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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1/24
    경기도지부선거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고발한다. (중앙위원회 참가기를 대신하여)
    풀소리
  2. 2005/01/24
    광화문 연가
    풀소리
  3. 2005/01/22
    장기표씨와 함께 산행을 하다.
    풀소리

경기도지부선거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고발한다. (중앙위원회 참가기를 대신하여)

1.
일단 경기도지부장 선거부터 얘기하자.
투표율이 50% 넘었다.
자의에 의해 투표한 당원이 몇%냐는 중요하지 않는 듯하다.
어찌됐던 당원들은 투표를 했다. 그리고 50%를 넘겼다.
나는 이 의미를 인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사적 견해이지만...

그렇다고 신임 지도부에 축하를 보내고 싶지는 않다.
당의 축복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경기도지부 선거는 말많은 간척사업과 흡사하다.
서산 간척지를 막을 때 바다를 그대로 두면,
육지로 만드는 것 보다 생산성이 5배라는 보고가 생각난다.
그만큼은 아니라도 간척사업이 손해임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밀어붙이는 것은
여럿이 나누는 이익을 누군가 독점할 수 있고,
결국 이익의 합은 줄어들어도, 독점을 할 수 있는 자는
그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 도지부 선거는 정말 간척사업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선거가 끝났으니 말이지 나는 이번 경기도지부 선거에 매우 실망했다.
사실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 선거를 이렇게 치뤘다면,
그 지도부는, 선관위는 아마 제대로 행세하지 못했을 거다.

당은, 매우 의식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에서부터
괜히 좋아서 또는 기존 정치권이 싫어서 돈 월 1만원이라도 보태겠다는 사람까지
그 편차가 다양하다.

민주주의는 '다름'이 기탄 없이 표출되는 것이고,
'다름'이 하나로 되고, 또 다른 '다름'으로 변화 발전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논쟁들이 때로는 격렬해지기도 하고,
시끄러워지기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시끄러운 것을 죄악시한다.
이제 민주노동당에다 막 둥지를 튼 새내기 당원들이
그렇게 시끄러운 것에 익숙하지 않고,
기존 보수정당처럼 마치 정쟁을 하는 것으로 비쳐질까 두렵고...

사실은 이 사회 평균 이하의 논쟁수준과
온갖 흑색선전, 중상모략과 심지어 욕설까지 막무가내로 나서는데,
아무리 정당해도 진흙탕 싸움의 모습이 되고,
이런 모습을 새내기 당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논의와 논쟁이 사라진 자리에는
편가름만이 남고,
침묵만이 남는다.

2.
이번 경기도지부 지도부 선거는
사실 이렇게까지 파행으로 올 필요가 없었던 거였다.
입후보를 팩스로 접수하였고,
입후보 서류를 보내는 과정에서 제대로 되지 않아서
마감 시간이 넘어 송신이 되었더라도,
그 과정은 접수를 받는 측에서도 알았다면, 당연히 접수를 받아줘야 하는 게 맞는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늘 얘기하듯이 사람 중심으로 사고한다면,
당연히 사람이 기계(팩스)를 넘어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기계적 결함과 이를 사전에 대비하지 못한 부분은 묻어둔 채
시간이 초과한 것만을 따진다는 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물론 나는 혁신선본 사람이 아니다.
지금도 그들과 함께 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양측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나는 일단 혁신선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혁신선본에서는 중앙위 자료를 통해
법률 자문을 내놓았고, 자문은 선관위가 문제가 되는 것으로 나와있다.
물론 법률이 다는 아니다.
그리고 혁신선본에서도 법률로 해결하지는 않겠다고 한다.

3.
이제 나는
이번 경기도지도부선거를 파행으로 이끈
이른바 경기동부연합 세력의 이중성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를 파행으로 이끌면서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을 마치 죄가 되는 양 매도하고
논리적인 비판에 대하여도
말도 안 되는 글들로 온갖 악다구니를 해대면서
읽는 것만으로 짜증스럽고 혐오스럽게 하여
게시판이라는 최소한의 광장마저 폐쇄하려 하였다.

