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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은 왜 웃음거리가 되는가?

페이퍼 제출용으로 쓴거라 길기도 길고, 요약해서 올리기가 귀찮았는데;; 그래도 '소통'을 과제로 삼았으면 노력을 해야할것 같아서-좀 자르다말다 들쑥날쑥인데,,, 블로그에 올려본다....근데 각주까지 같이 붙이는 법도 모르겠고-_- 인용처리가 매끄럽지 않네, 표는 또 어떻게 줄이는거니-이것참참참 허접이네.

 

 

 

고민의 시작

 

  사범대를 다녔던 나는 어느 남녀공학중학교에 교생실습을 가게 되었다. 때마침 학교는 축제기간이라 교생인 나도 학생들과 함께 축제준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학교 축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미스/미스터 ㅇㅇ중학교 선발대회였다. 각 반의 학생을 한 명씩 뽑아서 여장과 남장대회에 의무적으로 내보냈다. 그 때 나는 내가 담당하고 있던 반의 아이들을 도와주게 되면서 이 프로그램의 준비과정과 행사의 진행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남자아이들이 여장을 할 때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고 그 인기는 대단했다. 여성주의 공부를 시작하면서 여장에 표현되는 것들이 여성성에 대한 왜곡과 비하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 순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장을 보고 웃고 즐기는 것일까? 왜 여장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일까? 이처럼 ‘여장’ 문화는 대학교 축제 등의 단골 프로그램일뿐만 아니라, 개그 프로에서도 남자 개그맨들의 여장은 단골 코너로 등장하며 식상할 정도로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여자들의 남장은 남자들의 여장만큼 빈번히 이루어지지 않으며 사람들로부터 전혀 다른 반응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 여러 가지 질문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여성/남성은 어떤 식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인가? 두 범주는 대립적인가? 하나의 성이 다른 성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남자가 여장을 할 때 웃음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반대로 여자의 남장은 왜 그렇지 않을까? 이런 질문들로부터 이 글은 시작되었다.

 

 

 

 



 

여장이란

  일반적으로 ‘여장’ 혹은 ‘여장남자’는 이성의 옷을 입는 행위인 크로스 드레싱(cross-dressing)에 속한다. 많은 사람들은 흔히 cross-dressing과 transvestism, drag을 혼동하여 사용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transvestism은 이성의 복식을 착용함으로써 성적 만족을 얻는 것이며, drag은 퀴어 정체성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서 둘 다 cross-dressing의 하위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크로스 드레싱은 아주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cross-dressing을 저항적 크로스 드레싱, 도착적 크로스 드레싱, 관습적 크로스 드레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젠더 이분법과 범주의 이동

 1) 젠더 범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여장’은 말 그대로 남자가 여자의 복식을 착용함으로써 여성처럼 가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여자/남자라는 두 가지의 성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이들에게 하나의 성이 다른 성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남자가 여자 분장하는 것 봤죠, 축제 날 3학년 형들이 했어요. 남자가 여자가 된다는 게 좀 희한해서. 여잔데 다리털이 나 있다, 목젖이 튀어 나와 있고 이러니까 웃기는 것 같아요. 신체적 조건이 완전히 다르잖아요. 사람들이 보해보기에 추해보이고 그러니까, 남자 같지 않으니까. 남자들은 목젖도 나와 있고 머리도 짧고 어깨가 넓고 키가 좀 크고, 근육도 있지, 아 또 목소리 변성기도 오죠. 근데 여자들은 머리도 길고, 남자랑 옷차림이 다르잖아요, 치마 입고 키도 작고 다이어트를 많이 하니까 살도 덜 쪘고요.(웃음) <민혁>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답변을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인터뷰를 한 ‘민혁’의 경우 자기 주변의 남학생/여학생들이 결코 자신이 설명한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특히 같은 반 중학교 1학년의 경우 상당수의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키나 덩치가 큰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남자와 여자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답변을 한 것이다.


옷 칼라 같은 것도 그렇잖아. 저 같은 경우는 여자들이 보통 좋아하는 거 분홍색 그런 거 좋아하는데, 지금 입고 있는 것도 핫핑크네. 고등학교 때 동기들 만나면 다 뭐라 그래 니가 여자냐고. 내가 대구경북 출신이니까 남성성에 대한 규정이 되게 강한 지방이니까요. 너는 뭐냐? 가시나도 아니고 이런 식이죠. <아치>


