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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서오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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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12/15
    12월 13일 고양 올레걷기 후기(9)
    풀소리
  3. 2009/12/12
    여성민우회와 올레걷기
    풀소리

겨울 서오릉

그저께(12월 15일, 화) 생활권 주변에 가족들이 쉴 수 있는 숲길을 만들고 있는 덕양구 공무원들이랑 서오릉에 갔었습니다.

 

저는 서오릉을 참 좋아하는데, 이곳에 간 건 참 오랜만인 거 같습니다.

왕릉이라 잘 알려졌고,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자주 가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서오릉 안내도/ 노랑길로 창릉까지 가서 빨강길로 따라가다 파랑길 갈래길에서 익릉, 수경원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총 5km 정도 걸은 것 같습니다.

 

1) 경릉 - 덕종(추존)과 비 소혜왕후(추존) 한씨의 능이다. 덕종은 세조의 원자로 태어났으나 20세에 돌아가시고(1457) 뒤에 그의 아들 성종이 즉위 하면서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소혜왕후 한씨는 서원부원군 한확의 딸로서 월산대군과 성종형제를 두었으나 성종이 즉위한 뒤 왕비로 추존되면서 소혜왕후라 일컫게 되었다.

 

2) 익릉 - 숙종의 원비 인경황후 김씨(1661-1680)의 능이다. 인경왕후는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딸로서 현종 12년(1671)에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며 숙종 즉위와 함께 왕비로 책봉되었다. 숙종 6년(1680) 경희궁에서 20세에 승하하였다.

 

3) 창릉 - 예종과 그의 계비 안순왕후 한씨(?-1498)의 능이다. 예종은 세조의 둘째아들로 세조3년(1457)에 왕세자로 책봉되고 세조 14년(1468)에 즉위하였다. 안순왕후는 우의정 청주부원군 한백륜의 딸로서 예종 즉위년(1468)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4) 명릉 - 숙종(1674-1720)과 그의 계비 인현왕후 민씨 그리고 제 2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쌍분으로 되고 인원왕후의 능은 옆에 따로 있어 같은 언덕에 배치된 형식이다. 숙종은 현종의 아들로 태어나 현종8년(1677) 세자로 책봉되었고 예론이 한창 일어나 장희빈을 중심으로 한때 인현왕후 민씨를 몰아낸 사건을 겪었으나, 상평통보를 주조하고 백두산정계비를 세우는 등 업적을 남겼다. 인현왕후 민씨(1667-1701)는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딸로 태어나 숙종 7년에 숙종의 계비가 되었다. 숙종 15년 왕자 균(뒤의 경종) 책봉 문제에 장희빈의 무고로 폐위당하였으나, 후에 장희빈이 몰락하면서 복위된(1694)뒤 35세로 승하하였다.

 

5) 홍릉 - 영조(1724-1776)의 비 정성왕후 서씨 능이다. 정성왕후는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딸로서 경종 원년 (1721)에 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왕후는 소생이 없이 영조 33년에 경복궁에서 승하하였다.

 

6) 수경원 - 영조의 후궁인 영빈 이씨의 산소이다. 영빈 이씨는 영조 11년(1735)에 사도세자를 낳았으며 영조 40년 69세로 승하하였다.

 

7) 순창원 - 명종(1545-1567)의 원자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산소이다. 순회세자는 명종 12년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3세에 승하했고, 공회빈 윤씨는 윤옥의 딸로서 선조 25년 (1592년) 3월 3일 승하했다.

 

8) 대빈묘 -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1701)의 묘이다. 숙종은 궁녀 장소의에게서 숙종 14년에 왕자 균(경종)을 얻어 이듬해 균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장소희를 희빈으로 대하였다. 그후 왕비 인현왕후를 폐비하고 장희빈을 왕비로 책봉하였으나 이를 후회하고 숙종 27년 (1701)에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고 장희빈은 사사되었다. 원래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문형리에 있었는데 1969년 6월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기념비

 

 

서오릉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기념비가 나옵니다.

