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8/12

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12/28
    렛미인
    풀소리
  2. 2008/12/27
    벼랑 위의 포뇨
    풀소리
  3. 2008/12/18
    바시르와 왈츠를(2)
    풀소리

렛미인

그러고 보니 요즘 영화를 제법 보는 것 같다.

그것도 혼자서...

 

렛미인(Let the right one in)

감독 : 토마스 알프레드슨

 

렛미인 포스터

 

 

1.

 

스웨덴 영화라니... 더욱이 내용은 모르지만 내 주변 사람들로부터 찬사와 추천을 받은 사랑영화라니 안 볼 수 없잖아???

북극에 가까운 나라, 겨울이 긴 나라, 겨울에 밤이 아주 긴 나라, 스웨덴의 사랑 이야기라는 얘기만으로도 난 이미 이 영화에 매혹되어 있었다.

 

밤 하늘 엷은 조명 사이로 하염없이 내리는 눈.

이 영화는 천천히 내리는 눈처럼, 어둠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시작한다.

그러나 곧바로 나를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여주인공 이엘리는 뱀파이어다.

이엘라와 같이 사는 이는 이엘리의 아빠인 줄 알았는데 사실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다.

(참고로 뱀파이어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12살 쯤이라고 얘기하지만 몇 살인지는 알 수 없다.)

 

 

이엘리를 위해 주기적으로 사람을 죽여 피를 받아오는 이 남자. 죽을 때도 마지막 피를 이엘리에게 준다. 어떤 사이일까???

 

 

그는 정기적으로 피를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이엘리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선다.

그의 준비물은 마취제, 밧줄, 칼, 피를 담을 플라스틱 통, 도구를 담을 가방 등이다.

 

준비가 끝났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척 하다가 마취를 시키고는 거꾸로 묶어놓고 멱을 딴다.

마치 돼지 피를 뽑듯이...

 

제길!

내가 상영관을 잘못 찾았나?

하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잔인한 장면이 처음부터... ㅠㅠ

 

 

2.

 

물론 영화는 끝날 때까지 내게는 잔인하게만 느껴지는 장면이 반복된다.

물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공포'가 아니니 공포를 증폭시키는 특별한 장치는 없다고 해도 좋다.

(나처럼 호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집앞 놀이터에서 규빅을 가지고 얘기하는 오스칼과 이엘리

 

 

물론 이 영화는 광고대로 사랑 영화다.

12살 8개월 9일(얘들은 이걸 다 기억하나보다) 된 남자주인공 오스칼은 학교에서 급우들로부터 매일 괴롭힘을 당한다.

말하자면 왕따다.

복수를 꿈꾸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꿈일 뿐이다.

힘들 때 집앞 공터에 나와서 이런 저런 공상을 하는데 하루는 처음 보는 이엘리 라는 여자아이를 만난다.

이엘리는 매우 외로와 보였지만, '나하고 친구할 생각도 하지마.' 라며 쌀쌀하기만 하다.

그러나 서로 외면하기엔 둘 다 너무나 외롭기만 하다.

둘은 오스칼의 큐빅을 매개로, 그리고 괴롭히는 애들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서로 가까워진다.

 

이엘리가 뱀파이어임을 알고도 받아들이는 오스칼

 

 

시간이 지날수록 피를 뽑혀 죽음을 당하는 살인 사건이 늘어난다.

오스칼은 결국 이엘리가 뱀파이어라는 걸 알게 된다.

사람을 죽이는 뱀파이어라는 사실에 이엘리에게서 멀어지려 한다.

 

오스칼을 찾아온 이엘리는 문밖에서 '너를 초대해'라고 말해달라고 오스칼에게 요청한다.

들어가게 해줘. 이것이 'Let me in'이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Let the right one in.'이고...

오스칼은 끝내 이엘리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고 집안으로 들인다.

 

'너를 초대해라고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

오스칼의 물음이 끝나자마자 이엘리의 머리와 눈, 코 그리고 온 몸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놀란 오스칼은 '너를 초대해'라고 말하면서 이엘리를 꼭 안아준다.

뱀파이어임에도 이엘리를 멀리 할 수 없다.