일단 2차 성징이 나타나면 남자와 여자의 외형상으로 많이 변하잖아요. 남학생은 몸집이 좋아지고 여학생은....아무튼 그렇게 변하는데 여학생이 남장을 하면 아직 2차성징이 나타나지 않은 남학생이거나 좀 몸집이 왜소한 남학생으로 보이는데 남학생이 여장을 하면 일단 몸부터가 어색하고 얼굴도 어색하잖아요, 게다가 사람들의 생각 속에 여자는 몸집이 작은 걸로 생각하는데 몸이 좋은 남학생이하면 얼마나 어색하겠습니까? 게다가 남자의 특유의 강해보이는 느낌이 여성에게 있다면...그래서 웃게 되고 그것 때문에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석화>


  여전히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을 대립적인 범주로 인식한다. 따라서 ‘석화’의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성별의 사회적 구분이 강조되면서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는 필요 이상으로 과장, 왜곡된다. (한서설아 2000:46)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넘나들 수 없는 고정된 범주라는 것이다. 평범한 남자가 여자의 ‘색깔’을 입는다는 것은 여전히 문제가 된다. 따라서 그 대립적인 범주를 넘나드는 ‘여장’ 혹은 ‘남장’ 행위는 일단 ‘희한하고’ ‘어색하고’ ‘신기하며’, 더 나아가서 ‘이상한’ 것으로 인식된다.


 2) 젠더에 대한 이론적 논의

  ‘젠더’라는 개념은 1970년대 초에 나타났다. 앤 오클리의 sex, gender, society라는 책에서 젠더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인 섹스에 대비하여, 사회적 문화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델피 1996) 이렇게 젠더 개념의 등장으로 여성억압을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설명하던 기존의 가부장적 논리를 상당수 바꿀 수 있었다. 특히 젠더를 활용한 페미니스트들의 작업은 그때까지 당연시되고 상식화되어 있던 문화를 가장 중요한 투쟁과 이론화의 대상으로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김은실 2000)1) 그러나 이러한 논리 속에서 여전히 섹스는 젠더에 선행하는 본질화되고 자연화된 개념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최근의 연구들은 섹스와 젠더의 구분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섹스라는 자연적 이분법을 통해 젠더라는 사회적 이분법을 보는 방식은 잘못되었으며 오히려 젠더가 섹스에 선행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델피 1996) 섹스와 젠더가 모두 사회적으로 구성된 지식이라면 오히려 섹스가 젠더의 효과가 되는 것이다. (스콧 2001)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젠더가 자유롭게 떠다니는 속성은 아니다. 왜냐하면 젠더는 그것의 일관성을 규제하는 실천에 의해서 수행적으로 산출되고 강요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젠더는 언제나 하는 것(doing)이다. (버틀러 1990)

  따라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젠더 이분법은 생물학적 차이에 기반을 둔 본질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행위의 규칙에 불과하다. 이처럼 젠더를 둘로 나누어 그 관계를 대립적으로 범주화하려는 것에 대해서 조안 스콧은 ‘사회 안에서 남성과 여성 간의 관계를 조직하려고 시도하는 사회적 규칙’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스콧 1999:215)2) 이 글에서는 사람들의 젠더화된 인식이 여장을 어떻게 웃음과 연결시키는지 살펴볼 것이다. 우선 젠더의 연출과정으로서의 여장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그 맥락을 보겠다.

 

3) 여장, 젠더의 연출과정

   많은 이들이 여장을 경험한 것은 대부분 학교에서이다. 이들은 여장의 준비과정을 돕기도 했다. 일단 여장과정에서 남자들은 ‘여성스럽다’ ‘여성적이다’라고 생각되는 외모를 연출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의복’이다.


옷이 되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여학생이 치마를 입어도 괜찮지만 남학생이 치마를 입으면 000라는 소리(욕설)를 듣게 되겠죠. 음 머릿속에서 자동 통제기능이 000으로 통제하라고 하네요. 하지만 여학생이 바지를 입는다고 해서 이상하진 않죠. 남학생이 비키니....(웃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석화>


  요즘은 메트로섹슈얼3)이니 해서 남성들도 외양이 상당히 변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복은 여전히 성별을 구분 짓는 필수적인 것이며,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연상케 하는 수단이 된다.(박미령 2003:324) 특히 남성성에 대한 정의는 의복을 통해 기호화하였으며, 남성패션은 착용코드와 그 착용코드를 무시하거나 파괴하였을 때의 제재가 여성보다 훨씬 강했다.(정인희 2001) 따라서 남성들이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치마’를 입었을 때 일탈성은 훨씬 더 강하다. 다음으로 어떻게 여장이라는 행위를 수행하고 연출하는지를 살펴보자.