그러고 보니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고 처음으로 왕릉을 찾은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직까지 왕릉에 대하여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곳엔 당쟁과 환국, 왕비의 교체 등 긁직한 역사적 사건의 중심인물인 숙종과 그의 왕후들, 한때 왕후였던 장희빈의 무덤이 모두 모여 있어 상대적으로 조금 더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아울러 비운의 주인공 사도세자의 친어머니 영빈이씨의 수경원도 이곳에 있습니다.)

 

왕릉에 관심이 없더라도 이곳은 숲이 잘 보존되어 있고, 그 사이로 난 길들이 평탄하면서도 길어 참 걷기에도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서오릉 들머리

 

대빈묘/ 비운의 주인공 장희빈의 무덤입니다. 무덤 뒤의 소나무가 자란 바위가 유명해졌죠?

 

대빈묘에서 창릉 가는길

 

서오릉의 서쪽 끝 창릉/ 창릉 때문에 창릉동, 창릉천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합니다.

 

 

창릉을 끼고 외곽으로 산림보호길이 있습니다. 그곳은 가장 먼 길이지만 지금은 개방하지 않고 있습니다.

창릉 앞에서 우회전하면 위의 지도에 나타난 빨강색길입니다. 이 길에는 인공 구조물이 전혀 보이지 않고, 숲이 잘 가꾸어져 있는데다 길이 산의 경사를 따라 자연스럽게 나서 서오릉을 자주 찾는 이들이 참 좋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창릉 에서 시작되는 외곽 산책길

 

조금만 올라가면 이런 길이 나옵니다. 우리나라 산을 그대로 두면 서어나무가 숲의 주인이 될 거라고 합니다. 이곳은 서어나무가 절반쯤 점령했습니다.

 

산림순찰로와 마주치는 지점에 있는 안내판/ 이런 안내판이 군데군데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왕릉 중간에 있는 커다란 맷돌 흔적/ 왕릉에서 썼을까요? 아님 왕릉이 들어서기 전 민가에서 썼을까요? 

 

 

다른 왕릉도 마찬가지이지만 이곳도 소나무가 참 좋습니다.

저는 높이높이 솟은 소나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서오릉 소나무 

 

왕릉 곁으로 갈수록 키가 커지는 것 같습니다.

 

왕릉 옆 소나무숲

 

소나무에 둘러싸인  익릉 

 

 

눈 왔을 때 서오릉 번개 함 할까요?

 

눈덮힌 서오릉/ 문화재청 홈페이지

 

고양올레길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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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고양 올레걷기 후기

지난 12월 13일(일요일) 예정대로 올레걷기를 하였습니다.

오전 10시에 원당역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10시 20분 쯤 출발하였습니다.

 

일요일 올레걷기는 원당역에서 배다리술박물관 - 미소마을 까지는 3번 코스에 속하는 구간입니다.

이 구간도 길 자체가 참 예쁩니다.

 

원당역에서 처음 출발한 구간

 

 

들머리에 행주기씨 도선산(집안의 가장 중심이 되는 종산)이 있고,

이곳엔 기묘명현의 한 분인 기준 선생, 광해군 때 영의정을 지낸 기자헌의 아버지 기응세의 무덤 등이 있습니다.

특히 기응세의 무덤에는 당대의 명필인 한석봉과 중국의 명필인 주지번의 글씨로 쓰인 비석이 각각 있습니다.

비석도 볼거리지만, 무덤을 지나는 산길도 참 좋습니다.

그런데 갈 길이 머니 이곳은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미소마을에서 1번 코스로 가기 위해 밀양박씨 선영 뒷산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2차선 길을 건너야 합니다.

이 길은 건널목이 없어 약간 위험합니다.

 

밀양박씨 선영 뒷산부터는 또 다시 길은 걷기에 참 좋습니다.

 

밀양박씨 선영에서 순환고속도로 위로 난 구름다리를 건너 조금만 더 가면 군부대로 가는 군사도로가 나옵니다.

이도로는 2차선 포장도로지만 부대에서 길이 끊겼기 때문에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거의 전세내다시피해서 이 길을 걸었습니다.

 

군사도로길/ 이 부분은 사진이 없어서 예전 사진으로 대체하였습니다.

