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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1/30
    콩타작(4)
    풀소리
  2. 2009/11/21
    네 번째 올레길 사전답사 다녀왔어요(5)
    풀소리
  3. 2009/11/12
    1박 2일(15)
    풀소리

콩타작

어제(11월 29일, 일) 부로농원에서 콩타작을 했다.

콩타작을 끝으로 2009년 부로농원 농사는 공식 마무리되었다.

 

콩타작/ 몽둥이로 두두려서 터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콩타작을 했다.

 

 

콩은 서리를 맞아야 수확을 한다는 검은서리태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심어서 여물지 못한 죽정이도 많다.

그래도 수확을 해놨는데 껍질을 까는 게 과제였다.

 

몽둥이로 때리면 콩알이 여기저기로 튀고, 하나씩 손으로 까려니 시간이 너무 걸렸다.

그런데 콩을 잔뜩 쌓아놓고 몽둥이로 두드리니 튀어나가는 게 적었다.

 

심기도 적게 심고, 그나마 늦게 심어 얼마나 나올까 싶었는데,

까놓고 보니 커다란 그릇으로 세그릇이 나왔다.

 

수확한 콩/ 작년에 강화도에서 저 그릇으로 하나 정도가 2만원이었으니 6만원 어치를 수확했나? ㅎ

 

 

그래도 습관적으로 밭을 둘러봤다.

텅빈 밭.

 

늦게 심은 밀이 여린 싹을 틔웠고,

겨울을 견딜 몇 뿌리 안 되는 대파가 벌써 얼어죽을 것 같다고 엄살을 부리는 것 같다.

 

콩심었던 자리와 오이를 키우던 나무 받침대

 

텅빈 밭

 

돋아나는 여린 밀 싹

 

겨울을 나야 할 대파

 

 

부로농원엔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우리는 부로농원에 쌓아둔 이사짐을 옆 건물로 옮겨야 하는 솔피낭의 이사를 도와주고,

창밖에 내리는 늦가을 비를 보면서

정태춘의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나 이소라의 노래들을 들으면서

마침 이날 갖 담근 김장김치에 돼지고기 보쌈을 안주로

둘러 앉아 술 한 잔을 마셨다.

 

가을이 잠긴 부로농원 연못 위로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비가 잔잔하게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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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올레길 사전답사 다녀왔어요

11월 18일(수요일) 고양올레길 네 번째길을 개척하기 위해 심학산과 파주 출판도시 일원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개척길에는 채송화님, 이녀비님, 기냥초이님이 함께 했습니다.

 

당초에는 대화역에서 9707번이나 9701번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습니다.

출발지가 그 버스들 종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녀비님이 승용차를 가져와서 그냥 차로 이동하였습니다.

 

9707번 종점에서 심학산 오르는 길목에는 고속도로 공사를 하고 있었고,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먼지가 나고 좀 어수선했습니다.

 

산에 오르자 하늘이 화창한 게 느낌이 좋았습니다.

기온이 영하5도로 떨어져 춥다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바람이 없어서인지 햇살은 따뜻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심학산 등산로 초입에 있는 배수지 정자에서 채송화님이 싸오신 고구마랑 간단한 간식을 먹었습니다.

  

심학산 등산로

 

심학산 등산로는 넓고 평탄했습니다.

원래 군사도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차량도 다닐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 초겨울이라 단풍은 없지만, 대신 시야가 참 좋았습니다.

심학산은 평야지대 한 가운데 솟아난 봉우리라 사방으로 막힘이 없었습니다.

  

등산로 초반에 보이는 산남리 방향의 벌판/ 시야가 뻥 뚤렸습니다.

 

이쪽은 파주입니다. 왼쪽 교하지구와 오른쪽 운정지구가 완전 아파트 숲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심학산 능선길/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입니다.

 

 

심학산은 해발고도가 193.6m라고 합니다.

해발고도는 얼마 안 되어도 벌판에 솟아있어 제법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길고 완만한 코스로 올라가서인지 가파르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는 정상을 앞두고 남은 귤을 먹으며 담소를 나눴습니다.

정상에는 정자가 있고, 정자 밑으로도 사방을 구경할 수 있도록 시실이 되어 있었습니다.

북쪽을 보니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되는 곳이 보였고, 통일전망대와 그 너머 북한 땅이 훤히 보였습니다.

서쪽으로는 김포평야 넘어 문수산성과 강화도의 여러 산들이 바로 보였습니다.

