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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지친 이들이 쉬어갈만한 작은 얘기들입니다.

20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3/27
    오랜만에 모교에 들르다.
    풀소리
  2. 2005/03/25
    春來不似春 - 그래도 봄이다.
    풀소리
  3. 2005/03/23
    학교 운영위원이 되었다.(6)
    풀소리

오랜만에 모교에 들르다.

* 이 글은 옛날에 썼던 [다시 능내에 가다] 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기도 하다. 

추억은 시간이 지나면 비수가 되기도 한다. 추억이 있는 곳은 지금은 없는, 함께 있던 사람이 유령처럼 떠나지 않고 기억의 영상 속에 여전히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그곳은 아름답기보다는 가슴저림이 앞서는 곳이기 십상이고, 근처에 가기는커녕 생각조차 이어가기 힘들게 한다. 능내는 내게 그런 곳 중 하나였다. - 다시 능내에 가다 중 -

 

어제 외대에 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로질러 지나갔다.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가 경희대 크라운관에서 열렸다. 나는 회기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가는 코스를 택하는 대신 외대를 지나 행사장으로 가기로 했다.

 

외대는 나의 모교이기도 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렸다.

위의 인용 글처럼 외대는 나에게 좋든 좋지 않든 무수한 추억이 있는 곳이고, 추억이 많은 만큼 다가가기 힘든 곳이었다.

 

       까치집 : 운동장 옆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에는 까치집이 있다.

 

그래도 시간은 약인가 보다. 내 마음도 많이 바랬는지 외대앞역에서 교문까지 있는 온갖 술집과 까페들을 여유롭게 지날 수 있다.

 

교문을 들어서니 뭔가 낯설다. 초라한 시골학교 같던 캠퍼스는 많이 다듬어지고 세련되었지만 빌딩가를 연상시키듯 답답하다.

 

제일 먼저 눈에 분명이 들어오는 건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 있는 까치집이다.

내가 이곳에 다닐 때에는 분명 없던 모습이다. 캠퍼스는 늘 독한 취루가스가 뒤덮였었기에 한곳에 머물러 사는 까치가 살기 힘든 환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돌이켜 보면 그렇다고 꼭 장담할 수는 없다. 언제 나무 위를, 그곳에 혹시 까치가 살고 있었다고 해도 처다볼 여유가 있었을까?

 

어쨌든 내 기억으로는 까치는 없었다.

 

취루가스가 자취를 감추고, 여전히 삶은 고통스럽고 전망은 없지만 돌이켜 보면 까치가 저렇게 집을 짖고, 새끼를 낳고 또 짖고를 반복한 것처럼 세월은 흘렀고, 세상은 많이 변했다.

 

      대학 본관이 들어선 미네르바 동산 자리 : 미네르바 동산은 외대의 유일한 숲(?)이었다.

 

그래. 좋게 변한 건 사실이다. '난 사회주의자다'고 외친다고 잡아갈 놈 하나 없다. 느닷없는 불심건문, 늘 조심하던 미행은 없다. '직선제'는 당연한 것이 되었고, 안기부 놈들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전망'을 찾지 못하는 '현실'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좋았어' 하지만 사실 '그때'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었다. 그래도 '좋았다'라고 느끼는 건 그땐 '희망', '전망', '혁명' 같은 단어들이 낯설거나 우리 삶으로부터 멀지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담장을 허문 캠퍼스 : 담장을 허물고, 여기 저기 길을 내었다. 그 만큼 열린 공간, 열린 세상으로 바뀐 것 같지만, 여전히 닫혀져 있는 것 같은 건 나 뿐만의 느낌은 아니리라.

 

외대의 유일한 숲(? , 숲이라고 부르기에는 쑥쓰럽지만...)인 미네르바 동산은 이미 없어졌다. 그 자리에는 좁은 캠퍼스에 어울리지 않는 엄청나게 큰 대학본부 건물이 들어섰다.

 

'미네르바 동산'. 코딱지 만한 숲이지만 외대를 거쳐간 많은 사람들이 수없는 추억이 서린 곳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나래를 편다" 는 고색창연한 인용구는 초라한 캠퍼스의 우리들을 위로해주기에 충분한 것이기도 하였다.그런 동산이 없어졌다.

 

요즘 학교 다니는 후배들은 졸업하고 무엇으로 캠퍼스를 추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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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來不似春 - 그래도 봄이다.

4월이 가까와 오는데도 날은 차고 바람은 세다.

오늘 출근길에 보니 행주산성 옆 오염된 또랑에조차 살얼음이 잡혔다.

 

春來不似春

봄이 왔건만 봄같지 않아...


이천년 전에 나온 말이지만 오늘날 우리네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래도 자연은 무심하다. 태양 각도가 변하면서 사람들 가슴이 구멍이 뚫리든 말든 봄은 온다.

 


<생강나무 꽃> 김유정이 말한 동백꽃이다. 봄에 제일 먼저 피는 꽃 중의 하나다.

 

중마루 공원에는 봄이 왔다.

중마루 공원은 민주노총 뒤에 있는 조그마한 공원이다.

작지만 봄에는 꽃들이 만발하고, 특히 가을 단풍이 예뻐 계절이 오고감을 가까이서 느끼게 한다.

 

오늘 보니 생강나무 꽃이 피었다.

 

늘 카메라를 가지고 다녀도 중마루 공원에서는 사진찍기가 쉽지 않다.