하루에도 3-4차례, 어떤 날은 5번까지
문자에 전화에 투표를 독려했던 그들이
중앙위원회에 보인 모습은 어떠했는가.

철저히 반민주적, 이중적 태도로 일관하지 않았는가.

이번 중앙위원회에는 총 20개 안건이 상정되었다.
(아래 정경화 부위원장이 정리해서 올린 대로)
그 중 경기도지부 선거 처리의 건은 16번 째였다.

1개 안건 처리에 1시간씩만 잡아도
15시간 후, 즉 새벽 5시 이후에나 논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투표종료가 오후 6시에 종료되므로
사안의 중대성과 시급성에 비추어
회순확정에서 많은 중앙위원들이 2번 안건으로 토의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때 이른바 경기동부연합이 들고일어났다.
안건을 삭제해달라는 것이 그 요지다.
신용욱 경기도지부선관위원장이 나와 장황하게 설명하다 제지를 받았고,
의사진행발언을 얻은 어떤 여성 중앙위원도 마찬가지로 장황하게
안건을 없애야 할 것임을 장황하게 주장하다,
제지를 받고도 계속 주장하였다.

김해경 대표의 사회가 서툴러서 제지하는 것이 늦어지자
중앙위원 한 동지가 당 회의규정을 설명했다.
의사진행발언(동의)은 '질의종결' '토론종결' '안건종료'를 요청하는 것만 가능하다.
동부연합의 주장은 의사진행발언이 아니다.
대표는 이 점을 유의해 사회를 봐달라 고 요청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 수원장안의 안동섭 위원장 등장.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한 그는
경기도지부 선거 처리의 건이 다뤄지면 안 된다는 점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중앙위원들이 중지요청을 하였고,
대표는 발언을 중지시켰다.
안동섭 위원장은 대표의 중지명령도 어긴 채 계속 발언하였다.
주변에서 고함을 쳐도 끄떡없었다.
중앙위원들이 마이크를 꺼 줄 것을 요구했고,
대표의 거듭된 경고에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원칙은 그렇게 깨지고 있었다.

회의규정대로라면
발의된 안건을 상정하기 전에 삭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회순확정 논의 종결을 요구할 수는 있어도,
회순확정 과정에서 의사진행발언 해 안건을 없앨 수는 없는 것임에도
회의규정을 들이대도, 대표가 거듭 제지해도
그들은 그렇게 그들만의 원칙(?)을 관철시키고 있었다.

결국 2번 째 안건으로 채택해달라는 요구는
불과 8명 과반 미달로 부결되었다.
경기도지부 선거 처리 건은 누가 봐도 시간이 많이 소모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동지들에게는 앞선 차례에서 다뤄지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거의 과반의 중앙위원들이 찬성한 점은 놀라운 것이었고,
당 발전을 위해 기꺼이 토론하겠다는 중앙위원, 특히 지방 중앙위원들을 보면서
당은 아직도 건강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4.
결국 경기도지부 선거 문제는 19번 째 안건으로 밀렸다.
18번째 안건이 처리할 때까지 참석인원 212명,
과반 201명을 겨우 11명 넘겼다.
드디어 19번 째, 경기도지부 선거 처리의 건, 시간은 새벽 2시 45분
갑자기 옆에 있던 동부연합 중앙위원들이 일어선다.
12명 중 9명이 자리를 떴다.
또 한 명이 뒤늦게 가방을 가지러 왔다.
뒤에 있던 동지 왈,
'여기 사람들 다 갔어요?'
'몰라요.'
'가는 거예요?'
대꾸없이 사람들의 집중된 시선을 뒤로한 채 그 동지는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
그들만의 원칙(?)은 그렇게 또 관철되고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해왔던대로라면, 성원을 무산시키기보단
일단 참여하여 반대표 던지면 될 터인데...

