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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18
    바시르와 왈츠를(2)
    풀소리
  2. 2008/12/04
    신영복의 「강의」를 읽고(4)
    풀소리
  3. 2008/11/10
    역사 속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
    풀소리

바시르와 왈츠를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Waltz with Bashir)

감독 : 아리 폴먼

 

 

1.

기억이란 우리에게 무엇일까?

현재의 나? 아님 과거의 나?

현재든, 과거든 기억이 '나'라면, 잊어진 기억은 또 무엇일까?

 

 

포스터

 

2.

영화감독 아리 폴먼에게

어느날 친구가 자기가 최근 갑자기 계속해 시달리고 있는 악몽에 대해 상담을 요청한다.

 

그 친구는 매일 밤 개 26마리에게 쫒기는 똑같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친구는 기억한다.

1982년 레바논을 침공했던 이스라엘군 일원이었던 자기 자신과

인가 쪽으로부터 그들을 향해 짖어대던 개때들...

 

 

친구의 악몽에 대해 듣고 있는 아리 폴먼(왼쪽)

 

상관은 사람에겐 총질을 못할 것 같은 그에게

개떼를 사살하라고 명령했고, 그는 26마리의 개들을 사살했다고 한다.

 

그는 죽어간 개 한 마리 한마리에 대해 모두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러나...

그 개들 이외에 생각이 나는 게 없다고 했다.

 

1982년.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서 아리 폴먼은 생각한다.

1982년. 그때 레바논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친구의 악몽 속에 나타나는 개떼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히 레바논에 있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레바논 침공 기간에 휴가를 나왔던 기억과 휴가나와 있었던 일은 모두 또렸이 기억이 나는데 말이다.

 

 

3.

아리 폴먼은 당황한다.

왜 기억이 나지 않는 거지?

 

1982년 이스라엘은 끊질기게 레바논을 침공했다.

레바논엔 당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임시정부가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쫒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난민촌도 있었다.

 

이스라엘은 PLO를 쫒아내고, 꼭두각시 정권을 세워 시리아의 입김을 제거하려 했다.

앞도적인 군사력으로 무자비하게 침공한 이스라엘.

그들은 계획대로 기독교 팔랑헤당 당수 바시르 제마엘을 대통령으로 세웠다.

그러나 바시르는 임기 시작 하루 전날 암살당한다.

 

 

팔랑헤 민병대에 겁에 질린 채 끌려나오는 팔레스타인 부녀자와 어린 아이

 

분노한 팔랑헤당 민병대는

이스라엘 점령지역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으로 무장을 하고 들어가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노인, 부녀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잔인하게 학살을 자행한다.

역사는 최소 800명, 최대 3,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학살되었다고 기록한다.

 

나도 기억한다. 1982년 레바논을.

보도통제 속의 TV 화면은

하늘을 향해 한없이 소총 쏘아대던 PLO 대원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레바논 베이르트를 떠났다.

눈물도, 소리도 없이 울부짖으며...

 

 

4.

아리 폴먼은 도대체 1982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자 한다.

함께 군 생활을 했던 친구들을 하나씩 하나씩 만난다.

대부분의 친구들도 기억은 온전치 않다.

집단 기억 마비다.

그들은 일종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함께 겪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친구들을 만나면서

기억은 깨진 퍼즐처럼 조금씩 조금씩 실체를 들어낸다.

 

벌집이 되어버린 벤츠/ 평범한 일가족은 영문도 모른 채 차량처럼 벌집이 되었다.

 

 

명령에 따른 것이지만 비무장 민간 차량에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그 차량에는 평범한 일가족이 타고 있다가 영문도 모르고 죽어가고...

 

팔랑헤 민병대가 난민촌에서 학살을 자행하고 있을 때

외곽을 봉쇄하고 조명탄을 쏘아올리며 학살을 도왔던 어린 병사 아리 폴먼이

거기에 있었다...

 

누가 바시르와 왈츠를 추었나?

누가 바시르에게 왈츠를 추게했나?

 

스스로가 나찌가 되어버린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

국가의 명령이라는 이유로 무감각하게 나찌와 같은 만행에 동참했던 어린 병사들...

 

 

기억이 변형되었어도

 

 

기억이 없어졌어도 비극은 사라지지 않는다.

 

 

5.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다.

영화 속 주인공이기도 한 아리 폴먼은 이 영화의 감독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자신의 실제 경험을 영화화 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실제 영상으로 처리했다.

그 부분부턴 말하자면 애니메이션이 사라져버린 말 그대로 다큐멘터리다.

되살아난 기억처럼 말이다.

 

잊지말아야 할 기억이 날 것으로 강렬하게 밀려온다.