  

전망대에서 본 북쪽방향/ 강끝이 한강이 임진강과 만나는 곳이고, 강으로 삐져나와 있는 봉우리가 통일전망대입니다. 그리고 인물들을 중심으로 곧바로 멀리 보이는 곳이 북한 개성 땅입니다. 개성 송악산은 사진으로는 안 나왔네요...

 

 

파주 출판도시/ 강쪽으로는 습지가 넓게 발달되어 있네요. 이곳은 재두루미의 월동지라고 합니다.

가장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들이 강화도입니다. 시야가 좋은 날이면 훨씬 잘 보일 것 같습니다.

 

고양시 방향. 왼쪽에 보이는 낮은 봉우리가 고봉산이고 그 너머로 북한산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출판도시옆 돌곶이 꽃축제장 모습/ 채송화님이 인터체인지 앞에 있는 습지가 매립되었다고 적정하셨는데, 예전에 찍어서 전망대에 전시한 사진을 보면 아직은 아닌 거 같습니다.

 

전망대에 전시해놓은 사진/ 7번이 생태습지인데, 이곳은 아직 변형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심학산 정상은 전망이 정말 좋았습니다.

우리들은 오래도록 이곳 저곳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배밭 쪽과 서패리 방향 두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당초 계획했던 배밭 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숲속에서 만난 자작나무의 작은 군락/ 피부가 높은 산처럼 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반가웠습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온 곳에 있는 이정표

 

 

이정표를 보니 우리가 갔던 능선길 말고도 산 중턱을 이은 둘레길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출발했던 배수지에서 이곳까지 4km 가까이 되네요...

길도 아주 작은 오솔길이었습니다. 거리도 제법 되는 게 한 번 걸을 만 할 것 같습니다.

  

아시아출판문화센터 옆 한옥 서호정사(西湖情舍)

 

 

우리는 배밭으로 내려와 출판단지 쪽 비포장도로로 내려왔습니다.

걷기 좋은 비포장도로인데다 출판단지와 한강이 바로 보여 제법 운치 있는 길입니다.

이쪽으로 내려오면 고양시 쪽 자유로에서 출판단지를 간다면 초입에 해당하는 곳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아시아출판문화센터 옆에 있는 한옥을 둘러보았습니다.

이 한옥은 정읍의 김동수씨 작은댁 사랑채를 열화당의 이기웅 사장이 옮겨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건축가들이 저마다 뽑내며 지은 현대건축물들 사이에 있는 한옥은

지금은 주인을 잃어 쓸쓸하지만, 그래도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부터 샛강을 따라 난 도로를 걸어서 출판도시를 가로질렀습니다.

 

 

출판도시를 가로지르는 샛강/ 갈대와 억새가 가득했고, 군데군데 이렇게 샛강을 볼 수 있는 다리가 있습니다.

 

이 샛강에는 원앙을 비롯한 많은 새들과 수서동물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샛강 옆으로는 넓은 초지가 있었습니다. 차량이 다니는 길을 그 만큼 샛강에서 밀어낸 것이죠.

저 녹슬은 듯한 다리를 건너면 이체4거리이고, 오른쪽은 헤르만하우스 입구입니다.

 

파주 출판단지는 샛강이 있는 습지를 메워 만든 곳입니다.

이곳은 바닷물이 올라오는 지역이고, 홍수가 나면 아마도 잠겼을 곳일 겁니다.

완전한 육지도, 그렇다도 완전한 하천도 아닌 습지대니 그 식생이 얼마나 풍요로웠을까요.

 

어쨌든 지금 남아 있는 습지라도 잘 보존했으면 좋겠습니다.

  

헤르만하우스/ 왼쪽은 우리 일행입니다. 왼쪽부터 채송화님, 기냥초이님, 이녀비님

/ 가로등도 특수철로 씌어 자연스럽게 꾸몄습니다.

  

헤르만하우스 끝 꽃단지 쪽 하천매립공사장/

자연하천을 그냥 냅두면 좋을 텐데, 토목귀신이 붙었는지 그게 안 되나보네요...

 

 

우리는 헤르만하우스에서 공사중인 곳을 거쳐 점심을 먹기 위해 서패리 콩당보리밥집으로 갔습니다.

공사장을 지나 돌곶이꽃축제를 하는 지역을 지나 마을을 지났습니다.

 

콩당보리밥집

 

 

콩당보리밥집에서 보리밥 2인분, 수제비 2인분과 막걸리 한 동이를 시켜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근처에서 200번 버스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답사는 저번에 구상한 길(http://cafe.daum.net/gyolle/G1kl/17)을 따라서 가봤습니다.

그래도 답사를 하고 나니 뭔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사전답사를 할 적마다 느끼는 건데, 한 번에 제대로 된 길을 개척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것 같습니다.