 

내가 대학교 때 동아리가 00라고 봉사동아리였거든. 근데 거기가 얼마 전에 작년인가 20주년을 했어, 전통이 오래됐는데 봄가을에 엠티를 가거든. 근데 엠티를 갈 때마다 미스 00을 뽑아. 봄에는 1학기생 위주로 하고 가을에는 2학기생 들어온 남자애들 신입생 위주로 한다. 근데 엠티를 가면 조별로 나누잖아. 그러면 신입생 한명 선배들 이렇게 구성을 하잖아 그러면 한 조에 한명씩 꾸며서 나와 그런 식이었어. 이 남자애를 여자 선배나 여자 동기들이 얘를 꾸며주고 그런 거였는데. 나도 그렇게 한 번 꾸며준 적이 있거든. 내가 후배남자를 해줬는데, 내가 화장을 안 하고 다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하긴 했는데 되게 못했어, 근데 거기는 어차피 화장을 잘하고 이런 것보다는 과장하는 게 중요하잖아. 화장도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 메이크업베이스 바르고 립스틱도 바르고 점도 찍고, 점이 막 섹시하게 보여야한다거나 그랬어. 옷도 집에서 직접 가져오는 애들도 있었는데 거기 있는 거 수건, 천 이런 걸로 가슴 양말 말아 넣고 이건 남성 스타일 애들을 꾸밀 때는 그렇게 하고. 예쁘장한 남자애를 꾸민다고 할 때는 수줍음 많은 척을 하라고 시킨다거나 그러니까 그냥 이미지가 두개였던 것 같아. 그냥 보기에 더 남자다운 애들을 화장시켰을 때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웃고 터프하거나 이런 애들보다 섬세한 남자애들도 있잖아 그런 애들이 나오면 “어머 쟤 진짜 여자같다” 이런 반응이고. 보기에 남자 같다 그런 애들은 웃고 난리가 나지. <주희>


여장할 때 다 그거 섹시 컨셉. 가슴에 많이 넣고 치마 짧은 거 입고 망사스타킹 같은 거 막 신고요. 우리는 AM4)이 에로엠이야. 에로틱하다고, 남자들이 설치면서 하지. SM이라고 섹시엠이라고도 하고요. 여자처럼 하는 거지. 흔히 얘기하는 뭐죠? 상품화되고 있는 섹시한 여성의 이미지 있잖아요, 요새 나오는 섹시 가수들 이미지 그런 거 그대로 차용해요. 그런 거 하면 좋아하죠. <아치>


중학교는 공학이었는데 중 3때 졸업하기 전에 왜 축제 이런 거 하면서 그게 누가 주최하고 그건 모르겠는데 한반에 한명씩 여장남자 콘테스트 해서 남장은 안했죠. 그런 거 약간 왜 유명한 애들 나가잖아요, 얘 잘생겼다 하는 애 1반부터 쭉 나오는데 구청 구민회관 대강당 빌려서 했는데. 진짜 예쁘고 잘생긴 애들 나오면 소리 지르고 환호성치고 여자애들도 좋아하고 남자애들도 좋아하고. 주로 섹시 아니면 청순가련. 섹시는 아까 걔네들 소위 좀 논다 이런 애들 일부러 덩치 되는 애들이 걔네들이 가슴을 만들 수가 있잖아요, 그렇고 진짜 예쁜 애들은 청순 이런 걸로. 남자애들은 진짜 여자애들은 안 그러는데 여장남자들이 막 나와서 적극적으로 표현하니까 좋아하는 거 같아요. 여자애들은 많이 좋아하지는 않았고 저희 1등했던 애가 진짜 유명한 애였어요, 진짜 예쁜 애 그때가 막 셀카 유행할 때 너무 애가 예쁘게 나와 가지고 여자애들은 그래서 좋아했던 거고. 오오오 막 이러면서. <트르>


   여성의 의복을 입으며 여자임을 가장할 때 주로 사용되는 컨셉은 두 가지, 섹시 혹은 청순 형이다. ‘여자’ 혹은 ‘여자답다’는 것을 이 두 가지의 상반된 이미지 속에서만 인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 시선의 남성 중심성을 드러낸다. 남성적 시선 속에서 여성은 섹시하여 성적매력을 발산하거나 청순가련하여 다소곳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인터뷰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남자 중에서도 겉보기에 남성성이 강하게 드러난다고 판단되는 경우 즉 덩치가 크고 목소리가 굵고 털이 많고 적극적인 성격인 경우에는 일부러 반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섹시 컨셉을 사용하고, 겉보기에 여성성이 드러난다고 판단되는 경우 즉 마르고 목소리가 가늘며 얼굴이 예쁘고 소극적인 성격인 경우에는 청순가련한 여성의 컨셉을 잡는다.