이 길에는 봄이면 벚꽃과 진달래가 많이 피고, 가을에는 산밤이 많이 열립니다.

 

 

군부대에서 우측으로 난 산길로 접어들면 효령대군 후손들의 무덤이 나옵니다.

이곳에 묻힌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명종 때 권신인 이량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사진은 우리 카페에 있는 글(http://cafe.daum.net/gyolle/G1kl/2)로 대체하겠습니다.

 

이량 무덤에서 공양왕릉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논둑길을 지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논에 흙을 잔뜩 덮어놓았더군요. 혹시 개발하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요??

 

공양왕릉에서

 

공양왕은 잘 아시다시피 고려의 마지막 왕입니다.

조선에서 이곳이 공양왕의 릉이라고 인정하고 제사를 지낸 것이  태종16년(1416)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조선 사대부들이 공양왕릉 위에다 마구 무덤을 마련했습니다.

마치 일제가 조선 궁전과 태실 등을 유린했듯이, 그리고 박정희 군사정부가 조선왕릉을 유린했듯이 말입니다.

 

(박정희 정부가 유린한 조선왕릉의 대표가 서삼릉입니다. 서삼릉은 원래 100평도 넘고,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었음에도 나무가 울창하게 잘 보존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정희 정부는 한쪽을 떼어서 한양골프장으로, 또 한쪽을 떼어서 뉴코리아골프장을, 농협에 떼어줘서 농협대를, YMCA연수원을, 그리고 종마장을 만들고 그리고 정권 실세에게 개인분양하는 등 떼어주어 이제는 7만여평만 남아 있습니다.)

 

공양왕릉 위 햇볕과 잔디가 가장 좋은정자양의 무덤에서  즐거운 간식을

 

 

이곳 무덤의 주인공들에 대해서도 이전에 올린 글(http://cafe.daum.net/gyolle/G1kl/2)로 대신하겠습니다.

 

내자시정(內資寺正) 신형(申泂)의 무덤 앞 비석을 보고 있습니다. 이분은 신숙주의 아들이며, 아래에 무덤이 있는 명종 때 좌찬성과 대제학을 지낸 신광한의 아버지입니다. 내자시는 지금으로 말하면 조달청에 해당하며, 내자시정은 그 관청의 수장입니다.

 

 

공양왕릉 뒤편 숲길 

 

공양왕릉에서 사리현동 마을로 내려오는 숲길/ 갈잎이 덮인 길은 융단이 깔린 것처럼 푹신푹신 했습니다.

 

 

견달산(현달산) 뒤편의 목장 앞 비포장길

 

올레걷기 코스 마지막에 있는 홍봉한의 묘/ 홍봉한은 정조의 외할아버지이고, 사도세자의 장인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있는 동안에 한강에서 뱃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비정한 게 정치라고 하지만 참 무섭습니다.

 

 

봉봉한의 묘에서 공식적인 걷기는 끝내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습니다.

이곳에 있는 '최고집 순두부'집은 제법 난 집입니다.

이곳에서 몇 번 점심을 먹었는데, 가격도 싸고 맛도 좋으며, 음식이 정갈하다는 평이었습니다.

 

최고집  순두부 : 031-976-6954(고봉동 동사무소 윗편)

 

최고집 순두부집

 

최고집 순두부에서 식사와 반주/ 3개월 만에 아들을 만나 함께 걸으신 뱅기님은 술을 잘 안하신다고 하셨는데, 이날은 참 맛있게 드셨습니다~ ㅎ

 

 

식사가 끝나고 은수기님을 비롯해 9분은 온 길을 거꾸로 걸어서 원당역까지 다시 걸어갔습니다.

우리가 걸은 구간이 약 11km 정도 되니 20km 이상을 걸은 셈입니다.

참 대단들 하시죠? ㅎ

이분들하고 이번 주 목욜 저녁에 걷기로 했는데 벌써부터 겁이 납니다~ ㅎㅎ

 

 

홍봉한의 무덤에서 설명하는 풀소리/ 이러면서 인생 후반기를 산다면 그것도 좋은 팔자겠지요? ㅎ

 

 

이번 올레걷기엔 총 21명이 참가하셨고, 뒤풀이에 20분이 오셨습니다.