마지막 영상은 바로 그날 레바논 난민촌 학살의 현장에 대한 기록이다.

여인의, 아이의 참혹한 주검이 켜켜히 쌓여있다...

 

 

오직 평화가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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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의 「강의」를 읽고

신영복 선생이 펴낸 “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강의」를 읽었다. 나는 ‘내가 어떤 점에 유념하여 동양고전을 읽을까’를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고, 독후감 역시 그런 생각에 맞춰서 썼다.

 

책을 사놓은 지 오래되었는데, 왼 일인지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 그동안 방치해두었었다. 연수원 과제물로 독후감을 쓸 겸 다시 꺼내 읽으면서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동양 고전에 대해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하여 신영복 선생이 강의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사실 그동안 나는 동양 고전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신영복 선생의 깊은 사색이 묻어나는 책들을 좋아하면서도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은 것 같다.

 

한문공부를 하지 않겠다던 나의 옛 결심과 달리 한문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금에 와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의외로 슬슬 읽힌다. 신영복 선생 지적대로 ‘처지’에 따라 ‘보는 것’도 다른가 보다.

 

나는 한문공부를 하면서 동양의 고전을 공부하고 있지만, 내가 고전 속에서 뭔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나는 고전을 단지 한문을 익히는 수단으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왕 고전을 읽는 김에 거기에 묻어 있는 옛 사람들의 고뇌를 함께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영복 선생이 지적한대로 고전은 길게는 ‘5천년 동안 쌓여온 태산준령’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신영복 선생은 “서양의 사회 구성 원리가 ‘존재론(存在論)’임에 비하여 동양의 그것은 ‘관계론(關係論)’이다.” 라는 관점 동양 고전을 볼 것을 권하고 있다. 선생은 ‘인간’이란 개별체가 아니라 ‘인간관계’라고 말하고 있다.

 

먼저 詩經, 書經, 楚辭를 소개한다. 시경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의 사실성에 있다고 한다. CF와 같은 상품미학이 진실이 아니고, 사이버세계는 허상이다. CF나 상품미학이나, 사이버세계는 요즘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문화이기도 하다. 본질적으로 허구의 세계에서 사실성과 진정성을 담은 시경의 시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선생은 시경 독법을 ‘우리들의 문화적 감성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일에서 시작할 것’을 권한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하기 보단 정서적 차원에서 접근’할 것을 아울러 권한다. 시경의 시에 응축되어 있는 당시인들의 아픔과 기쁨을 보아야 할 것 같다.

 

서경(書經)은 요임금, 순임금, 우왕, 탕왕, 문왕(또는 무왕)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중국에는 고대부터 역사를 기록하는 史官이 있었는데, 사관은 왕의 言行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왕의 언행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은 종교의 ‘지옥’ 설정보다 더 강력한 규제 장치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역사를 기록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은 「무일(無逸)」편을 소개하면서 서경을 소개한다. 무일편은 ‘군자는 무일(편안하지 않음)에 처해야 한다. 먼저 노동의 어려움을 알고 그 다음에 편안함을 취해야 비로소 백성들이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가는가를 알게 된다.’로 시작된다. 이 글은 주공이 조카 성왕(成王)을 경계하여 한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일사상(無逸思想)은 주나라 역사 경험의 총괄이라고 한다.

 

초사(楚辭)는 초나라의 시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굴원(屈原)과 그의 제자 송옥(宋玉)의 작품을 모아놓은 책이다.

 

초나라는 아시다시피 양자강 유역에 자리 잡은 나라이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중국(中國)이라는 말은 황하유역만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 초나라는 나라가 아무리 부강하였어도 변방임에 틀림없다.

 

황하유역이 강건한 남성성이 특징이라면 양자강 유역은 낭만적 여성성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선생은 낭만주의가 개인주의적이고, 도피 또는 복고적이라는 실천의 허약함 때문에 긍정성이 훼손되어왔지만, 오늘날과 같은 강고한 억압 구조 속에 숨겨진 물리적 구조를 드러내기 위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중국 현대역사를 바꾼 대장정(大長征)이 낭만주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 대통령 닉슨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마오쩌뚱이 건넨 선물이 바로 이 「초사」라고 한다.

 

다음으로 소개하는 고전이 주역(周易)이다. 우리가 연수원에서 배울 필수과목 중의 하나다.

 

대게 주역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점(占)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점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으니 주역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던 것도 어쩜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선생은 주역을 관계론의 관점에서 볼 것을 권한다. 그러면서 주역에 담겨 있는 판단형식 또는 사고의 기본 틀을 중심으로 강의를 한다.