성원이 어려울 것 같다.
옆에 있던 10명이 한꺼번에 빠졌으니...
더욱이 우리는 앞부분에 있어 뒤에서 빠져나간 중앙위원에 대해 알 수도 없으니...
어찌됐든 느낌은 성원이 어려울 것 같다.

논의는 길어졌다.
결국 이덕우 신임 선관위원장의 탁월한 문제해결안 제시와
안건 발의자들의 안건 철회로 논의는 끝났다.
안건은 철회하되, 중앙선관위에 제소하고, 선관위에서는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으로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20번 째 안건처리는 성원미달로 다음 중앙위원회로 안건이 넘어갔다.
이때까지 남아 있던 중앙위원은 174명!
시간은 3시 59분!
이 시간까지 그래도 많은 중앙위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직도 민주노동당은 희망이 있다.

회의가 끝나고 내려오니
앞서 자리를 뜬 경기동부연합 중앙위원들이 밑에 있었다.
결국 집으로 가지도 않을 거면서
성원 미달을 위해 일찍 자리를 뜬 셈이다.
그들의 원칙이 무언지, 그들의 이중성이 어떤지를
이보다 잘 설명할 수 있으랴.

우리 '일산파(?)'는 자리가 없어 이근원 실장을 남겨둔 채
정경화 부위원장 차를 타고 돌아왔다.
차안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피곤한 속에서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했다.
비상식적으로, 막무가내로 나가는 이른바 경기동부연합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넘어서 당원들에게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이 문제라는 점에 공감하면서...
<2004.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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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가

광화문 연가

 

1.
광화문으로 가는 길은 팍팍하기만 했다.
해는 졌지만 한여름 열기는 여전히 남아있었고,
농성장으로 향하는 나는 내내
혼돈스런 상념과 씨름해야 했다.
당의 투쟁방침, 당의 모습, 농성장에 있는 대표, 등등...

 

그러나 상념과 씨름하는 나의 지력은
핏기 잃은, 서리맞은 풀잎처럼 힘이 없다.

 

도착하니 저녁 7:30
당 천막과 총연맹 천막을 들렀다.
단병호 위원장은 여전히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신다.
이수호 위원장은 지쳐 쓰러져있다.

 

저 멀리 부축을 받으며 다가오는 김해경 대표는
씩씩해보이려 웃으시지만, 내민 손엔 힘이 없다.

 

제법 많은 단위에서 천막을 쳤다.
격문이 붙고, 플랜카드가 붙고,

 

나는 빈 벤치를 찾아 조용히 앉아있었다.
방송 출연 덕(?)분에
예전에 한번 찾아갔던 참여연대 상근자도 날 알아보고 하지만...

 

2.
저녁 8시
하루를 정리하는 집회를 시작했다.
하루 단식에 참여했던 단위 책임자들이 나와서 연설을 하고,
후원회원인 사회진보연대 박화순 동지도 나와서 연설을 하고,
기독교 청년단체에서 나와 노래도 하고,
광운대 후배들이 나와 율동도 하고,
하루 단식에 참여한 단병호 위원장이 연설하고
촛불을 들고 함께 외치고 노래하고
약 70여명이 모여 오붓한 집회를 가졌다.

 

집회에서 나는
오랜만에 사람들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참으로 착하게, 참으로 순진하게 생긴 얼굴들이다.
그 얼굴 그대로 우리의 모습을
우리의 운동을, 우리의 당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3.
나는 집회를 하면서 문득
나는 지금 누구와 싸우고 있나 생각했다.

 

'대통령 님~~~ 뭐뭐 해주세요' 하던 사회자의 애원은
'노무현 규탄한다'로 바뀌었지만,
우리의 투쟁은, 우리의 요구는 시민과 사회가 아니라
여전히 청와대로만 향해 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주도했던 현대건설과 정주영이 생각났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공식적으로 77명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100이 넘었다고 한다.
충분한 공기 없이 밀어붙인 군사문화도 있었지만
안전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희생자는 그만큼 컸다고 한다.