  이어서 이들은 자신의 컨셉에 맞게 제스추어, 동작, 걸음걸이 등을 의도적으로 모방하고 연출한다. “더 남자답게” 혹은 “더 여자답게” 하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여성성/남성성은 행위자의 의도에 따라서 외모와 행동에 의해 얼마든지 연출되고 가꾸어질 수 있는 수행적인 것이라는 점이 여기에서 잘 드러난다. 모방행위가 발생하면 이미 그 순간 원본과 모방본의 구분이 불가능해진다고 말한 버틀러의 논의는 이 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버틀러에게 드랙(drag)은 바로 그 좋은 예가 된다. 모방본이 모방하고 있는 것은 원본이 아니라 원본이 가지고 있다고 가정되는 이상적 자질들이다. (버틀러 1990) 만약 남성적인 여성이 교태나 애교로 자신의 여성성을 가장할 수 있다면 그것은 여성성이라는 허구적 이상을 모방하는 것이다. 가면으로서의 여성성은 진정한 여성성이라는 원본을 모방하는 모방본이지만, 사실 진정한 여성성도 가면으로서의 여성성도 여성적 특성이라고 가정되는 허구적이고 이상적인 자질들을 모방하는 것이기 때문에 둘은 같은 것이다. 따라서 가면으로서의 여성성은 여성성 그 자체가 규제적 이상을 모방하는 허구적 산물임을 드러낸다.(조현순 2001:184) 따라서 ‘여장’ 과정에서 모방한다고 생각하는 ‘진정한 여성성’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모방하고 연출하는 것은 젠더 이분법이 강요하고 규제하는 행위들에 불과하다.

 

 웃음의 발생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여장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는 것일까? 어떤 요인이 웃음을 발생시키는가? 그를 위해 웃음에 대한 기존 연구들을 살펴보자.


1) 웃음에 대한 이론 연구

  그동안 다양한 관점에서 웃음의 발생과 그 조건에 대한 연구들이 이루어져왔다. 웃음의 이론은 일반적으로 우월론(Superiority Theory 풍자론), 해소론(Relief Theory, 이완론), 부조화론(Incongruity Theory, 골계론)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박근서 1997; 이재원 2003; 원용진 2001)    웃음에 관한 많은 연구와 이론이 있지만 이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중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바로 우월론이다. 이 이론의 기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에 따르면 희극은 ‘보통 이하의 악인을 모방’한다. 토머스 홉스 역시『리바이어던』에서 “웃음의 감정은 타인의 약점 또는 자신의 이전 약점과 비교해 자신에게서 뜻밖의 우월감을 느꼈을 때 나타나는 갑작스러운 승리감이다”라고 표현한다. 즉, 우월론에서 웃음은 열등한 인물이나 행위를 볼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반대로 코미디의 인물들은 대개 중요하지 않은, 일반적인 사람들에 미치지 못하는 열등한 존재로 간주한다. 코미디의 인물들이 하향적 일탈을 일삼는 우스꽝스러운 존재들이 되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러한 일탈을 보고 즐기는 사람을 상대적으로 추켜올려 세우는 효과를 지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그 프로그램에서 가장 흔한 소재가 되는 소위 ‘바보’ 연기를 보면 이런 웃음의 측면을 이해할 수 있다.


2) 여장은 왜 웃음거리가 되는가?

① 사회성과 권력관계 그리고 우월감

   웃음은 사회관계 속에서 보편적이고 대중적으로 발생한다. 이와 관련하여 베르그송은 웃음이 사회성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웃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라고 하는 그의 본래적 영역에 다시 위치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베르그송 1992) 웃음이 사회적 조건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그 관계에는 항상 권력관계가 개입된다. 푸코에 따르면 권력은 경제적, 정치적 관계, 일상적 대인 관계 및 젠더, 인종, 지역, 세대 등 다양한 형태의 관계들 속에 내재해 있다. 권력은 사회관계와 공존해있기 때문에 권력은 사회성과 등가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푸코 2003) 이렇게 우월론을 사회적 권력관계 속에서 사고하게 되면, 웃음은 다수의 정상성과 우월감을 확인하면서 기존의 권력질서를 확인하고 또 강화하는 기제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여장’이 웃음거리가 되는 이유를 성별권력관계에 기반 한 여성/여성성에 대한 멸시로 읽을 수 있다. 남자가 여자가 된다는 그 자체가 사회적으로 부적합한 행위이자 사회규범을 일탈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웃음이 발생하지만, ‘여장’의 재현과정을 통해 비하되고 조롱받는 대상은 당사자 남성이 아니라 연출되고 있는 여성과 여성성이다. 여기에서 보는 관객의 시선은 남성인 반면, 시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여성이다. 응시가 남성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유적 용법으로 여성을 대상화하는 시각 양식을 지칭하는 말이다. 넓은 의미로 볼 때 응시가 여성을 향하고 그 여성에게서 쾌락을 얻을 때는, 언제나 그 응시는 남성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여기서 여성은 에로틱한 대상으로서 역할 한다. (드베로 1990)1)  이러한 물신주의적 시선은 특정한 신체 부분에 성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월터스 1999:77) 여장 과정에서 여성들의 가슴, 엉덩이, 입술, 점과 같은 성적매력을 불러일으킨다고 간주되는 부위들이 특징적으로 강조되는 것을 보게 된다. 지나치게 과장된 가슴과 엉덩이 등의 신체부위들에 덧붙여 ‘오버스럽게’ 연출되는 행동과 목소리는 여성성을 왜곡하고 과장한다. 이 때 발생하는 ‘우스꽝스러움’은 여성에 대한 조롱을 통해 남성들에게 우월감을 부여하며 웃음을 발생시킨다.