 

주역은 물론 점에 관한 책이다. 점에는 크게 상(相), 명(命), 점(占)으로 나누는데, 상과 명이 관상이나 사주팔자처럼 이미 결정된 운명을 엿보는 것에 비해 점은 ‘선택’과 ‘판단’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주역은 오랫동안 쳐온 점을 모아놓은 것에 공자학파가 해설을 달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해설이 철학적 해석이기 때문에 의미가 대단히 크다고 한다. 주역에는 자리(위, 位)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계(응, 應)라고 한다. 앞으로 주역을 공부할 때는 주역이 그 관계를 어떻게 철학적으로 해석했는지 살펴볼 것이다.

 

다음으로는 논어(論語)다.

논어는 다 알다시피 공자 또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말과 문답을 모아놓은 책이다. 주로 문답이 많으니 구성 자체가 인간관계이기도 하다.

 

신영복 선생은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연구물이 많이 나오는 등 논어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논의를 의식해서 ‘시제(時制)’에 유념하여 논어를 읽을 것을 권한다.

 

논어는 「학이(學而)」편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편은 첫 구절이 그 유명한 學而時習之不易悅乎로 시작된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로 일반적으로 해석한다. 선생은 여기서 습(習)을 ‘복습’이 아닌 ‘실천’으로, 시(時)를 ‘때때로’가 아닌 ‘적절한 시기’로 해석한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적절한 시기에 실천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느 정도 공부가 됐을 때 선생 강의를 한번 듣고 싶다. 선생이 소개한 부분 중 새삼 새롭게 이해된 부분을 인용하고자 한다. ‘영무자는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지혜로웠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었다. 그 지혜로움은 따를 수 있지만 그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다.’

 

도가 있느냐 없느냐는 어려운 개념일 수도 있겠지만, 단순하게 말하면 잘 다스려지느냐 아니냐로 나눌 수 있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사람들의 지혜가 빛나지만, 나라가 망한다든지 했을 때는 우직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바보로 여겨지기도 한다. 비유하자면 독립이 영원히 되지 않을 것 같은 식민지 조선에서도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이 그렇게 여겨졌을 것이다. 영무자가 그러했듯이 이런 우직한 이들은 따라 하기 힘든 것이고, 그것을 알아준 공자와 그 문인들 역시 대단한 사람인 듯하다.

 

다음은 맹자(孟子)이다.

 

맹자는 공자가 돌아가시고 약 100년 뒤에 태어났다고 한다. 시대는 춘추시대가 끝나고 국가 간 경쟁과 전쟁이 더 치열해진 전국시대로 변해있었다. 맹자는 이러한 험한 시대에 인(仁)과 의(義)를 사회 구성 원리로 설파하였다고 한다.

 

맹자의 글은 매우 논리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서당에서 맹자로 문리(文理, 독해력)를 틔운다고 하니 열심히 공부해볼 일이다.

 

다음은 노자(老子)이다.

 

노자는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근본은 자연(自然)이다. 노자가 말하는 자연은 산천과 같은 자연이 아니라 천지인(天地人)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한다고 한다. 노자의 이러한 성격은 다른 제자백가의 사상이 인간 이성에 의한 세상에 대한 개입을 근거로 하는 것과 명백히 대비된다고 한다. 그러나 유가들도 수없는 해설서를 썼듯이 장자와 함께 중국 사상사에 엄청나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도(道)는 상당히 철학적인 개념으로 어렵기도 하다. 노자는 도(道)를 설명하면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하였다. 보이는 것 중에 도에 가장 가까운 것이 물이라는 것이다.

 

장자(莊子)는 6만 5천자나 되는 방대한 책이라고 한다. 노자와 마찬가지로 장자도 제도 개혁만으로 사회적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을 바탕에 삼고 있다고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와 해방에 있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이라고 한다.

 

묵자(墨子)는 뒤에 소개되는 순자, 한비자와 더불어 비주류사상이라고 한다. 반전, 평화, 평등사상을 주장하고 실천하였던 묵가(墨家)는 한때 유학과 마찬가지로 번성하였지만, 한(漢)나라가 유학을 국학으로 채택되면서 탄압받아 소멸하여 18세기 말에야 묵자주가 나오고,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와서야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묵자는 겸애(兼愛)라는 보편적 박애주의와 교리(交利)라는 상생 이론을 선언하였고, 이러한 이론을 지침으로 하여 연대라는 실천적 방식을 통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끝으로 성악설로 알려진 순자(荀子)와 법가의 시조 한비자(韓非子)를 소개하고 있다.