 

오스칼은 모르스부호를 배우고, 이엘리에게도 가르쳐 주어 낮에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이엘리와 벽을 통해서도 서로 교신한다. 

 

벽을 사이에 두고 이엘리와 모르스부호로 교신하는 오스칼

 

 

3.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다.'라고 이엘리는 말했었고, 눈내리는 창문 너머를 촛점잃은 흐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예전에 서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마주댔던 흔적으로 더듬고 있는 오스칼이 마지막 장면이다.

(물론 처음 장면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 몰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스칼이 이엘리를 위해 사람을 죽이며 피를 구하러 다니는 사람이 될 지, 아니면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될 지... 

 

 

마지막 오스칼로 하여금 이엘리와의 흔적을 더듬게 만든 장면

 

 

그러나 분명한 건 사랑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라는 거다.

'미래'를 예상해 '현재'를 손상시키는 비겁한 것이 아닌 그런 사랑 말이다.

이 영화는 그런 사랑을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 눈덮힌 스웨덴의 서정적인 풍경과 끝까지 유지하는 느린 흐름은 그 자체로 이 영화가 주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벼랑 위의 포뇨

 

왜 이런 일이??? 포스팅을 끝내고 등록을 누르는 순간 모두 날아가버렸다...

 

벼랑 위의 포뇨

 

 

벼랑 위의 포뇨. 본 이들의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 같다. 순박한 동심을 주로 본 이들은 환호하고, 줄거리를 유심히 본 이들은 매우 폄하한다... 그럼 나는??? 나는 워낙 제도권 교육에 길들여졌기 때문인지 영화를 볼 때 비판적으로 보기보단 일단 흡수하고 본다. 포뇨도 마찬가지고...

 

인간을 혐오해 스스로 물고기가 된 포뇨 아빠 후지모토

 

 

영화를 보면서 나는 포뇨의 아빠인 후지모토에게 집중했다. 인간들의 제어 불가능한 욕망과 그 욕망 때문에 파괴되는 자연환경을 보면서 인간에게 환멸을 느껴 스스로 물고기가 된 이다.

 

포뇨는? 아빠와 반대로 물고기에서 인간이 되고자 한다.

아빠 후지모토는 포뇨의 꿈을 당연히 위험스럽게 생각한다. 어떻게든 막아야지...

 

바다의 여신인 포뇨 엄마는???

그녀는 우리 모두가 거품으로 왔기 때문이 설령 사랑하는 딸이 사랑을 이루지 못해 거품으로 돌아가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후지모토에게 이야기하는 바다의 여신인 포뇨 엄마

 

 

사실 우리 모두는 거품으로부터 왔다. 그렇더라도 거품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남감하다. 그것이 바뀔 수 없는 운명이라도 말이다.

 

포뇨 아빠 후지모토는 생명이 넘쳐났다는 고생대 데본기를 이상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세상을 데본기로 돌리고자 한다.

 

남자 주인공 소스케

 

 

내가 한문 공부를 해서 그런지 몰라도 후지모토를 보면서 문왕, 무왕, 주공시절의 주나라를 이상으로 삼아 그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공자가 투영되어 보였다.

반면 거품으로 돌아가도 어쩔 수 없다는 포뇨 엄마를 보면서 자연 그 자체를 이상으로 보는 노자나 장자가 투영돼 보였다.

 

어쨌든 말이다. 난 후지모토가 가여우면서도 부러웠다. 제도권 교육을 충실히 받아서인지 몰라도 (하긴 운동권 교육도 비슷하지만...) 난 인간의 이성에 의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데 여전히 꽂혀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상을 가지고 있고, 그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애쓰는 후지모토가 부러웠다. 물론 그 어떤 것도 부질없는, 끝내 거품으로 돌아가고야 말 운명이지만 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바시르와 왈츠를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Waltz with Bashir)

감독 : 아리 폴먼

 

 

1.

기억이란 우리에게 무엇일까?

현재의 나? 아님 과거의 나?

현재든, 과거든 기억이 '나'라면, 잊어진 기억은 또 무엇일까?

 

 

포스터

 

2.

영화감독 아리 폴먼에게

어느날 친구가 자기가 최근 갑자기 계속해 시달리고 있는 악몽에 대해 상담을 요청한다.