모두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걸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참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주시고 보내주신 똘랑님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고양올레길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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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민우회와 올레걷기

어제(12월 8일) 민우회 올레팀과 함께 네 번째 길을 걸었습니다.

대화역에서 걸어서 심학산을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대화역에서 가좌마을 뒤 9707(선진운수) 종점까지 행선도

 

 

처음에는 여성민우회 회원들이 모두 여성이고, 12월이라 날씨도 쌀쌀하여 들판길을 생략하고

9707 종점에서 곧바로 산으로 오르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제 욕심은 대화역에서 출발해서도 심학산을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대화역 종합운동장 뒤편 들판은 고양시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진정한 들판이기도 하기 때문에이 들판길을 더 걷고 싶었습니다.

다른 곳은 들판이라도 하우스와 창고가 많아 들판이라는 느낌이 없는데, 이곳은 그런 구조물이 거의 없습니다.

 

 대화동 장월평 들판

 

 장월평 들판의 추수를 마친 텅빈 논/ 논에 내린 서리가 아직 안 녹았네요~

 

 장월평천 뚝방길/ 저 멀리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점으로 보입니다.

 

 

시야가 뻥 뚤린 장월평 들판과 뚝방길을 지나 가좌마을과 동문아파트가 가까이 보이는 장월평천 지천 뚝방길로 접어들면 이곳은 또 뚝방에 억새가 가득합니다.

지금은 억새가 하얀 홑씨들이 모두 날아가 쓸쓸해 보이지만, 그래도 나름 운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걸을 땐 하천엔 오리들이 가득했습니다.

 

장월평천 다리를 걸너는 올레꾼들

 

 뚝방길을 걷는 올레꾼들

 

하천 뚝에 가득 우거져 있는 억새군락

 

 

9707 종점에서 마을길을 지나 교하배수지 쪽으로 심학산을 올랐습니다.

마을길을 지날 즈음 눈이 한 송이 두 송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심학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눈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함박눈이 아니라 싸락눈에 가까웠는데, 싸락눈이 갈잎에 떨어지며 사각사각거리는 소리는 참 듣기 좋았습니다.

 

눈이 온다고 신나 했는데, 마냥 신나할 일만이 아니었습니다.

길이 미끄러워 등산화를 챙겨오지 못하신 분들은 꽤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눈 내린 심학산 둘레길

 

둘레길을 걷는 올레꾼들/ 미끄러워 지팡이도 만들고 있습니다.

 

 심학산 지도와 우리가 걸었던 길(연두색 선)

 

 

우리는 당초 둘레길을 좀 걷다가 산남리에서 올라오는 큰길을 따라 능선으로 해서

심학산 정상을 거쳐 수투바위쪽으로 내려오려고 계획했었습니다.

그러나 눈길이 미끄러워 계획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몇 분은 산남리에서 올라온 능선길에서 곧바로 하산하여 산마루 가든 쪽으로 내려왔고,

나머지 분들은 약천사 방향으로 내려왔습니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약천사는 심학산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라고 하기에 절구경 하는 것으로 조금 위안을 삼았습니다.

 

능선에서 조금 내려오면 약천사가 보입니다.

 

약천사는 제법 큰 규모인 거 같습니다.

 

약사여래부처님/ 크기가 너무 커서 오히려 눈에 거슬렸습니다. 아마도 나의 작은 스케일 때문이겠지만요... ㅎ

 

요사채인듯 한데 참 정갈한 모습이었습니다.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우리는 콩당보리밥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돌곶이 마을길을 지나 배밭 못 미쳐 출판도시로 가는 길을 지나 헤르만 하우스를 거쳐 이체4거리에서 200번을 타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올레길에는 저를 포함하여 모두 16분이 참가하였습니다.

대화역에서 9707 종점까지 들판길 걷기에 1시간,

9707종점부터 마을길을 지나 심학산을 둘러보고 콩당보리밥집까지 또 2시간 도합 약 3시간 걸었습니다.

밥 먹고 돌곶이마을길을 지나 출판도시 이체4거리까지는 약 15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눈길이라 조금은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또 색다르고 즐거운 올레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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