 

비주류 사상이지만 진(秦)나라에 의한 중국통일을 이룬 법가의 모체가 된 사상이라는 점에서 시대적 고민과 함께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물론 신영복 선생 특유의 깊은 사색을 함께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해보자. 우크라이나 키에프에서 2차 대전 전승 기념탑에 관한 얘기다. 신영복 선생은 이 탑을 보고 전승탑인지 몰랐다고 한다. 그 탑은 언덕 위에서 팔 벌리고 서 있는 어머니상이었다고 한다. 전승 기념탑 하면 해병대 병사들이 고지에 깃발을 꼽는 이미지가 각인 된 선생에게는 너무나도 낮선 것이었다고 한다. 안내자에게 탑에 대하여 묻자 안내자는 설명하였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아들이 죽지 않고 돌아온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돌아오는 아들을 맞으러 언덕에 서 있는 어머니의 상이야말로 그 어떠한 것보다 전승의 의미를 절절하게 보여주는 것 아니겠냐’고 말이다. 이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선생은 많이 부끄러웠다고 한다. 전쟁과 승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천박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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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

 

1.

 

어떤 재수없기까지 한 시인은 얘기했지 자신을 키워온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고...

나를 키워온 것은?

적어도 8할은 '자존심'이었던 것 같다.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고 자존심을 지키고자 애써왔다.

그래서 지킨 자존심이 뭐요? 하고 묻는다면 별로 답해줄 말이 없다.

 

일반적으로 자존심이 센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기 앞가림을 재수없을 정도로 잘 하니 그런 사람들에게 나를 견준다면 아마도 '웃긴 X이네' 하는 이들도 있을 거나.

암튼 이거나 저거나 나도 재수없긴 하다.

더욱이 자기애로 뭉쳐졌으니 얼마나 재수없을까...

 

근데 말이야.

나는 나를 사랑하는 거 만큼 남들도 사랑하고 싶어.

근데 받는 쪽에선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나봐...

어차피 받는 쪽의 느낌이 중요하다면 욕먹어도 싸지...

 

 

2.

 

자존심을 형편없이 잃는 일이 계속 겹쳤다.

물론 그래도 다 잃을려면 아직도 멀었겠지만, 중심추를 잃은 오뚜기처럼 중심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 상실의 속도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3.

 

매월 제출하는 과제인 독후감을 썼다.

너무 시간이 없어 매우 성의없이 쓰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기에 남들에게 보이기도 부끄럽지만, 책은 오랫만에 만나는 아주 이질적인 것이어서 받아서 읽는 내내 즐거웠기에 그냥 올린다.

 

이 책은 일본의 작가 나카지마 아츠시의 짧은 단편 2편과 중편 2편을 묶은 것으로, 말하자면 소설집이다. 명진숙이 옮겼고, 이철수가 그림을, 신영복이 추천 및 감역을 했다. 다섯수레에서 출판했다. '

 

겁 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이라는 매우 어울리지 않는 감정의 조합을 간직한 한 사내의 얘기로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집은 소재부터 매우 색다르다.

야만적인 파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던 제국주의 전쟁통에 그 전쟁의 중심축 중 하나인 일본에서 살았던 한 양심의 외로움이 오롯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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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일본의 작가 나카지마 아츠시의 짧은 단편 2편과 중편 2편을 묶은 것으로, 말하자면 소설집이다

 

명진숙이 옮겼고, 이철수가 그림을, 신영복이 추천 및 감역을 했다. 다섯수레에서 출판했다.

1. 

 
.
 
 
여러 편이 묶였지만, ‘사람들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끝없이 묻는 것 같은 느낌이 일관한다는 측면에서는 한권이라고 얘기해도 무방할 정도다.
 
같은 느낌이 일관되게 묻어나는 것은 작가가 살았던 시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카지마 아츠시는 1909년에 태어나 1942년에 죽었다.
 
제국주의 전쟁이 전세계를 휩쓸던 시대를 살았던 작가다. 양심이 실종된 야만의 시대에, 더욱이 지식인들마저 대부분 야만에 동조하는 시대에 살아야만 했을 이 양심적인 작가는 주로 중국 역사상 인물을 끌어들여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세상에 내놓는다.
 
「산월기」에서는 지극히 사적이고 내면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이능(李陵)」에서는 국가권력에 휘둘리면서 겪는 고뇌를 담고 있다.
「명인전」에서는 하나의 기예(技藝)에서 궁극(窮極)을 추구하고, 「제자(弟子)」에서는 우직한 신의(信義)의 궁극을 보여주고 있다.
 
 
2.
 
「산월기(山月記)」는 나중에 호랑이로 변한, 젊어서 과거에 급제한 수재 이징(李徵)의 이야기다.
 