딱 해서 진짜 예쁘고 여자 같은 애들은 그냥 가만있어도 되는데 되게 남자 같은 애들 있잖아요. 예쁘지 않은 남자애들 그런 애들은 아무리 꾸며놔도 여자 같지 않으니까 되게 몸짓으로라도 여자인척 하려고 자기가 생각하는 여자 태도를 막 보이려고 하고, 몸짓으로 보면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자 이미지, 되게 여자 같은 이미지하고 거기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하고 비슷한 것 같아요. 교태를 부리고 얌전한척 하고 애교 부리고 이런 거. 목소리도 되게 야리야리하게 하고. 그 사람들도 어떤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웃어주겠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같아요. <안나>


‘여장 남자’들의 실제 모습에는 강한 남성성이 감춰져 있다. ‘여장 남자’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여려 보이지만, 실제는 정반대로 강지섭은 184cm의 훤칠한 키에 유도 유단자이다. 조승우와 오만석도 탄탄한 근육질을 자랑하고 있다. 코미디에서 ‘황마담’이나 ‘제니퍼’는 극중 갑자기 거친 남성으로 깜짝 변신하기도 한다. <스포츠칸 2006.01.03>2)


<웃찾사>도 꾸준히 여장남자 캐릭터를 ‘밀어’왔는데, 얼마 전까지 인기 코너였던 ‘퀴즈야 놀자’에서는 씨름선수 같은 체격의 문세윤이 여성 간호사 역할을 맡아서 인기를 얻었다. 산만한 덩치의 문세윤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애교를 떨면서 “몰라요~”라고 말하면 시청자는 뒤집어졌다. 문세윤의 간호사는 생김새와 체격이 전혀 여자 같지 않은 남자가 여장남자 역할을 하는 고전적인 여장남자 캐릭터의 한반도 버전이었다. <한겨레 21 제623호 2006.08.17>3)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여장을 통해 성적 매력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부각시킬 때 이것을 수행하는 이들은 보통 남성성이 더 강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다. ‘예쁜’ 남자가 여장을 하는 것은 “여자보다 더 예쁘다”는 환호를 받아도 결코 웃음거리는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보기에 ‘우락부락하고’ ‘남성성이 강한’ 사람이 여장을 할 때 역설적으로 더 많은 웃음이 발생한다. 그 이유는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통제에서 찾을 수 있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신의 몸 관리와 훈육에 소모한다. 대표적인 것이 외모강박증이다. (보르도 1993) 예쁘지 않은 얼굴, 털 있는 다리, 뚱뚱한 몸은 여성성, 여성의 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따라서 ‘털 많고’ ‘뚱뚱한’ 남자가 몸에 달라붙는 치마를 입고 여장을 수행한다면, 사람들은 ‘그는 여자가 아니다’라고 인식한다. 신문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아무리 간호사 의상을 입고 여자 목소리를 내도 그가 ‘여자답지 않음’을 보는 사람들은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코미디 효과는 높아지는 것이다. 또한 특히 개그프로의 경우 여장 연출 과정 중에 거친 남성으로 돌변하여 괴성을 지르거나 남성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이들은 “내가 먹고 살기 위해 이런 짓까지 한다.” “우습게보지 마라, 나 알고 보면 이런 남자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한다. 이들의 말은 여성을 연출하고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이 원래 자신의 위치(남성)보다 훨씬 낮다는 맥락을 드러낸다. 즉, 자신은 여자다움과 여성성을 규정하고 그것을 하나의 놀이감으로 전유할 수 있는 남성의 일원임을 우회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들을 보며 폭소를 터뜨리는 관객들 역시 우월감을 통해 동일시한다고 볼 수 있다. 