중마루 공원에는 노숙자들의 쉼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술병을 기울이고, 더러 이미 취해 누워있기도 하다. 그들의 고단한 삶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건 정말 엄두나지 않는 일이다.

 

오늘은 갑자기 추워져서인지 노숙자가 아무도 없다.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해당화 열매> 지난 가을 철늦게 달린 열매는 여린 채 말라버려 빨강색이 아직도 남아있다.

 

봄이 왔지만 지난 계절의 잔재는 곳곳에 남아 있다. 누런 잔디, 잎새 없는 나목, 그리고 해당화 열매까지...

 

 <창포> 겨우내 꽁꽁 얼어 동네 아이들 놀이터였던 작은 연못에는 창포싹이 돋고 있다.

 

<냉이와 냉이꽃> 잎이 나는가 싶더니 이미 꽃을 피웠다.

 

얼음이 풀리는가 싶었는데 물가에는 벌써 창포싹이 돋고있다. 풀들이 나는가 싶더니 냉이는 이미 꽃을 피웠다.

 

자연의 엄정함을 내 굳이 배울필요는 없겠지만 때론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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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영위원이 되었다.

'남편 어디 다니세요?'
'요즘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민주노총 있죠~ 거기 다녀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물으면 아내는 그렇게 능청스럽게 대답한다고 한다.
웃음이 나왔지만 뒤끝이 씁쓰레 슬프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우리 사회가 이 정도로라도 균형을 잡아가는 데는 민주노총이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본다. 그런데, 그런 민주노총이 능청스런 대답으로 넘어가야 할 정도로 곤혹스런 처지에 있으니 말이다.

 

어제는 아이 학교 학부모운영위원 선출이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권하기도 해 출마했다.
출마원서를 작성하면서 뭐라 쓸까 고민했다. 특히 경력란에는 뭐라 쓸까?

 

나는 두 줄을 썼다.
'민주노총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 사무차장'
'대중교통공공성강화를위한연대회의 집행위원'

 

요즈음 분위기로는 표를 잃을만한 경력사항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썼다. 달리 쓸 경력도 없지만 말이다. 떨어지더라도 스스로 떳떳해지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경력을 쓰면 최소한 학교에서 아이에게 부당한 대우는 하지 않겠지 하는 이기심도 숨어있었다.

 

원서를 접수하러 갔을 때에는 마침 학교 앞에서 아이들 등교 도우미를 하는 '녹색어머니회' 회원 세분이 오셔서 네 장의 원서를 접수시켰다. 그리고 그분들은 내가 있는 것에 아랑곳 않고 교장, 교감 선생님들과 다정히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나오라고 해서 나왔는데, 이렇게 써내면 되죠?'
'예.'

 

이미 각본은 다 짜져 있는 것 같았다. 뭐 당연하겠지.

 

어제 학부모 총회가 있었고, 유세와 선거가 있었다. 유세를 하면서 나는 민주노총의 '오기'를 할 수 있는 한 가장 부드럽게 표현했다. 일종의 어르고 뺨치는 수법. 글쎄 효과가 있으려나.
교무실에서 유세를 하고, TV를 통해 아이들 반에 있는 부모님들이 보고 듣는 것이었는데, 카메라를 작동하는 아이가 서툴러서인지 중간에 화면이 나가기도 했다. 별게 다 눈에 들어온다. 어찌됐든 나는 하고자 했던 말을 90% 이상 했다.

 

그리고 투표. 학교에서는 학교가 지명(?)하지 않은 후보에게 커피 한잔 이외에 어떤 배려도 없었다. 선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언제 개표를 하는지. 당선자는 언제 발표하는지 도무지 안내가 없다.

 

나는 갈곳 없이 거리를 헤매는 초보실업자처럼 부자연스럽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교무실에 홀로 앉아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투표가 끝났다.
'지금 여기서 개표하나요?'
'예.'
'후보인데 여기 있어도 되나요?'
'아니요. 우리끼리 개표하고 당선통지는 나중에 해요.'

 

제길. 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 집에라도 가 쉬고 있었을 걸.
집에 와 함께 출마한 정경화 동지에게 문자를 보냈다.
'결과 나왔으면 전화 주세요.'

 

난 그때까지 당선자는 다시 학교로 가는 줄 알았다. 이 사람 저 사람 얘기가 엉켜 그런 판단을 했다. 그래서 노조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 와 기다렸다.

 

'선배님, 된 것 같아요. 전 확실히 됐고요, 선배님은 80%는 된 것 같아요.'
'축하해요.'
'선배님도 축하해요.'
'그러면 학교로 가야되요?'
'아니요. 나중에 오는 거래요.'

 

4시 20분이다. 제길. 출근하면 퇴근시간이다.
저녁에 정경화 동지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축하해요. 선배님도 됐고요, 3분 나오신 전교조 선생님도 모두 됐어요.'

 

다행이다. 그래도 눈으로 확인을 해보지 않았으니...
오늘 교육으로 늦게 퇴근해보니 아이는 컴퓨터와 씨름이다.
스스로 게임을 깔겠다고 해 해롭다는 것보다 기특하다는 생각이 앞서 '그래. 네 스스로 깔면 봐주지.' 하니 아이는 너무나 좋아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뭐 주던 것 없니?'
'응. 없어.'

 

이크 떨어졌나보다. 당선됐으면 당선 안내문을 보냈을 텐데.
그래도 하는 맘으로 아이 가방을 열어보니 당선 안내문이 보인다.

 

음~. 잘 해 봐야지. 남들이 다 민주노총인 거 알고 있으니 더 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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