때는 양귀비로 유명한 당나라 현종(玄宗) 시절 학식이 많고 재능이 뛰어난 이징은 남과 쉽게 타협하지 못하는 성격인데다 자신의 실력에 비해 너무 낮은 관직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 당장 갈 곳도 없으면서 관직을 박차고 물러나 버린다.
하급관리로 남아 속물스런 윗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지내기보다는 시인이 되어 후세에 이름을 날리고자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명(文名)은 생각처럼 쉽게 얻어지지 않았고 생활도 날로 궁핍해졌다.
몇 년 후 이징은 가난을 못 이긴 나머지 처자의 의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절개를 꺾고 지방 하급관리로 봉직하게 된다.
자신의 시작(詩作) 생활도 절망했고, 자신의 동년배는 이미 높은 자리에 있고, 예전에 우습게 여겨 상대도 않던 자들은 위에서 명령을 내리니, 왕년의 수재로 이름을 날리던 이징은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는 모든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남을 거스르기만 하다가 급기야 더 이상 자신을 다스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1년 후 공적인 일로 여행을 떠났다 여수 강가에서 결국 발광을 하였다.
어느 날 한밤중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면서 그 길로 어둠 속으로 뛰쳐나갔다.
그러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주변을 모두 수색해 봐도 이징은 보이지 않았다.
 
이듬해 이징의 친구였던 원참이 감찰어사(監察御使)의 칙명을 받고 영남지방으로 가는 길에 상어(지명) 땅에서 묶게 되었다.
이튿날 날도 새지 않은 이른 새벽에 출발했다.
새벽 달빛에 의지해 숲 속 길을 지나는데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풀숲에서 뛰쳐나와 원참에게 달려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몸을 획 돌려 풀숲으로 되돌아갔다.
그러고는 인간의 목소리로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구나’ 하고 되풀이하여 중얼거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이징이었다. 이때부터 이징은 자신의 사연을 친구 원참에게 들려주었다.
 
여수 강가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따라 한없이 달리다보니 자신이 호랑이가 되어 있었고, 때로는 사람처럼 사고할 수도 말할 수도 있다가 때로는 호랑이로 돌아가는데, 사람처럼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징은 자신의 시(詩) 중에 외우고 있는 30여 편을 친구에게 구술해줬다.
호랑이라는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시집이 장안 풍류인들 책상 위에 놓인 모습을 꿈꾸고 있다고도 했다.
 
원참이 보기에는 이징의 시는 매우 비범했기에 소질에서는 일류임이 틀림없지만 일류작품이 되기에는 뭔가 미묘한 모자라는 데가 있음을 발견한다.
이징은 말한다.
자신이 시로 명성을 얻으려 하면서도 스승을 찾아가려고도, 친구들과 어울려 철차탁마(切磋琢磨)에 힘을 쓰지도 않고, 속인들과 어울려 잘 지내지도 않았음을...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겁 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 존대한 : 학식, 인격 따위가 크고 높음)
 
세상과 사람들에게 차례로 등을 돌려서 수치와 분노로 점점 자신 안의 ‘겁 많은 자존심’을 먹고 자신 안의 맹수를 살찌우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고 이징은 말한다.
그 맹수가 바로 ‘존대한 수치심’이었다고...
 
겁 많은 자존심, 존대한 수치심은 무엇을 이루기엔 짧기만 한 인생을 재능을 허비하게 만드는 우리 마음속의 맹수이고, 자양분이겠지...
 
이징의 얘기는 어쩌면 제국주의 전쟁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드러내고파 갈등하는 나카지마 자신의 고뇌이기도 하고, 강력한 자기억제이기도 했을 것이다.
현 시기는 인간을 노골적으로 수단화한다는 측면에서 제국주의전쟁과 다름없는 야만의 세계로 점점 빠져 들어가고 있다. 이징의 얘기는 또한 현 시기를 사는 또 많은 사람들의 고뇌이기도 하고, 억제해야할 거울이기도 할 것이다.
 
 
3.
 
「이능(李陵)」 한(漢)나라의 강력한 황제 무제(武帝) 시대를 이야기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나라 전설적인 장군 이광(李廣)의 손자이면서 유능한 장군인 이능, 패전하여 포로가 된 이능을 변호하다 궁형(생식기가 잘리는 형벌)을 받은, 전설적인 역사서인 사기(史記)를 저술한 사마천(司馬遷), 흉노에 인질로 잡혔다가 19년 만에 극적으로 귀환하는 소무(蘇武)라는 3명의 이야기다.
 