 

② 웃음 대상과의 거리감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있을 때 그것이 웃음이 되는 조건 중의 하나는 바로 웃음대상과의 ‘거리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실수를 범한 사람에 대해 감정적인 동참, 즉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웃는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웃는 사람과 웃음의 대상이 된 사람과의 거리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류종영 2002:236) 예를 들어 유태인을 비하하는 내용을 담은 개그가 있다고 할 때, 유태인이 아닌 다른 민족들은 웃을 수가 있겠지만 당사자 유태인들은 그것이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웃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다수의 남자들이 여장을 즐거워하는 이유는 여성성이 우스꽝스럽게 연출될 때 남성들은 재현의 대상이 되는 여성들과 거리감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여성들은 왜 여장을 보고 웃는 것일까? 당사자 여성의 몸에 대한 조롱과 비하라면 여성들은 불쾌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한 첫 번째 이유로 관람자 여성들의 시각이 ‘남성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관객을 남성으로 관객의 시선을 남성적인 것으로 가정하면, 관객으로서의 여성은 남성적 응시에 동화된 대상이며 남성과 마찬가지로 관음증과 물신주의의 메커니즘에 묶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월터스 1999:82) 이러한 이론을 빌리자면 많은 여성들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대상화하는 ‘남성적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성 관객들이 ‘여장’ 재현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은 아니다. 많은 여성들은 여성성을 과장해서 연출하는 여장에 대해 불편함 내지는 거북함을 표현한다.


tv 보면은 황마담, 제니퍼 (처럼 여장 캐릭터) 너무 희화화시키는 것도 있고 거북스러워요. 다른 친구들끼리 얘기할 때도 “황마담 짜증난다” 이런 얘기 종종하니까. 너무 막 애교부리고 과하게 막 여성성을 드러내려고 하니까 뭐라고 해야되지 너무 막 오버하잖아요, 목소리도. 사실 그런 애들 보면 짜증난다고 하는 것처럼 실제로 보통 사람들이 안 그러는데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트리>


  그러나 반면에 또 많은 여성들이 여장을 보고 웃는 이유를 단순히 남성적 시선의 내면화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많은 여성 관객들은 재현되는 ‘여성’과 ‘여성성’에 대한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있었지만 단순히 남성적 주체로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의 거리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는 여장 중에서도 가장 많이 재현되며, 가장 많이 웃음거리가 되는 ‘섹시’ 컨셉에 대한 생각을 통해 이를 살펴보자.

  

내가 생각하기에 남자를 그런 컨셉으로 꾸며넣는게 tv 드라마에 시골 다방 레지나 어떤 그런 이미지로 촌스럽고 과장되게 그런 이미지인 것 같아. 여성들 중에서도 되게 안 좋은 그런 이미지로, 술집 여자. 걔네들을 사회자가 인터뷰하고 할 때도 걔네들 자체도 그런 식으로 표현을 하고. 껌 짝짝 씹고 “오빠~~”막 이러면서.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아. <주희>


내가 봤던 건 대동제 때 주점하잖아요. 그 때 손님들 많이 끌어 모으려고 호객 행위하잖아. 그거할 때 남자애들이 여장하는 거지. 술집여자 딱 그거죠. 일종의 전복이죠. 전복에서 유희를 느끼는 거죠. 일부러 막 덩치도 크고 딱 이런 친구들 시키는 거죠. 여장 진짜 안 어울리는 거 같은 애들. 완전 희화화의 대상이죠. 예쁘장한 애들은 시켜본적이 없는 거 같아요. 오히려 그런 거 잘 안 시키는 거 같아요. <아치>


많이 웃는 건 좀 그런 애들 있잖아요. 좀 논다 하는 애들이 오버하고 일부러 막 브래지어 올리는 척 막 이런 거 하고 치마 일부러 들어올리고 그러죠. <트르>


  ‘주희’와 ‘트르’의 인터뷰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여장’의 섹시컨셉이 모방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술집 여자’ ‘다방 레지’와 같은 이미지들이다. ‘아치’의 말에서 나오는 것처럼 실제로 대학교 축제에서 여장은 호객행위를 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술’과 ‘성적 서비스’를 판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에 대한 이미지들은 미디어와 사회적 담론을 통해 가공되고 구성된 것이다.4) ‘그런 여성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경박하고’ ‘과장된’ 행동을 할 것이라고 간주된다. 여성 관객들은 여성 중에서도 더 낮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여성들과 자신들을 분리했다. 여기에는 섹시 컨셉으로 재현되는 여성들에 대한 거리감과 상대적 우월감이 결합되어 있다. 이들 여성의 이미지, 섹슈얼리티가 비하되고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는 거리감이 있는데, 여기에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런 대상이 되어도 괜찮은 (직업) 여성’이 있다는 가정을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여성 관객들은 불쾌감을 표출하기보다 여장을 보고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보론: 남장은 왜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가