 

그 친구는 매일 밤 개 26마리에게 쫒기는 똑같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친구는 기억한다.

1982년 레바논을 침공했던 이스라엘군 일원이었던 자기 자신과

인가 쪽으로부터 그들을 향해 짖어대던 개때들...

 

 

친구의 악몽에 대해 듣고 있는 아리 폴먼(왼쪽)

 

상관은 사람에겐 총질을 못할 것 같은 그에게

개떼를 사살하라고 명령했고, 그는 26마리의 개들을 사살했다고 한다.

 

그는 죽어간 개 한 마리 한마리에 대해 모두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러나...

그 개들 이외에 생각이 나는 게 없다고 했다.

 

1982년.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서 아리 폴먼은 생각한다.

1982년. 그때 레바논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친구의 악몽 속에 나타나는 개떼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히 레바논에 있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레바논 침공 기간에 휴가를 나왔던 기억과 휴가나와 있었던 일은 모두 또렸이 기억이 나는데 말이다.

 

 

3.

아리 폴먼은 당황한다.

왜 기억이 나지 않는 거지?

 

1982년 이스라엘은 끊질기게 레바논을 침공했다.

레바논엔 당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임시정부가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쫒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난민촌도 있었다.

 

이스라엘은 PLO를 쫒아내고, 꼭두각시 정권을 세워 시리아의 입김을 제거하려 했다.

앞도적인 군사력으로 무자비하게 침공한 이스라엘.

그들은 계획대로 기독교 팔랑헤당 당수 바시르 제마엘을 대통령으로 세웠다.

그러나 바시르는 임기 시작 하루 전날 암살당한다.

 

 

팔랑헤 민병대에 겁에 질린 채 끌려나오는 팔레스타인 부녀자와 어린 아이

 

분노한 팔랑헤당 민병대는

이스라엘 점령지역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으로 무장을 하고 들어가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노인, 부녀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잔인하게 학살을 자행한다.

역사는 최소 800명, 최대 3,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학살되었다고 기록한다.

 

나도 기억한다. 1982년 레바논을.

보도통제 속의 TV 화면은

하늘을 향해 한없이 소총 쏘아대던 PLO 대원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레바논 베이르트를 떠났다.

눈물도, 소리도 없이 울부짖으며...

 

 

4.

아리 폴먼은 도대체 1982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자 한다.

함께 군 생활을 했던 친구들을 하나씩 하나씩 만난다.

대부분의 친구들도 기억은 온전치 않다.

집단 기억 마비다.

그들은 일종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함께 겪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친구들을 만나면서

기억은 깨진 퍼즐처럼 조금씩 조금씩 실체를 들어낸다.

 

벌집이 되어버린 벤츠/ 평범한 일가족은 영문도 모른 채 차량처럼 벌집이 되었다.

 

 

명령에 따른 것이지만 비무장 민간 차량에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그 차량에는 평범한 일가족이 타고 있다가 영문도 모르고 죽어가고...

 

팔랑헤 민병대가 난민촌에서 학살을 자행하고 있을 때

외곽을 봉쇄하고 조명탄을 쏘아올리며 학살을 도왔던 어린 병사 아리 폴먼이

거기에 있었다...

 

누가 바시르와 왈츠를 추었나?

누가 바시르에게 왈츠를 추게했나?

 

스스로가 나찌가 되어버린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

국가의 명령이라는 이유로 무감각하게 나찌와 같은 만행에 동참했던 어린 병사들...

 

 

기억이 변형되었어도

 

 

기억이 없어졌어도 비극은 사라지지 않는다.

 

 

5.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다.

영화 속 주인공이기도 한 아리 폴먼은 이 영화의 감독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자신의 실제 경험을 영화화 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실제 영상으로 처리했다.

그 부분부턴 말하자면 애니메이션이 사라져버린 말 그대로 다큐멘터리다.

되살아난 기억처럼 말이다.

 

잊지말아야 할 기억이 날 것으로 강렬하게 밀려온다.

마지막 영상은 바로 그날 레바논 난민촌 학살의 현장에 대한 기록이다.

여인의, 아이의 참혹한 주검이 켜켜히 쌓여있다...

 

 

오직 평화가 깃들기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