건이 끝나면서 학교가 조기방학에 들어갈 때 고향 투먼으로 돌아간다.


위홍은 정착하지 못하고 투먼에서 다시 선전으로 선전에서 중경으로 옮겨 다닌다. 정착하지 못하는 건 사랑도 마찬가지다. 공허함이 클수록 그것을 채우려는 시도도 커지는가. 위홍은 사랑을 찾지 못하면서도 섹스에 탐닉한다.


나는 위홍이 탐닉하는 섹스가 슬픈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운동이나 혁명이 변질되기 시작하였더라도, 지나고 나면 실패라는 뻔한 결말이 될 것이 명확하지만, 현재시제에 사는 사람은 몰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의 사랑과 섹스가 또 다른 관계를 잉태하지 못하고 그렇게 끝나는 것은 어쩜, 슬프지만 어쩔 수 없이 딛고 살 수밖에 없도록 예정된, 우리의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저우웨이가 중경으로 돌아와 다시 재회하였을 때 위홍은 2년 전에 이미 결혼했지만, 남편과의 사랑이 본래 그녀가 추구하던 사랑도, 그래서 최종 기착지도 아니라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마치 거대한 운동이 끝나고, 참여했던 주체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모든 과실이 정치판의 흥정물로 전락했을 때, 주변부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순수한 사람들이 선택한 불안한 삶처럼 말이다.


리타는 천안문 사건이 끝나고 저우웨이와 함께 베를린으로 가 함께 10년을 보낸다. 그러나 리타는 저우웨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자기가 아니고 위홍이라는 걸 안다.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절실히 원하는 사랑이,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결코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녀는 저우웨이와의 사랑이 그런 의미에서 ‘어떤 희망’도 아님을 깨달으면서 ‘혼자’가 되어 간다. 그녀에게 저우웨이를 향한 사랑은 이제는 단지 기억처럼 그녀의 몸과 함께 동행하는 지워지지 않을 흉터일 뿐이다. 그런 그녀가 택한 것은 자살이었다.

 

재회한 위홍과 저우웨이/ 세월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면서도, 그 세월을 거치면서 상처로 덧댄 기억은 무수히 겹쳐지는 영상으로 사랑을 도도라지게 하는 걸 방해하기도 한다. 

 

리타가 죽고, 리타가 사랑이 ‘흉터’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며 저우웨이는 ‘사랑이 흉터만은 아니’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그에게 사랑은 무엇일까? 여전히 희망을 갖게 하는, 그래서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일까? 아님 공허함과 아픔이 사랑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까? 위홍은 어떠했을까? 그녀에게도 사랑은 기대할 그 무엇이었을까?


저우웨이는 중국으로 그것도 우연하게 중경으로 귀국하면서 그들은 10년 만에 만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또 다시 빗겨간다. 그들은 열망해왔던 대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어도 사랑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고통스럽다.

 

사랑하는 사람의/ 무덤을 찾기 위해서/ 난 세상 끝까지/ 찾아 헤맸다네./ 아픈 가슴 부여잡으니/ 눈물이 쏟아지네./ 내 사랑 당신은 어디에?/ 사랑을 찾는 내 가슴은/ 목메어 우는데/ 당신은 지금 어디에?

 

이 영화의 주제가가다. 기억을 아파한다는 건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증거라고 하던가. 추억을 잊지 않고 간절히 찾고 있는 이에게 ‘사랑’은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닐까? 다른 말로 표현하면 ‘희망’이라 할 수 있겠지.


주인공들과 학생들이 트럭 화물칸에 빼곡하게 타고 웃으면서, 노래부르면서, 구호를 외치면서 천안문으로 향하는 장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주제가처럼 영원히 지치지 않고 세상 끝까지 갈 것 같았는데, 지금도 그런 연장선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눈물은 이미 후일담 세대로 전락한 ‘나’를 증거하고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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