  인터뷰를 했던 이들은 모두 ‘여장’을 경험한 적이 있었지만 ‘남장’을 경험한 적은 일부에 불과했다. 남녀공학의 경우에도 ‘여장 대회’만 따로 한다던지 여장만을 재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남장은 ‘재미가 없다’ ‘인기가 없다’. 달리 표현하면 그만큼 웃음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개그프로의 경우에도 일부 개그우먼들이 종종 남장을 하긴 하지만 여장에 비해 빈번하지 않다. 또한 여장에서와는 달리 남장에서 남장을 하는 이들은 이미 “남성성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간주되는 ‘덩치가 좋거나’ ‘예쁘지 않은’ 개그우먼들이다. 이들 개그우먼들은 일상 영역에서도 대부분 여성성이 탈각된 남성화된 존재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엔 신영이가 가발 쓰기 싫다고 앙탈을 부렸어요. 특히 여자가 가발을 써서 잘 된 코너가 없다고 다들 말렸죠. 하지만 전 자신 있었어요. 지금 '국민 여동생'은 문근영이지만 '국민 남동생'은 김신영이죠."(김태현) "이제 '행님'이 됐는데, 저도 가끔 '오빠'라고 부르면 어색해요. 서로 너무 잘 아니까."(김신영) <스타뉴스 2006.01.25>5)


  개그프로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행님아' 코너는 10년 전 개그맨 강호동이 MBC '오늘은 좋은날'의 '소나기' 코너에서 했던 역할을 개그우먼 김신영이 재현한 것이다. “여자가 가발을 써서 잘 된 코너가 없다”고 한 개그계에서 이 코너는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남동생으로 분한 개그우먼 김신영은 ‘국민 남동생’으로 일컬어지고 스스로도 남자동료를 ‘행님’이라고 부를 만큼 남성화된 존재로 인식이 된다. 이 코너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남장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형제의 아옹다옹하는 캐릭터에 있었다. 즉, 여성이 남장을 하는 경우에 남성성이나 남성의 육체에 대한 비하와 조롱을 통해 웃음을 발생시키는 경우는 없다. 남장을 해서 웃음을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별도의 개그요소, 재미있는 캐릭터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여자의 남장은 웃음을 발생시키지 않는 것인가? 사람들은 여자의 남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사람들이 제일 처음 인터뷰에서 말했던 이유는 상당수의 여성들의 의복이나 헤어가 남성과 별 다른 차이를 못 느낀다6)는 것이었다.


여자가 남장을 하면 어지간하면 티가 잘 안 나는데. <아치>


남장은 아예 없었어요. 아무래도 여고나 그런데서 잘 보이는 건데 여자애들은 남자애처럼 보이기가 쉽잖아요. 머리 좀 짧게 자르고 옷 좀 스포티하게 입으면 그렇게 보일 수 있는데<트르>


여자애들이 남장을 했을 땐 여자는 평소에도 바지입고 남자 옷 입고 다니는 애들이 있어서 아무런 느낌이 안 드는 것 같아요. <보영>


근데 기숙사에 외부인 들어가면 안 되는데 남잔 줄 알고 경비실 아저씨가 꼭 잡는 애들 있거든요. 제가 봐도 남자 같아요. 걔네는 남장을 할라고 한 건 아닌데 돌아다니면은 남자인 것 같다고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안나>


  이들이 말하는 것은 남녀가 같은 의복을 입는 경향, 유니섹스(unisex)를 의미한다. 유니섹스는 1960년 히피들이 중성적 이미지로서 남성복을 근간으로 하여 똑같은 디자인을 남여가 같이 입음으로서 기존의 가치체계와 성역할의 이분법을 해치시키고자 했던 정치적 의미(안소현, 이경희 2000)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대 패션에서 유니섹스는 실용성과 함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남녀구분 없이 남성성에 가까운 셔츠와 면바지 스타일인 캐주얼로 발전하였다.(박미령 2003:329)  이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유니섹스는 정확하게 ‘무성화’라기보다는 ‘남성화’에 가깝다. 따라서 여자가 남장을 한다는 것이 외관상 특별한 특징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유니섹스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의 학교 공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물론 학교를 제외하면 상당수의 여성들은 남성적인 의복과 대비되는 여성적인 의복을 착용한다. 남성의 응시대상으로서 여성은 일반적으로 남성을 유혹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이미지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현대패션에서는 전형적인 여성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디자인을 페미닌룩(feminine look)이라고 부른다. (박미령 2003) 그러나 어찌되었든 여성들이 남성들의 의복을 착용했을 때는 남성들이 여성적인 옷을 입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여자들이 정장 딱 갖춰 입으면 되게 멋있다, 세련되고 품위 있어 보인다고 하는데. 남자들이 만약에 여자 옷을 입으면 사람들이 ‘미친 짓’이라 그러겠지. <우주>