 

안전장비를 갖추자는 의견은
사망 보상금과 장비비용 중 어느 것이 경제적이냐의 논리로 묻혔다고 한다.

 

그렇다.
자본가들은 우리의 목숨도 돈의 문제일 뿐이다.

 

이라크 파병이 미국 자본, 특히 군산복합체와 석유자본의 이해 문제라고 하는 것은 정설인 듯 하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국 자본이 미국 자본에 예속되어 있든지, 또는 독자성이 크든지
그들은 그들 고유의 이해와 요구가 있는 것이다.
국가와 민족은 입었다 벗었다 하는 허울일 뿐
그들은 전자계산기처럼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이해타산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얘기하는 국익논리가 대중적으로 먹힌다면
그들의 내공이 강하다는 것일 뿐이다.

 

한국이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이
미국의 총칼 때문인가, 자본가들의 이해 때문인가.
맞다. 자본의 문제이다.
세계적 강대국 영국 불레어가
부시의 푸들이 되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 이외에
자본의 이해 이외에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식민지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북한을 염두에 둔 사상적 배경을 하고 있겠지만,
필연코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게 될 것이고,
한국은 식민지로 고통을 받는다고
따라서 자본가들도 고통을 받는다고 할 것이고,
있지도 않은 민족자본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쓰고,
민족 문제 앞에 계급문제는 부속적 문제가 될 것이고...
80년대식 '식민지 조선' 얘기는
'노무현 반대'를 뺀 '미국 반대'로 부활한다.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 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오월의 향기를 가지고, 민중과 함께 하던 기억을 가지고
광화문에 다시 모였으면 좋겠다. 먼 훗날에도 광화문 연가를 부를 수 있도록...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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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씨와 함께 산행을 하다.

  1주일 내내 12시를 넘겨 집에 들어오다 보니 이제야 겨우 짬이 난다.

 

  지난 4월 마지막 일요일이었으니 벌써 1주일 전 일이다. 선배 한 분이 주도하는 산악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10시에 옛 구기파출소 앞으로 나갔다. 걱정 2/3, 기대 1/3의 마음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몇 일 전 그 선배로부터 이번 산행에는 사회당, 개혁국민당, 사회민주당 소속원이 모두 골고루 참여할 것이라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때때로 주변 사람들과 격한 충돌을 빚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소속 정당 등 드러난 정치적 표상 그대로 상대방을 평가하지도, 대우하지도 않는다. 우리 사회처럼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사회에서 정치적 견해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대방의 진의를 충실하게 이해하려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애정의 유무, 타인에 대한 배려가 그 본체인 예의 등을 더 따진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격한 충돌을 하는 경우 그 대상은 우파(?)보다는 나 스스로 그러하기를 바라는 사회주의자 또는 좌파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구기파출소 앞으로 다가갈수록, 사람들 얼굴이 또렸이 보일수록 걱정은 더 커져만 갔다. 30여명쯤 올 거라 들었는데 낯익은 얼굴은 불과 5-6명이었다. 옆에 일군의 사람들 틈에 앗, 또 한 사람의 낯익은 얼굴. 그 분은 바로 장기표씨였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말없이 악수를 하고 한 걸음 비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면서도 머리 속은 온통 어지럽기만 했다. 설마 장기표씨를 하는 맘도 있었지만 떼거지로 왔다면 오늘 산행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에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이때부터 시작한 두통은 뒤풀이 때 끝내 약을 먹고서야 진정되었다.)

  장기표씨가 주례 약속이 있다하여 서둘러 산행이 시작되었다. 화창한 날씨에 신록이 싱그럽고, 산벚의 흰 꽃잎들이 바람결에 흩날리는 4월 마지막 일요일, 사람들은 다른 때보다 곱절은 많아 보였다.