세상을 살다보면 봄날처럼 온화한 볕이 드는 날이 있는가 하면, 비바람 거센 폭풍우나 눈보라 몰아치는 견디기 힘든 혹한을 맞을 수도 있다.
단지 날씨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상황, 개인의 조건 등도 날씨처럼 때로 온화하기도 하고, 혹독하기도 하다.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공평한 듯하지만, 그 직접적인 혜택과 피해가 누구에게 집중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리기도 한다.
이 세 사람에게 직접적 가해자이기도 한 강력한 황제 한무제(武帝)도 흉노의 선우도 어쩌면 단지 삶에서 만나는 혹독한 날씨와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아무리 혹독했어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측면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한나라 장군 이능은 단 5천의 보병을 이끌고 강력한 흉노를 치러 원정길을 나선다. 원정길에서 흉노 선우(흉노 황제)가 거느리는 10만에 가까운 강력한 기병대와 맞서 선전을 하지만, 무기가 모두 떨어져 전멸하여 겨우 400여명만이 귀환하고, 이능은 포로가 된다. 포로가 된 이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한나라 궁정은 대책회의를 하고, 유일하게 사마천만이 이능을 변호한다. 사실 10만에 가까운 흉노의 강력한 대부대에 맞서 5천의 보병이 싸운다는 것은 이미 승산이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더욱이 고립무원의 적진 깊숙이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럼에도 이능은 비록 포로가 되었지만, 빛나는 전투를 했다. 그런 그를 당연히 변호해야 함에도 일신의 안전과 처자만을 생각하는 대다수 신하들은 황제에게 아첨하여 이능을 벌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그들에게는 포로가 되어 멀리 있는 이능보다 자신들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마천이 더 문제였다. 사마천에 대한 형벌은 매우 신속하게 결정되었고, 시행되었다. 결과는 궁형(宮刑)이었다. 당시 사대부들에게는 죽음보다 더욱 비참한 형벌이었다. 결국 한나라는 이능의 가족을 늙은 어머니로부터 어린 자식들까지 모두 죽이는 보복을 한다. 이에 이능은 한나라로 향한 충성을 접고 흉노의 왕이 되어 선우의 딸과 결혼한다. 사마천은 궁형을 당한 뒤에도 묵묵하게 사기(史記)집필에 몰두한다. 마치 역사서를 편찬하는 것이 유일한 삶의 이유인양 말이다. 또 한사람의 주인공이 있다. 한나라의 화친 사절로 흉노에 갔다가 부사(副使)가 흉노 내분에 관계했기 때문에 억류되었던 소무(蘇武)이다. 소무는 끝내 흉노의 항복요구를 거절했고, 자결을 하고자 시도하였다. 일체의 항복 권유를 거부한 소무는 먹 북방 바이칼 호수 주변에 버려진다. 이능은 소무와 친구사이이기도 하다. 흉노 선우는 이능에게 소무를 한 번 더 설득해볼 것을 권한다. 이렇게 해서 이능은 소무를 만난다. 그러나 이능은 소무에게 항복을 권유하지 않는다. 소무는 먼 북방에서 자신의 존재를 누구하나 아는 이 없이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소무를 보면서 이능은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흉노의 계속 남은 이능과 19년 만에 귀환하여 한나라의 전설적인 영웅이 되는 소무,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 된 사기(史記)를 저술하였지만, 당대엔 존재감도 없었고, 사기를 쓰고 나서 다 타고 난 촛불처럼 스러져간 사마천, 결국 세 사람의 운명은 이렇게 끝이 난다. 한 인간으로써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맞이했던 세 사람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에 의미를 두고 그런 시련을 이겨나가야 할까. 특히 이능의 삶은 더욱 애처롭다. 변방의 향기 나는 풀꽃으로 묵묵히 시들어가는 소무에게 열등감을 느끼지만, 이능 또한 노모로부터 어린 자식까지 죽인 조국이지만, 끝내 마음속에서 한나라를 떠나지 못했다. 아침부터 황혼이 질 때까지 초원을 달리고 또 달리며 가슴속 뜨거운 분노와 갈등을 식혀야만 했던 그다. 피로만이 유일한 위안이 된 그의 삶은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일본의 작가 나카지마 아츠시의 짧은 단편 2편과 중편 2편을 묶은 것으로, 말하자면 소설집이다. 명진숙이 옮겼고, 이철수가 그림을, 신영복이 추천 및 감역을 했다. 다섯수레에서 출판했다. 여러 편이 묶였지만, ‘사람들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끝없이 묻는 것 같은 느낌이 일관한다는 측면에서는 한권이라고 얘기해도 무방할 정도다. 같은 느낌이 일관되게 묻어나는 것은 작가가 살았던 시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카지마 아츠시는 1909년에 태어나 1942년에 죽었다. 제국주의 전쟁이 전세계를 휩쓸던 시대를 살았던 작가다. 