조만간 다시 한 번 답사를 가야할 것 같습니다.

 

다음 답사 구상은 따로 글을 적기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을 겨울코스로 잡았는데, 봄도, 가을도 나름대로 좋을 것 같습니다.

함께 해주신 채송화님, 이녀비님, 기냥초이님 고맙습니다. 

   

고양올레길 찾는 사람들

http://cafe.daum.net/gyo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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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1.

 

소비에트가 붕괴되고 나서도

혁명 기념일이 되면 비록 정부의 공식 기념행사는 아니어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는 훈장을 주렁주렁 단 노병들이 혁명을 기념하며 행진을 하였다.

 

작은 텔리비전에 비친 그네들은 그러나 늙고 추레했으며,

주렁주렁 매달린 훈장은 '자랑스러움' 보다는 '안스러움'의 표식처럼 보였다.

 

그들의 행진을 보면서

'언젠가 내가 저 행렬에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상상을 했었다.

더 이상 다가올 희망은 없고, 단지 기념할 추억만 있는 슬픈 노년을...

 

 

2.

 

노동자대회 전야제에 다녀왔다.

정확히 말한다면 전야제 장소에 있는 주점에 다녀왔다.

 

노조를 떠나고 나서 나는

집회에 참석할 '용기'도 '인내'도 함께 잃어버렸다.

그런 나는 될 수 있으면 집회에 참석하지 않는다.

다만 주변을 맴돌 뿐이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주변인으로 규정하고,

조그마한 움직임이 주는 작은 반향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전야제에 가서도 집회보다는 주점에서 옛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안부를 나누는 것으로 만족했다.

 

 

3.

 

될 수 있음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도 무슨 미련이 있었는지,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과 함께 잤다.

 

아침을 먹고, 일행들은 청계천 전태일열사 동상에 가 참배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일행 중 몇몇과 독립문에서 경교장을 거쳐 광화문, 청계광장을 지나 열사가 계신 곳으로 갔다.

 

청계천은 전날 온 비를 핑계로 굳게 길이 닫혀 있었다.

난 꼭 천변으로 걷고자 한 건 아니었다.

다만 지방에서 온 이들은 말은 안 해도 천변으로 걷고 싶지 않을까 해서 조금 안타까웠다.

 

뚝 윗길도 나름 괜찮았다.

비는 전날 밤처럼 심하지는 않아도 꾸준하게 내렸다.

작은 빗방울에 키작은 이팝나무 노랑 단풍이 하나 둘 떨어졌다.

바닥에는 물에 불어 빛나는 노랑 단풍잎이 참 예뻤다.

 

뚝 담장 위로는 여러 식물들 사이로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심어놓은 것이리라.

어쩌면 흔할 수 있고, 그만큼 심었다고 치켜줄 이 없으련만,

이곳에 이런 꽃들을 심은 이가 있다니, 그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태일열사 동상/ 그는 여전히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4.

 

전태일열사 동상에도 처음 갔다.

동상에는 일본 사람들이 와 있었다.

그들은 전진(前進)이라는 제호가 붙은 그들의 기관지를 우리 일행에게 주었다.

오랬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그곳에 머무르니 그래도 사람들이 쉬임없이 왔다.

동상 앞에서 묵념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지금 세상을 보면서 옛날 가두투쟁 할 때가 생각났다.

집회를 하다 전경들에게 밀리면 뒤돌아 보지 말고 뛰어야 했다.

설령 우리의 숫자가 많아도 모두가 함께 멈춰 서서 반격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으니,

나 혼자는 설 수 없었다.

그러니 다음 집결지까지 뛰어야 했다.

 

지금 우리들은 아파트니 교육이니 취업이니 등등으로 앞만 보고 뛰어야 한다.

혼자서 '아니오'라고 말했다간 혼자만 낙오될 것 같다.

비록 이런 삶에, 이런 사회에 회의를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집회에서는 다음 집결지가 있었지만,

지금 우리들에게는 다음 집결지가 어디인가??

 

...

 

 

5.

 

만주벌판을 넘어 시베리아를 달리던 원대한 꿈을 꾸던 마지막 세대였던 우리,

어쩜 우리는 꿈을 잃은 첫 세대가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볼품 없이 훝날리는 꿈들이 되었나...

그래도 언젠가 단단히 뭉쳐 굳건한 대지가 될 날이 있겠지...

 

...

 

나는 집회에 참석할 자신이 없어 노동자대회로 향하는 일행을 뒤로 하고 홀로 집으로 왔다.

 

여의도에 모였던 이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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