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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아시나요?

무협지에 등장하는 여러 무림협객들이 주먹 한 방, 발차기 한 번에 다양한 초식(招式)이 붙으며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고 그것을 설명하면서 비로소 싸움이 무르익어간다.
이것은 비단 중국의 역사상 가장 피냄새가 많이 난다는 명나라때 강호를 뒤흔들던 그 당시의 분위기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찬찬히 살펴보면 우리 근방에서도 이런 세계를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얼마전 길을 가다가 흔히 우리가 흔히 부르는 '도를 아시나요'가 나에게 몇 마디를 건네며 살포시 다가왔다. 그들은 특별한 액션없이, 소리소문없이 아주 경험찬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에게 나는 할 말을 잃는다.

근데 이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사실 '예수천당 불신지옥'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깨띠로 대각선으로 비껴매고 다녀서 금방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쉽다. 또한 그들은 사람들과의 대화보다는 무엇인가를 급박하게 알려내는데 주력한다. 그들은 주된 구역은 지하철이나 역사 근방이지만 '도를 아시나요'파들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특히 '기다리는' 사람들이 정체되어 있는 구역을 선호한다.

이와는 다르지만 '여호와의 증인'들은 아주 점잖은 방식으로 나타난다. 일단 방식은 거의 '도를 아시나요'와 흡사한 방식으로 접근을 하나, '도를 아시나요'파는 일단 대순진리회 소속이므로 '사주팔자'나 '운명', '과거사'에 대해서 결정타를 먼저 날린 후에 작업이 들어간다. 이거 요즘에는 업그레이드되어 장난이 아니다. 때로는 무섭다.

가령 예를 들면, (“도에 관심 있으십니까?”라고 시작하는 고전파는 이제 없다.) 이렇다.

“얼굴이 참 남 다르시네요”
“안 좋은 기운이 있으십니다”
"혹시 집안이 어렵지요?"
"부모님이 안계시군요." 등등 이런 자들은 내공을 수련하는 사람들이라 자칫 잘못하면 병신되기 일쑤다. 사람들에게 무시도 많이 당한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고수가 되어 사람들을 제압한다. 정곡을 찌르는 교묘한 말들. 그게 핵심이다.

"올해 시험 안되셨구나?"
"남자친구와 안좋으시네."
"부모님께서 지금 많이 아프셔."
"작년에 장사했다가 망했죠?"

이 정도면 일부 사람들을 바로 무시때리고 가든가 아니면 그들의 얘기를 잠시 들어본다. 사실 시간많을 때는 한 번쯤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나 주로 질문을 하도록! 그러나 이런 이들이 디게 싫은 경우에는 그들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 '반말을 하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별로 서로에게 않좋은 감정을 가지게 하므로 권할 부분은 못된다.

예를 들어 인터넷 상에 떠도는 것들 중에는 다음과 같이 '도를 아시나요'파를 퇴치한다. 조금 줄여서 소개한다.

첫째, 반말로 대답하는 방법이 있다.
“도에 관심 있으십니까?” “아니~”
“얼굴이 참 남 다르시네요” “고치면 될 거 아냐?”
“안 좋은 기운이 있으십니다” “너도 마찬가지야”


둘째, 무관심해 하든가 딴청을 피우는 방법이 있다.
“도에 관심 있으십니까?” (졸린 눈으로) “비켜요!”
“안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데요” (라이터를 꺼낸다) “불 드려요?”

근데 이런 방법은 잘 안통한다. 그들이 이미 무관심에 대해서 어느정도 익숙한 상태이기에 이 방법은 도리어 딴청을 피우는 사람이 더욱더 짜증날 수 있다.

셋째로, 적당히 대해주는 방법이 있는데 이것도 보통의 사람들이 하기란 어려운 것 같다.
“인상이 좋으시군요” “재수 없다고 하던데요…”
“어디 가서 얘기 좀 할까요?” “그럼 니가 쏘는 거야?”

내가 생각할 때에는 제일 좋은 방법이 멀리서 보고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들의 일반적인 모냥새가 거의 정형화되어 '빠숑'이라는 개념이 없기에 금방 식별이 가능하다.