양심이 실종된 야만의 시대에, 더욱이 지식인들마저 대부분 야만에 동조하는 시대에 살아야만 했을 이 양심적인 작가는 주로 중국 역사상 인물을 끌어들여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세상에 내놓는다. 「산월기」에서는 지극히 사적이고 내면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이능(李陵)」에서는 국가권력에 휘둘리면서 겪는 고뇌를 담고 있다. 명인전」에서는 하나의 기예(技藝)에서 궁극(窮極)을 추구하고, 「제자(弟子)」에서는 우직한 신의(信義)의 궁극을 보여주고 있다. 2. 「산월기(山月記)」는 나중에 호랑이로 변한, 젊어서 과거에 급제한 수재 이징(李徵)의 이야기다. 때는 양귀비로 유명한 당나라 현종(玄宗) 시절 학식이 많고 재능이 뛰어난 이징은 남과 쉽게 타협하지 못하는 성격인데다 자신의 실력에 비해 너무 낮은 관직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 당장 갈 곳도 없으면서 관직을 박차고 물러나 버린다. 하급관리로 남아 속물스런 윗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지내기보다는 시인이 되어 후세에 이름을 날리고자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명(文名)은 생각처럼 쉽게 얻어지지 않았고 생활도 날로 궁핍해졌다. 몇 년 후 이징은 가난을 못 이긴 나머지 처자의 의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절개를 꺾고 지방 하급관리로 봉직하게 된다. 자신의 시작(詩作) 생활도 절망했고, 자신의 동년배는 이미 높은 자리에 있고, 예전에 우습게 여겨 상대도 않던 자들은 위에서 명령을 내리니, 왕년의 수재로 이름을 날리던 이징은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는 모든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남을 거스르기만 하다가 급기야 더 이상 자신을 다스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1년 후 공적인 일로 여행을 떠났다 여수 강가에서 결국 발광을 하였다. 어느 날 한밤중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면서 그 길로 어둠 속으로 뛰쳐나갔다. 그러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주변을 모두 수색해 봐도 이징은 보이지 않았다. 이듬해 이징의 친구였던 원참이 감찰어사(監察御使)의 칙명을 받고 영남지방으로 가는 길에 상어(지명) 땅에서 묶게 되었다. 이튿날 날도 새지 않은 이른 새벽에 출발했다. 새벽 달빛에 의지해 숲 속 길을 지나는데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풀숲에서 뛰쳐나와 원참에게 달려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몸을 획 돌려 풀숲으로 되돌아갔다. 그러고는 인간의 목소리로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구나’ 하고 되풀이하여 중얼거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이징이었다. 이때부터 이징은 자신의 사연을 친구 원참에게 들려주었다. 여수 강가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따라 한없이 달리다보니 자신이 호랑이가 되어 있었고, 때로는 사람처럼 사고할 수도 말할 수도 있다가 때로는 호랑이로 돌아가는데, 사람처럼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징은 자신의 시(詩) 중에 외우고 있는 30여 편을 친구에게 구술해줬다. 호랑이라는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시집이 장안 풍류인들 책상 위에 놓인 모습을 꿈꾸고 있다고도 했다. 원참이 보기에는 이징의 시는 매우 비범했기에 소질에서는 일류임이 틀림없지만 일류작품이 되기에는 뭔가 미묘한 모자라는 데가 있음을 발견한다. 이징은 말한다. 자신이 시로 명성을 얻으려 하면서도 스승을 찾아가려고도, 친구들과 어울려 철차탁마(切磋琢磨)에 힘을 쓰지도 않고, 속인들과 어울려 잘 지내지도 않았음을...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겁 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 존대한 : 학식, 인격 따위가 크고 높음) 세상과 사람들에게 차례로 등을 돌려서 수치와 분노로 점점 자신 안의 ‘겁 많은 자존심’을 먹고 자신 안의 맹수를 살찌우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고 이징은 말한다. 그 맹수가 바로 ‘존대한 수치심’이었다고... 겁 많은 자존심, 존대한 수치심은 무엇을 이루기엔 짧기만 한 인생을 재능을 허비하게 만드는 우리 마음속의 맹수이고, 자양분이겠지... 이징의 얘기는 어쩌면 제국주의 전쟁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드러내고파 갈등하는 나카지마 자신의 고뇌이기도 하고, 강력한 자기억제이기도 했을 것이다. 현 시기는 인간을 노골적으로 수단화한다는 측면에서 제국주의전쟁과 다름없는 야만의 세계로 점점 빠져 들어가고 있다. 