남자들은 머리에 여자 가발을 쓰고 가슴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여자 되기’에 안간힘을 쓴다. 이들의 공통점은 경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엽기녀’들. 반면 남장 여자들은 결코 우스꽝스럽지 않다. 오히려 절도 있는 행동과 당당한 말투로 실제 남성보다 더 매력적인 남성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일간 스포츠』2002.01.16>7)


여자들은 보이쉬한 사람보고 ‘멋있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남장이 웃기지는 않죠. <민희>

 

  인터뷰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여성이 남성적 옷을 입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인 표현을 하였다. 그 이유는 여성들의 ‘공적’ 영역으로의 진출과 연관을 가진다. 여성의 전문직 증가와 여성중역의 책임이 당연시되면서, 패션에서도 여성에게도 공적 영역에서 남성에게 요구되어졌던 ‘사업가적’ ‘전문적’으로 보이게 하는 힘이 요구되었다. (박미령 2003:328) 그렇기 때문에 특히 전문직,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들의 의상은 정장 수트를 비롯하여 남성화된 특징으로 나타난다. 수트는 남성의 성공, 남성다움, 성숙함을 가장 완벽하게 상징하는 기표로 사용되고 있다. (홀랜더 1994)8) 머리 스타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의 커리어 우먼은 너무 길거나 짧지 않고, 또한 너무 곱실거리거나 직모가 아닌 헤어스타일을 함으로써 젠더나 섹슈얼리티를 함축하지 않도록 조언 받는다. (프리드만 1986)9) 최근 유행하고 있는 매니쉬룩(mannish look)10)의 경우에도 카리스마와 당당함을 표현하기 위한 패션 경향의 하나로 보인다. 따라서 여성들이 남장을 했을 경우에는 여장과는 달리 오히려 ‘멋있고’ ‘카리스마 있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을 앞서 언급한 웃음의 이론들과 연결해보면, 왜 남장이 웃음이 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추론해볼 수 있다. 즉, 여성들이 남성의 옷을 입어 ‘남자’가 된다면 성별권력관계 속에서 여성들의 지위가 상승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남성적 의복은 성공한 여성, ‘커리어 우먼’의 이미지와 곧잘 연결되기 때문이기도 하다.11) 그러므로 보는 사람들은 ‘남장’에 대해 어떤 식의 우월감도 갖지 않으며 전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여자가 남장을 통해 표출하는 강렬함과 카리스마는 그것이 직장이든 연애관계이든 여성들을 남성과 동등한 ‘경쟁자’로 인식되게 하기 때문에, 남성들에게 남장은 가부장적 권력에 위협적이고 도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맺음말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일탈적 크로스드레싱으로서의 여장은 일상적으로 축제 프로그램, 개그 프로그램, 코미디 영화 등 웃음의 소재가 된다. 여장은 남성성에 대비되는 것으로서 여성성을 가장하고 연출한다. 사람들은 젠더 범주가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실제 여장의 연출과정을 보면 젠더란 허구적인 여성성을 모방하고 수행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여장을 연출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남성들이 웃음을 발생시키기 위해 여성성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왜곡하며,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렇게 여장이 웃음이 되는 이유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권력을 바탕으로 한 우월감과 웃음대상과의 거리감 때문이라고 볼 수가 있다. 이는 여장을 수행하는 이들의 특성과 그들의 행동에서 잘 드러난다. 반면 이와는 달리 여성이 남성을 연출하는 남장은 사회적 지위가 상승되는 것을 의미하고 오히려 여성을 남성의 경쟁자로 인식하게 하기 때문에 우월감이나 거리감에 바탕 한 웃음이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남성들에게 남장은 가부장제에 위협적이고 도전적인 것으로 읽힐 수 있다.  따라서 버틀러가 드랙(drag)을 젠더범주의 허구적 맥락을 드러낼 수 있는 정치적, 문화적 실천으로 본 것(버틀러 1990)과는 달리 이 글에서의 여장은 상반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본다. 웃음을 목적으로 하는 여장은 보는 이들의 정상성과 우월감을 확인시키는 기제가 되기 때문이다. 우선 남자가 여장을 통해 ‘여자’가 될 때 웃음이 발생하는 순간 사람들은 젠더 범주를 벗어나는 것은 ‘비정상적인 행위’라는 관념을 확고히 한다. 또 생물학적 성과 일치하지 않은 외양은 수행자의 실재 젠더 정체성과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방식, 즉 “역시 여자는 ~해야 한다.” “여자란 ~것이다.”라는 식의 사고를 강화시킨다. 이러한 성별화된 관행과 몸 이미지는 우리가 여성과 남성의 몸을 인식하고 분류하고 평가하는 방식들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쉴링 1993) 따라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일탈적 여장은 오히려 전통적인 젠더 이분법을 더욱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문제점을 낳는다고 결론 내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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