 

  나는 산을 잘 타는 편이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행의 맨 뒤에 섰다. 곰곰이 생각에 잠기느라 말없이 걸음을 옮겼고, 주변 사람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실없는 농담이나 주고받고 깊이 있는 얘기는 삼갔다. 산란한 내 마음과 달리 주변 풍경은 왜 그리도 아름다운지...... 바람에 흰 꽃잎을 뿌리는 산벚은 물론이요, 늦은 진달래, 한창 피어난 철쭉, 떠질 듯 붉은 자주빛으로 부픈 병꽃, 내 특히 좋아하는 흰 물앵두꽃, 온 산을 꽉 채운 투명한 새 이파리들...... 그중에서도 키작은 붓꽃이 제일 눈에 들어왔다.

 

  사실 나는 붓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장식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붓꽃이 매우 장식적으로 보여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눈길은 이 붓꽃에서 저 붓꽃으로 옮겨갔고, 생각은 옛 공자님부터 내 앞에 선 장기표씨까지 이 얼굴 저 얼굴로 옮겨갔다.

 

  옛날 공자님이 자신의 뜻을 현실정치 속에서 펴보시고자 수레를 타고 천하를 도는 그 유명한 주유천하를 하실 때 얘기다. 세상을 경륜할 풍부한 학식과 포부, 인재 집단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떤 제후도 공자님을 쓰려고 하지 않아 매우 실망한 공자님이 의기소침하였다. 그러던 어느 깊은 산길을 지나고 있을 때 맑은 향기가 나 따라가 보았더니 수풀 속에 난초 하나가 맑은 향기를 사방을 퍼트리며 단아하게 피어있었다고 한다.

 

  이 난초를 보시고 공자님은 주유천하를 끝내고 고국인 노나라로 수레머리를 돌렸다고 한다. 저렇게 향기롭고 아름다운 난초도 알아주는 이 없이 수풀 속에서 홀로 피었다 지기도 하고, 그 향기가 너무나 아름다우면 움직이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찾게 됨을 보면서 자신의 조급성을 깨달았고, 이 일은 공자님 일생의 일대 전환기 구실을 하였다고 한다.

 

  붓꽃은 난초는 아니다. 하지만 난이 살기엔 기후가 추운 서울에서는 그 중 난에 가장 가까워 보인다. 실제 화투패의 난초는 붓꽃이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얼마나 조급증을 가지고 있는가. 그러나 조급증을 뒤집어 보면 오히려 자신이 내세우는 이상과 배치되고, 인민에게 해악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욱이 권력집단의 조급증은 2000만 명에 달하는 스탈린의 대숙청/학살, 중국의 문화혁명,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서 보여지듯 인류의 대 재난이 되기도 하지 않았던가.

 

  산을 오르며 많은 사람들이 장기표씨를 알아보았고, 악수를 청했으며, 함께 온 아이들에게 이분이 장기표 선생님이셔 하고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저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청하고, 아이들에게 자랑스레 소개까지 시키는 마음은 어떤 것인가. 과연 저분은 그네들의 진정을 얼마나 담아내고 있는가. 무엇이 저분을 역사의 뒤켠으로 저물고 있는 한국노총의 정치조직의 수장으로 서게 하였는가. 함께 한 동지들에 대한 실망감 때문일까. 먼저 제도권에 자리잡은 후배들에 대한 부러움 때문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세상에 대한 무차별적인 분노 때문일까.

 

  그 어떤 이유도 나에겐 정당화 될 수 없는 이유로 보인다. 모든 것이 그저 조급증으로 보이고, 이면에는 개인적 출세의 욕심이 이상을 뚫어 넘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산행에서 먼저 반가이 인사를 건넨 사람들이 장기표씨가 사회민주당의 총재임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사회민주당이 어떤 당인지는 알고 있을까......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대로 가만히만 계시면 그 자체로 우리의 자랑이고, 많은 이의 등대가 될 터인데......

<2003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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