일단 보편적으로 조를 구성할 때 내공이 100갑자 정도 되는 사람이 아닌 이상으로 '2인 1조'로 활동한다. 일반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한 쌍이 되는데 유심히 보면 어울리는 듯하면서 정말 어색한 모습으로 서로가 걸어간다. 그들 사이에서는 목표물이 조준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화가 없다. 친한 사이라기 보다는 업무적인 관계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체크 포인트 2.
반드시 손가방등을 휴대한다. 아직까지 학계에서는 그 가방에 무엇이 들어있는지에 대해서 논란과 학설이 분분한데 유력설은 가방안에 제사를 올리는 '신청서'따위와 이미 속아넘어간 자들의 명단이나 제사헌금따위가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보통 남자들은 한 쪽으로 가방을 매고 여자들은 비껴매는 것을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 통일성 확보를 위해 여자 2인 1조팀의 경우는 같은 방향으로 비껴 맨다. 왜냐면 서로 보행시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체크포인트 3.
옷차림이 유난히 촌스럽다. 보통 단이 조금 짧은 바지를 입는다면 일단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같은 시간대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장소에서 여러번 봤다면 일단 100%다.
그리고 한 가지더로 여러분들께서 지적하신 '신발굽'의 상태인데, 워낙 많이 걸어서 많이 닳아있고 아니면 신발자체가 많이 변형되어 있다.

그리고 절대 집안으로 들어오게 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계속 걷고 서있기 때문에 많이 피곤해서 앉으면 도통 일어나지 않는다. 이건 경험이다. 또한 그 발냄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과거 이영만 선배의 양말냄새에 곱하기 10정도 하면 된다. 물론 여기 잠시 앉았다가 가라는 호감을 보여주는 사람들에게는 의례 자신감을 얻게 마련이니 더욱더 이런 부분은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일단 대처법은 여기까진데....그들을 보면 한심하기도 하지만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은 천도재를 지내는 건데 그것이 싯가 100만원도 넘는 것들이라 더욱더 그들의 저의를 의심케한다.

우리나라는 다종교 국가이면서 종교간의 대립이나 행태가 지나치게 적대적이고 대립적이다. 몇 개의 메이져 종교나 정통성있는 종교를 제외하고는 거의 신흥종교가 대부분이며, 기존의 종교도 자본주의의 흐름에 편승하면서 많은 부분 변질되고 타락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신흥종교의 폐해는 더욱더 크다. 얼마전 영생교에서 집단적으로, 그리고 자기 종교를 배신한 자를 교주(자신이 구세주라고 칭함)가 직접 살해하라는 교사를 하고, 이에 충성스러운 교인들은 주님의 뜻이라며 어무런 도덕적 저항없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죽여서 어느 이름 모를 산에 파묻었다. 이는 비단 오늘의 일이 아니라 88년, 오대양 사건에서도 남녀 32명의 집단자살, 얼마전에도 '생명수'운운하면서 부활이 가능하다고 검거당시까지고 주장하던 한 종교의 암매장 사건등, 이런 일은 지나버린 과거가 아니라 바로 현실이다.

문제는 신흥종교의 문제라기 보다는 신흥종교가 대부분 포커스를 잡고 있는 것은 결국 '엄청난 자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치밀한 상술과 세뇌작용을 돕는 집중프로그램들(그것이 몇 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계속적인 현세의 위기감을 조성하면서 개인 스스로가 도저히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면서 결국 개인과 가족은 파멸로 치닫는다.

그러면서 종단 내부의 엄청난 비리와 헌금 및 헌납문제 등이 교인 내부에서 촉발되면서 위법한 행동들에 대한 처벌과 언론에 알려지는 등의 문제를 봉쇄하기 위해 해당 종교의 교주들은 결국 살인을 교사하고, 살인자가 되버린 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면서도 결국 교주자신 마지막까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면서, 종교 내부의 갈등이라고 주장한다.

오늘 본 '도를...'사람들도 역시 사실 그러한 신념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다. 전부는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나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한 개인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종교의 우두머리의 조정과 통제에 따라 자기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망각한다. 그들을 보면 많이 안타까울 뿐이다.

작년 우리 육촌형이 증산도 계열의 종교에 빠져 10일간인가 단식기도 올리다가 집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증산도 계열의 사람들은 온갖 기도와 예식을 치루어주면서 감언이설을 내놓았고, 장례가 끝날때 쯤에서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렸다. 무엇인가를 물어볼 여유도 주지않은채 말이다. 예측이지만 분명 어떠한 비슷한 문제나 연관되는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증산교 자체를 부정하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그 종교자체는 밉고, 내 취향도 아니며 교리 또한 시덥잖다.)

영생교 교인들처럼 죵교라는 거대한 의식의 조정관이 극단적인 통제에 통해 개인의 인식과 사고작용을 마비시키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러한 신도들에게 아쉬움을 느낀다. 오늘도 땀흘려가면서 전도에 온 몸을 바치는 '도를 아시나요'팀들의 노고를 치하하고는 싶지만, 이제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집으로 가라. 집으로~

2003.08.18 19: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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