이징의 얘기는 또한 현 시기를 사는 또 많은 사람들의 고뇌이기도 하고, 억제해야할 거울이기도 할 것이다. 3. 「이능(李陵)」 한(漢)나라의 강력한 황제 무제(武帝) 시대를 이야기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나라 전설적인 장군 이광(李廣)의 손자이면서 유능한 장군인 이능, 패전하여 포로가 된 이능을 변호하다 궁형(생식기가 잘리는 형벌)을 받은, 전설적인 역사서인 사기(史記)를 저술한 사마천(司馬遷), 흉노에 인질로 잡혔다가 19년 만에 극적으로 귀환하는 소무(蘇武)라는 3명의 이야기다.  세상을 살다보면 봄날처럼 온화한 볕이 드는 날이 있는가 하면, 비바람 거센 폭풍우나 눈보라 몰아치는 견디기 힘든 혹한을 맞을 수도 있다. 단지 날씨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상황, 개인의 조건 등도 날씨처럼 때로 온화하기도 하고, 혹독하기도 하다.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공평한 듯하지만, 그 직접적인 혜택과 피해가 누구에게 집중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리기도 한다. 이 세 사람에게 직접적 가해자이기도 한 강력한 황제 한무제(武帝)도 흉노의 선우도 어쩌면 단지 삶에서 만나는 혹독한 날씨와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아무리 혹독했어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측면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한나라 장군 이능은 단 5천의 보병을 이끌고 강력한 흉노를 치러 원정길을 나선다. 원정길에서 흉노 선우(흉노 황제)가 거느리는 10만에 가까운 강력한 기병대와 맞서 선전을 하지만, 무기가 모두 떨어져 전멸하여 겨우 400여명만이 귀환하고, 이능은 포로가 된다. 포로가 된 이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한나라 궁정은 대책회의를 하고, 유일하게 사마천만이 이능을 변호한다. 사실 10만에 가까운 흉노의 강력한 대부대에 맞서 5천의 보병이 싸운다는 것은 이미 승산이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더욱이 고립무원의 적진 깊숙이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럼에도 이능은 비록 포로가 되었지만, 빛나는 전투를 했다. 그런 그를 당연히 변호해야 함에도 일신의 안전과 처자만을 생각하는 대다수 신하들은 황제에게 아첨하여 이능을 벌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그들에게는 포로가 되어 멀리 있는 이능보다 자신들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마천이 더 문제였다. 사마천에 대한 형벌은 매우 신속하게 결정되었고, 시행되었다. 결과는 궁형(宮刑)이었다. 당시 사대부들에게는 죽음보다 더욱 비참한 형벌이었다. 결국 한나라는 이능의 가족을 늙은 어머니로부터 어린 자식들까지 모두 죽이는 보복을 한다. 이에 이능은 한나라로 향한 충성을 접고 흉노의 왕이 되어 선우의 딸과 결혼한다. 사마천은 궁형을 당한 뒤에도 묵묵하게 사기(史記)집필에 몰두한다. 마치 역사서를 편찬하는 것이 유일한 삶의 이유인양 말이다. 또 한사람의 주인공이 있다. 한나라의 화친 사절로 흉노에 갔다가 부사(副使)가 흉노 내분에 관계했기 때문에 억류되었던 소무(蘇武)이다. 소무는 끝내 흉노의 항복요구를 거절했고, 자결을 하고자 시도하였다. 일체의 항복 권유를 거부한 소무는 먹 북방 바이칼 호수 주변에 버려진다. 이능은 소무와 친구사이이기도 하다. 흉노 선우는 이능에게 소무를 한 번 더 설득해볼 것을 권한다. 이렇게 해서 이능은 소무를 만난다. 그러나 이능은 소무에게 항복을 권유하지 않는다. 소무는 먼 북방에서 자신의 존재를 누구하나 아는 이 없이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소무를 보면서 이능은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흉노의 계속 남은 이능과 19년 만에 귀환하여 한나라의 전설적인 영웅이 되는 소무,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 된 사기(史記)를 저술하였지만, 당대엔 존재감도 없었고, 사기를 쓰고 나서 다 타고 난 촛불처럼 스러져간 사마천, 결국 세 사람의 운명은 이렇게 끝이 난다. 한 인간으로써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맞이했던 세 사람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에 의미를 두고 그런 시련을 이겨나가야 할까. 특히 이능의 삶은 더욱 애처롭다. 변방의 향기 나는 풀꽃으로 묵묵히 시들어가는 소무에게 열등감을 느끼지만, 이능 또한 노모로부터 어린 자식까지 죽인 조국이지만, 끝내 마음속에서 한나라를 떠나지 못했다. 아침부터 황혼이 질 때까지 초원을 달리고 또 달리며 가슴속 뜨거운 분노와 갈등을 식혀야만 했던 그다. 피로만이 유일한 위안이 된 그의 삶은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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